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이면 그냥 우승이다. ⓒ 전북현대모터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K리그1이 전반기 일정을 끝냈다. 혹독한 일정이었다. AFC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팀들은 팀을 재정비할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쓸 수 있는 자원을 모두 써도 선수들은 겨우겨우 버텼다. 수원삼성 서정원 감독도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도 혹독한 일정과 선수 휴식이 주된 고민 거리였다.

K리그1 전반기가 끝난 지금 절대 1강은 전북현대다. K리그1 전반기에 치러진 14경기에서 11승 1무 2패를 기록했다. 전북은 승점 34점으로 25점을 기록한 수원삼성을 일찌감치 따돌렸다. 홍정호, 김민재가 부상으로 빠지고 티아고와 아드리아노가 기대만큼 터지지 않아도 승점 3점을 꾸준히 챙겼다. 1위 전북현대와 2위 수원삼성의 승점 차이는 9점이나 나지만 2위 수원삼성과 8위 포항스틸러스의 승점 차이는 6점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디펜딩 챔피언다운 면모를 보인다.

전북은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세리에 A의 유벤투스같은 팀이다. 2017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우승이 유력하다. 2016시즌 우승을 놓친 이유가 승점 삭감임을 감안하면 2014년부터 5년차에 접어든 현재까지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제 전북이라는 팀을 평가하기에 한 시즌은 너무 짧아졌다. 전북은 '철왕좌'에 오르기 위해 최강희 감독을 '핸드'로 임명했고 '웨스테로스', 아니 K리그를 평정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제일 쓸데 없는 걱정이 전북 걱정"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잘 나가는 팀은 잘 나가는 팀만의 걱정 거리가 있다. 전북의 위기는 언제 찾아올까? 전북은 언제까지 절대 1강이 될 수 있을까? 전북이 5년 후 2023년에도 변함 없이 순위표 맨 꼭대기에 있을까?

전북의 위기 상황은 세 번 찾아올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전북의 가장 큰 위협은 전북 내부에 있다. 첫 번째는 이동국의 은퇴, 두 번째는 최강희 감독이 팀을 떠날 때, 세 번째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위기 상황과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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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그래서 위험한 이동국 의존도

K리그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는 선수를 모은 팀이 전북이다. 그만큼 전북은 선수들의 이동도 잦았다. 들어오는 선수들이 많은 만큼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선수들은 팀을 떠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득점을 기록하는 선수가 이동국이다. 전북 선발 명단에 이동국이 없다면 그 자체로도 이야깃거리다.

워낙 훌륭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다. 불혹의 나이로 리그 최고의 팀에서 꾸준히 골을 기록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동국은 "마흔이 되니 축구가 보인다"라고 했다. 마흔이 된 박동혁 감독은 필드 바깥에서 축구를 보는 데 이동국은 필드 위에서 축구를 보고 있다.

이동국은 K리그1 전반기가 끝난 현재 6골을 기록 중이다. K리그1 득점 순위 10명 중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선수는 이동국과 문선민 단 두 명이다. 이동국과 문선민은 똑같이 6골을 넣었는데 이동국이 문선민보다 한 경기를 덜 뛰어 득점 순위는 문선민보다 한 단계 높은 4위에 있다.

이동국은 전북의 가장 강력한 골잡이다.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는 김신욱과 아드리아노도 이동국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이동국이 없다면 전북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전북은 이동국을 대체할만한 스트라이커를 꾸준히 영입했지만 이동국만큼 확실하고 꾸준한 활약을 펼친 선수는 없었다.

이동국의 부재가 곧 전북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최강희 감독의 투 톱 전술 욕심은 공격수들의 배려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이동국의 대체 자원을 고민하기 위함일 수 있다. 이동국은 전북의 원 톱 전술에 특화된 선수다. 이동국이 빠진다면 다른 원 톱 스트라이커나 투 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의 부재에 대한 고민을 계속 안고 있을 것이다.

전북은 이동국이 골을 넣지 않아도 골을 넣을 선수들이 많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동국에 대한 의존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록이 너무 솔직하다. 김신욱과 아드리아노는 이동국만큼 득점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이동국에게 집중되는 득점은 전북으로서는 양날의 검이다. 이동국의 대체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전북은 이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이번 시즌에도 이동국이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치자 최강희 감독은 "좀 주책이다. 나이 사십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이동국은 선발로 나가도 무리가 없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회복도 빠르고 훈련 때 좋은 모습을 보여 자신있게 내보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강희 감독의 말에 복잡한 심정이 다 들어가 있다. 이동국의 꾸준한 활약은 기뻐했지만 '주책'이라고 표현한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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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엔 퍼거슨, 전북엔 최강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위기는 '퍼기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선수들의 노쇠화였다.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등이 나이를 먹으며 예전같은 활약을 펼치지 못할 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람들은 퍼거슨 감독에게 맨유의 세대 교체라는 과제를 떠밀었다. 퍼거슨 감독도 꽤 다양한 영입을 추진했지만 결국 은퇴한 폴 스콜스를 다시 부르는 일도 있었다.

