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팬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K리그는 별 걱정이 없다. ⓒ FC안양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주 대구FC 안드레 감독과 만난 <스포츠니어스>는 16년 전 ‘그 사건’에 대해 물었다. 안양LG 소속이던 안드레가 전남드래곤즈 김남일을 머리로 들이 받은 2002년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당시 사건의 여파는 엄청났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여성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던 김남일이 안드레의 박치기에 쓰러지자 팬들은 난리가 났다. 당시 이제 막 축구에 입문한 여성 팬들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축구선수 안드레’를 쳐본 뒤 나오는 누군가의 홈페이지에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이 홈페이지는 안드레가 아니라 ‘안드레이 세브첸코’의 홈페이지였다. “이탈리아에서 한국 팀으로 불러줬으면 고마운 줄 알고 뛰라”는 반응은 전설로 남아 있다.

김남일 보기 위해 네덜란드까지 간 팬들

지난 주 만난 안드레 감독도 16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 경기가 끝난 뒤 내 신변보호를 위해 전담 경호원이 두 명이나 생겼다”고 했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김남일을 향한 여성 팬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김남일이 “지단 연봉은 내 월급에서 까라고 해요”라고 한 마디 던지면 여성 팬들은 엄청난 환호로 답했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남자 김남일’을 좋아했지만 이후 점점 더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들이 처음 축구장에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축구의 ‘축’도 모르는 사람들이 축구선수를 연예인 보듯 하며 물을 흐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들의 진심을 느끼면서 내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됐다.

김남일은 이후 네덜란드로 이적했다. 페예노르트와 임대 계약에 합의했지만 이후 위성 구단인 엑셀시오르로 다시 임대됐다. 팬들에게는 선수가 동경하던 유럽 진출이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엑셀시오르는 상상 이상으로 열악한 구단이었다. 2천 석의 관중석 중 1천 석은 입석이었을 정도로 경기 관람 환경도 좋지 않았다. 국내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김남일이 엑셀시오르의 작은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그런데 김남일의 팬들은 엑셀시오르까지 가 김남일을 응원했다. 김치와 생선 등을 싸들고 무려 7명이나 네덜란드로 날아간 것이다. 'GA Namil Kim, Werover het Veld!(김남일, 그라운드를 정복하라!)는 네덜란드어 응원 걸개도 내걸었다. 당시 네덜란드까지 날아가 김남일을 응원하던 팬들의 모습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 팬들이 속한 ‘나이스 김남일’이라는 팬카페는 단순히 김남일을 연예인 보듯 따라다니는 모임이 아니었다. 한국이 오만에 패하는 참사가 일어난 뒤에는 “오빠도 비판을 달게 받아야 한다”는 성숙된 팬 문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안드레로부터 박치기를 당한 뒤 안드레이 세브첸코 홈페이지에 테러를 가하던 이들은 한국 축구사에 가장 모범이 될만한 오빠부대(?)로 성장했다. 김남일 덕분에 축구를 알게 된 이 팬들은 이후에도 김남일이 K리그에 복귀하자 꾸준히 경기장을 찾으며 K리그 흥행에 일조했다. 돌이켜 보면 이 팬들은 ‘오빠’가 욕 먹는 게 싫어 더 의식 있고 개념 있었던 것 같다. 조직적으로 뭉쳐 김남일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 주기도 했고 때론 날카로운 비판도 받아들일 줄 아는 멋진 팬들이었다.

안드레 감독은 현역 시절 김남일과 충돌했다가 팬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스포츠니어스

그들은 지금 축구장에 없다

하지만 지금 그 많던 김남일 팬들은 K리그에 없다. 김남일이 일본과 러시아 등에서 뛰며 K리그를 비운 탓도 있지만 이 팬들은 몇 년간 보여주던 K리그에 대한 애정을 더 이상 쏟지 않는다. 김남일 때문에 K리그에 입문해 특정팀을 응원하기 시작한 여성 팬이 꽤 많았지만 요즘 K리그 경기장에 가 보면 16년 전 그때 그 어렸던 여성 팬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들에게 K리그와 김남일은 한 때 추억일 뿐이다. 아마 지금쯤 결혼을 해 아이 엄마가 된 이들은 가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축구 경기가 나오면 ‘나도 한때는 남일이 오빠에 빠져 살았는데…’ 정도의 짧은 회상이 전부일 것이다. 오해를 살까봐 말하는 건데 그때 김남일에 열광하다가 이제는 축구와 인연을 끊고 사는 이들에 대한 푸념은 아니다. 이 현상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거다.

