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서울대 이인성 감독이 첫 승 하던 날

서울대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고 기념 촬영을 하는 서울대 선수들의 모습. ⓒ이인성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4일 서울대학교 종합운동장에서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려 퍼지자 벤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그라운드로 달려 나갔다. 90분을 온몸으로 버틴 선수들도 감격하며 뜨겁게 포옹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역사적인 승리를 스마트폰에 담고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 경기에서 이긴 팀은 기념 사진을 찍고 감독을 헹가래했다. ‘대학 축구 최약체’ 서울대학교가 3년 만에 값진 승리를 따낸 것이었다. 이인성 감독 체제 이후에는 첫 승이었으니 그들에게 이 승리는 마치 월드컵에서의 승리 못지 않은 여운이 있었다.

지난 2년 간 3무 23패 13득점 90실점
서울대학교는 U리그 무대에서 최약체로 평가 받는다. 지난 시즌에는 12경기를 치러 2무 10패에 머물렀다. 4골을 넣고 45골을 내줬다. 이길 뻔한 두 번의 경기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경기국제사이버대와의 경기에서는 1-0으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 추가 시간에 골을 허용하며 다 잡은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통한의 무승부였다. 서울대는 2016년에도 1무 13패 9득점 45실점하며 역시나 최약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서울대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2015년 5월 8일 세종대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둔 이후 한 번도 승리하지 못 했다. 지난 2년 간 3무 23패 13득점 90실점했다.

서울대는 올 시즌에도 5전 전패를 기록 중이었다. 3골을 넣고 19골을 내줬다. 그리고 지난 4일 상대는 U리그에서 무패를 내달리던 예원예술대였다. 예원예술대는 3승 1무 8득점 3실점하며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두 팀의 격차는 상당해 보였다. 이렇게 서울대가 약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선수단 대부분이 정시모집을 통해 입학한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생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선출’은 손에 꼽는다. 초,중,고등학교를 전문 선수로 보낸 다른 축구부와는 수준 차이가 상당하다. 일부에서는 “서울대가 U리그에 나오면 안 된다. 그냥 동아리 수준의 팀”이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인성 감독과 선수들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잘 알고 있다.

공부하는 선수들이다보니 훈련 여건도 열악하다. 모든 학교 수업이 다 끝난 오후 5시 반부터 두 시간 정도 훈련을 하는 게 전부다. 이인성 감독은 합숙을 하며 훈련에 매진하는 다른 팀과는 전혀 다른 서울대 분위기를 전했다.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나 과제 때문에 훈련에 참여하지 못할 때도 많다. U리그는 금요일마다 경기를 하는데 과제한다고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그래도 경기 전날이면 수비 조직력 훈련을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경기를 준비한다.” 지금껏 서울대는 역사상 딱 6번을 이겼다. 과거 한 상대팀은 서울대에 충격패를 당한 뒤 감독을 경질시켰던 적도 있다. 그만큼 서울대에 패하면 망신이라는 분위기가 축구계에는 팽배하다.

서울대 이인성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는 모습. ⓒ서창환 제공

그들의 역사적인 승리
서울대는 4일 예원예술대와의 경기를 앞두고 악재를 만났다. 4학년 주축 선수들이 대거 교생 실습을 나갔기 때문이다. 팀의 에이스인 오건호와 올 시즌 첫 골의 주인공 백승윤, 주장 민상윤 등도 교생 실습으로 경기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4학년 선수 여섯 명이나 교생 실습을 나간 서울대는 가뜩이나 약한 전력이 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예원예술대는 동국대를 제압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내용은 의외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전반 20분 놀라운 골이 터졌다. 프리킥 상황에서 흐른 공을 조혁주가 골로 연결시키며 서울대가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올 시즌 U리그에서 서울대가 처음으로 상대팀을 앞서게 된 순간이었다.

