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팬 서비스는 K리그처럼, 수원처럼, 김종우처럼


수원삼성 김종우
경기가 끝난 뒤 관중석으로 가 관중의 사진 촬영 및 사인 요구에 응하고 있는 김종우.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달 25일 수원삼성과 경남FC의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경기를 앞둔 수원월드컵경기장. 경기 한참 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잔디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수원삼성의 한 선수가 뚜벅뚜벅 관중석으로 걸어갔다. 김종우였다. 그는 관중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관중석으로 올라가 사인과 사진 촬영에 응했다. 경기 시작 전에는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이 워낙 예민할 때지만 김종우는 이날 선발 출장이 예정돼 있었음에도 팬들의 요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이 팬들이 김종우를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김종우는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도 팬들의 사진 촬영 요구와 사인 요구를 일일이 다 들어줬다.

불 꺼진 경기장, 그래도 남아 있는 선수들
김종우는 이날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뒤에도 다시 관중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유니폼을 팬들에게 선물했다. 김종우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내가 사는 지역 수원삼성 유소년 팀인 리틀윙즈에 조카가 있어서 응원하러 한 번 간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수원삼성 팬들인데 나를 위해 응원 걸개까지 만들어 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인사를 드렸다. 원래 나를 응원해 주는 팬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너무나도 고마웠다. 사인을 부탁하셨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 한다.” 경기 전부터 관중을 챙긴 그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팬들을 위해 달려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그에게 사인을 받은 이들은 평생 이 좋은 추억을 기억할 것이다.

어제(2일) 수원삼성과 울산현대의 경기가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선발 출장해 무려 75분을 소화한 김종우는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과 함께 경기장을 돌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관중석으로 올라가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경기가 끝난 뒤 10여분이나 지난 상황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경기장을 빠져 나갔고 기자회견장에서는 양 팀 감독의 기자회견이 시작될 쯤이었다. 하지만 김종우는 경기장을 빠져 나가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온 관중과 일일이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사진 촬영 부탁을 받은 김종우는 난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진에 더 잘 나오기 위해 관중석으로 몸을 밀착했다. 그 사이 경기장 조명이 꺼졌지만 김종우는 그래도 경기장에 남아 있었다.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서는 ‘K리그의 전설’ 데얀도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김종우와 마찬가지로 관중석 난간 앞까지 와 팬들의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와 평생 간직할 추억을 남긴 이들은 환한 얼굴로 돌아섰다. 데얀과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데얀은 한참 동안 팬들의 요구에 응한 뒤 손을 흔들며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K리그의 전설’과 찍은 사진은 아마도 그들의 추억 속에 평생 기쁘게 남아있을 것이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던 노래가 꺼지고 조명도 다 꺼진 뒤에도 이들의 팬 서비스는 이어졌다. 이날만 그런 게 아니다. 김종우고 데얀이고 염기훈이고 늘 팬들의 밀려드는 사진 촬영 요구와 사인 요구를 거절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수원삼성 김종우
경기를 앞두고 김종우가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다가가 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그거 몇 분 걸린다고 거절할 수 있겠나”
경기가 끝난 뒤 김종우를 만났다. 마지막까지 경기장에 남아 팬들의 요구에 친절하게 응대한 이유를 묻자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인하는 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당연히 해 드려야 한다. 오늘도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을 찾은 지인들께 인사를 하러 갔는데 주변 분들이 사인을 부탁하시더라. 그거 몇 분 걸린다고 어떻게 나를 위해 응원오신 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있겠나. 안 할 수가 없다.” 김종우는 이 정도 팬 서비스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원정경기를 가도 우리 팬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사인 요청을 하면 일일이 다 해드린다. 멀리까지 응원 온 분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

물론 난감할 때도 있다. 김종우는 1993년생으로 팀에서는 어린 편에 속한다. K리그에서 네 시즌 째를 맞고 있지만 팀 내에는 후배보다 선배가 훨씬 더 많다. 더군다나 수원삼성은 염기훈과 데얀, 조원희, 신화용 등 굵직한 고참 선수들이 많다. 김종우는 승리하지 못한 날이면 선배들 눈치를 봐야하는 선수다. “경기에서 지거나 비기면 형들 눈치가 보이긴 한다. 라커에 빨리 들어와야 하고 선수단 버스도 재빨리 타야한다. 하지만 어린 팬들은 이런 상황을 잘 모른다. 이럴 때 사인 요청이나 사진 촬영 요청을 받으면 살짝 난감하기는 하다. 하지만 사인과 사진 촬영을 기다린 팬들이 있다면 당연히 해드려야 한다. 경기에서 이기지 못해 기분이 안 좋을 때도 형들도 다 팬들의 요구에 응하는 분위기다.”

그는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도 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염기훈이 팬들을 대하는 태도를 많이 보고 배웠다. 팬 서비스가 좋은 K리그에서도 염기훈은 가장 모범이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늘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지만 지난 해 말 그의 모습을 보고는 존경스러울 때가 있었다. 산토스가 브라질로 떠나던 날 선수단 중 유일하게 인천공항으로 배웅을 나온 게 염기훈이었다. 염기훈은 작별 인사만 하고 간 게 아니라 짐이 많은 산토스를 위해 팔을 걷어 올린 채 수하물 정리를 했다. 배웅 온 팬들이 시작한 짐 정리를 염기훈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공항에는 두 개의 긴 줄이 형성됐다. 산토스의 짐 정리를 도와주는 한 쪽 편의 줄과 염기훈에게 사진 촬영 요청을 하는 한 쪽 편의 긴 줄이 양 갈래로 늘어섰다.

