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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이쯤 되면 우주의 기운이 황기욱을 돕는 것 같다. 정확히는 그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의 성공적인 선수 인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흡수하고 배웠다.

연세대 시절부터 소문이 자자했다. "연세대 15학번에 천재 미드필더가 있다." 서로 지기 싫어하는 고려대 선수들도 연세대 15학번 황기욱은 인정하고 들어갔다. 그래도 프로의 벽은 높았다. 서울 미드필더들이 줄부상을 당했을 때 데뷔전을 치렀다. 이명주, 주세종, 오스마르 등 그의 경쟁상대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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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너무나 달랐던 벨기에 생활

처음부터 순탄한 선수 생활은 아니었다. 그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서울이 그에게 더 기회를 줘야 했다. 그러나 서울은 지난 시즌에도 힘든 시기를 겪었기에 신인에게 선뜻 기회를 주긴 어려웠다. 급기야 지난 시즌 벨기에 AFC투비즈로 임대를 떠났다. 황기욱은 투비즈 생활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과 문화가 많이 다르더라. 한국에서는 축구 생각을 너무 많이 해야 했다. 지도를 받을 때도 축구 생각을 많이 하라고 배웠다. 해외 스타일에 적응이 필요했는데 한국에서의 생활을 버리기 쉽지 않았다. 해외에 가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도 많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에게 축구는 인생이었다. 주변인들의 기대도 높았다. 하지만 황기욱에게는 오히려 그게 스트레스가 됐다. 조급한 마음도 있었다. 투비즈 브라코니 감독은 그런 황기욱에게 먼저 문화를 알려줬다. 브라코니 감독은 "훈련 시간 외에는 축구 생각을 끊어라. 스트레스를 풀고 밖에도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문화생활을 즐겨라. 네 생각이 비어 있어야 축구가 잘 된다"라며 황기욱의 부담을 덜었다.

황기욱은 브라코니 감독의 도움으로 효율적인 문화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훈련 시간에는 온 힘을 쏟았다. 황기욱은 "내 역할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대신 쉴 때는 푹 쉬었다.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자기 관리 방법을 배웠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많이 배웠다. 어떻게 하면 내 포지션에서 세밀하게 효율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터득했다"라고 말했다.

투비즈에서 출전 시간도 늘면서 AFC U-23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김봉길 감독이 그를 불러 주전으로 활용했다. 비록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절치부심의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번 시즌 다시 황선홍 감독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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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베테랑들과 연세대 동기들의 힘

지난 시즌 투비즈로 떠나기 전까지 7경기에 출전했던 황기욱은 이번 시즌 벌써 6경기에 출전했다. 서울의 허리에서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황선홍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나고 이을용 대행이 팀을 맡아도 황기욱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큰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으나 최근 계속 경기에 출전하며 경기 감각을 익혔다. 일단 뛰기 시작하니 점점 좋은 모습이 보였다.

현재 서울은 변화의 갈림길에 있다. 황 감독 체제가 일단 막을 내렸고 구단은 이을용 대행에게 팀을 맡겼다. 황기욱은 "그럴수록 베테랑 형들, 서울에 있으면서 팀 분위기를 잘 아는 형들이 극복하자고 얘길 했다. 선배들이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 원래 서울의 분위기로 점차 개선되면서 하나로 더 뭉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황기욱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건 팀 동료들의 영향이 컸다.

그의 성장을 돕는 건 팀 동료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연세대 15학번 친구들이 그의 힘이 됐다. 전북현대에서 뛰는 김민재, 울산현대에서 뛰는 한승규가 황기욱과 동기다.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하는 서울이랜드 유정완도 동기로서 황기욱의 힘이 되어주고 있다.

황기욱은 "친구들과 거의 매일 단톡방으로 연락한다. 스스럼없는 사이다. 각자 위치에서 너무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다. 서로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 서로 잘 하고 있다는 믿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로 더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고 또 밖에 나왔을 때는 친하게 잘 논다.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이고 열정적으로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라면서 "팀 안에서도 보면 친한 선수들끼리의 유대감이 보인다. 우리도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올 거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라면서 친구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황기욱은 김민재 부상 소식을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영상 통화도 했다. 황기욱은 "영상 통화를 걸었더니 (김)민재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더라. 무조건 회복하라고, 할 거라고, 너는 괴물이기 때문에 회복할 거라고 말했다"라면서 "엄살 피우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라며 웃었다. 이어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이 그런 거밖에 없다. (김)민재가 어서 회복해서 월드컵에도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애틋한 우정도 함께 전했다.

그는 슈퍼매치 승리 후 "내가 꿈꿔왔던 경기에서 승리해 너무 영광이고 좋다"라고 말했다. 이어 "팀 전체 분위기가 새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우리가 똘똘 뭉쳐서 경기력으로 보답하는 게 과제다. 이제 주중 경기도 없고 시간이 있으니 조직력을 가다듬고 준비도 잘 하면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각오를 전했다.

황기욱은 확실히 사람 복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서 그의 성장을 돕고 황기욱이라는 축구 선수를 만들었다. 좋은 사람이 주변에 모이는 이유는 분명 그가 좋은 사람이라서다. 그를 아끼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가 다른 사람들을 아낀다는 의미다. 황기욱은 참 사람 복이 많다. 그래서 더 잘 될 선수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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