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스베로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승우는 성인 대표팀에서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성인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그 작은 체구로는 힘이 좋은 수비수들을 상대로 이겨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엔트리에 이승우의 이름이 올랐을 때 고개를 갸우뚱 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승우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겠지만 흥행을 위한 노림수는 아닌지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승우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고 성인 대표팀에 입성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성인 대표팀에서도 잘 해야 조커 정도로 생각했다.

이승우에 대한 편견, 사과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던 걸 사과하고 싶다. 오늘(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한국과 온두라스의 평가전을 지켜본 뒤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승우의 모습은 놀라웠다. 프로 무대에 데뷔해 많은 경기를 뛰진 못했지만 그는 그 사이에도 꽤 많이 성장한 듯했다. 한 경기로 선수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성인 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이승우는 아직 안 된다’고 속으로 수십 번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이주헌 해설위원처럼 어디에 대고 크게 외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휴….

이승우는 온두라스전과 같은 경기력이라면 충분히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뛸만하다. 이승우와 문선민이 대표팀에 뽑힌 걸 보면서 스웨덴전 맞춤형 선발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키가 큰 반면 다소 느린 스웨덴을 상대로 이승우나 문선민 같은 선수들이 뒷공간을 휘저어 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고 신태용 감독이 이 스웨덴전을 위해 단 한 번도 A매치 무대에 서보지 않은 둘을 뽑았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을 잡지 못하면 이후 멕시코와 독일전은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에 신태용 감독의 이 지략 성공 여부는 대단히 중요하다. 온두라스전과 같은 경기력이라면 이승우는 충분히 선발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할만한 능력이 있다.

이승우의 훈련 태도에 대해서도 사실 걱정을 했었다. 개성이 강한 그가 과연 선배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대표팀에는 개성이 강한 기성용과 손흥민 등도 있다. 기성용과 이승우가 과연 어울릴 수 있을지는 궁금하면서도 다소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대표팀에 소집돼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잘 지내고 있단다. 이승우도 선배들에게 예의를 다하고 먼저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너무 이승우를 철없는 어린 선수로 봐 왔던 것 같다. 사과한다. SNS로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별로 비판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이제 이승우는 A매치 데뷔전을 치러 귀화해도 다른 나라 대표가 될 수 없다. 다행이다.

문선민은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 인천유나이티드

주전 경쟁, 이청용도 안심 못한다

하나 개선해야 할 점이 보이긴 했다. 이승우에 대한 지적이라기보다는 대표팀 전체에 대한 지적이다. 이승우는 최전방에서부터 드리블 돌파를 하며 상대 파울을 자주 얻어냈다. 하지만 한국은 이렇게 얻은 소중한 세트피스 기회를 단 한 번도 살리지 못했다. 영리한 이승우가 좋은 위치에서 세트피스를 얻어낸다면 장신 공격수들이 공격에 가담해 이를 해결해 줘야 한다. 이승우나 문선민이 세트피스에서 헤딩골까지 넣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온두라스전에서 후반 김영권의 어깨에 맞은 슈팅 외에는 세트피스를 살리지 못했다. 이승우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그가 골에만 관여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얻은 세트피스 기회를 살려줘야 한다.

이승우의 등장으로 대표팀 주전 경쟁은 아주 재미있게 흘러갈 것 같다. 여기에 후반 교체 투입돼 골을 뽑아낸 문선민까지 가세하며 월드컵으로 가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 둘의 등장을 대단히 환영한다. 그동안 대표팀에 줄곧 뽑혔던 선수들은 물론 열심히 뛰었지만 그래도 간절함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부러 설렁설렁 뛰는 건 아니겠지만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느낌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번에 잘 못해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전에 이뤄 놓은 게 많으니 이번 한 번은 좀 잘하지 못해도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승우와 문선민은 달랐다. 절실함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열리는 딱 두 번의 평가전을 통해 신태용 감독의 낙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번 두 경기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는 월드컵 문턱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이 눈에 보였다. 선발 출장한 이승우는 A매치 데뷔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 있게 돌파해 슈팅까지 날렸고 후반에 투입된 문선민은 드리블을 하다 공을 빼앗기자 다시 이를 악물고 달려가 그 공을 빼앗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악착 같은 축구는 이승우와 문선민의 발 끝에서 시작됐다. 이런 기세라면 이청용이 이 둘을 밀어내고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들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대표팀 경력을 다 떠나 이 경기에서만큼은 이승우와 문선민이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문선민은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 인천유나이티드

기존 선수들 자극 받는 계기되길

문선민은 온두라스전에서 기술적으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데뷔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색깔 없는 선수보다는 다소 투박해도 후반에 투입돼 최전방에서부터 압박을 하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확실한 색을 가진 이런 선수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문선민은 충분히 몇 번 더 기회를 부여 받아도 될 만한 활약을 펼쳤다. 이승우와 문선민의 등장은 한국 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체격 좋은 선수들 사이에서 이 둘의 경쟁력이 부족해 보였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물론 온두라스가 전력을 100% 다 가동한 경기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은 대표팀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몸싸움과 자신감, 체력 모두 기대이상이었다. 이 한 경기로 이승우와 문선민이 최종 엔트리에 낙점될 수 있을지 여부는 모른다. 이청용을 한 경기로 판단해 엔트리에서 제외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승우와 문선민의 등장이 이청용을 비롯해 지금껏 대표팀에서 많은 기회를 부여 받았던 선수들이 자극을 받는 계기가 될 건 분명하다. 누가 월드컵에 가더라도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공정하게 선발된다면 좋겠다. 이승우와 문선민은 등장 자체만으로도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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