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앙 국내 선수 결산 ②] 너무 일찍 꺾이고 만 권창훈의 날개


권창훈, 디종, 리그앙
ⓒ 리그앙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축구 배우러 간다던 선수가 어느 날 보니 축구를 가르치고 있더라”. 딱 이 느낌이었다. 지난 시즌 반년간 리그앙 적응기를 보낸 권창훈은 적응을 마친 이번 시즌 디종의 에이스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K리그 수원 삼성에 있을 때만 해도 어색하다고 여겨진 오른쪽 윙 포워드 자리에서 그는 위대한 피니셔로서 눈을 떴다. 매 경기 중요한 순간마다 골로 응답한 권창훈에게 디종의 해결사, 에이스 타이틀이 붙는 건 시간문제였다.

권창훈, 디종, 리그앙
한 시즌 동안 무려 11번이나 SNS에 올라온 사진 ⓒ 디종 페이스북

리그앙 역대 국내 선수 중 최다 필드 골 기록자, 권창훈
권창훈은 올 시즌 리그앙 34경기에 나서 11골을 기록했다. 2010-11 시즌 AS 모나코에서 박주영이 세운 리그앙 국내 선수 최다 골 기록엔 아쉽게도 한 골이 모자라다. 그러나 권창훈은 리그앙 역대 국내 선수 중 최다 필드 골 기록을 새로 썼다. 12골 중 4개의 PK 골이 포함된 2010-11 시즌의 박주영과 달리 권창훈은 11골을 모두 필드골로만 기록했다. 순수 공격수도 아닌 윙 포워드로 뛰는 선수가 PK 골 없이 무려 11골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권창훈은 팀 부동의 원톱 줄리우 타바레스와 함께 이번 시즌 디종 최다 득점자로 당당히 올라섰다.

개막전부터 선발로 기용되며 출발한 권창훈은 3R 스타드 렌 전에서 디종 데뷔 골을 기록하며 심상치 않은 시즌을 예고했다. 9월 A매치 기간 중 발목 부상을 당해 2주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얼마 안 가 8R 스트라스부르를 상대로 리그 두 번째 골을 넣어 자신의 폼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시켰다. 권창훈은 시즌 초부터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권창훈이 없는 동안 2경기 전패를 당한 디종은 권창훈이 돌아오자 강호 리옹전을 포함해 복귀 후 두 경기를 무승부로 마쳤다. 그의 유무에 따라 경기 내용 차이가 상당하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11월이 되자 권창훈은 폭발했다. 13R 트루아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해 팀의 3-1 승리에 크게 기여한 권창훈은 14R 툴루즈전, 15R 아미앙전에도 골을 터트려 세 경기 연속 골을 달성했다. 특히 간결한 연계 후 빠른 슈팅 타이밍을 잡아 상대 수비와 키퍼를 넋 놓고 보게 만든 아미앙전 골은 프랑스 현지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프랑스 축구 레전드 크리스토프 뒤가리는 “이 골을 네이마르 같은 대형 스타가 넣었으면 지금쯤 전 세계가 들썩였을 거다”며 권창훈의 아미앙전 골 장면에 대해 후한 예술 점수를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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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마 하다디와 유독 친해 보였던 권창훈 ⓒ 디종 페이스북

세 경기 연속 골로 뜨겁게 달아오른 권창훈은 연속 골 제동 후 잠시 잠잠한 흐름을 이어갔다. 달로글리오 감독이 팀 내 공격 자원을 골고루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로테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부상에서 복귀한 나임 슬리티를 포함해 여러 선수가 명단에 든 결과 자연스럽게 권창훈의 출전 시간은 줄어들었다. 국내 팬들은 물론 현지 팬들조차 달로글리오 감독의 선택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창 좋은 폼을 자랑하던 권창훈은 뜻하지 않게 시즌 중반기 내내 교체 투입에 만족해야 했다. 이 시기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기엔 출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어느새 슈퍼 서브로 역할이 바뀐 권창훈은 2월 말 니스전에서 극적인 골로 승리에 일조했다. 후반 70분 교체 투입 후 14분 만에 결승 골을 터트려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적은 출전 시간에도 끝내 영웅적인 활약을 보인 권창훈은 이 골을 계기로 다시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이후 30R를 기점으로 마지막 8경기에서 5골을 몰아쳤다. 시즌 중 최고의 폼을 자랑한 시기였다. 31R 마르세유전에서 골을 기록한 권창훈은 32R 툴루즈전, 33R 낭트전에서도 골을 기록해 또 한 번 세 경기 연속 골을 달성했다. 월드컵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확실히 올라온 권창훈을 보며 국내 팬들의 기대치는 최고조에 달했다.

