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떨어졌던 골키퍼, 간절한 승리의 눈물 쏟다


외모와 안 어울리는 '울보' 전수현 ⓒ FC안양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8일 안양종합운동장.

FC안양과 서울이랜드의 2018 KEB하나은행 K리그2 경기가 주심의 종료 휘슬과 함께 끝났다. 안양은 서울이랜드를 2-0으로 꺾고 올 시즌 첫 2연승을 달리는데 성공했다. 선수단은 환호했다. 고정운 감독도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퇴장 당한 최재훈은 신나게 그라운드로 달려갔다.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만들어낸 값진 승리였다.

그렇게 다들 웃고 있을 때 한 사람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안양에서 유일하게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골키퍼 전수현이었다. 그는 관중들에게 인사하러 오다가 결국 울음이 터졌다. 장갑으로 유니폼 소매로 눈가를 열심히 닦았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 나왔다. 옆에서 팀 동료와 구단 관계자가 와서 토닥여도 그는 계속 울었다.

전수현에게 악몽과 같았던 4월 14일
전수현은 4월 14일을 잊을 수 없다. 그 때도 안양은 서울이랜드를 만났다. 장소가 서울이었다는 것이 달랐다. 당시 7라운드에서 만난 두 팀은 상당히 벼르고 있었다. 6라운드까지 나란히 1승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승부보다 승리가 간절한 한 판이었다. 이기고 싶었고 이겨야 했다. 간절함과 간절함이 충돌했다.

명승부가 나올 줄 알았던 경기는 뜬금없는 장면에서 승부가 갈렸다. 전반 17분 동료의 평범한 백패스가 전수현을 향했다. 이 패스를 바로 차내려던 전수현은 헛발질을 했다. 공은 전수현을 맞고 골문 안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것이 결승골이었다. 이후 안양은 11경기 동안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전수현에게는 온갖 악플이 쏟아졌다. ‘이게 K리그다’라는 비아냥도 많았다.

전수현은 당시를 회상했다. “실수를 하고 나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팀에서 고참이었다. 내가 실수했다고 좌절하면 팀이 더욱 흔들릴 것 같았다. 경기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하면서 뛰었다. 그런데 결국 경기가 그렇게 끝났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힘든 것보다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 FC안양 제공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교차되더라. 내 실수 이후에 선수들이 기를 쓰고 뛰었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나를 위해서 뛰는 것이었다. 이건 그저 내 개인적인 실수였다.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후배들이 어떻게든 내 실수를 대신 만회해주려고, 나를 도와주려고 뛰는 것 같았다. 그 경기 이후 많이 힘들었지만 팀 동료들이 고마웠다.”

부진 속 운명처럼 다시 만난 서울이랜드
그 이후로 안양은 계속해서 부진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5월 20일 드디어 기다리던 시즌 첫 승을 만들어냈다. 광주FC를 3-2로 꺾었다. 하지만 전수현은 마음껏 웃지 못했다. 벤치에 앉아 팀 동료들이 승리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 골문에는 전수현 대신 정민기가 있었다. 물론 팀이 승리했다는 것은 기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은 팀의 고참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서울이랜드와의 첫 경기 이후 고정운 감독이 전수현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안양은 22세 이하 선수 자원이 탄탄하지 못하다. 고 감독은 어떤 포지션에 22세 이하 선수를 넣을 것인지 항상 고민한다. 그 와중에 정민기가 나름대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선수단 운용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이기 위해 전수현 대신 정민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번 서울이랜드와의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고 감독은 같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광주전과 같이 정민기를 투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선발로 예정되어 있던 채광훈이 경기 전날 장염에 걸린 것이었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지만 선발로 뛰기에는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채광훈 대신 선발로 낙점된 선수는 김진래였다. 그는 22세 이하 자원이었다.

고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김진래가 어리기 때문에 위험 요소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채광훈을 선발로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골키퍼는 전수현이 나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중요한 포지션이 바로 골키퍼다. 게다가 전수현은 지난 경기로 인해 이번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도 있을 것이다. 오기가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수현을 선발로 택한 이유다.”

불가능해 보였던 ‘무실점’ 미션, 이악물고 해낸 전수현
서울이랜드와의 두 번째 경기 전 고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최근 다섯 경기에서 실점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14실점이었다. 한 경기 평균 세 골 가까이 먹히는 셈이었다. “편하게 경기하라”고 말한 고 감독이지만 그는 선수들에게 미션을 하나 던져줬다. “오늘은 우리 무실점 한 번 해보자. 수비가 조금만 더 집중하면 할 수 있어.”