오히려 서울대가 예원예술대를 괴롭히는 경기가 이어졌다. 전반전을 1-0으로 마친 서울대는 후반 들어 교생 실습을 나갔다가 잠시 양해를 구하고 온 오건호와 민상윤 등을 투입했다. 이들은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경기에 투입됐다. 후반 들어 예원예술대의 공세가 이어지자 서울대는 수비를 두텁게 하는 역습 형태의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비기거나 이기고 있다가 후반 막판 추가시간에 무너져 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측면에서 슬기롭게 시간을 지연했다. 경기는 치열하게 펼쳐졌다. 경기 도중 서울대 관계자와 예원예술대 코치진 사이에 언쟁이 오갈 정도로 경기는 과열됐다. 이인성 감독 부임 이후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서울대는 온몸을 던져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달려 나가 환호했다. 마치 월드컵 첫 승이라도 거둔 분위기였다. 90분을 무실점으로 버티며 3년 만에 승리를 맛본 선수들은 부둥켜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응원단과 학부형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인성 감독은 2016년 5월 서울대에 부임해 3년 만에 처음으로 승리가 이런 기분이라는 걸 느꼈다. “후반 들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고 잘 해줬다. 지시한대로 수비 라인을 아예 내리지 않고 역습 위주로 잘 풀어 나갔다. 우리에겐 ‘꼭 한 번 이겨보자’는 간절함이 있었다. 간절하니까 이기더라.”

이인성 감독이 서울대로 돌아온 이유는?
이인성 감독은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2010년 일본에서 실업 선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진 거라곤 3급 지도자 자격증밖에 없었다. 김희호 코치가 사간도스에 진출하면서 나에게 서울대 축구부 코치 자리를 소개해줬다. 당시 팀에 와 보니 선수 출신은 단 두 명뿐이었다. ‘여기에서 뭘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도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그 팀에 있으면 안 된다. 다른 팀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첫 지도자 생활을 서울대에서 시작한 게 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인성 감독은 ‘비선출’들에게 강압적인 훈련 방식을 강요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한 동기부여 유발에 초점을 맞췄다.

“처음에 서울대에서 코치를 하다보니 습관을 잘 들였다. 선수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이해하는 법을 터득했다. 아마 ‘선출’들을 지도했더라면 그 아이들이 못 할 때마다 ‘왜 그것도 못해’라며 강압적인 태도로 대했을지 모른다. 학부형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 마시고 도박하고 그런 걸 배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럴 수 없다. 강압적인 게 먹히지 않는 팀이다.” 이인성 코치는 서울대에서 2년 동안 강신우 감독을 보좌했다. 물론 그해에도 서울대는 전반기 동안에만 1득점 43실점하며 최하위를 전전했다. 주변에서는 “너희는 U리그 나오면 안 된다”는 비아냥이 들렸다. 이인성 코치는 이후 용인축구센터에 갔다가 하재훈FC 중학교 감독을 거쳐 2015년 다시 서울대 코치로 복귀했다.

그는 왜 다시 지도자들이 기피한다는 서울대로 돌아왔을까.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가 지도자로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 보려 했다. 다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이전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면 내가 지도자로서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었다.” 이인성 코치는 1년 뒤 강신우 감독이 사퇴하자 서울대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여전히 서울대는 U리그 무대에서 최약체로 꼽히지만 이제 0-8, 0-10으로 크게 패하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상대를 쩔쩔 매게 하며 무승부도 거둘 만큼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지더라도 점수차가 그리 크지 않다. 공부하며 공도 차는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부를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보람도 있다.

부천 이정원
서울대는 27년 만에 프로선수를 배출했다. 부천FC에 입단한 이정원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서울대 축구부의 존재 이유
가장 힘든 건 역시나 훈련 여건이다. “공부가 우선이고 축구를 병행하는 구조다. 아이들이 과제하고 아르바이트 한다고 어떨 때는 훈련장에 10명만 나올 때도 있다. 휴일에도 나는 훈련을 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축구가 주가 아니다보니 쉬길 원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억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 운동도 해보고 한 여름에도 훈련을 해봤다. 하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노하우가 생기더라. 올 시즌은 9월 둘째 주까지만 하면 시즌이 끝난다. 그러면 5개월은 푹 쉴 수 있으니 이 때까지 만이라도 집중하자며 동기를 부여한다.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휴가를 조절한다.” 서울대는 고등학교 때까지 전문적으로 선수 생활을 했던 이들이 5~6명 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정시 모집을 통해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이들이다.