또 다른 한 지인의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팬 없기로 유명했던 광주상무 시절부터 서포터스에서 북을 치던 한 여성이 있다. 사적으로 알게 된 사이라 반갑게 근황을 묻고 지냈다. 광주상무에서 북을 칠 정도라면 K리그 마니아 중에서도 가장 별종에 가깝다. 그녀가 K리그에 대해 보여준 애정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가끔씩 야구장에 다닌다. SNS를 보면 야구 중계를 보며 맥주 한 잔 하는 걸 행복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10년 전 사적으로 알게 된 또 다른 한 여성은 포항 팬이었는데 당시 무명이던 신화용과 알만한 사람만 안다는 윤보영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골수 팬이었다. 하지만 이 여성도 지금은 축구장에 다니지 않는다. 그냥 축구를 끊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K리그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은 이 시장의 파이가 늘어나지 않는 현상을 지적한다. K리그를 걱정하는 마음이야 좋지만 나는 지금 이런 지적보다 더 큰 문제를 다른 데서 찾고 싶다. 정말 걱정해야 할 건 지금껏 K리그에 꾸준히 관심을 갖던 팬들, 특히 여성 팬들이 K리그를 한때 추억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K리그는 한때 아이돌 가수를 따라다니던 시절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추억으로만 자리 잡아 있을 뿐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나는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단 새로운 팬들의 유입에 앞서 있는 팬들을 지켜내는 게 K리그가 먼저 해야할 일이다. 그 열악했던 시기에도 애정을 보내던 팬들이 떠나간 리그를 새로운 팬들로 계속 채우는 건 한계가 있다. 빠져 나간 만큼 채워도 현상 유지인데 우리는 지금 현상 유지도 어렵다.

K리그에 평생 팬이 있을까?

2006년 잉글랜드 클럽 레딩은 무려 135년 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승격이라는 기쁨을 맛봤다. 어린 시절부터 이 팀을 응원하던 할머니가 첫 승격을 경험하고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내 친구들은 다 죽어서 이 역사적인 현장을 못 봤어. 나만 봤네.” 프리미어리그 만큼의 깊이는 아니어도 과연 이 땅에서 K리그 팬으로 한 평생을 살아갈 만큼의 환경이 갖춰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성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포츠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남성 팬들에게도 K리그는 한 평생 응원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젊은 시절 한때 골대 뒤에서 방방 뛰며 응원가를 부르던 이들도 세월이 흐르면 다들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린 팬들이 좀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나이를 먹으면 떠나는 게 K리그의 추세다.

프로축구 출범 직후부터 따질 것도 없이 연고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만 따져도 그렇다.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일상처럼 매주 K리그 경기장에 와 지속적인 응원을 보내는 팬은 아직 한 번도 못 봤다. K리그는 누군가에게 한 때의 추억이라는 게 가슴 아픈 일이다. 안정환과 고종수, 이동국을 좋아하며 K리그에 입문한 이들이 이 선수들이 은퇴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K리그에 관심을 기울여야 정상적인 유입 구조가 생긴다. 김남일에 열광했던 이들이 축구에 눈을 뜨며 선수가 아닌 팀의 팬이 돼야 시장이 커진다. 광주상무에서 북을 치던 소녀가 결혼해 아이와 함께 경기장을 찾아야 K리그가 흥행된다. 하지만 K리그에 한 번쯤 관심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은 K리그를 한때의 추억이라고만 생각할 뿐 평생 가져야 할 취미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아주 단순한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꾸 거시적인 목표를 지적하며 큰 그림만 본다. 사람들이 K리그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한 번쯤은 그들을 평생 팬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다 놓쳐 놓고 새로운 팬 유입 경로를 그리고 있는 건 대단히 큰 착오다. 앞바다에 작은 배를 띄워 놓고 그물을 쳐놓으며 물고기를 잡으면서 저기 먼 바다에서 큰 물고기를 잡는 큰 배를 부러워한다. 그런데 지금 K리그가 앞바다에 쳐놓은 그물은 너무 허술해서 잡아놓은 물고기도 도망칠 정도로 촘촘하지 않다. 아무리 먼 바다의 큰 배를 부러워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잡은 물고기도 놓치는 판국에 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안드레 감독은 현역 시절 김남일과 충돌했다가 팬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스포츠니어스

있는 팬들부터 챙기자

그 많던 김남일 팬들을 왜 고정적인 K리그 팬으로 만들지 못했는가에 대한 물음을 해결하면 K리그 흥행은 훨씬 더 수월해진다. 복합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김남일의 열정적인 팬들도 지속적으로 K리그 경기장에 올만한 흥미를 느끼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판 판정 문제부터 구단의 대단히 불만족스러운 서비스까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과연 이게 과거만의 일인가. 요즘에도 비슷한 일은 계속 일어나는 중이다. 특정 심판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구단을 후원하기도 하고 감독에 대한 항의 구호를 외쳤다고 포털 사이트에 올라가는 영상을 누군가 고의로 편집했다는 논란도 일어나고 있다. 사실이라면 너무 치졸한 일이라 오해이고 추측일 뿐이라고만 믿고 싶다. 누군가는 거친 플레이로 징계를 받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는 논란도 난무한다.

