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축구협회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전 세계 축구팬들을 흥분케 할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32개국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 담금질에 돌입했다. 월드컵은 각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들의 대항전이기에 어느 하나 쉬운 팀이 없다. 독일, 브라질, 스페인 등을 비롯한 축구 강국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대회가 월드컵이다. 팬들은 강팀의 환상적인 경기력을 기대하는 동시에 약팀의 돌풍을 바라고 있다.

공은 둥글다. 대회가 끝나기 직전까지 어느 누구도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월드컵은 팬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축제로 다가온다.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을 살펴보면 월드컵 무대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던 익숙한 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대회에 나서거나 사상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팀들 역시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의 '전통강호' 이집트를 주목하고 싶다. 무려 28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이집트는 다가오는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킬 '다크호스'로 꼽히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 A조 ⓒ 이집트 축구협회 페이스북

'우물 안 개구리'였던 이집트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 꽤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는 팀이다. 2006, 2008, 201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3연속 무패 우승을 포함해 총 7회로 대회 최다 우승에 빛나는 강자이며 선수 개개인의 기량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만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을 뿐 월드컵 무대에서의 활약은 초라하기만 하다. 각 조 1위만이 본선으로 행하는 ‘전쟁’과 같은 아프리카 지역 예선의 특성이 작용한 탓일 수도 있지만 '아프리카 강호' 이집트는 유독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이전 월드컵 본선 진출 기록은 단 2회에 불과하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아프리카 팀 최초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헝가리에 2-4로 패배하며 탈락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 네덜란드, 아일랜드와 한 조에 묶이며 2무 1패를 기록, 조 최하위로 일찌감치 짐을 쌌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이집트의 3번째 도전인 셈이다.

쉽지 않았던 출발

이집트는 최종예선을 앞두고 가나, 우간다, 콩고 공화국과 E조에 편성됐다. 쉽지 않은 조 편성이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3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한 팀이자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8강에 진출했던 가나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가나에 1-6 대패를 당하며 본선 진출을 눈앞에서 놓친 바 있는 이집트는 가나를 상대로 4년간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다.

그리고 완벽하게 설욕했다. 이집트는 최종예선에서 가나를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하며 조 1위를 확정지었고 가나는 단 1승만을 기록하는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준 끝에 3위로 탈락했다. 결국 이집트는 다섯 개 조에서 각 조 1위 팀만 본선에 올라가는 가혹한 시험대에서 살아남으며 28년 만에 감격스러운 러시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기는 축구'를 이집트에 주입한 쿠페르

현역 시절 중앙수비수로 활약했던 헥토르 쿠페르는 수비 조직력을 매우 중시하는 인물이다. 수비진의 조합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그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과거 RCD마요르카, 발렌시아, 인터밀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발렌시아를 1999/00, 2000/01 두 시즌 연속으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올려놓으며 발렌시아 역사에 남을만한 업적을 세웠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은 쿠페르는 2000년 UEFA 클럽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러시아 월드컵 A조 ⓒ 이집트 축구협회 페이스북

이후 레알 베티스, 파르마, 조지아 국가대표팀 등 여러 팀을 전전하던 쿠페르는 이집트의 지휘봉을 잡았고 자신의 2번째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집트 축구가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펴기 시작한 것은 쿠페르가 부임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3월 이집트의 지휘봉을 잡은 쿠페르는 이집트를 아프리카를 넘어 세계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팀으로 변모시켰다. 쿠페르의 이집트는 수비 라인을 내려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구사한다. 다시 말해서 ‘이기는 축구’를 지향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팬들의 입장에서는 수비적인 축구가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팬들은 쿠페르의 전술에 의문 부호를 던지며 비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기는 축구'는 이집트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어냈다. 이집트 선수들을 살펴보면 양쪽 윙어가 빠른 스피드를 통한 돌파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중원의 선수들은 롱 패스의 정확도가 비교적 높고 최전방 공격수는 공중볼에 능하다. 이러한 이집트 선수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던 쿠페르는 유연한 전방 압박을 시도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중원에서의 긴 패스를 기점으로 역습이 시작되는 이집트 특유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완성시켰다.

아프리카 내에서는 그야말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 왔지만 유독 월드컵에서만큼은 인연이 없었던 이집트다. 그렇기 때문에 월드컵이라는 가장 큰 대회에서의 경험이 없을 수밖에 없다. 결국 '닥치고 공격'이 아닌 실리를 추구하는 '이기는 축구'가 본선 무대에서 이집트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전술인 셈이다.

