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서정원의 유스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스 메이커’


수원삼성 서정원
수원삼성 서정원 감독은 어린 선수 육성에 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수원=김현회 기자] “오늘 또 선발이네요?” 경남FC와의 경기를 앞두고 만난 수원삼성 서정원 감독에게 전세진이 두 경기 연속 선발로 나섰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서정원 감독이 웃으며 답했다. “(전)세진이는 나이에 비해 좋은 걸 많이 가진 선수입니다. 어린 나이에 기술도 좋고 능력도 있어요.” 지난 22일 인천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르며 데뷔골까지 성공한 전세진의 두 경기 연속 선발 출장이었다.

어린 선수의 한계 잘 알고 있는 서정원 감독
인천전이 끝난 뒤 만난 서정원 감독은 K리그 데뷔전을 치른 전세진에 대해 절반의 칭찬과 절반의 질책을 했던 바 있다. “경기력에 대해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골을 넣으며 자신감을 찾게 된 건 고무적이죠.” 데얀과 염기훈, 바그닝요, 임상협 등 쟁쟁한 공격수들 사이에서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9년생의 어린 선수가 경쟁하며 기회를 부여받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전세진은 이번 시즌 수원삼성 입단을 앞두고 해외 진출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던 바 있어 훈련에만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어린 선수가 K리그 데뷔전에서 골을 넣고 두 경기 연속 선발로 나선 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이렇게 어린 선수가 빅클럽에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어린 선수에게 경험을 쌓게 하고 경쟁 체제를 구축한 서정원 감독의 역할이 컸다.

서정원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입성해 겪는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다. 전세진의 두 경기 연속 선발 출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서정원 감독은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단순히 전세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소년 출신 선수들의 활용법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였다. “고등학교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청소년 대표팀이나 대학팀이 아니라 막 프로 무대에 올라오면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한계를 느낍니다. 최고 수준을 마주하면 당황하고 어려움을 느끼죠.”

전세진 수원
매탄고 출신 전세진(10번)은 올 시즌 수원삼성에 입단해 두 경기 연속골을 넣었다. ⓒ블루윙즈미디어

그가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 법
하지만 서정원 감독은 이게 결국 선수가 성장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프로에 오면 몸을 부딪히는 장면이라던가 공의 스피드 모두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요. 경기 템포를 따라가는 것도 어렵죠. 당연히 실수가 많이 나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아플 겁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했는데’라면서 될 줄 알았던 게 안 될 때의 좌절감이 대단히 크게 오죠. 하지만 이런 좌절을 느끼고 ‘더 해야 한다’는 걸 느껴야 해요.”

잔인하지만 선수가 성장해야 하는 과정으로 삼겠다는 게 서정원 감독의 지도 철학이었다. 서정원 감독은 그러면서 다시 전세진 이야기로 돌아왔다. “세진이한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기회를 줬었어요. 그런데 플레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경기를 하고 나서 선수가 영상도 분석해 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는 선수도 있는데 이 과정을 빠르게 마치는 선수가 결국 살아남는 거죠.” 전세진은 AFC 챔피언스리그 지난 1월 탄호아(베트남)와의 경기에 교체 투입되는 등 기회를 얻었지만 이렇다 할 날카로움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서정원 감독은 이를 선수 성장을 위한 계기로 삼았다. 그렇다고 선수가 한계를 느끼며 좌절하게 놔둔 것만은 아니다. “세진이가 자신감을 일지 않도록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네 나이에 여기까지 올라온 건 정말 잘 한 거다. 기죽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줬어요.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그 대신 더 준비하고 훈련하고 땀 흘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렇게 선수가 성장통을 겪는 동안 R리그에도 출장시키면서 컨디션을 꾸준히 보고 받았어요.” 이는 꼭 전세진에게만 해당하는 조련법은 아니었다. 수원삼성에서 기회를 얻고 있는 어린 선수들은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쳤다.