안산그리너스 이흥실 감독이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모습. ⓒ 안산그리너스 제공

염기훈과 김영광이 전하는 진심
염기훈은 수하물 정리를 도우면서도 계속 팬들의 사인 요구와 사진 촬영 요구에 응했다. 단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고 팬들을 웃으며 대했다. 이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스포츠니어스> 기자는 감탄했다. “한두 번이라면 웃으며 응할 법도 하지만 이런 요구가 계속되는데도 거절 한 번 하지 않고, 귀찮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팬들을 대하는 염기훈의 자세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염기훈을 통해 팬 서비스를 보고 배운 김종우가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김종우는 팀 분위기를 그대로 전했다. “형들이 하는 걸 보고서 배웠다. 그리고 감독님께서도 늘 팬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사인이나 사진 촬영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 팬 서비스는 당연히 해야 한다.”

며칠 전 K리그2 서울이랜드 골키퍼 김영광은 직접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서울이랜드 주장이자 전 국가대표 골키퍼 김영광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된 것은 저희팀 경기와 프로축구 경기를 꼭 보러 와주시길 부탁드리기 위해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 팬 분들이 만원관중을 이룰 만큼 많지는 않으시지만 매 경기마다 찾아와주셔서 열정을 다해 응원해주시고 함께해주시는 팬 분들이 계셔서 너무나 감사하기에 한 경기 한 경기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팬 분들이 계시기에 너무나 힘이 되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용기를 내서 서울이랜드 홈경기와 프로축구를 많이 보러 와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팀의 주장으로서, 또한 프로축구선수로서 ,축구인으로서 이렇게 보배회원님들에게 용기를 내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리고 김영광은 올 시즌 서울이랜드 경기 일정을 올린 뒤 네티즌들의 댓글에 일일이 답했다. 한 네티즌이 “가면 사인을 잘해주시죠?”라고 하자 김영광은 이런 답글을 달았다. “사인은 물론 사진도 같이 찍어 드리고 있습니다. (셀카로 선수가 직접 찍어드려요^^)” 김영광은 팬들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경기장에 찾아와 주시면 저희에겐 정말 너무나 큰 힘이 됩니다. 팬 분들이 저희에겐 가장 큰 힘입니다.” 김영광은 늘 경기장에 가면 기자들과 팬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선수다. 서울이랜드 다른 선수들의 팬 서비스도 훌륭하지만 창단 때부터 서울이랜드와 함께 한 김영광은 늘 팬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수원삼성 데얀
‘K리그 전설’ 데얀도 이렇게 마지막까지 남아 팬들에게 진심을 다한다. ⓒ스포츠니어스

K리그처럼, 수원삼성처럼, 김종우처럼
K리그 인기가 시들해진 시점에서 팬들의 사랑이 고팠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1998년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했던 이동국을 보기 위해 그의 포항 집에는 팬들이 늘 진을 치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경찰이 출동해 사생팬을 모두 해산시켜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동국의 부모님은 팬들이 찾아오면 음료를 대접했고 이동국 방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이동국이 직접 입었던 유니폼을 구경시켜주기도 했고 이동국이 숙소 생활을 하다 집에 방문하는 날이면 즉석 팬 미팅을 열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로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K리그는 인기가 있거나 없거나 팬들을 대하는 자세는 늘 공손했다. 지금껏 봐 온 선수 중 팬들에게 불친절한 선수는 본 적이 없다. 어색해서 부끄러워하는 선수는 있어도 이게 싫어 매몰차게 거절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

K리그가 대중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K리그가 팬을 대하는 마음 만큼은 칭찬을 해도 아깝지 않다. 안산그리너스는 하루에 2~3번씩 연고지내 초등학교와 보육시설 등을 방문해 봉사 활동을 한다. 이흥실 감독은 직접 유니폼을 입고 식당에서 서빙을 하기도 한다. 안산뿐 아니다. 대다수 K리그 구단들은 지역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팬들 고마운 줄 안다. K리그 인기가 부족해 서러울 때도 있지만 그들의 진심 만큼은 이 글을 통해 꼭 전해졌으면 한다. 김종우도, 수원삼성도, K리그도 팬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경기장에 불이 꺼진 상황에서도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사인을 하고 사진 촬영 요구에 응하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김종우와 수원삼성, K리그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팬들을 대한다. 대중적인 관심이 부족하다는 게 죄라면 죄일 뿐 그들은 늘 최선을 다했다.

어제 경기가 끝난 뒤 만난 김종우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장에 오신 분들의 사진 촬영 요구나 사인 요구를 무시하고 지나치면 안 된다. 아마 내가 팬이었더라도 그런 대접을 당하면 경기장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그 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있는 거다. 다른 구단도 사회 공헌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프로 선수라면 운동만 잘하는 게 다가 아니라 팬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 팀 관중이 많이 줄었는데 내 이런 행동으로 인해 한 명의 관중이라도 더 경기장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사인해 주고 같이 사진 찍어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김종우와 수원삼성, 그리고 K리그의 이런 진심이 언젠가는 통할 것이라 믿는다. 아니, 통하지 않더라도 이게 당연한 예의라고 믿는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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