'파라오 군단'의 주요 선수

지금 이집트를 위해 뛰고 있는 선수단이 '황금 세대'가 아닐까한다. 주축 멤버로 자리 잡은 이들은 오랜 시간 함께 발을 맞춰왔기 때문에 서로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쿠페르 감독의 지휘 아래 조직력이 극대화 된 선수들은 개개인 모두 기량이 뛰어나다. 이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이집트의 돌풍을 현실화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① 모하메드 살라

현재 이집트 최고의 선수는 모하메드 살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라는 월드컵 최종 예선 당시 5경기에 선발 출전해 5골을 터뜨리며 28년 만에 이집트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이집트의 전술은 살라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득점 루트 또한 살라를 거친다. 살라는 이번 월드컵 참가국 전체를 통틀어 주목해야 할 선수 중 한 명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리버풀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어마어마했다. 리그 32골을 터뜨린 살라는 EPL 38라운드 개편 이후 최다 골 타이틀을 거머쥐며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고 EPL 올해의 선수상 등 각종 상을 자신의 커리어 기록에 추가했다. 올 시즌 51경기에서 44골을 터뜨린 살라의 득점력은 월드컵을 앞둔 지금 물이 오를 대로 올라있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하여 상대 수비진을 허무는 능력은 살라의 전매특허다. 패스, 골 결정력, 라인 브레이킹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살라는 다른 A조 팀들의 경계대상 1호로 꼽힐 수밖에 없다.

② 라마단 소브히

1997년 생으로 향후 이집트를 이끌 차세대 공격수다. 이집트 U-17, U-20, U-23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쳤고 2016년 스토크 시티로 이적해 경험을 쌓고 있다. A매치 21경기를 치르는 동안 아직 1골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소브히는 득점을 기록하는 것보다 동료 선수들을 도우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자유롭게 양발을 쓸 수 있어 소브히가 시도하는 크로스는 상당히 위협적이며 무엇보다 수비 가담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기 때문에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구사하는 이집트에 알맞은 공격수라고 할 수 있다.

③ 아흐메드 하산

이집트의 알 아흘리 유스 출신으로 이집트 U-20, U-23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고 2013년 이집트가 아프리카 U-20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당시의 주역이었다. 191cm의 신장을 자랑하는 하산은 공중볼 싸움에 능하고 발 밑 기술이 좋다. 이집트는 이번 월드컵에서 중원이나 측면에서 넘어오는 롱볼 전술을 통해 하산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보통 축구팬들이 알고 있는 이집트의 레전드인 아흐메드 하산과 헷갈릴 수 있는데 이름만 동일할 뿐이다.

④ 모하메드 엘네니

엘네니는 스위스의 바젤을 거쳐 2016년 EPL의 아스날에 입단하면서 이집트 내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 2017년 이집트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을 차지할 당시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현재 이집트 중원의 핵심이자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조율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선수다.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공수 모두에 가담할 뿐만 아니라 전방으로 시도하는 볼 배급 능력은 수준급에 해당한다.

⑤ 아흐메드 헤가지

이탈리아의 '레전드' 알렉산드로 네스타와 플레이 스타일이 닮았다고 하여 '피라미드의 네스타'로 불리기도 하는 아흐메드 헤가지는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와의 몸싸움과 제공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는다. 웨스트브로미치알비온(WBA)에서 조니 에반스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했다. 과거 피오렌티나 시절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이후 민첩성과 주력이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집트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그가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러시아 월드컵 A조 ⓒ 이집트 축구협회 페이스북

이집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명장 쿠페르의 지휘 아래 환골탈태했다. 이제 이집트는 더 이상 아프리카에 갇혀있던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다. 최근 들어 2골 이상 실점한 경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하고 있고 여기에 '이집트의 파라오' 살라가 버티는 공격진은 그 어떤 팀도 쉽게 상대할 수 없게 됐다.

일단 그들이 정한 목표는 사상 첫 16강 진출이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우루과이 모두 까다로운 상대다. 하지만 이집트의 장점인 유연한 전방 압박이 바탕이 된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이 잘 가동된다면 애초 목표였던 16강 진출을 넘어 그 이상의 성적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집트는 분명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다크호스'가 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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