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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서울” 이 구호가 울려 퍼지자 반대쪽에서는 이런 응원이 터져 나왔다. “수원. 수원. 수원.” K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인 슈퍼매치가 연상됐다. 한쪽은 서울은 응원했고 또 다른 한쪽은 수원을 목 놓아 외쳤다. 하지만 이 경기는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수원월드컵경기장도 아닌 곳에서 열렸다. 관중도 1백여 명뿐이었다. 효창운동장에서 벌어진 WK리그 경기였기 때문이다. 지난 달 30일 효창운동장에서는 ‘현대제철 H CORE 2018 WK리그’ 2라운드 서울시청과 수원도시공사의 경기가 펼쳐졌다. 서울시청 역사상 효창운동장에서 치른 첫 번째 야간경기였다.

서울시청이 평일 낮 경기만 한 이유는?

서울시청은 그 동안 홈 구장인 효창운동장에서 야간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도저히 야간 경기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효창운동장에 조명 시설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WK리그는 다른 스포츠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월요일에 열리고 있다. 다른 WK리그 경기는 월요일 저녁에 치러진다. 홍보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WK리그 마니아들이 경기장을 찾을 여건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청은 평일 오후 4시 경기를 고수해야 했다. 조명 시설이 없어 야간경기를 치를 수 없었고 이 야간 경기를 위해 이따금씩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보조구장이나 노원 마들스타디움을 홈 경기장으로 쓴 적도 있다. 하지만 관중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열악한 보조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팬들을 위한 서비스 치고는 너무 부족했다.

서울시청 여자축구단은 서울시에서 그리 좋은 대접을 받는 팀이 아니다. 여자축구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운영 중이지만 투자가 부족한 WK리그에서도 환경이 열악한 편으로 꼽힌다. 서울시청은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숙소에서 생활하고 진접읍의 협조로 인근 크낙새 운동장을 훈련장으로 쓰고 있다. 효창운동장과 경기도 남양주를 오가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 다른 팀에는 다 있는 외국인 선수도 없다. 그나마 박은선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지만 2015년 시즌엔 7개 팀 중 6위에 머물렀고 2016년에도 7개 팀 중 5위에 그쳤다. 지난 시즌엔 막판까지 플레이오프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8개 팀 중 4위로 시즌을 마쳤다. 홈 경기장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조명 시설이 열악한 효창운동장에서 낮 경기를 펼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효창운동장은 낙후될 대로 낙후돼 있었다. 1960년대 국내 최초의 국제 규격 축구장으로 탄생한 효창운동장은 제2회 아시안컵을 개최한 한국 축구의 성지였다. 이 곳에서 한국의 마지막 아시안컵 우승이 이뤄졌다. 수만 관중이 몰려 효창운동장 문이 떨어진 적도 있다. 축구인 중 이 경기장에서 뛰어보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대문운동장과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연이어 건립되면서 효창운동장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마추어 축구에서는 효창운동장이 중요한 존재다. 초‧중‧고 주말리그, 대학 U리그, 서울시장기, K3리그, 전국체전 예선, 동호인 대회 등 우리가 관심을 쏟지 않는 많은 경기는 여전히 효창운동장에서 열린다.

