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TV 중계화면 캡쳐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누군가에겐 영광의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겐 악몽의 순간이었다. 가레스 베일은 원더골로 영광의 역사를 거머쥐었다. 로리스 카리우스는 두 번의 실책으로 역적이 됐다.

카리우스를 향한 비난과 위로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프랭크 램파드는 카리우스가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걸맞지 않은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전설 올리버 칸은 "카리우스의 경력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리버풀 현지 팬들 사이에서는 카리우스를 향한 살해 위협이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나 역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면서 카리우스의 실수에 경악했다. 베일의 시저스 킥은 그 어떤 골키퍼도 막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실점과 세 번째 실점으로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경기 후 들리는 비난 소식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한편으로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카리우스를 비추는 화면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카리우스는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올랐다. 그러나 수많은 축구 팬들이 주목하는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 두 번을 저질렀다. 그 마음과 부담감을 상상할 수 없다. 모하메드 살라와 다니 카르바할의 눈물보다 그의 눈물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경기장에 있던 리버풀 팬들은 1-3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한 선수들에게 박수와 위로를 건넸다.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자신이 응원하던 팀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지는 모습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리버풀 팬들은 그들이 그렇게 외치던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라는 응원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카리우스는 흐느끼며 그들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표현했다. 팬들은 카리우스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이 한 경기에서 너무나 많은 스토리가 탄생했다. 카리우스는 두 번의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다. 그는 울며 팬들에게 사과했고 원더골을 보여준 베일이 가장 먼저 다가가 위로를 건넸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그를 말 없이 껴안았고 팬들은 그를 향해 박수를 쳐줬다. 이어진 시상식에서도 카리우스는 차마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고 내려왔다. 끝까지 화면을 보여준 중계진에 감사하다. 경기가 끝난 이후 그대로 방송을 종료했다면 카리우스의 스토리는 완성되지 않았다.

경기 종료 후 카리우스는 팬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 SPOTV 중계화면 캡쳐

카리우스는 프로축구선수로서, 그것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 지점이 카리우스를 향한 비판점이다. 그는 결국 실력만큼 보상받을 것이다. 골키퍼 장갑을 벗든, 혹은 리버풀의 두 번째, 세 번째 골키퍼로 내려가든, 혹은 다른 팀으로 이적하든 그는 이제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수도 있다. 그의 운명은 그가 어떻게 털고 일어날지에 따라 달려있으며 클롭 감독의 권한에 달려있다. 물론 팬들의 목소리도 그의 자리를 좌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크 램파드의 말처럼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딱 여기까지다. 그가 결승전까지 지켜왔던 리버풀의 골문을 기억해야 한다. 경기장에 있던 리버풀 팬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향해 박수를 쳐줬고 위로를 건넸다. 그렇다. 이 글은 리버풀 팬들을 향한 부러움의 표현이다. 그들은 자신의 선수들을 향해 품격을 보여줬다. 물론 비난하고 욕설을 내뱉은 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양손을 머리 위로 들며 그들에게 박수를 쳐줬고 그들의 모습이 중계 화면으로 송출됐다. 국내 리버풀 팬들도 카리우스를 향한 비난에 "잘 해왔던 선수"라며 아픈 마음을 표현했다.

국내 팬들의 반응은 낯설지 않다. 우리 대표팀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비난을 받을 때 "그 선수는 원래 잘 하는 선수"라며 옹호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만큼 그 선수들을 지켜봐 왔던 사람들이다. 선수들의 실수를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않았다. 오범석과 정성룡을 향한 비난에 수원삼성 팬들이 정성룡을 감쌌다. 고요한을 향한 비난에 FC서울 팬들이 그를 감쌌다.

며칠 전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꽤 통렬한 일침이라고 생각했다. 신태용 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았다. 한국갤럽 조사 지표는 국민 절반이 축구에 관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양한 분야에 있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생각을 물었다. 한 지인은 "비축구팬의 시선으로 볼 때 여전히 한국인은 축구를 좋아한다"라며 반론을 제시하면서도 "우리 대표팀에 승리를 기대할 수 없으니 관심이 멀어진 게 아닌가"라며 일부분 공감했다.

승리만을 즐길 수 있다면 카리우스를 향해 박수를 치던 리버풀 팬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이미 국내에서도 카리우스를 향한 조롱과 비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카리우스를 향해 박수를 보냈던 팬들은 그만큼 자신의 선수들을 지켜봤기에, 그만큼 그가 해왔던 업적과 노력을 알기에 그를 향해 위로를 건넸던 게 아닐까. "우리도 축구를 좋아한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던 그들은 과연 카리우스를 향해 위로와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우리 대표팀을 향해서도 그렇게 할까. 우리는 그런 팬들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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