이때 당시 머리를 스친 생각은 "맨유의 진짜 세대교체는 선수들이 아닐텐데"라는 것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퍼거슨 감독이 맨유를 떠나자 맨유는 추락했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과 루이스 판 할 감독은 맨유 팬들이 원하는 성적을 안기지 못했다. 맨유는 모예스 감독 선임 당시만 해도 팀의 장기적인 비전을 추구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과 결과에 결국 판 할 감독을 거쳐 현재 무리뉴 시대로 접어들었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이 떠난 2013년 이후 여전히 프리미어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했다.

전북의 최강희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최강희 감독이 없는 전북을 상상하기 힘들다. 다른 어떤 감독이 전북 감독을 맡아도 이렇게 꾸준한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북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시즌은 승점 삭감을 당했던 해를 제외하면 최강희 감독이 전북을 잠시 떠나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던 2012, 2013시즌이다. 감독의 중요성이 이 두 시즌에 나타났다. 좋은 선수들로 좋은 시즌을 보내려면 좋은 감독이 필요하다. 전북의 진정한 세대 교체는 최강희 감독의 세대 교체가 될 것이다.

K리그 최고 구단에 걸맞는 사람은 따로 있다.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놓고 그 위에서 세심한 심리전을 치러야 한다. 가장 확실한 전술과 함께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이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은 최강희 감독이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감독은 최용수 감독과 故조진호 감독 등이 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북이라는 팀과 전북이라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최강희 감독 후임으로 어떤 감독이 와도 전북 문화에 먼저 적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한국나이 73세로 감독직을 은퇴했다. 최강희 감독은 환갑이다. 이동국이 없어도 최강희 감독이 있다면 전북은 괜찮다. 퍼거슨 감독과 비교한다면 전북은 앞으로 12년은 끄떡 없다. 그렇다면 전북은 앞으로 12년은 문제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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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현대차그룹

마지막 변수는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의 복잡한 사정과 맞물린다. 최근 전북이 강한 면모를 보인 이유는 선수단 투자 비용과도 연결된다. 전북은 K리그 구단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쓰며 선수들을 영입해왔다.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연봉 순위도 마찬가지다. 한때 "K리그에서는 전북만 돈을 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전북의 독보적인 투자도 결국 구단 모기업인 현대차그룹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 이 현대차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현대차는 최근 2년간 수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국내 한 언론사는 "앞으로 3년이 현대차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사설을 기재했다. 현대차는 다른 자동차 업체에 비해 낮은 단가로 시장을 점유했다. 현대차가 점유한 시장을 중국 자동차 업계가 뒤집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결국 가격 싸움에서 중국 자동차 업계들과 비교해봤을 때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의 수익성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중국 자동차 업계가 '싼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어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현대차그룹 부품사들이 단가인하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원가절감에 뛰어드는 상황이라 현대차그룹도 부품사의 수익률을 보장하기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가지고 있는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글로비스와 모비스를 합병하면서 정의선 부회장 지분율 확보를 노렸다. 문제는 현대차그룹 핵심 부품 업체 현대모비스를 향한 단가인하 압력으로 모비스의 사업 수익성에 의문이 생긴다는 점이다. 당장 현대모비스 핵심사업부를 인수해야 하는 현대글로비스 투자자들이 모비스의 수익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투자자들의 의문은 곧 모비스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졌다. 현대모비스를 향한 수익성 의문은 현재 진행 중인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리고 21일 결국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이 걸리고 29일 예정됐던 주주총회가 취소됐다.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배구조 개편을 구체화하라"라며 현대차그룹을 압박했다. 특히 ISS를 비롯한 기관 주주에게 영향을 주는 의결권 자문사 5곳이 반대 권고를 하면서 지분 약 48%를 가진 외국인 주주들이 고개를 돌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6일 ISS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지만 지배구조개편안 통과의 키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까지 반대를 권고하면서 현대차그룹이 한 수 물러났다.

정의선 부회장은 "그동안 그룹 구조개편안 발표 이후 주주분들과 투자자 및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토록 하겠다"라며 "이번 방안을 추진하면서 여러 주주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도 절감했다"라고 언급했다. 당초 현대차그룹이 추진했었던 지배구조 개편 모델은 정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정의선 부회장이 노렸던 지분율 확보에 제동이 걸리면서 모기업의 분위기 자체가 뒤숭숭해졌다.

현대차그룹이 전북현대에 투자하는 재정 비율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액수 자체는 큰 편이고 게다가 모기업의 분위기에 따라 전북현대를 후원하는 후원사들의 태도가 변할 수 있다. 후원사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축구단의 재정축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변화하는 자동차, 금융 시장과 더불어 변화하는 축구계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전북은 FC서울처럼 이적 시장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선수단 축소는 곧 성적과 연결될 것이고 결국 전북도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올 시기가 찾아올 수 있다.

전북에 위기를 안길 수 있는 요인이 전북 내부상황과 맞물려있는 점은 역설적이다. 전북의 아성을 무너뜨릴 만한 다른 팀을 찾기 쉽지 않다. 전북을 '철왕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건 결국 '제이미 라니스터'다. '킹스 가드'의 탈을 쓴 '킹 슬레이어'는 누가 될까. 혹은 무엇이 될까. 가장 쓸데없다는 전북 걱정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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