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 정치인(32번)은 누구보다도 강렬한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대구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18년 4월 15일은 대구FC 공격수 정치인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이날 강원FC와의 경기에서 K리그 입성 3년 만에 처음으로 선발 출장한 그는 후반 32분 거친 태클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생애 가장 기쁜 순간과 악몽을 동시에 경험했다. 이름 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한 시간 뒤 정치인과 단독 인터뷰 일정을 이미 사흘 전에 잡은 상황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퇴장 당한 선수를 그날 바로 단독 인터뷰한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웠지만 이 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대구FC 숙소에서 정치인과 얼굴을 마주했다. K리그 입성을 꿈에 그리며 축구를 해온 그에게 선발 데뷔전 퇴장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어느 때보다도 생생한 그 날의 대화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오늘(15일) 방금 선발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했다.

경험이 많이 없어서 그랬다. 무리하게 태클을 하지 않고 공을 지연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오버’했던 것 같다. 의도한 태클은 아니었는데 상대 선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 강렬한 선발 데뷔전은 나도 처음이다.

전방에서 공을 빼앗긴 뒤 화가 났다. 안 그래도 형들이 힘들어할 텐데 내가 드리블을 하다가 공을 빼앗겨 형들이 더 힘들어 지는 게 화가 나 파울로 끊으려다가 퇴장 판정을 받았다.

기쁘면서도 아쉬운 날이다.

퇴장을 당했다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3년 만에 K리그에서 선발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는 건 기쁘다. 올 시즌 우리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는데 오늘 마침내 첫 승을 따냈다. 형들과 첫 승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 기쁘다. 안드레 감독님과 코치진이 주문한 대로 전방에서 저돌적으로 하려고 했는데 이건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퇴장을 당해 다음 서울전과 상주전은 무조건 쉬어야 하는 게 아쉽긴 하다. 다가올 두 경기는 강제로 쉬게 됐다.

정치인은 정치 뉴스에서 많이 나오는 이름이지만 스포츠 뉴스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일단 자기 소개를 해달라.

1997년생으로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2016년 대구FC에 입단했다. 아직 만으로 스무 살이지만 프로 3년차다. 저돌적인 플레이를 하는 공격수인데 이름과 같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공격수라는 평가를 듣고 싶은 선수다. 항상 긍정적이고 그라운드에서는 형들 못지 않게 파이팅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저돌적인 면에 비해 세밀한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공을 나와서 받아주는 플레이도 아직은 더 배워야 한다. 지난 11일 울산현대와의 경기에서 후반 35분 교체 투입돼 K리그 입성 3년 만에 첫 출장을 기록했고 오늘이 첫 선발 데뷔전이었다.

선발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한 바로 그날 정치인을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이름이 굉장히 독특하다. 어떤 의미에서 누가 지어준 이름인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누나 이름은 독특하지 않은데 내 이름만 독특하다. ‘바를 정, 다스릴 치, 어질 인’을 한자로 쓴다. 사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정치에 관심이 대단히 많으신 것도 아니다. 내가 태어날 때쯤에 갑자기 그 이름이 떠오르셨다고 한다. 훌륭한 정치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가고 있나. 지금은 운동을 하고 있지만 훗날 정치에 도전해 볼 생각도 있나.

아버지의 뜻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나중에라도 정치 생각은 없다. 그냥 운동하는 게 좋지 정치 분야는 잘 모른다. 나에게는 머리 아픈 일이다.

독특한 이름은 불편한 점도 꽤 많을 것 같다.

어릴 때는 이름으로 놀림을 많이 받았다. 원래 어린 시절에는 이름으로 유치하게 많이 놀리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좋은 게 더 많다. 절대 한 번 듣고 내 이름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못 봤다.

K리그에서 박격포와 명왕성에 버금가는 이름이다.

난 내 이름이 좋다. 많은 이들이 이름만으로도 관심을 갖고 기억해 주신다. 물론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아주 많은 정치인이 나오고 쭉 내려야 내 이름이 나온다는 점이 좀 아쉽긴 하지만 독특한 이름으로 기억에 남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원래 어린 시절에는 이름으로 놀리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도 독특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그런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 시절 같이 축구를 했던 친구 중에 ‘우수한’이라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축구를 했던 그 친구하고 같이 붙어 있으면 ‘우수한 정치인’으로 묶였다. 같이 대구공고에서 축구를 하고 지금은 영남대에 진학한 친구 중에는 ‘진정한’도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 ‘진정한 정치인’으로 묶인 적도 많았다.

올해로 K리그 3년차인데 불과 지난 주까지 당신은 단 한 번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나도 지금까지는 당신을 독특한 이름의 축구선수 정도로만 기억했다.

난 3년째 늘 엔트리에도 들지 못해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선수였다. R리그에 출장하며 나름대로는 준비돼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1군 경기에는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1군 엔트리에 든 것도 지난 울산전이 처음이었다. 늘 경기장 2층에서 형들의 경기를 지켜봤고 가까운 곳에서 원정경기가 열리면 2군 버스를 타고 가 경기를 봤다.

3년째 R리그 생활만 전전하면서 힘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R리그는 1군 경기 엔트리에 들었던 선수들이 주로 나선다. 계속 2군에 있다 보니 인정 받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우리 팀은 그래도 1,2군이 화합하고 분위기도 좋은 편이지만 혼자 눈치 보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못하니까 1군에 못 들어가는 건가’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됐다. 1군 형들은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에 호텔에서 자며 경기를 준비하는데 R리그는 무조건 당일치기다. 서울이나 인천에서 오후 2시 경기가 열려도 아침 8시에 대구에서 출발한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그날 경기를 하고 그날 대구로 돌아온다.

