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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 정말 이리도 안 맞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싸웠다. 그런데 헤어진 지금은 안 좋았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훨씬 더 많이 떠오른다. 당시 왜 그리 싸웠는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같이 갔던 맛집과 같이 봤던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기억난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관광지를 보면 ‘아 저기 같이 갔었는데’라며 당시 던졌던 농담까지도 떠오른다. 그녀가 생각난다. 그런데 또 바보처럼 누군가와 연애를 하면 싸우고 헤어지고를 반복한 뒤 후회한다. 당시에는 단점이 더 크게 보여 이별을 고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의 축구도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불과 몇 년 전 과거도 그리움으로 포장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이별 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2007년~2008년 쯤 K리그를 회상해보면 문제점 투성이었다. 당시 곧 K리그는 망할 거라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만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를 가끔 들여다 보곤 놀란다. 당시 K리그 모습을 담은 사진이 쭉 올라오며 ‘이때가 참 좋았다’는 글로 도배가 되기 때문이다. 기성용과 이청용, 이운재가 뛰던 슈퍼매치에 엄청난 관중이 몰린 사진이 올라오고 이걸 본 많은 이들은 “저때의 축구 열기는 대단했다”고 말한다. 귀네슈 감독이 있던 리그였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당시를 정확히 기억하는데 그때는 K리그가 행복한 시절이라는 걸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남일화 시절 텅 빈 경기장 사진을 보여주며 K리그가 ‘인기 없음의 대명사’라고 했었다. 늘 심판 판정 문제가 터져 나왔고 승강제도 없는 반쪽짜리 리그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 일도 이렇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10년 전 K리그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이들의 말도 물론 틀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슈퍼매치에 관중이 꽉꽉 들어찼고 이야기거리도 꽤 많았다.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과 수준급 감독도 꽤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10년 전에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니 ‘그땐 참 좋았어’라며 온전히 그 시절을 즐기지 못한 걸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세월은 흘렀다.

더 시계를 되돌려 볼까. 2008년 쯤에는 2002년을 그리워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관중으로 꽉 찬 경기장 사진을 보며 ‘그땐 참 좋았다’고 했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월드컵 특수에 브라질 경제 침체로 유럽 정상 무대에서 뛸 법한 외국인 선수들이 K리그를 누볐다. 하지만 우리는 2018년의 우리가 바보처럼 10년 전의 K리그를 그리워하며 지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10년 전에도 그랬다. 2008년 쯤에는 K리그가 아시아 무대를 씹어먹고 있을 때였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자부심보다도 과거의 영광을 더 추억했다. ‘2002년이 그립다’고 했다. 2018년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10년 전 K리그에도 우리가 즐길거리는 넘쳤는데 우리는 그 시기에도 ‘예전엔 K리그가 참 좋은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늘 현실을 즐기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만을 본다. ⓒ수원삼성

‘십년이 지나도’

하지만 내 정확한 기억으로는 2002년 열기가 식은 뒤에는 서포터스의 폭력적인 행동 등 부정적인 기사만 연일 보도 됐었다. 2002년이라고 그 시절 K리그에 만족했던 것도 아니다. 일부 경기장만이 꽉 들어찼던 그 시절에는 1998년 K리그 르네상스 시절을 그리워했다. 부산구덕운동장이 세 경기 연속 매진되고 이동국과 안정환, 고종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 시절이 ‘진짜 축구’라고 했다. 불과 몇 년 전 흥행을 보며 ‘아 옛날이여’를 외쳤다. 단 한 번도 우리는 지금의 K리그에 만족하고 온전히 즐겼던 적이 없다. 추억은 늘 현실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되는 법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없는 것에 대한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때에 비하면 슈퍼매치가 다소 초라해 졌고 외국인 선수 수준도 다소 낮아졌고 열기도 조금 부족하다.

자꾸 과거를 돌아보면 그리움만 남는다. 바보 같은 건 그땐 그게 행복한 건줄 몰랐으면서 이제 와서 ‘그때가 더 좋았다’고 하는 거다. 그렇다면 2018년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5~6년이 더 지나면 또 ‘2018년 K리그가 참 좋았다’고 할 것이다. 몇 년 더 전북의 독주가 계속되면 이것도 K리그 흥행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될 것이다. ‘인천이 말야 전북도 잡던 시절이 있었어’ ‘부천이 전북도 이기던 시절이 그리워’ 이런 말을 하며 2018년을 추억할 것이다. 독주하는 전북을 보며 K리그의 춘추전국시대를 그리워할 수도 있다. 아마 10년의 세월이 흐르면 슈퍼매치가 더 흐릿해 질 수도 있다. 그러면 데얀과 이상호의 사진을 올려 놓고 10년 전인 2018년이 K리그의 마지막 흥행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늘 지금껏 이렇게 뒤늦게 과거를 추억해 왔다.

아마 10년 뒤에는 <쩔었던 10년 전 K리그>라는 게시글에 말컹이 등장하고 김민재가 등장할 것이다. “저때 말컹 진짜 후덜덜했죠” “와 김민재가 K리그에서 뛰던 시절이라니” 등등의 반응이 올라올 것이다. 10년 뒤에도 우리는 10년 전인 지금을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 2008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불과 몇 년 전 과거를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세요. 지금을 즐기지 못한 걸 몇 년 뒤에는 후회하게 될 겁니다. 당신들은 지금 2002년 열기를 그리워하겠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슈퍼매치가 흐릿해지고 기성용, 이청용이 K리그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후에 다녀 와보니 2018년에 사는 이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 “2008년을 그리워하지 말고 2018년을 즐기세요. 10년 뒤에 김민재와 말컹은 K리그에 없습니다.”

우리는 늘 현실을 즐기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만을 본다. ⓒ수원삼성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물론 나도 한국 축구의 과거를 되짚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추억팔이를 가장 많이 했다면 가장 많이 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현실을 비교해 한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추억은 그냥 추억 그대로만 남았으면 한다. 과거 시절의 좋았던 부분만을 편집해 현실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과거에도 장점과 단점이 다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 그 시절의 좋았던 면만 떠올리고 지금의 안 좋은 면만을 떠올린다. 계속 시간이 어긋난 사랑을 하진 말자. 지금의 모습 그대로 K리그를 즐기면 어떨까. 우리는 늘 좋았던 과거를 추억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K리그가 갈 길은 멀다. 모두가 만족할 만큼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현실을 즐기지 못하고 추억에만 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크다. 우리가 지금 만족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고 즐기는 건 어떨까. 10년 뒤엔 분명히 괴물 같은 말컹을 추억할 것이고 김민재의 어린 시절을 직접 봤다며 그리워할 것이다. 전북이 패하는 경기를 본 것도 추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10년 뒤에 뒤늦게 깨닫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순간 K리그도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된다. 추억이 되기 전에 온전히 즐기자. 헤어진 여자친구의 SNS를 몰래 들여다보며 과거를 추억하다가 실수로 사진을 두 번 클릭해 ‘좋아요’를 누르고 ‘멘붕’에 빠진 사람이 하는 말이니 영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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