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페어플레이의 의미를 다시 새겨봤으면 한다. ⓒFIFA 공식 트위터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9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우리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대표팀을 향한 기대를 느끼기 힘든 게 사실이다. 비난과 조롱은 물론 "어차피 3연패 할 거 뭐하러 보느냐"라는 의견이 대다수인 듯하다. 매우 비관적이다.

내 주변인 중에는 축구의 'ㅊ'도 모르는,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호나우두는 어렴풋이 기억해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호날두 사진을 올리는 일 자체가 금기시되기도 하지만 호날두는커녕 메시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소위 말하는 '축구판' 밖에서 축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취재를 하러 간다고 하면 "이렇게 비가 오는데 축구를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다.

육상 선수 출신으로 은퇴 후 체육계에 몸담고 있는 한 분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이젠 축구 보는 게 재미없더라. 박지성 이후로는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 분이 말한 '재미' 요소는 경기력이 아니었다. 응원 대상을 설정할 수 없으니 몰입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체육계에 있는 사람도 대표팀을 향한 관심이 적었다. 월드컵 일정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데드풀2'의 개봉일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 지인은 "월드컵이 싫다. 올여름엔 사람들 응원 소리에 잠을 못 잘 것"이라며 벌써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최근 지인의 모친상으로 그동안 연락하기 어려웠던 지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근황을 얘기하던 중 친구 한 명이 "올해 월드컵 열려? 한국도 나가?"라고 물었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 이 반응에 열을 올리고 항변할 에너지가 없다. 그저 "응"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쓸쓸함이 찾아왔다. 우리가 그렇게 찬사와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상, 혹은 내 '밥벌이' 판에 이렇게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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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대표해야 했기에

이쯤 되면 무관심이다. 온 국민이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했던 2002년 월드컵은 '과거'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대표팀을 향한 비난과 조롱도 석연찮지만 무관심도 마음이 아프다. 분명 이들도 들뜬 분위기로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대표팀을 응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표팀을 향한 시선을 보면 비난과 조롱을 넘어 실망감을 느끼고 비관하며 기대와 관심을 조금씩 놓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대표팀을 향한 응원과 기대는 어느새 조롱과 비난으로 변모했다. '한국축구 걱정위원회' 같은 성격의 비판도 결국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실망감에 조롱과 비난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망감에 눈을 돌렸다. 그렇게 우리 대표팀이 지워졌다. 존재가 지워지면 관심을 줄 수 없다. 대표팀에 국위선양은커녕 망신만 느낀 사람들은 이제 외국인들도 열광하는 <강남스타일>과 '방탄소년단', '트와이스'에 열광한다. 예쁘고 잘생긴 이 사람들은 우리가 응원하면 웃어주니까. 우리 기대만큼 보답하니까. 전 세계의 백인과 흑인, 라티노들도 모두 이 동양인들에게 흠뻑 빠져있다. 우리나라 이름을 알리는 이들을 응원하고 좋아하는 게 진짜 국위선양 같은 느낌이 든다.

K-POP 스타들이 있기 전에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매체는 스포츠였다. 손흥민, 박지성 이전에 차범근이 있었다. 류현진이 있기 전에 박찬호가 있었다. 타이거 우즈보다도 박세리가 유명했다. 마라톤에는 황영조와 이봉주가 있었다. 스포츠 스타를 넘어 대표팀을 향한 자부심도 있었다. 대표팀은 국민의 대리만족이었다. 광복과 남북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폐허였다. 그 사이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은 무서울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며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자랑할 수 있었던 건 축구였다. 세계로 뻗어 나간 일본보다 유일하게 앞섰던 게 축구 대표팀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하면 '대표팀'을 떠올렸다. 2002년 월드컵도 초기 일본 개최가 유력한 시점에서 우리나라 축구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현대그룹 사람들이 부랴부랴 움직이며 공동개최를 이끌어낼 만큼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나라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성적이 중요했다. 세계의 벽은 높지만 어쨌든 일본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기조가 있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알려질 당시 축구로 일본을 꺾을 수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표팀에 '아시아의 맹주,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오글거리는 타이틀까지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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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은 열등감을 감출 수 있는 대리만족 대상이었다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의 짜릿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던 사람들은 대표팀과 더불어 박지성과 이영표의 활약에 대리만족 프레임을 씌웠다.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 아닌 타국에서 열린 16강 진출을 보며 희망도 느꼈다. 그러나 이어지는 월드컵부터 대표팀의 친선 경기까지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태세를 전환했다. 저조한 성적은 실패다. 실패가 예상되는 게임에는 응원보다 조롱과 채찍이 앞선다. 패배하고 실패하는 팀은 우리 팀이 아니다. 대리만족할 수 없는 팀은 응원할 수 없다. 대신 비난과 조롱을 일삼으며 그들을 자신의 발밑에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들의 열등감을 애써 감췄다.