하지만 희망은 여지없이 깨질 것처럼 보였다. 안 풀리는 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전반 종료 직전 안양 최재훈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것이었다. 한창 경기를 잘 풀어가던 안양의 입장에서는 찬물을 끼얹은 셈이었다. 하프타임 안양의 라커룸 분위기는 좋을 수 없었다. 그 때 고 감독이 말했다. “서로 믿어라. 한 명이 부족하지만 한 발짝만 더 뛰어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선수들이 후반전을 위해 라커룸을 나서기 직전 전수현은 자책하고 있는 최재훈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후반전 파이팅은 재훈이가 외쳐보자.” 최재훈은 누구보다 큰 소리로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재훈이가 팀에 대한 미안함이 컸을 것이다. 그런 선수가 후반전을 앞두고 파이팅을 외치면 동료들이 더 힘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수들이 이기고 싶었던 마음도 있지만 후반전에는 최재훈을 위해 뛰는 마음도 컸을 것이다”라고 전수현은 설명했다.

퇴장 당한 최재훈은 관중석으로 이동해 동료들을 응원했다 ⓒ FC안양 제공

그리고 안양은 기적처럼 무실점을 달성했다. 3월 3일 광주와의 개막전 0-0 무승부 이후 첫 무실점이다. 이번에는 승리까지 가져와 기쁨이 배가됐다. 여기서 전수현은 수비진을 리드하고 멋진 선방을 보여주면서 톡톡히 역할을 해냈다. 적어도 지난 경기와 같은 모습은 다시 보여주지 않겠다는 각오가 전해졌다.

상대 팀 감독도 그를 칭찬했다. 서울이랜드 인창수 감독은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상대 퇴장 이후 우리가 만들어낸 기회를 살렸다면 승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 골키퍼의 선방으로 인해 흐름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다 실점을 하고 패배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이랜드가 주도권을 완전히 쥘 수 있는 상황을 전수현이 막아냈다는 뜻이었다. 그는 경기 후 무릎 통증으로 절뚝이면서 걸어나올 정도로 간절히 뛰었다.

키 큰 골키퍼는 마음고생에 눈물을 쏟았다
경기 후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전수현은 쉽게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북받친 감정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인터뷰 도중에도 조금씩 눈물이 고였다. 그나마 인터뷰 직전 김영도의 한 마디가 그의 감정 조절을 도와줬다. “계속 우니까 김영도가 옆에서 ‘애아버지가 왜 울어?’라고 하더라. 평소에 말도 잘 안하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

그는 경기 종료 후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쏟아지면서 서러웠던 생각들이 스쳐갔다. 여러가지 과거의 추억도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빛을 많이 보지 못했던 선수였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잘하는 선수도 아니었고 화려한 선수도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나 자신이 만들어낸 성과에 눈물이 확 나더라.”

“내게는 이번 서울이랜드전이 인생 경기다. 안양으로 이적하고 나서 처음으로 승리를 내 손으로 만들어냈다. 나는 항상 선수들에게 얘기한다.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결과로 이야기하는 종목이다. 그런데 내가 경기에 나서서 승리가 없다보니 참 힘들었다.”

그가 쏟은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 FC안양 제공

단순히 개인의 부진으로 인한 마음고생이 아니었다. 팀 성적 부진으로 인한 고참의 책임감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예전에는 내 것만 잘하면 됐다. 근데 이제는 내 것을 잘하면서 동시에 후배 선수들을 컨트롤하면서 격려도 해줘야 한다. 이것을 모두 경기장 안에서 해야한다. 솔직히 나는 힘들었다.” 고참의 입장에서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지만 오히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수현은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었다.

고독한 싸움에서 작은 승리 거둔 전수현
이제 전수현은 서울이랜드전 승리로 반전을 꿈꾼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도 승리에 대한 기쁨은 감출 수 없었다. 승리와 함께 무실점이라는 선물을 동시에 받았으니 말이다. “정말 기분 좋다. 나는 골 넣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는 골을 먹지 않는 것이다. 승리도 승리지만 무실점을 기록한 것이 최고다.”

하지만 그는 고참답게 팀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기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고작 2승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놓여져 있는 현실이다. 한두 경기로 축구 인생이 끝나거나 앞으로의 미래가 좌지우지 되는 것은 아니다. 승리는 했지만 우리는 더 멀리 봐야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후배들이 더욱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점점 더 발전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이다. 후배들 중에서는 미래가 창창해 보이는 선수가 많다. 축구를 할 때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해야한다. 나는 옆에서 이들을 잘 도와주고 싶다. 고참의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솔선수범하는 것이 앞으로 내 목표다.”

골키퍼는 외롭다. 그리고 그 골키퍼가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고참이 된다면 책임감까지 따라온다. 전수현은 외로이 그 책임감을 온 몸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치명적인 실수로 인한 비난과 비판은 덤이었다. 그는 그것마저 견뎌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결국 보여줬다. 아직 전수현은 쓸모있는 골키퍼라는 사실을.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경기장을 떠났다. 테이핑한 무릎을 매만지며 그는 절뚝거리며 걸어 나갔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은 과거에 비해 더욱 당당해 보였다. 지금까지의 마음 고생을 눈물로 다 털어냈기에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지옥에 떨어졌던 한 골키퍼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이끄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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