‘선출’과 ‘비선출’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는 게 이인성 감독의 과제다. “‘비선출’인데 매일 열심히 훈련을 나오는 친구가 있다. ‘선출’인데 다른 일이 많아 훈련은 잘 나오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면 경기를 앞두고 고민한다. 실력은 ‘선출’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만약 이럴 때 ‘선출’만을 중용하면 선수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칙을 정했다. ‘우리는 팀에 헌신한 선수를 가장 먼저 쓰겠다’고 원칙을 세워두니까 아이들이 이해를 하더라.” 이인성 감독에게 첫 승을 안긴 이날 결승골의 주인공 조혁주 역시 ‘비선출’이다. 조혁주는 올 시즌 무려(?) 두 골을 기록하며 팀내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는 미약하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성과도 냈다. 지난 시즌에는 무려 27년 만에 서울대 출신 프로선수를 배출하기도 했다. 성남FC에 이건엽이 진출했고 이정원은 부천FC에 입단했다. ‘동아리 수준’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팀이 거둔 대단히 의미있는 성과였다. 올 시즌에는 한 명의 선수를 또 일본 실업리그에 보냈다. 앞으로도 서울대는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더 많겠지만 공부하는 선수를 길러내는 팀의 롤모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이번 예원예술대와의 경기에서 거둔 의미 있는 승리를 통해 서울대가 가는 길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인성 감독은 “부임하고 1승 4무했다. 패배는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서울대 이인성
이인성 감독은 3년 만에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았다. ⓒ이인성 제공

“좋은 경기력과 매너 갖춘 팀 될 것”
이인성 감독은 철학이 있다. 훈련장에 나온 모든 이들과 악수를 하는 것이다. 보통 훈련장에 나온 선수들은 감독을 향해 “안녕하세요”라며 멀리서 나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게 전부지만 이인성 감독은 훈련장에 나오면 악수를 하고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하자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주말은 잘 보냈어? 몸은 어때?” 등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그만의 소통 방법이다. 이날도 감격적인 첫 승을 거둔 뒤 선수들과 악수를 하는데 몇몇 선수들이 이인성 감독 품에 안겼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건넸다. “선생님. 첫 승을 너무 늦게 선물해서 죄송해요. 헹가래 한 번 받으세요.” 곧바로 서울대 선수들은 이인성 감독을 헹가래했다.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U리그에서의 1승이지만 그들에게는 이날이 축제였다.

이인성 감독은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러면서 서울대 축구부를 이끄는 감독으로서의 신념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도전자 정신으로 임해야 하는 팀이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향해 ‘우리를 좀 알아주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매너 있는 경기를 하면 우리가 ‘알아주세요’라고 외치지 않아도 우리의 진심을 다들 알아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더 잘해야 한다. 늘 겸손하게 도전자 정신으로 임하겠다. 한 번 이기는 게 얼마나 간절한지 잘 알고 있다. 한 골 넣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다.” 부임 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이인성 감독은 여기에서 안주할 생각이 없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처음으로 승리 기념 회식이 이어졌다. 선수들은 물론 학부모와 서울대학교 교수들까지 나와 고기 파티를 하며 맥주도 한잔씩 했다. 간절했던 1승을 이룬 날 그들은 즐거운 파티를 열었다. 이 1승이라는 게 이만큼 행복을 가져다 준 모양이다. 서울대에서 이룰 건 다 이룬(?) 이인성 감독에게 다음 목표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다음 목표요? 리그 2승이죠.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상 딱 6번 이겼는데 한 시즌에 2승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꼭 해보고 싶어요.” 서울대의 시즌 2승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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