사람들의 열등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는 최근 외신 보도에서 나왔던 월드컵 진출 국가대표팀 감독들의 추정 연봉 순위 기사였다. "신태용 감독은 6억 5천만 원 연봉을 받는 것으로 고려되며 이는 월드컵 진출국 감독 중 25위에 해당한다"라는 기사였다. 이를 접한 어떤 이들은 분노했다. "어차피 3전 전패인데 그냥 내가 감독 공짜로 해준다", "태용아 지금이라도 그란데 영감에게 감독자리 넘겨라. 그 자리에 안 어울려"라는 댓글이 달렸다. 연봉 수치는 추정이었고 게다가 25위면 꽤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너무 많이 받는다"라며 날선 댓글을 남겼다. 6억이나 받을 정도면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줘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반응이었다.

자신이 비난하고 조롱했던 팀과 그 팀을 이끄는 감독의 연봉이 이렇게 높다니. 이 지점에서 울화통이 터진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연봉보다 높을지언정 32위에 해당하는 연봉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나마 축구를 본다는 사람들의 기대치도 딱 이정도다. 신태용 감독이 보여줬던 리더십과 고민의 흔적, 도전과 야망을 고려하기보다도 비난하고 조롱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래야 자신의 열등감을 감출 수 있다. 못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보다 비판하는 위치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 그리고 일단 시작된 비판을 멈추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비판은 비난과 조롱으로 변한다. 콜롬비아를 잡아도,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컵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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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우리 대표팀이 3전 전패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 조에 묶인 팀들이 강팀인 이유도 있지만 이 비관적인 태도는 단순히 조편성을 원인으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마주해도 이 정도로 비관적인 분위기가 나오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현실을 직시하면 적어도 열세를 인정하고 응원은 할 수 있다. 현재 대표팀을 향한 비관적인 태도와 조롱은 현실을 외면하는 수준이다.

대표팀의 성적이 좋아야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잘난 척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어서 비관한다. 대신 이 비관적인 현실을 빠져나와 그들을 깎아내려야 잘난 척을 할 수 있다. 어서 이 비관적인 현실을 외면해야 한다. 그렇게 현실에서 축구를 지운다. 그렇게 대표팀도 지워졌다. 손흥민도 기성용도 그렇게 지워졌다. 현실에서 지워진 선수들은 허구의 인물이 된다. 허구의 인물을 향해 죄책감을 느낄 리 없다. 그래서 비난이 가속화된다. 응원이라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와야 자신도 이 비난의 표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잘하는 팀만 '내 팀'이 될 수 있다.

평창올림픽에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자컬링팀은 괄목할 성적을 올리며 국민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극적인 명승부를 펼치며 일본을 꺾고 진출한 결승전에서 경기가 꼬이자 그 경기를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바로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사랑을 받았던 여자 컬링팀도 성적을 거두지 못하니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하물며 우리 대표팀은 오죽할까. 이 팀을 응원하는 것보다 호날두와 메시를 응원하는 게 더 안전하다. 혹은 우승이 유력한 독일이나 프랑스, 스페인을 응원하거나, 아니면 아예 축구에서 눈을 돌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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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하며 조롱할 것인가, 아니면 즐길 것인가

한가닥 희망은 남아있다. 이제 조금씩 월드컵 홍보에 나서는 방송 3사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미 KBS 이영표 해설위원은 "지금은 대표팀을 응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나갈 최종 23인의 발표를 남겨둔 시점에서 누구를 빼야 하고 누구를 써야 한다는 의미 없는 토론보다 이제 대표팀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응원해야 하는 시점이다. 현재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에도 탈락하는 선수들이 나올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위로할 준비는 되어있나? 아니면 그들을 향해 조롱할 준비가 더 되어있나.

열등감을 버리고 대표팀을 응원했으면 한다. 더 깊숙한 속마음은 사람들이 친구들과 함께 "그래도 같이 응원하자"라며 손을 잡고 함께 응원했으면 좋겠다. 손흥민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선수들에게 힘을 줬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을 위해 한 몸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라고 언론을 통해 당부했다. '까방권'을 가진 이영표와 박지성도 중계를 통해 대표팀을 응원할 텐데 왜 우리가 나서서 먼저 깎아내려야 할까. 

축구 외적으로 비겁한 짓을 하거나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는 선수들에겐 비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혹은 경기 도중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실망감을 나타낼 생각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를 얻든, 그들의 성적만으로 대표팀 선수들에게 "월드컵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월드컵에 출전한다. 

성적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후회 없이 뛰어줬으면 한다.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즐기고 스웨덴, 멕시코를 넘어 '전차군단' 독일을 상대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드러내길 원한다. 신태용 감독도 요하임 뢰브 감독과 지략 싸움을 펼쳐봤으면 한다. 최근 발표된 국가대표 명단을 보니 남들은 잘 모르는 보석 같은 선수들이 많다. 남들이 달콤한 잠이나 휴식에 빠져있을 때 우리 대표팀이 승전보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쉬움을 애써 삼키며 한숨을 푹푹 쉴 수도 있고 경기 내용에 실망해 분노할 수도 있다. 그때도 비관할 것인가. 아니면 조롱할 것인가. 난 그 순간을 즐길 생각이다. 그렇게 우리 대표팀을 응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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