결국 이러다 또 지친 팬들이 떠나는 거다. 인터넷 방송 BJ를 홍보대사로 영입하고 뭐 이런 저런 공격적인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시도해도 있는 팬들이 떠나가는 리그는 새로운 관중 유입으로도 재미를 못 본다. 인천유나이티드나 대전시티즌의 상황은 어떤가. 두 팀 모두 구단 수뇌부와 팬들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다. 어지간히 이 팀에 열정이 있는 팬이 아니라면 그 길고 지루한 싸움에 이골이 나 그냥 SK나 한화 야구를 보러 갈 것이다. 경기장에 가면 시위 걸개 하나를 놓고도 구단과 싸우고 법적 다툼도 불사해야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 평생 팬이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열 명씩 떠나고 서너 명이 유입되는 걸 반복하다보니 K리그는 늘 위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계속 마이너스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 있는 팬들도 K리그가 자꾸 부정적인 논란과 이슈만 터지면 언젠가는 떠난다. 팬 서비스가 개판이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요즘 서울이랜드 경기장에 가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 광활한 경기장에 개방된 문은 몇 개 있지도 않다. 경기장 바깥을 걸어서 한 바퀴 돌려면 족히 20분은 걸리는데 팬이 입장할 수 있는 문은 극소수다. 잠실에서 여자친구와 놀다가 호기심 삼아 서울이랜드 경기를 처음 보러가는 이가 있다면 아마 입장 게이트를 찾아가 화가 잔뜩 나 집에 돌아갈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다 이유가 있다. 큰 경기장을 다 관리할 수도 없고 인력을 다 배치할 수도 없어 그런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있던 팬도 떠나가게 만드는 최악의 팬 서비스와 논란, 사건 사고가 지속되면 새로운 팬 유입은 어렵다.

K리그는 회전률 높은 패스트푸드

K리그에 입문하게 된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유입 경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원래부터 축구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한 부류가 있는 반면 특정 선수의 팬으로 시작해 팀을 응원하게 된 경우도 많다. 공짜표로 처음 K리그를 접한 뒤 K리그에 빠지게 된 이들도 꽤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우연찮게 유입된 팬들을 평생 잡아둘 만큼 K리그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다른 문제는 다 떠나서 그 많던 김남일의 팬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보면 정말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지금 경기장을 찾는 팬들도 언젠가는 K리그를 한 때 좋아했던 추억 정도로 생각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처음부터 팬이 없었다는 건 잘못된 분석이다. 왜 팬이 없었나. 이 팬들을 못 잡았을 뿐이지.

J리그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우리와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젊은 팬들은 유입이 적고 오래된 팬들만 남아 팬층이 고령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노인네들만 보는 구닥다리 스포츠’라는 인식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상황에서는 그래도 오래된 팬들을 붙잡아 놓고 있는 그들의 현실이 부럽기도 하다. K리그는 마치 회전률 높은 패스트푸드점처럼 팬들이 금방 왔다가 금방 사라진다. 한 자리에 앉아 반나절 동안 안주 하나 시켜놓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할 수 있는 푸근한 단골 술집이 아니다. 10년 전 눈 내리던 날 수원삼성이 우승했던 이야기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J리그나 메이저리그의 고민과는 다르게 우리는 팬들을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부터 모색해야 한다.

데얀과 FC서울 팬으로 잘 알려진 김은하수양은 이제 K리그의 유명인사다. 나는 이 어린 친구가 나중에 성인이 돼도 남자친구와 함께 K리그 경기장에 왔으면 좋겠고 훗날 결혼을 해 아이와 함께 계속 축구를 즐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어린 친구가 어른이 되면 데얀과 FC서울도 한때 좋아했던 추억 정도로 머물 수도 있다. 이 어린이의 선택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K리그 입장에서는 이런 팬들을 지속적으로 잡아야 한다. 지금 K리그에는 김은하수양 같은 어린 팬들이 많다. 김은하수양 같은 팬들을 20~30년씩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만 이어져도 K리그는 큰 걱정이 없다. 자꾸 외부로만 눈을 돌리지 말자. 135년 만에 승격한 레딩을 보며 감격하던 할머니 같은 사례를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

안드레 감독은 현역 시절 김남일과 충돌했다가 팬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스포츠니어스

그 많던 김남일 팬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많던 김남일의 팬들이 지금까지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경기장을 찾는 구조를 만들었어야 한다. 이미 그들을 잡을 수는 없게 됐지만 지금 있는 팬들이 언젠가 또 K리그를 젊었을 때 즐기던 취미 정도로 추억 삼게 놔둬선 안 된다. 허구한 날 K리그의 미래를 떠올리며 위기라고 걱정하는 것보다는 안에 있는 팬들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부터가 고민의 시작이어야 한다. 20년 전에도 K리그가 위기라면서 걱정했고 10년 전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정작 K리그 팬들이 떠나는 걸 잡지 못했다. 이 물음에 해답을 찾아보자. 그 많던 김남일의 팬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기에서부터 근본적인 접근해야 한다. K리그가 누군가의 한 때 추억 정도로 그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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