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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WK리그에서는 축구화를 벗었지만 이제 그녀는 신발을 가리지 않는다. 여자축구를 알리기 위해 그녀는 축구화도 신고 구두도 신는다. 신발이 다양한 만큼 직책도 다양하다. WK리그 현장에서 만난 만큼 이날은 그녀를 권예은 '해설위원'으로 불렀다.

그녀는 27살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축구화와 유니폼을 벗었다. 축구 명문 한양여대에서 지소연과 함께 활약하기도 한 그녀는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수원시설관리공단(수원FMC)의 지명을 받았다. 2012년 동계훈련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그녀는 의료진의 실수로 인해 부상이 길어져 결국 만 25살의 나이에 은퇴를 결심했다. 16세 이하 대표출신 공격수로서 그녀의 은퇴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뛰어야 할 선수인데…"

WK리그 경기 해설은 지난해 6월부터 시작했다. 권예은은 과천시 여자축구단 감독, 한국여자축구문화진흥협회를 이끌고 '우먼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여성 축구인들에게도 다가가고 있다. 선수 시절보다 더 바쁘게 지낸다. 한체대 여자축구동아리 FC천마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인천현대제철과 수원도시공사의 현대제철 H CORE WK리그 2018 7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어렵지 않게 권예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박길영 감독과 최진철 감독을 번갈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양 팀 감독들의 경기 전 인터뷰에서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인천현대제철 최인철 감독은 권예은의 중학교 시절 은사다. 최 감독은 "여기서 뛰어야 할 선수인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부상만 없었어도 훨씬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재능 면에서 뛰어난 선수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로 여자축구를 알리기 위해 일하는 모습을 예쁘게 보고 있다. 그래도 저렇게 자기 생활을 찾아서 축구계에 종사해 고맙게 생각한다"라며 응원을 잊지 않았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지소연도 "마음이 아프다. 워낙 좋은 선수였고 안 아팠다면 지금도 운동장에 있었을 텐데. 그래도 자리 잘 잡은 것 같다. 열심히 해야 한다"라며 격려했다.

수원도시공사 박길영 감독과는 박 감독이 수원시설관리공단 코치 생활을 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박 감독은 "기술적인 면이나 축구 선수로서 마음가짐 등 여러 가지 좋은 걸 갖고 있는 친구였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친구다. 나한테도 힘이 된다. 내가 감독이 처음이라 오히려 (권)예은이가 나에게 용기도 많이 준다"라면서 제자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과 대견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해설 마이크를 잡은 권예은은 전반전 동안 열정적으로 해설을 진행했다. 학생 시절 은사가 이끄는 팀과 자신이 몸담았던 팀의 격돌을 지켜보는 권 위원의 마음도 복잡했다. 전반전 관전평을 물으니 "인천현대제철이 수원도시공사가 노린 압박을 기량으로 벗어났다. 비야는 묶였지만 이세은의 오버래핑과 장슬기, 따이스의 측면 공격이 좋았다"라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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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도 제대로 못 쳐다봤던 '선출' 해설위원

권예은 해설위원은 올해로 해설 2년 차다. WK리거 출신으로서는 처음 헤드셋을 꼈다. 처음에는 카메라도 제대로 못 쳐다봤단다. 권 위원은 "선수 때는 '가', '와', '나가라', '들어와라', '땡겨라' 이렇게 간단하게 얘기를 하는데 해설은 그걸 다 풀어내서 전달해야 한다.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다"라며 선수 출신 해설의 고충을 전했다.

그런 그녀에게 뜻밖의 프로젝트가 해설에 도움이 됐다. 권예은은 한국여자축구문화진흥협회를 발족하고 '우먼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여성 축구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레슨 영상을 제공한다. 한체대 여자축구동아리 FC천마로 아마추어 축구인들과 인연을 맺은 게 시작이다.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욕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만한 콘텐츠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권예은은 레슨 영상으로 여자축구를 알리면서도 또 여성 축구인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권예은은 "레슨 영상을 찍을 때도 최대한 쉽게 설명해줘야 많은 분들이 잘 듣고 보고 따라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직접 일대일로 가르쳐주면 행동으로도 보여줄 수 있는데 영상으로 담아야 하니까 쉽게 이야기하고 싶더라.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또 연결돼서 해설할 때도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 한국여자축구문화진흥협회

'클릭'을 부르는 레슨 영상

실제로 그녀가 찍은 영상은 '클릭'을 부르는 무언가가 있다. 젊은 감각과 센스로 사람들을 휘어잡는다. "영상 잘 보고 있다"라고 먼저 말하니 "정말이냐"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권예은은 "섬네일 작업은 따로 편집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가 센스도 좋고 축구도 많이 하는 친구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누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하더라. 그런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라면서 뿌듯해했다.

권예은은 "선수 때는 운동장에 데려다주면 가서 운동하고, 들어오면 쉬고, 밥 주면 밥 먹고 했다. 지금은 먼저 누구를 만나러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지방도 오가니까 굉장히 재밌는 것 같다"라면서 선수 시절보다 바쁜 일상을 전했다. 최인철 감독과 박길영 감독 등 주변인들의 응원에도 "도움도 많이 주시려고 한다. 항상 감사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여자축구에 관심을 호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녀만큼 직접 발로 뛰는 사람은 적다. 아마추어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욕구를 정확하게 꿰뚫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그녀가 거쳐 간 여성 축구인들은 WK리그 경기장을 찾으며 축구를 보고 즐겼다. 누구도 쉽게 먼저 나서지 못했던 일이다.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녀에게 '선구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권예은은 "어렵긴 하다"라는 한 마디로 그 모든 고충을 설명했다. 그녀는 "여자축구 자체가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종목도 아니다. 남자축구에 비해서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하나하나 바꿔 나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움직이는 거다. 그렇게 바꿔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아지지 않을까"라며 희망과 꿈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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