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왼쪽)은 올 시즌을 앞두고 안산에 입단했다. ⓒ안산그리너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14일 밤 수원종합운동장. 올 시즌 처음으로 월요일에 치러지는 KEB하나은행 K리그2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많지 않았다. 수원FC와 안산그리너스의 경기는 많은 이들의 관심 밖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경기 시작 직전 한 남자가 검정색 모자를 쓰고 관중석에 등장했다. 그의 옆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이도 함께 있었다. 이 남자가 등장하자 주변에서는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홈팀 수원FC를 응원하는 분위기에서 이 남자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수원FC를 일방적으로 응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상대팀 안산그리너스를 열정적으로 응원할 수도 없었던 이 남자는 바로 수원삼성 김종우였다.

김종우가 수원종합운동장에 온 이유는?

김종우에게 수원FC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2015년 선문대를 졸업한 김종우는 수원삼성에 입단했지만 곧바로 임대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어린 그에게 수원삼성은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 수원FC 임대를 결정했다. 김종우는 수원삼성 유니폼을 입고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곧바로 수원FC 임대 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김종우는 수원FC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32경기에 출장해 4골 9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주축 미드필더로 맹활약했다. 수원FC는 이 시즌 상승세를 이어가며 창단 후 최초로 승격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에게 수원FC는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 곳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는 2015 시즌이 끝난 뒤 귀한 몸이 됐다. 수원FC에서도 그를 완전 영입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수원삼성도 눈부시게 성장한 김종우를 내줄 마음이 없었다. 김종우는 2016년 수원삼성에 복귀했다. 하지만 수원삼성은 수원FC에 비해 훨씬 더 경쟁이 심했다. 김종우는 2016년 불과 단 세 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수원FC 시절 펄펄 날던 그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2017년부터 김종우는 수원삼성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그는 25경기에 출장해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더니 올 시즌에는 완벽한 주전으로 도약했다.

올 시즌 그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 중인 수원삼성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서정원 감독은 워낙 경기에 많이 나서고 있는 김종우의 체력을 걱정할 정도다. 이제 그는 수원삼성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같은 연고팀에서 K리그2와 K리그1을 모두 경험한 그는 대단히 특별한 존재다. 이날 수원FC 경기장을 찾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시즌에는 그래도 수원FC 홈 경기를 몇 번 보러온 적이 있다. 늘 잘 됐으면 하는 팀이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워낙 우리팀 일정이 빡빡하고 또 경기가 겹쳐 수원FC 경기를 보러 오지 못했다. 올 시즌에는 오늘이 처음이다. 수원삼성 소속이지만 신인 시절 나에게 기회를 준 수원FC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경기를 본다.”

2015년 수원FC에서 뛸 당시 김종우의 모습. ⓒ수원FC

이 경기를 가장 복잡하게 지켜본 한 남자

김종우는 수원종합운동장이 편하다. 프로 무대에 입성해 가장 먼저 정이 든 곳이 수원종합운동장이기 때문이다. “이 경기장에 오면 감회가 남다르다. 내가 처음 데뷔해 뛰었던 곳이라 오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수원FC에는 나와 함께 있던 이관우 코치님도 계신다. 나에게는 인연이 많은 곳이고 애착이 가는 팀이다. 수원FC 관계자들과도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잘한 경기가 있으면 관계자 분들에게 축하 연락을 하기도 한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수원FC 관계자들이 농담 삼아 ‘종우야 다시 우리팀으로 돌아오라’고 했는데 요새는 ‘네가 경기에 많이 나가면서 몸값이 뛰어 이제는 못 데려오겠다’고 하기도 했다. 오늘도 수원FC 관계자께서 입장권을 챙겨 주셨다.”

하지만 김종우는 이날 수원FC를 온전히 응원할 수 없었다. 바로 상대팀에 있는 한 선수 때문이었다. 김종우의 눈은 안산 26번 선수에게 쏠려 있었다. 그의 등에는 이런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김.종.석’ 바로 김종우의 친동생 김종석이었다. 1993년 김종우와 한 살 터울인 동생 김종석이 수원FC의 상대팀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까지 김종우와 꼭 닮은 김종석은 이날이 올 시즌 5번째 출장이었다. 김종석은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아버지와 형인 김종우에게 연락을 보냈었다. “형 나 오늘 선발이야.” 아직은 안산에서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하지 못한 김종석에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김종우는 아버지와 함께 김종석의 플레이를 세심하게 살폈다. 김종우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동생을 응원했다.

김종우는 수원삼성 유소년인 매탄고 출신이고 동생 김종석은 포항스틸러스 유소년 포철공고 출신이다. 같이 문래중에서 축구부 생활을 했던 이 둘은 무슨 원수(?)를 져 수원과 포항으로 갈라졌을까. 2008년 문래중 졸업 예정이던 김종우는 매탄고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그를 원한 건 포철공고였다. 그런데 졸업을 앞둔 마지막 대회에서 김종우가 펄펄 날자 매탄고에서도 입학 제의가 왔다. 당시를 김종우는 이렇게 회상했다. “포철공고 진학을 결정하기 직전 매탄고에서 제안을 받고 나에게 양 쪽 진로를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고 싶었던 매탄고를 선택하게 됐다.” 1년 뒤 문래중을 졸업하는 동생 김종석도 매탄고 진학을 보장 받았다. 포철공고는 김종우를 놓친 뒤 대단히 아쉬워했다.