34R 리옹전에서는 네 경기 연속 골에 실패했으나 위협적인 슈팅 시도와 함께 결정적인 장면을 수차례 만들었다. 전반 중 PK를 유도하기 위해 취했던 한 번의 시뮬레이션 액션이 옥의 티이기는 했다. 그러나 후반전에는 본인이 직접, 한 번은 동료와의 연계를 통해 PK를 얻어낼 만한 상황을 만들었다. 아쉽게도 주심이 두 번 모두 PK를 선언하지 않았으나 두 판정 모두 오심에 가까워 상당한 아쉬움을 남겼다. 팀은 2-5로 패했지만, 토트넘을 비롯해 자신을 주목하는 빅 팀들의 스카우터들 앞에서 권창훈이 제 기량을 마음껏 보여준 날이었다.

리옹전을 끝으로 권창훈은 포지션 변경을 단행했다. 디종 공격수들의 연이은 부상 탓에 팀의 전술 변화가 불가피해지면서 3-5-2 시스템의 투톱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나임 슬리티와 호흡을 맞춘 권창훈은 36R 갱강전, 37R 릴전에서도 연속 골을 터트리며 새 포지션에 대한 적응을 순식간에 마쳤다. 권창훈의 투톱 기용이 월드컵 대표팀에도 좋은 옵션이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권창훈은 디종 최정예 멤버들과 함께 리그 최종전에도 당당히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중요했으나 후반 31분 갑작스레 찾아온 아킬레스건 부상이 그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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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앙 페이스북

권창훈이기에 더 아픈, 더 아쉬운, 더 가혹한 부상
한 시즌 권창훈의 경기 내용을 돌아보면 참 할 말이 많아진다. 수원 삼성 시절, 더 나아가 매탄중, 매탄고 시절부터 이목을 끈 왼발은 프랑스 리그앙에서도 굳건히 위력을 발휘했다. 왼발로 볼을 잡아두는 터치, 좁은 공간을 왼발만을 활용해 풀어 나오는 센스, 마무리 상황 때 발휘되는 묵직한 왼발 슈팅까지 모두 클래스가 있었다. 수비가 예상할 수 없는 빠른 타이밍을 잡아 슈팅을 시도하는 특유의 마무리 센스가 돋보였다. 올 시즌 권창훈이 넣은 골 중 대부분 장면에서 이와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 모두가 원더골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런 권창훈의 활약상에 유럽 빅 클럽들이 먼저 높은 관심을 보였다. 현지에서 보도된 클럽들의 명성만 봐도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 프라이부르크,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핫스퍼, 리그앙의 생테티엔 등 빅 리그 혹은 빅 팀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다. 재정 상황이 탐탁지 않은 디종으로서도 권창훈이 여러 팀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기회로 여겨질 법했다. 긴 시간 잘해왔던 시즌의 마무리만 잘 지으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리그 최종전 경기 중 사고가 발생했다. 드리블을 시도하던 권창훈이 갑자기 오른쪽 발목을 부여잡고 넘어져 땅을 짚지도 못한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가벼운 부상이길 바랐으나 정밀 검사 결과 수술이 필요한 아킬레스건 파열로 밝혀졌다. 월드컵은 물론 여름에 있을 아시안게임까지 매우 어려워진 상태다. 차곡차곡 잘 쌓아 올린 시즌의 결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모든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아프게, 더 아쉽게 전해지는 부상 소식이다.

권창훈을 기다리던 월드컵 대표팀에도 큰 타격을 줬다. 그동안 4-4-2 시스템에 이재성과 권창훈을 좌우 날개로 배치한 후 투톱의 손흥민까지 동선에 포함해 재미를 봤지만, 핵심 선수 권창훈이 빠져 모든 플랜을 새로 짜야 할 상황에 놓였다. 다양한 와일드카드 옵션을 두고 고민 중인 아시안게임 대표팀에게까지 여파가 번질 가능성이 높다. 선택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옵션이 일부 줄어든 것만으로도 상당한 타격일 수밖에 없다. 물론 권창훈 본인이 먼저 느낄 상실감은 말할 것도 없다. 부상으로 잃은 하나하나의 요소가 매우 뼈아프게 다가온다.

한 시즌 동안 권창훈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이 선수 더 큰 무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한 시즌의 결말이 이럴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을 못 했을 거다. 시련의 주인공이 권창훈이기에 더 아프고, 더 아쉽고, 더 가혹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든 다시 원래 모습 그대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권창훈의 모습을 보고 싶다. 지금까지 소개한 권창훈의 이번 시즌 활약상이 그의 전체 커리어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한다.

stron1934@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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