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조력자①] 축구부 급식 조리사, “선수들 건강은 내가 책임져”

A학교 조리사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땀을 흘린다. 급식 조리사들 또한 이에 못지않게 땀을 흘린다. 그 장소가 미처 보이지 않는 곳일 뿐.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ㅣ남윤성 기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운동선수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요. 억대 연봉과 명품 슈퍼카, 언론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 그리고 이들을 관리해주는 최고급 전문 인력까지. 이처럼 화려하다는 표현이 보다 적합한 운동선수의 삶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공한 극히 소수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과 환경이 필요할까요. 가장 먼저 타고난 재능과 개인적인 노력 그리고 훌륭한 지도자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일 뿐 전부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선수의 뒤편엔 앞서 언급한 조건들 외에도 보이지 않는 분들의 기여와 헌신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이분들의 삶이 궁금 하시다고요?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이번 기회를 빌어 화려한 운동선수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분들의 삶을 조명해보려 합니다.

(* 본기사는 인터뷰이의 사전 요구로 소속과 이름을 익명 표기함을 알립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급식 조리사의 하루
“안녕하세요. 축구부가 있는 A학교에서 조리 실장을 맡고 있는 ○○○라고 합니다. 저를 포함해 조리사 세 분과 영양사님 한 분이 함께 근무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삼시세끼를 저희가 모두 책임지고 있죠. 여기서 근무한지도 햇수로만 벌써 6년째에요. 경험해보니 저와 나머지 두 분이 번갈아 교대로 근무하는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한 분이 아침식사 준비 후 퇴근하시면 저와 다른 분이 점심과 저녁을, 그 다음날은 전날 일찍 퇴근하신 분이 저랑 종일 근무를 하는 형태로 사이클이 돌아가요.”

A학교 조리사
이제는 집밥보다 숙소밥이 더 맛있다. ⓒ 스포츠니어스

“오전 6시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니까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식당에 도착해요. 저녁은 보통 오후 6시지만 훈련 스케줄에 따라 수시로 변하죠. 아이들의 삼시세끼를 모두 담당하다보니 근무시간이 하루 평균 10시간을 넘는 건 다반사에요. 일반학교는 출퇴근과 조리사의 식사 시간이 규칙적인 편이에요. 반면 저희는 선수 스케줄에 우선적으로 맞춰야하기 때문에 대기조의 느낌이 강하죠. 훈련 스케줄이 당일에 변경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신경을 항상 곤두세우고 있어야 해요.”

민감한 식단과 메뉴 선정
“보통 1주일 전에 영양사님께 훈련 스케줄이 전달돼요. 영양사님이 시합과 훈련 일정에 맞춰 식단과 메뉴를 결정한 뒤 조리계획표를 짜서 게시판에 붙이면 저희는 거기에 맞춰 음식을 요리하죠. 이게 끝이 아니에요.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들이 희망하는 메뉴가 따로 있기 때문에 이것까지 세세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영양사님과 추가적으로 대화를 나눈 후에 최종적으로 결정해요. 또 선수들은 평소 훈련과 경기 당일 요구되는 영양소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까지 반영해야 하죠.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정말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고 나야 식단이 겨우 완성돼요.”

“매끼니 생선과 소, 돼지, 닭을 번갈아서 메뉴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오늘 저녁이 닭과 간장 조합이었다면 내일 점심은 소와 고추장, 저녁은 돼지와 간장, 그 다음날은 생선과 고추장 이런 식이에요. 메뉴가 다양해야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기 때문이죠. 밥도 잡곡밥부터 현미, 주먹밥, 김밥 등 다양하게 조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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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의 식단도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 스포츠니어스

“식단이 매번 똑같다고 느끼면 안 되기 때문에 메뉴를 다양하게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선수들이다 보니 영양소를 꼼꼼하게 따져야 하지만 아이들이 따로 선호하는 메뉴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까지 동시에 참고해야 돼요. 여기에 후식을 추가로 준비하고 크리스마스나 연말, 명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바, 즉석 복권 등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해요. 이쯤 되면 메뉴 선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감이 오시나요?”

“A학교의 경우 화요일이나 수요일은 연습경기를 토요일에는 정기리그를 치르는데, 경기 당일 점심은 파스타, 샐러드 같이 최대한 가볍고 깔끔한 식단으로 평소에는 고기 위주로 무겁게 먹는 편이에요. 대신 경기 전날은 육류와 기름기 있는 음식은 피하죠. 감독님 성향에 따라 식단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겨요. 새로 오신 감독님이 한식을 좋아하시면 설렁탕이나 된장찌개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죠. 선수 시절부터 숙소생활을 하신 감독님의 경우 식사에 굉장히 민감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 감독님 입맛에 맞춰 음식을 조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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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영양, 중복되지 않는 메뉴.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 스포츠니어스

“일반학생들에 비해 단백질 비율이 굉장히 높아요.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얘기해볼게요. 소위 말하는 중노동을 하는 분들의 식사량과 비교했을 때 2-3배를 더 먹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메인 메뉴인 육류 섭취량이 어마어마하죠. 아이들이 특정 메뉴를 갑자기 좋아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 음식이 부족해지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항상 대체식품을 준비해요. 남는 경우보단 부족한 경우가 더 큰 문제니까요.”

