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악연’ 말끔히 씻어낸 부천 최철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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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활약이었다. 경기장은 탄성과 환호로 가득 찼다. 주변에서 들리는 “와, 이게 도대체 뭐야”라는 말을 들으며 그제야 ‘실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천FC1995 골키퍼 최철원의 활약이었다.

지난 6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10라운드 부천FC1995와 광주FC의 경기는 이번 시즌 명경기로 꼽아도 손색없는 경기였다. 부천이 광주를 1-0으로 잡으며 홈 2연승을 거뒀고 광주는 최근 4경기 무패 행진을 마감했다.

90분 동안 단 한 골. 그러나 세부 기록을 살펴보면 이 경기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두 팀이 기록한 총 슈팅 수는 35개, 유효슈팅은 16개다. 두 팀 모두 맹공을 펼쳤다. 경기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광주 윤보상과 부천 최철원의 활약이 빛났다. 특히 최철원은 광주가 기록한 9개 유효슈팅 모두를 막아냈다. 지난 부산아이파크전에 이어 팀의 연승을 이끌었고 2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광주를 상대로 무실점을 지켜낸 최철원 ⓒ 부천FC1995

광주대 출신 선수, 부천 유니폼 입고 광주 홈 경기장에 선 사연

최철원이 눈부신 선방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상대가 광주였던 이유도 있다. 최철원은 광주대에서 3학년을 보내고 2016년 부천에 입단했다. 최철원은 “원래는 광주FC에 가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 입문이 늘 그렇듯 쉽지만은 않았다. 광주에 합류할 수 없었던 최철원은 부천과 계약을 맺고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던 프로에 진출했지만 부천에는 이미 류원우라는 높은 벽이 있었다. 심지어 류원우도 2014시즌을 임대생 신분으로 광주에서 보냈다. 광주에서 부천으로 이적한 류원우는 부천의 든든한 수문장이 됐다. 1년 먼저 들어온 선배의 활약에 최철원이 나설 기회는 별로 없었다. 송선호 감독이 아산무궁화로 떠나고 정갑석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류원우라는 산을 넘을 수 없었다. 2016시즌 최철원이 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던 계기도 류원우의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인한 두 경기였다.

최철원은 “솔직히 (류)원우형의 벽이 높은 것도 있었다. 그때는 좀 힘들었다. (류)원우 형이 나가고 또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그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시즌 아쉬운 승강 플레이오프를 뒤로하고 류원우는 포항스틸러스로 이적했다. 류원우가 부천을 떠나니 골키퍼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경쟁자들이 수두룩했다. 최철원은 이를 악물고 동계훈련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정갑석 감독도 그런 최철원을 보며 마음을 정했다. 이기현, 이영창, 송혁진 등 내부 경쟁자가 있었지만 최철원이 최종적으로 정갑석 감독의 신뢰를 받고 이번 시즌 부천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광주가 강등을 당하며 최철원의 동기부여도 확실했다. 최철원은 “광주FC를 상대로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라고 밝혔다. 대전시티즌과 FC안양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둔 부천의 세 번째 상대는 최철원이 바라왔던 광주였다. 최철원은 3월 17일 그렇게 서고 싶었던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부천 유니폼을 입고 선발로 출전했다.

최철원은 부천 유니폼을 입고 광주의 홈 경기장에 나섰다 ⓒ 부천FC1995

프로에서 처음 만난 광주, 뼈아픈 실책 이후

최철원은 전반전 여봉훈, 지우, 나상호의 유효슈팅을 막아내며 자신감이 붙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프와 공민현의 득점이 터지며 부천이 2점을 앞서갔다. 광주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던 최철원은 후반 42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최철원은 광주 이인규가 올린 크로스를 공중에서 잡았지만 터치 라인을 의식해 공을 손에서 높치고 말았다. 흘러나온 공을 부야가 득점하며 광주가 한 골을 따라갔다. 부천은 마지막까지 광주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승점 3점을 거뒀지만 최철원 실책에 많은 이들이 포항으로 떠난 류원우를 다시 떠올렸다.

