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18일 김학범 감독이 U-23 대표팀 5월 훈련 및 6월 인도네시아 평가전 참가 명단을 발표했다.

6월 전지훈련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 U-23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물망에 오른 선수들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소속팀 감독들도 덩달아 신경을 썼다. 팀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했다. 젊은 선수들이 약 3개월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동안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를 한 번 나눠봤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김학범 사단

코칭스태프는 꾸준히 K리그 경기장을 찾으며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했다. 단지 K리그1 뿐 아니라 K리그2 경기장도 찾았다. 특히 김 감독은 하루에 두 경기씩 관전하는 경우도 잦았다. 김 감독은 "그냥 지인들과 경기 보러 왔을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방문에 선수들의 기량 점검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민성 수석코치와 김은중 코치도 경기장에 모습을 보였다. 이번 6월 전지훈련 명단을 살펴보면 백승호(지로나)와 이진현(오스트리아 빈), 서영재(함부르크)를 제외하고 모두 K리그 선수들이다. 코칭스태프가 발품을 팔아가며 확인한 선수들로 명단을 꾸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명단에는 2018 툴롱컵으로 인해 U-19 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이 제외됐다. 와일드카드도 아직 합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칭스태프가 심혈을 기울여 엄선한 만큼 기대감이 든다. 그리고 소집된 선수들은 이번 기간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승선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신적 지주 하겠다" 포문 연 아산 황인범

U-23 대표팀 물망에 올라있던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김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우선 소속팀 경기에 자주 나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히만 한다고 인생은 잘 풀리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센스 있게 어필도 하고 "나 열심히 하고 있어요" 티도 내야 하는 법이다.

어필의 포문은 아산무궁화 황인범이 열었다. 지난 3월 1차 소집훈련을 앞두고 황인범은 <스포츠니어스>와의 기자회견에서 "내가 아시안게임에 가면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뜬금없이 정신적 지주를 자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군대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군대에 있다. 선수들에게 틈 날 때마다 군대의 힘든 점을 계속해서 말할 수 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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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은 지난 명단에 이어 이번에도 유일한 군인이다. 당시 기자회견장에는 황인범의 재치 있는 한 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그는 평소 말을 재미있게 하거나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때 만큼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의 모습에 기자회견장은 웃음보가 터졌다. 이 때 재미를 봤는지 황인범은 파주NFC에 가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리산은 오르고 포지션은 내리고' 부산 김문환

부산아이파크 김문환은 지난 5월 초 안산그리너스전 이후 최윤겸 감독과 개인 면담을 했다. 안산전에서 김문환은 측면 수비수 역할을 맡았다. 물론 김문환은 측면 공격수와 수비수, 미드필더까지 측면 포지션은 모두 가능한 선수다. 하지만 그의 주 포지션은 공격이었다. 그런데 이날 그는 측면 수비수를 소화한 다음 최 감독과 마주 앉았다.

최 감독은 김문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난 경기에서 측면 수비수 아주 잘하더라. 당분간은 계속 측면 수비수를 하는 것이 좋겠어." 김문환도 최 감독의 결정에 흔쾌히 동의했다. 수비 자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딱히 아니었다. 아시안게임을 염두에 두고 내린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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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감독은 <스포츠니어스>에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까지 감안한다면 김문환이 측면 공격수로 뛰는 것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마침 (김)학범이 형님도 측면 수비수를 찾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김문환이 수비수로 뛰면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내린 선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김문환도 측면 수비수 역할에 빠르게 적응하는 중이다. 안산전에 이어 서울 이랜드전에서도 그는 측면 수비수로 출전했다. 공격적인 본능은 여전했다. 환상적인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호물로의 선제 결승골을 도왔다. "공격할 때보다 압박이 덜해 편하더라. 내 장점인 활동량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더라"고 말한 김문환은 "아시안게임에 간다면 동료들이 힘들 때 내가 더 뛸 것이다"라면서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감독님. 저 지리산 잘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주장까지 하고싶다"는 인천 김정호