“밥을 먼저 먹는 아이들은 누가 봐도 다 못 먹을 양인데도 자기는 다 먹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퍼가요. 하지만 결국 남기고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게 되면 뒤에 아이들이 먹을 밥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겨요. 그래도 오랜 경험을 통해 노하우가 생겨서 메뉴별로 그날그날의 양을 대충 맞출 수가 있게 됐어요. 하지만 언제 갑자기 또 부족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추가로 음식을 조리하죠.”

조리사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
“1998년에 복지회관과 여성회관에서 요리강사로 근무하면서 이쪽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그 후 계속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면서 일을 한동안 쉬어야 했죠. 시간이 지나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고 식당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이곳에 오면서 처음으로 운동선수들을 위해 밥을 만들게 됐어요. 근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밥을 너무 잘 먹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환경과 조건이 좋은 곳에서만 일을 해왔기 때문이에요. 시설이나 대우 모두 훌륭했고 또 강사로 근무하다보니 인간관계도 어려움이 없었죠. 사실 조리사라는 직종이 텃세가 굉장히 심해요. 이를테면 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일했으니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죠.”

A학교 조리사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데 자부심을 느껴요.” ⓒ 스포츠니어스

“조리사분들이 자격지심에 괜히 스스로를 낮추는 경향이 있어요. 대부분이 과거 식당에서 일하셨던 분들인데 저는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은 대학을 졸업한 분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버젓이 일하던, 소위 말해 고급인력임에도 조리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분들이 많이들 계세요. 과연 이 분들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이쪽 일을 하시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조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 있다면 자격지심도 전혀 들지 않을 거예요.”

“요즘엔 조리사라고 말하면 많이들 대우해주세요. 그 덕에 이제는 3D업종 이미지는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전히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는 분들이 계시기는 하죠. 하지만 이쪽 계통에서 일하시는 분들 스스로가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준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일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대중의 인식도 바뀔 수 있을 테니까요.”

보람과 뿌듯함이 느껴질 때
“도중에 운동을 그만두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요. 그렇게 떠나거나 졸업하면서 ‘그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한 마디씩 하고 갈 때면 보람을 느끼죠. 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학교에 들를 때 따로 찾아와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부모와 떨어져서 생활해야하니 안쓰러운 마음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기특하기도 해요. 아이들이 정말 착해요. 프로에 데뷔해서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거나 해를 거듭하면서 키가 크고 몸이 커지는 걸 보면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연령별 대표팀에 뽑혀서 좋아하고 까부는 모습을 보면 귀여우면서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이 친구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운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축구선수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거 보면 현실이 참 냉혹한 거 같아요. 운동하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죠. 그래서 더 정이가고 ‘내가 해주는 밥으로 애들이 다시 힘 낼 수 있게 돕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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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선수들의 몸이 날로 커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 스포츠니어스

“언제 한번은 태국 유소년 선수단이 체험 훈련 식으로 온 적이 있었는데 운동장과 기숙사 시설을 보고 한 번 그리고 저녁 식사 메뉴를 보고 두 번 놀라더라고요. 식사 후에는 덕분에 맛있는 음식 감사히 잘 먹었다면서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 한국 선수들이 너무 부럽다고 말하더라고요. 때마침 추석 간식으로 배가 나와서 떠나기 전에 몇 봉지 따로 챙겨줬는데 태국 선수들은 태어나서 배를 처음 먹어본다는 거예요. 배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자국에 돌아가서는 뉴스와 신문에 이 이야기를 언급했더라고요.”

“지금 나이대 아이들한테 가장 필요한 건 기본적인 예절과 인성, 교우관계 교육이에요. 원래는 부모를 통해 배워나가야 하지만 대부분 어릴 때부터 부모 곁을 떠나 생활하기 때문에 이런 걸 제대로 배울 환경이 부족해요. 물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계시지만 이분들은 주로 축구에 대해서만 아이들을 관리하시죠. 어쩌다 한 번씩 주어지는 외박이나 휴가로 이러한 부분들을 배우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여기 있는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에요. 비록 성공한 축구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해 어디서든 인정받으면서 떳떳하게 지냈으면 좋겠죠. 하지만 자식을 키워본 부모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아이들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도적인 장치로 아이들의 인간적인 부분과 됨됨이를 지도하고 관리할 사감이 한 분씩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A학교 조리사
식당의 불은 하루 중 가장 먼저 켜지고 또 가장 늦게 꺼진다. ⓒ 스포츠니어스

한여름, 작업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와 고무장갑, 위생 모자를 착용하고 나면 등은 이미 땀범벅입니다. 거기에 식기세척기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까지 더해지면 정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매끼니 혼자서 적게는 50인분, 많게는 2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그 고단함은 오죽할까요. 학창시절 급식을 먹으며 자라왔지만 왜 그때는 단 한 번도 조리사분들의 감사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피땀 흘려 일하는 조리사분들께 오늘부터라도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씩 꼭 해야겠습니다.

skadbstjdsla@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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