최철원은 실책을 털고 일어났다. 수원FC를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했다. 서울이랜드전 전반전에만 두 골을 허용하며 무너지는 듯 했으나 팀 동료들이 네 골을 이록하며 5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어진 아산무궁화, 성남FC에 연패를 당하며 팀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갑석 감독과 조민혁 골키퍼 코치는 5연승 이후 최철원이 심리적으로 불안해한다는 것을 느꼈다. 정갑석 감독은 안산그리너스전을 앞두고 선발명단에 최철원 대신 이기현의 이름을 적었다.

최철원은 벤치에서 그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 경기 쉬면서 많이 돌아보기도 하고 느낀 점도 많았다. 시합을 뛰는 게 선수들에게는 가장 좋지 않나. 안에서 뛰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라고 밝혔다. 그날 부천은 안산에 1-3으로 패배하며 3연패를 당했다.

비록 안산에 패배했지만 조민혁 코치와 정갑석 감독의 예상이 적중했다. 원정 8연전을 끝내고 홈으로 돌아온 부천은 부산아이파크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연패를 끊었다. 최철원은 홈에서 부산의 총 7개의 유효슈팅을 모두 막으며 또 한 번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시즌 두 번째 홈 경기 상대는 지난 3월 말 치명적인 실수로 실점했던 상대 광주였다.

최철원은 이날 경기에서 지난 광주전 실수를 모두 지워버릴 만큼 놀라운 선방을 보여줬다. 광주의 맹공이 오히려 최철원을 각성시켰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날 광주 박진섭 감독은 0-1 패배에도 끝까지 뛴 선수들을 칭찬했다. 그 정도로 광주 선수들은 잘해줬다. 그러나 박진섭 감독은 최철원의 활약에 혀를 내둘렀다. “상대 골키퍼가 얄밉지 않으냐”는 취재진의 짓궂은 질문에 “맞다. 너무 잘했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광주와의 두 번째 만남, 최철원은 놀라운 선방을 보여주며 맹활약했다. ⓒ 부천FC1995

“공격해도 돼요. 제가 다 막아주면 돼요”

최철원은 경기가 끝난 뒤 “무실점으로 끝나서 다행이다”라며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주전으로 뛰는 게 행복하다. 부천에 있었던 2년 동안 계속 뒤에 있었다. 뛰고 싶었는데 뛸 수 없어서 안 좋은 마음도 들었다. 이제 내가 하기 나름이지만 올해 주전으로 뛰면서 행복하고 더 경기를 뛰면서 고쳐나가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라면서 행복한 주전 생활을 전했다.

부천의 공격적인 전술 색깔은 골키퍼인 최철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철원은 이번 경기로 확실히 자신감을 찾은듯했다. 최철원은 “물론 수비도 중요하겠지만 축구는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뒤에서 내가 다 막아주면 된다. 괜찮다”라고 말했다. 계속 앞으로 나가는 안태현과 김준엽에게도 “나만 믿고 올라가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자신감 넘치는 농담을 던졌다. 최철원은 다시 진지하게 돌아와 “(임)동혁이 형이나 (박)건이 형이 워낙 잘해주고 닐손주니어도 좋은 수비를 펼치고 있다. 모두 협동심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최철원은 “작년엔 부천 축구가 ‘사이다 축구’였는데 올해는 ‘마그마 축구’ 아닌가. 골이 많이 들어가는 경기가 좋을 것”이라며 “팬들을 위해서도 화끈한 축구를 보여주는 게 맞다. 팬들과 함께 승리 뒤풀이를 할 때도 엄청 좋다. 홈 팬들도 작년보다 더 많아진 것 같고 같이 ‘랄랄라’를 부를 때도 너무 좋고 이런 곳에서 계속 뛰면 좋겠다는 기쁨도 있다”라며 무실점 승리의 기쁨을 전했다.

이날 최철원은 놀라운 선방을 연이어 보여주며 광주와의 악연을 말끔히 씻어냈다. “광주를 상대하면서 특별한 마음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솔직히 어떤 마음이 드는 건 없었다”라고 말한 그였지만 곧 “광주를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라고 말을 덧붙였다. 최철원은 그런 광주에게 아쉬움을 잔뜩 안겼다. 광주와의 악연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자리를 자신감으로 채운 그는 씩씩한 모습으로 선수단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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