경기가 끝난 뒤 대화를 나누는 서울시청 선수단. ⓒ스포츠니어스

새롭게 단장한 효창운동장

효창운동장의 최대 약점은 열악한 환경이다. 한 동안은 선수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열악했던 잔디가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닳고 닳아 일반 카펫 수준이었던 인조잔디는 선수들이 태클을 하다가 화상을 입을 만큼 형편없었다. 그나마 2015년 새로 인조잔디를 깔아 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조명 시설은 여전히 부족했다. 조명탑이 있긴 했지만 낡은 전구는 야간 경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하지만 서울시는 2019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100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효창운동장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조명 시설을 새로 설치했고 전광판도 교체했다. 지난 해 10월 이 공사가 마무리됐다. 효창운동장도 이제 야간 경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평일 낮 경기를 치르거나 서울 시내를 떠돌아야 했던 서울시청 여자축구단도 마침내 효창운동장 야간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너무 밝은 조명 시설 때문에 경기장 주변 거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지금껏 어두운 조명 때문에 효창운동장이 있어도 큰 불편함이 없던 주민들은 갑자기 환해진 경기장 조명이 불편했다.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밤에 잠을 자야하는데 경기장이 너무 밝아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결국 서울시는 고심 끝에 조명을 다시 낮췄다.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최소 규정으로 조도를 낮춰야 했다. 사방을 비추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의 각도도 경기장 바닥으로 향하게 내렸다. 이 공사를 하는데도 다시 시간이 필요했다. 효창운동장 조명이 마치 작동이 덜 된 것처럼 유난히 바닥을 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까스로 조명 시설을 갖췄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요구한 조도 기준에 턱걸이하면서 WK리그 야간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됐다. 바로 그 역사적인 첫 경기가 이번에 펼쳐졌다. 서울시청이 수원도시공사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치른 이 경기가 서울시청 역사상 최초의 WK리그 효창운동장 야간 경기였다. 마치 미세먼지가 가득한 것처럼 경기장에는 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신식 월드컵경기장 조명에 비하면 많은 게 부족해 보였다. 연극 무대에서 독백을 하는 주인공에게 핀 조명이 비춰지는 것처럼 주위는 어두웠고 그라운드에만 최소한의 조명이 허용됐다. 켜지다 만 것 같은 조명이 선수들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울시청은 이제 서울 시내를 전전하거나 평일 낮 경기를 치르지 않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경기가 끝난 뒤 대화를 나누는 서울시청 선수단. ⓒ스포츠니어스

그들이 야간 경기에 갖는 기대

많은 관중이 찾은 경기는 아니었다. 몇몇 되지 않는 양 팀 팬들이 “서울”과 “수원”을 외치는 모습은 슈퍼매치를 연상케 했지만 많은 관중은 아니었다. 선수 가족과 외국인들이 선선한 저녁 날씨에 열리는 경기를 즐길 뿐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한 선수는 “조명이 밝지 않아 공의 위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평일 낮 경기를 치를 때에 비해서는 이 상황이 더 낫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선수는 “지난 해엔 한 여름에도 낮 경기를 치러야 해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올 시즌에는 저녁 경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들은 이렇게 눈부시게 밝지 않은 조명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저녁에 경기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대단한 환경이었다.

서울시청은 WK리그 개막 이후 이날도 0-1로 패하면서 2연패를 기록하게 됐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서울시청 박기봉 감독은 그래도 웃었다. “경기력은 만족스러웠다. 부상자가 많아 지난 시즌 베스트11 중 5명이 개막 후 두 경기에 뛰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시즌에는 50%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는데 올해도 일단 그 정도 이상은 하고 싶다. 지난 시즌 3~4위 싸움을 하다가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쳤다. 올해는 꼭 준비를 철저히 해서 플레이오프에 가고 싶다.” 열악한 지원으로 늘 하위권을 맴돌던 서울시청은 올 시즌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그들은 효창운동장에서 치른 첫 야간 경기에 상당히 만족했다. 박기봉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평일 낮 경기를 치르느라 같이 고생한 다른 팀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상대팀도 다 힘들었다. 늘 평일 낮 경기를 해야 하는 상대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우리만 고생한 게 아니다. 아무래도 저녁 경기는 날씨도 선선하고 환경이 더 좋으니 우리 아이들(선수들)이 더 좋아하더라. 더울 때 낮에 경기를 하는 것보다는 경기력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저녁 경기를 하면 그래도 관중이 한두 명은 더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그들의 의미 가득한 슈퍼매치(?)

서울과 수원이 붙은 이 경기는 ‘슈퍼매치’라는 거창한 이름도 없었고 관심 밖에서 치러졌지만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서울시청의 첫 효창운동장 야간경기는 그들에겐 대단한 사건이었다. 효창운동장에 조명 시설이 갖춰지고 치른 첫 번째 WK리그 경기가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일이 경기 환경을 바꿔 놓을 만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월드컵경기장 만큼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조명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이런 환경은 한 줄기 빛과 같다. 지난 시즌까지 평일 낮에 열렸던 경기에 비하면 이날은 서울시청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WK리그의 슈퍼매치(?)는 이런 의미를 남긴 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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