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로마 선수단 ⓒ AS로마 공식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AS로마는 25일 새벽 3시 45분(한국 시각) 안필드에서 열린 2017/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리버풀에 2-5로 완패했다. 모하메드 살라와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경기 내내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며 로마의 조직력을 무너뜨렸고 로마의 수비진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후반 25분까지 무려 5골 차이로 끌려가다 에딘 제코와 디에고 페로티의 연속골로 간신히 영패를 면했다. 후반 막판 정신력을 발휘해 원정에서 두 골을 기록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홈, 원정 단 두 경기로 승부가 결정되는 4강 토너먼트전 특성상 1차전에서 대패를 하게 되면 부담감을 잔뜩 안은 채 2차전에 나설 수밖에 없다.

로마는 2차전에서 두 골 미만으로 실점하면서 세 골 차로 승리하거나 네 골 차 이상의 완승을 거둬야 결승에 진출할 수 있다. 지금 축구계는 리버풀의 화끈한 공격력에 무너진 로마의 4강 탈락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확정짓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로마가 지난 8강전에서 보여준 저력을 기억하고 있다. 8강전의 상대는 FC바르셀로나였다. 이번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었던 바르셀로나는 캄프 누에서 로마를 4-1로 격파했다. 하지만 로마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3-0으로 승리했고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4강에 진출했다. 로마 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결과에 열광했다. 1983/84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 이후 약 34년 만에 밟는 챔피언스리그 4강 무대였기 때문이다.

공은 둥글다

우리는 축구 경기가 끝난 이후 결과를 예측할 때 보통 ‘이변이 없는 한’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그 이변을 ‘기적’이라 부른다. 축구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다. 과거 독일의 축구선수 요셉 제프 헤이베이거가 ‘공은 둥글다’라고 말했듯이 축구 역사를 살펴보면 강팀이 약팀의 희생양이 된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누가 로마의 극적인 4강 진출을 100% 확신했겠는가?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8강 1차전 이후 바르셀로나의 4강 진출 확률을 98%로 계산했다. 로마의 확률은 단 2%에 불과했다. 하지만 로마는 포기하지 않고 그 2%의 불씨를 살렸고 98%의 예상을 뒤엎었다. 우리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로마의 대역전극을 ‘로마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UEFA 홈페이지에 따르면 역대 챔피언스리그에서 세 골 차이를 뒤집고 대역전극을 펼친 경우는 올 시즌 ‘로마의 기적’을 포함해 단 세 번에 불과하다. 2003/04시즌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AC밀란과의 8강 1차전에서 1-4로 패배했지만 2차전에서 4-0 역전승을 거둔 ‘리아소르의 기적’과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가 16강 1차전에서 PSG에 0-4로 대패했지만 2차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6-1 대승을 거둔 ‘캄프 누의 기적’이 있다. 그리고 로마는 지난 시즌 ‘기적의 주인공’ 바르셀로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로마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믿음은 이유가 있다

이날 경기에서 리버풀에 패배한 로마는 맹목적으로 ‘기적’을 믿는 것은 아니다. 2차전은 로마의 홈인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다. 로마 선수단과 에우제비오 디 프란체스코 감독은 올림피코에서 만큼은 자신감이 넘친다. 이번 시즌 로마는 챔피언스리그 홈경기에서 4승 1무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카라바흐(1-0)와 샤흐타르(1-0)가 무릎을 꿇었고 ‘빅클럽’인 AT마드리드(0-0), 첼시(3-0), 바르셀로나(3-0)조차 올림피코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로마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4강 2차전에 임할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올 시즌 리버풀의 고질적인 문제는 수비진의 집중력 저하다. 경기 막판까지 쉽게 리드를 하다가도 끝나기 직전에 갑자기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맨체스터 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다. 당시 리버풀은 폭발적인 화력을 선보이며 맨시티를 쉽게 격파하는 듯 했지만 경기 막판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이날 역시 그랬다. 로마가 백 포로 바꿔 공격적인 전술로 나오자 리버풀 수비진은 급격하게 흔들렸다.

슈팅을 시도하는 제코 ⓒ AS로마 공식 홈페이지

만약 경기가 0-5로 종료되었다면 로마에 일말의 희망조차 남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리버풀은 경기 종료 10여분을 남겨두고 두 골을 허용하면서 로마에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허용하고 말았다. 리버풀 입장에서는 5-2, 세 골 차가 계속 찝찝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지난 8강전에서 바르셀로나가 로마에 4-1로 승리했다가 0-3으로 대패해 탈락한 것이 계속 떠오를 것이다.

로마는 특유의 끈기와 집념을 가지고 또 다시 한번 기적을 노린다. 분명 기적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로마는 자신들이 어떤 팀인가를 지난 8강전을 통해 이미 증명했다. ‘베테랑’ 데 로시는 “우리는 이미 8강전에서 우리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우리는 팬들에게 바르셀로나를 상대했던 날과 같은 밤을 선물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선수단에게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심어주고 있다. 로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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