전세진은 얻은 기회를 잘 잡았다. ⓒ 스포츠니어스

“이번에는 세진이 차례” 그렇다면 다음은?
“(윤)용호도 투입하자마자 골을 넣고 (유)주안이도 그랬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세진이 차례죠.” 서정원 감독은 마치 족집게 강사라도 된 것처럼 투입하는 어린 선수들마다 이른 시기에 골을 터트리며 팀을 이끌고 있다. 서정원 감독의 얼굴에서 행복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애들이 딱 선발 명단에 들면 골을 넣어줬어요. 이게 몇 번 들어 맞았죠. 이런 걸 경험하면 어린 선수들이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씩 차고 올라와요. 어린 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낸 뒤 꼭 물어보죠. ‘오늘 경기 어땠느냐’고 하면 ‘많이 부족했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지 몰랐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이렇게 테크닉과 정신적인 부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정원 감독은 지속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자극하고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유스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스 메이커’ 현실판 쯤 되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원삼성의 왕자들이 연이어 탄생하고 있다. 요즘은 전세진의 활약으로 어린 선수들이 또 자극을 받는 선순환의 구조가 이어지고 있단다. “선의의 경쟁이 이어지고 있어요. 세진이가 활약하니까 고등학교 1년 선배인 주안이도 ‘어? 이것 봐라’라며 자연스럽게 경쟁 구도를 형성했어요.” 대화를 이어가다가 가볍게 물었다. 윤용호, 유주안, 전세진에 이은 ‘프린스 메이커 4호’는 누가될지 궁금했다. 서정원 감독이 또 한 번 자극과 격려, 경쟁을 통해 키워낼 선수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서정원 감독은 가볍게 웃더니 이런 답을 이어갔다. “(박)지민이를 유심히 점검 중입니다.” 2000년생 골키퍼 박지민은 아직 매탄고를 졸업하지도 않은 어린 선수다. 2018 수원 JS컵 U19 국제청소년축구대회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박지민은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보인고등학교 수비수 고준희와 함께 고등학교 선수로서는 유이하게 발탁됐다. 박지민은 매탄고가 주니어리그 3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서정원 감독은 이 어린 선수를 또 한 번 육성할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었다.

매탄고 박지민
서정원 감독의 다음 선택은 매탄고 골키퍼 박지민이 될 수도 있다. ⓒ블루윙즈 미디어

서정원의 유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프린스 메이커’
“매탄고와 항상 소통하고 있어요. 매탄고 쪽에도 ‘추천할 만한 선수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하고 추천을 받은 선수가 있으면 시간이 날 때 성인팀에서 함께 훈련도 시켜요. 그러다가 R리그에도 내보냅니다. 대학에 진학할 선수들은 빨리 결정을 내려주고 매탄고에서 바로 성인팀으로 올라올 수 있는 선수들은 훈련과 R리그를 반복해야죠. 괜찮다는 판단이 들면 성인팀으로 올립니다. 지민이가 괜찮은 골키퍼라고 판단해 연맹에 선수 등록을 하고 훈련도 같이 하는 단계죠.” 서정원 감독은 2000년생의 어린 골키퍼를 차근차근 키워 기용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 서정원 감독이 과감하게 두 경기 연속 선발 출전시킨 전세진은 한 골을 기록하며 두 경기 연속골을 뽑아냈다. 서정원 감독의 미음에 완전히 부합하는 경기였다. 후반 16분 교체 아웃된 전세진은 관중석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고 팬들은 뜨거운 박수로 전세진을 격려했다. 시즌을 앞두고 이적 논란을 일으켰던 전세진은 이제 완벽한 수원삼성 선수가 돼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전세진과 나란히 앉은 서정원 감독은 웃으며 전세진에게 부담감을 팍팍 안겼다. “어린 선수가 프로 무대에서 두 경기 연속골을 넣는 건 쉽지 않아요. 칭찬해 주고 싶은데 칭찬이 아마 부담이 될 겁니다.”

이 다음 말이 전세진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에게 전하는 정말 큰 메시지였던 것 같다. 서정원 감독은 바로 옆에 전세진을 앉혀 두고 이렇게 말했다. “더 해야 한다는 부담이 세진이 머리에 박혔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를 하고 서정원 감독은 전세진을 지긋이 바라봤다. 서정원 감독은 자극과 경쟁, 격려를 통해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고 어린 선수들은 이 기회를 잘 잡으며 성장하고 있다. 서정원 감독의 유스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스 메이커’ 현실판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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