소속팀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U-23 대표팀은 손발을 맞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실전 경기의 기회도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소속팀에서 경기력과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한다. 아무래도 똑같은 두 선수를 놓고 고민할 때 조금 더 출전 경험이 많은 선수에게 무게감이 쏠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유나이티드 김정호의 걱정거리도 출전 기회였을 것이다. 지난 1차 소집훈련에서 깜짝 발탁된 김정호는 주장까지 맡으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소속팀에서는 올 시즌 R리그 3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상주상무와의 경기에서 김대중이 일찍 부상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김정호가 대신해 들어갔다. 자신의 K리그 1군 무대 데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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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데뷔전을 치른 신인답게 김정호는 아시안게임을 향해서도 큰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남들이 "아시안게임 가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는 <스포츠니어스>에 "나는 주장도 하고 싶다"라고 외쳤다. 김정호는 "지난 훈련 때 영광스럽게 주장직을 맡았다. 내가 와일드카드를 제외한다면 대표팀에서 고참에 속한다. 주장을 맡아서 팀을 금메달로 이끌고 싶다"라고 말했다.

"손흥민 등 와일드카드 선배들도 이끌어야 한다"라고 걱정 어린 질문을 던지니 김정호는 "물론 축구장 밖에서는 내가 말 잘 듣는 후배지만 축구장 안에서는 선후배 없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다"라고 주장 후보 다운 발언을 던졌다. 김 감독을 향해서도 "수비 하나는 절 믿으시면 된다. 무조건 열심히 잘하겠다"라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포츠니어스>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그는 "어필 좀 더 하고 싶은데…"라고 아쉬워하기도. 이 남자 정말 간절하다.

아시안게임에 최적화(?) 된 수원FC 조유민

지난 14일 수원FC와 안산과의 경기 전 라커룸 안에서 취재진과 감독의 화두는 월드컵 국가대표팀 명단 발표였다. 하지만 수원FC에는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선수가 없었다. 김대의 감독은 안타까움 대신 자신 있게 한 마디를 던졌다. "우리는 (조)유민이가 아시안게임 갈 거라고 생각해." 김 감독이 올 시즌 한창 다듬고 있는 작품은 바로 조유민이었다.

조유민은 입단 전까지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수원FC 입단 후 김 감독은 그를 센터백으로 기용했다. 시즌 초 줄부상에 가용 자원이 많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가 센터백 포지션에서 의외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이제는 계속 센터백 시키려고 한다. 잘한다. 대표팀 관계자들도 유민이의 기량에 만족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팀은 생각보다 부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조유민은 개의치 않았다. "성적은 좋지 않지만 코칭스태프가 솔선수범해서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를 만든다. 선수들이 침울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특히 안산을 상대로 승리하며 연패를 끊었다는 것도 그에게 자신감을 가득 심어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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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의 낯빛은 살짝 어두워졌다. 조유민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대표팀 관계자가 수원FC 경기를 찾으면 그 역시 경기 전에 그 소식을 듣는다. 그의 고민은 "코치진이 오면 그나마 잘하는 것 같은데 김학범 감독님 앞에서는 제 실력이 쉽게 안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하루를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연습경기, 리그 가릴 것 없이 누가 갑자기 와서 보고 평가할 수 있다. 한 순간이라도 게을리 하면 안된다."

프로 입단 후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왕 바꿀 거면 빨리 바꿔야 한다"라고 말한 조유민은 "아무리 내가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 가지 확실한 전문 포지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김대의 감독님이 내게 센터백이라는 포지션을 선물해주신 셈이다"라고 웃었다.

긍정 마인드가 가득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약간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학범 감독이 왜 당신을 뽑아야 합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진 그는 누구도 예상 못한 엉뚱한 답을 내놨다. "내 얼굴을 보면 딱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평소에 내가 이국적이라는 이야기 많이 듣는다. 요즘 자카르타나 팔렘방 지역 사람들의 사진을 봤는데 잃어버린 동포를 만난 기분이었다. 현지 적응 필요없다. 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이런 선수들의 간절한 어필이 통했을까. 18일 발표한 U-23 대표팀 5월 훈련 및 6월 인도네시아 평가전 참가 명단에는 이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있었다. 이제 그들이 정말 지리산을 잘 타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팀을 하나로 만들고 현지화가 필요 없을지는 김학범 감독이 직접 평가하지 않을까. 이들의 경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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