2015년 수원FC에서 뛸 당시 김종우의 모습. ⓒ수원FC

수원과 포항 유스로 엇갈린 형제의 운명

하지만 1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동생 김종석이 매탄고 입단을 앞둔 상황에서 매탄고 감독이 바뀐 것이었다. 김종우는 동생과 한 팀에서 뛸 수 없었다. “아마도 감독님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종석이도 매탄고로 진학했을 것이다.” 김종석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형을 따라 매탄고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나를 원하지 않았다.” 당시 김종우의 동생 김종석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포철공고가 김종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은 놓쳤어도 동생은 무조건 잡자”는 의지가 강했다. 1년 전 김종우를 놓쳤던 포항은 1년 뒤 동생 김종석을 잡았다. 김종석은 2010년 포철공고에 입학했다. 형은 수원삼성 유스로, 동생은 포항스틸러스 유스로 갈리게 됐다. 운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김종우는 선문대를 거쳐 수원FC에서 활약한 뒤 수원삼성의 핵심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그 사이 김종석은 포철공고 졸업 후 상지대를 거쳐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했다. 형제가 자신을 키워준 유소년 팀에서 뛰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김종우와 달리 김종석에게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두 시즌 연속 동계훈련 도중 부상을 당하며 시련을 겪었다. 김종석은 2016년에 입단해 두 시즌 동안 포항에서 단 두 경기에 나서는데 그쳤다. 그리고 올 시즌 “꼭 자리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K리그2 안산 이적을 택했다. 김종석에게는 무엇보다도 경기에 나서는 게 중요했다. 이날 김종석이 수원FC를 상대로 선발 출장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김종우는 복잡한 감정에 빠졌다. 프로 데뷔 기회를 준 수원FC와 동생이 뛰는 안산그리너스 모두 김종우에게는 특별한 곳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김종우는 동생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안산이 수비적으로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동생도 쳐져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 조금 더 공격적으로 올라가 사이사이에 슈팅을 때리고 자신감 있게 하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김종석은 형이 지켜보는 경기가 긴장되면서도 좋았다. “평상시에도 형과 축구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 축구 이야기 뿐이다. 형이 나에게는 많은 도움을 준다. 오늘 형이 경기장에 온다고 하니 긴장이 좀 됐다.” 이날 김종석은 선발 출장해 후반 37분 김태현과 교체될 때까지 꾸준히 경기장을 누볐지만 경기는 수원FC의 1-0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에는 동생을 응원했던 김종우는 경기가 끝난 뒤 과거 함께 했던 수원FC 관계자들과 인사했다. 이날 가장 마음이 복잡했던 이는 김종우였다.

2015년 수원FC에서 뛸 당시 김종우의 모습. ⓒ수원FC

‘현실 형제’가 축구선수로 사는 법

김종석은 팀이 패배해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이기면 3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경기였는데 져서 아쉽다. 개인적으로도 잔실수가 많아 불만족스럽다. 하지만 형이 보는 앞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는 건 행복했다.” 김종우는 동생의 플레이를 어떻게 봤을까. “전반 초반에 잔실수가 한 번 있었다. 감독님으로부터 아직 두터운 신임을 받지 못한 선수는 초반에 이런 실수를 하면 플레이가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곧 나를 교체하는 건 아닌지, 다시는 기회를 못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동생이 전반에는 그런 부담을 떨쳐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후반에는 플레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김종우는 웃었다. “오늘 수원FC 관계자한테 티켓을 받았는데 안산을 응원해 미안하게 됐다. 동생 팀과 붙는 것만 아니라면 나는 늘 수원FC를 응원한다.” 김종우는 이 말을 하며 살짝 수원FC 관계자들의 눈치를 봤다.

김종우는 동생을 많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동생이 기회를 많이 못 받았다. 능력이 있으니 잘 극복해 내리라고 믿는다. 언젠가는 동생과 K리그1 무대에서 상대팀으로 맞붙어 보고 싶다.” 동생 김종석은 형이 뛰던 수원종합운동장에 선 느낌이 무척이나 특별했다. “내가 상지대 소속일 때 형이 수원FC 유니폼을 입고 여기에서 승격을 이뤄냈다. 그때 이 경기장에 자주 와 형의 경기를 봤다. 대학교 때도 상대팀으로 맞붙어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형이 잘한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형이 프로 무대에서 경기하는 걸 보고는 잘한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형이 뛰었던 곳에서 뛰게 돼 좋다.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내가 잘해서 자리를 잡는 게 우선이다. 여기에서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형과 상대팀으로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김종우와 김종석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자신에게 가장 먼저 기회를 줬던 고향팀과 동생이 뛰고 있는 팀 사이에서 김종우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도 승격의 영광을 누렸던 수원종합운동장에서의 경기였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포항 유소년 팀으로 진학해 형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혀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 했던 동생에게도 이날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형이 뛰던 경기를 보며 꿈을 꾸던 그는 이제는 그 경기장에서 상대팀으로 나섰다. 그것도 형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김종석은 어찌 이 경험을 잊을 수 있을까. 형제의 가장 특별했던 월요일 밤의 축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김종석은 한참 대화를 나누다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 형 못 봤어요? 인사도 없이 그냥 갔네.” ‘현실 형제’는 경기가 끝난 뒤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아도 그 마음만은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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