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FC1995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우리가 공공의 적이 된 것 같아."

22일 안산그리너스와의 원정 8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둔 부천FC1995 정갑석 감독의 푸념 아닌 푸념이었다. 그는 라커룸 안에서 한창 안산의 선발 명단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안산 선발 명단에 센터백이거나 센터백 경험 있는 선수가 다섯 명이나 되네요. 일단 막고 역습을 노릴 것 같은데… 이흥실 감독님이 정말 준비 단단히 하시고 나온 것 같아요"라는 것이 그의 상대팀 평가였다.

2년차 감독인 그는 올 시즌 연패에 빠지면서 낯선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부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5연승을 달리고 나니 상대팀이 굉장히 분석을 많이 해서 대응하더라고요." 첫 패배를 안긴 아산무궁화도, 성남FC도 부천을 철저히 연구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안산 또한 이날 경기에서 부천을 확실하게 공략했다.

"이럴 줄은 몰랐다"는 것이 정 감독의 생각이었다. "아니 K리그2 미디어데이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아이파크, 아산무궁화 이런 팀들이 공공의 적으로 꼽히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1라운드 지나니까 어느새 부천이 공공의 적이 되어있네요." 실제로 그랬다. K리그2의 많은 팀들이 '부천은 잡겠다'고 나섰다. 5연승 이후 바뀐 K리그2의 풍경이다.

5연승과 3연패, 희비 엇갈린 부천의 원정 8연전

개막 전까지 부천은 강팀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전 선수들은 꽤 탄탄했다. 하지만 비주전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년이라는 장기 레이스 동안 부천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 지 많은 의문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감독의 선택은 초반부터 상승세를 타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중요한 K리그2에서 이것은 옳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5연승은 결코 쉽지 않은 성과다. 정갑석 감독 '큰 그림'의 승리다 ⓒ 부천FC1995 제공

5연승은 훌륭한 결과다. 하지만 아쉬움 또한 남는다. 최근 순위표 상단에 위치한 팀들을 상대로 거둔 연승은 아니기 때문이다. 5연승의 상대는 대전시티즌, FC안양, 광주FC, 수원FC, 서울이랜드였다. 여기서 5연승과 함께 주목할 만한 성과는 잠실 원정 징크스를 깼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승격 후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강팀과의 경기에서 경쟁력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원정 8연전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부천은 확실한 4강 후보'라는 것이다. 원정이라는 불리함을 안았지만 이길 수 있는 팀은 확실하게 이겼다. 이것은 강팀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4강이라는 단어가 승격이라는 단어로 바뀌기 위해서는 그 위의 팀을 상대로도 경쟁력을 보여줘야 한다. 아직까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부천의 최대 고민, 장점이 단점 됐다

개막 전 부천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올 시즌에는 측면 풀백들을 지켜봐달라. 김준엽과 안태현이 활약할 수록 우리 팀은 더 잘될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두 선수는 공수를 종횡무진 활약하며 부천의 알짜배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약점이 하나 있었다. 역습에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천은 강팀이다. 공격의 빈도가 비교적 잦다. 그렇다면 두 풀백 역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게 된다. 그들이 공격에 가담해줘야 부천의 공격은 파괴력이 배가 된다. 하지만 역습 상황에서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쉽게 공간을 내주게 된다. 공교롭게도 부천이 3연패를 당하는 동안 상대 팀 감독들은 경기 전 "부천을 어떻게 공략하려고 하는가"란 질문에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스피드를 활용해 측면을 파고들면 해볼 만 하다." 그리고 그렇게 부천을 잡았다.

여기서 부천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정 감독의 '마그마 축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풀백의 공격 가담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간다면 '측면 공략'이라는 부천 파훼법은 더욱 위력을 발휘할 뿐이다. 제 2의 김준엽, 안태현이 나타나 체력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두 선수는 현재까지 부천의 8경기에 모두 출장했다.

쎈 놈이 나쁜 놈 되려면

물론 이 뿐 아니라 부천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부천의 스쿼드 문제는 올 시즌 내내 정 감독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문기한과 닐손주니어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장기 결장하게 된다면 부천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부상 관리 또한 구단의 역량일 수 있겠지만 축구라는 스포츠는 변수가 많은 법이다.

최전방과 최후방은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막전 센터백 조합은 박건-임동혁이었지만 박건의 부상 이후 장순혁, 정준현이 기회를 얻었고 최전방에서는 이정찬과 이광재가 교체 등으로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분명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들 역시 5연승에 공을 세웠다.

5연승은 결코 쉽지 않은 성과다. 정갑석 감독 '큰 그림'의 승리다 ⓒ 부천FC1995 제공

하지만 정 감독의 표현처럼 부천은 이제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나쁜 놈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정말 독하게 악당 노릇을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그저 '쎈 놈'이다. 그것도 최근에는 상대에 많이 맞았다. 일단 현재의 전술적 고민을 해결하는 것은 '쎈 놈'의 명성을 회복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고의 악당이 되기 위해서는 비주전 선수들의 활약이 필요해 보인다.

부천의 홈 10연전, 운명의 2018 시즌 가른다

안산전 패배로 3연패에 빠진 정 감독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천의 연패에 대해 우려보다는 흥미로움이 더 컸다. 이날 정 감독의 입에서는 부천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큰일났네'라는 생각보다 '정 감독이 다음 경기에서 어떤 묘수를 들고 나올까?'란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다.

지난 시즌 부천을 찾은 니폼니시 감독은 정 감독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경기가 안 풀리는데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꽤 당황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 감독은 현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해결책도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문제점을 피하기보다는 명확히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현재 그는 단기적인 문제점과 장기적인 문제점을 다 알고 있다. 부천이 장기 레이스에 취약할 것이라는 평가에 기반한 장기적인 문제점은 조금씩 대비하고 있다. 계획에 따른 교체 카드를 활용하거나 2군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동기부여를 주며 자체적으로 스쿼드를 두텁게 하고 있다. 이제는 단기적인 문제점에 손을 대야할 때다. 그리고 그는 그러겠노라 말했다.

이제부터는 홈 10연전이다. 부천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홈에서의 유리함을 안고 경기에 임하겠지만 상대는 부천을 더욱 철저히 분석할 것이다. 올 시즌 초반 상승세로 부천은 벌써부터 승격의 기회가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기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제 부천은 올 시즌을 가를 시험대 위에 올라갈 날을 눈 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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