경기 후 선수들이 팬들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대구=곽힘찬 기자] 지난 28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A매치 평가전에서 손흥민과 문선민의 연속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대구 스타디움을 찾은 33,252명의 관중들은 열띤 응원을 펼쳤고 출전한 선수들은 멋진 경기력으로 팬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이번 온두라스전은 그저 단순한 A매치 경기가 아니었다. 이번 A매치는 팬이든 선수든 누군가에겐 조금 더 특별한 경기로 다가왔다.

대구에서 '대~한민국'이 울려 퍼지다

이번 온두라스전은 무려 13년 만에 대구에서 치러지는 A매치였다. 2005년 8월 7일 동아시안컵 일본전 이후 처음이다. 대구는 유독 A매치와 인연이 없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비해 관중 유치가 힘들고 대구 스타디움의 위치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2호선인 대공원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약 15분가량 더 들어가야 대구 스타디움이 나온다. 또한 축구전용구장이 아닌 종합경기장이라 관중석과 그라운드 간 거리가 멀어 경기를 지켜보는 것에도 어려움이 존재한다. 대구 시민들은 이번 온두라스전을 앞두고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13년 만에 대구에서 열리는 A매치’라는 기대감 속엔 ‘A매치 흥행 실패’의 걱정이 존재했다. 하지만 3만 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며 대구 스타디움을 뜨겁게 달궜다.

33,252명의 관중은 분명 65,857석에 달하는 대구 스타디움을 꽉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지만 흥행에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울산에서 열린 세르비아와의 A매치는 30,650명이 경기장을 찾았고 수원에서 개최됐던 콜롬비아전은 29,750명이 찾았다. 당시 콜롬비아전은 월드 스타인 하메스 로드리게스(바이에른 뮌헨), 후안 콰드라도(유벤투스)가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3만 명을 채우지 못했다. 그렇기에 평일 오후 8시 경기 개최, 불편한 교통편이라는 단점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3만 명이 넘는 관중이 대구 스타디움을 찾았다는 사실은 분명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자신을 대구FC 팬이라고 밝힌 김기한(22)씨는 “대구 스타디움에 오려면 불편한 교통편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만 명이 넘는 관중이 찾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고 말했다. 대구FC 팬들에게도 온두라스전은 뭔가 어색했을 것이다. 보통 대구FC 홈경기는 불과 1천 명 안팎에 불과한 관중들이 대구 스타디움을 찾는다. 대구FC 팬들은 텅텅 빈 관중석만 보다가 수만 명이 들어찬 대구 스타디움을 지켜봤을 땐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온두라스전을 찾은 조영준(27)씨는 “대구FC 홈경기는 많아봤자 1천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고 적을 땐 500명도 채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수만 명이 들어찬 경기장을 보니까 신기하다. 이 관중들 중 3분에 1정도만이라도 K리그 경기를 꾸준히 찾아줬으면 좋겠다”라며 놀라움과 아쉬움을 함께 드러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에서 뛰며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손흥민을 비롯해 황희찬, 이승우 등 어린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이번 온두라스전은 대구 시민들에게 있어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손흥민이 터뜨린 환상적인 중거리 골은 13년 만에 대구에서 A매치 경기를 지켜보는 대구 시민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응원가와 관중들이 함께 참여하는 파도타기 응원은 대표팀의 A매치가 열리는 날엔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그 흔한 광경은 더운 대구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특별한 광경이 되었고 대구 시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주었다.

대구 스타디움에서 등장한 대형 태극기 ⓒ 스포츠니어스

대구가 특별했던 선수들

이번 온두라스전이 열린 대구는 팬들 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마 이승우와 문선민은 대구라는 도시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온두라스전은 두 선수의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다. 이들은 각각 선발, 교체로 출전해 한국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승우는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를 비롯해 과감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손흥민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고 문선민은 황희찬의 도움을 받아 침착하게 추가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데뷔전 데뷔골을 완성시켰다. 최근 대표팀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투지를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준 두 선수는 데뷔전에서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고 이들은 러시아행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온두라스전이 열리기전 대표팀의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김진수, 권창훈, 이근호 등을 비롯한 대표팀 주전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낙마 소식은 월드컵 본선 경기를 불과 한 달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엄청난 악재로 다가왔다. 이 상황에서 이승우, 문선민은 사실상 대체 선수로 발탁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찾아온 기회는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했던가. 이들은 그 기회를 완벽하게 잡았고 경기장엔 그들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몸을 사리지 않는 간절함을 보여주며 열심히 뛴 이들은 대구를 러시아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만들었다. 축구 인생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데뷔전을 치른 두 선수에게 대구는 약속의 땅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조현우 역시 이번 온두라스전이 특별했을 것이다. 대구FC의 주전 골키퍼인 조현우는 대구 스타디움에서 수많은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대구 스타디움은 조현우에게 집과 같다. 이날 조현우는 몇 차례 선방을 보여주며 활약했고 무실점으로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온두라스전을 앞두고 “대구에서 정말 오랜만에 경기를 하게 됐다. 대구 시민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는 조현우는 대구 스타디움을 찾은 33,252명의 팬들 앞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5번째 A매치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지난 온두라스전은 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몇몇 선수들에겐 자신의 커리어에 반환점이 될 만한 중요한 경기였다. 각자에게 의미 있었던 대구에서의 A매치는 환호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대구에서 펼쳐진 13년 만의 A매치. 팬들은 대구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 응원 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추억을 회상했고 그 분위기를 즐겼다. 언제 다시 대구에서 ‘대~한민국’이 울려 퍼질지는 모르겠지만 5월 28일의 대구는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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