나름대로 대학 무대와 R리그에서는 인정 받았던 선수로 알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골도 많이 넣는 선수였다. 대구공고 2학년 때는 대구, 경북리그에서 득점왕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전국체전에서도 준우승을 했다. 두 시즌 동안 R리그 29경기에 나가 10골을 넣었고 올 시즌 R리그에서도 3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지난 시즌 R리그에서는 해트트릭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프로 무대에 와서는 형들의 벽이 높았다. 3년차인 올해까지 1군 경기에 한 번도 나서지 못했었다.

선발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한 바로 그날 정치인을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어린 나이지만 프로 무대에서 데뷔가 늦어져 걱정이 되기도 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1년이나 2년 동안 프로에 있다가 방출되는 선수들이 많아 항상 두려웠다. 대구와 5년 계약이 돼 있었지만 프로라는 게 계약 기간이 남았어도 기회를 못 얻으면 서로 합의해 팀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경기를 통해 보여주지 못하고 시간이 흐른다는 게 두렵기도 했다. 매일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던 원동력은 뭐였나.

나는 운동을 잘 안 쉰다. 항상 부족하니까 동료들이 쉴 때도 나가서 운동을 했다. 코치님도 이런 걸 잘 알고 있어서 매년 R리그에 나가 단 1분이라도 더 뛸 수 있게 해주셨다. 운동량이 많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연습을 많이 했으니 누구와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고 이걸 위안 삼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해까지 우리 팀 외국인 선수들이 실력이 좋아 공격수로 경쟁해 1군 경기에 나서는 건 쉽지 않았다.

올해는 좀 경쟁이 수월해졌다는 뜻인가.

지난 해에 비해 조금은 수월해 진 것 같다.

여러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당신 실력이 더 좋아진 것도 있고 다른 뜻도 있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 해석해 주면 좋겠다.

이름이 정치인인데 울산현대에서 뛰던 김영삼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 분은 1982년생이셔서 나하고는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선수로서는 맞붙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 그런데 그 분이 2016년 은퇴하실 때 내가 기념 영상을 찍은 적이 있다. 구단에서 갑자기 불러 가봤더니 “김영삼 선수가 은퇴하는데 울산 구단에서 부탁이 왔으니 한 마디 해달라”고 하더라. 이름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선배에게 은퇴 기념 영상을 찍어줘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최초로 문민정부를 세우시고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신 분이다.

내가 올해 만 스무 살이다. 잘 모르는 일이다.

알겠다.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 인천유나이티드 김대중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 선수도 잘 모른다. 나하고 다섯 살 차이인데 같이 뛸 시기도 없었고 지역도 다르다. 그 선수는 윗 지방이고 나는 밑에 지방이라 겹칠 일이 없었다. 아직 그라운드에서 만난 적은 없지만 만나면 기분 좋게 먼저 인사하겠다. “안녕하세요. 김대중 선수. 저는 정치인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신 분이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FC안양에 있던 김종필 감독을 정치인이 평가해 달라.

그 감독님도 잘 모른다. 대구공고 시절 잠깐 홍익대 입학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때 홍익대 감독이셨다는 것 외에는 모른다. 이름 정도만 알고 있다.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하신 분이다.

나는 ‘썰전’도 안 본다. 정치는 모른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하트시그널’ 말고는 보는 게 없다. 아이돌도 잘 모르고 게임도 못한다. 그냥 운동하는 게 좋아 ‘하트시그널’을 한 번씩 보고 숙소에서 딴 생각 안하고 운동만 한다.

알겠다. 정치인이라면 정치인 ‘3김’은 물론이고 축구계 ‘3김’도 다 알 것이라고 착각했다. 이제 갓 K리그에 데뷔했다. 특히나 지난 11일 울산현대전에 교체 출장하며 데뷔했을 때의 기분은 남달랐을 것 같다.

경기 당일까지 전혀 교체 투입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날 1군 엔트리에 처음 든 건데 바로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우리 외국인 선수 카이온과 지안이 다쳐서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 대구스타디움이 2층 시야가 참 좋다. 늘 그 높은 곳에서 경기를 보며 ‘저거밖에 못하나’라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형들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후반 35분 교체 투입돼 그토록 꿈에 그리던 1군 데뷔를 하게 됐다.

교체 투입 당시의 심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0-1로 지고 있던 후반 35분에 그라운드에 들어갔다. 0-0이었으면 조금 더 자신감 있게 플레이했을 것 같은데 지고 있어 소극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축구선수는 운동장에 있을 때 제일 멋있지 않나. 항상 관중석 2층에서 경기를 보며 형들을 부러워했는데 그 순간은 너무 행복했다.

당신은 후반 막판 회심의 슈팅을 날렸지만 이 공이 울산 조수혁에게 막히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이 대단히 크지 않나.

그 슈팅 생각에 그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원래 저녁에 경기를 하면 밤 늦도록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슈팅 생각에 잠이 한숨도 오지 않더라. ‘이렇게 때릴 걸’ ‘더 세게 때릴 걸’이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나한테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숨도 못 자고 다음 날 훈련장으로 나갔다. 두고 두고 그 슈팅은 아쉽다.

하지만 당신은 마침내 오늘 당당히 선발로 처음 그라운드를 누볐다. 후반 교체로 10분을 뛰었던 게 바로 이전 경기였는데 오늘은 첫 선발 출장이었다.

원래 다른 팀은 선발 출장 여부를 경기 당일에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울산전 바로 다음 날 미팅을 하면서 다음 강원전에 선발 출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독님이 “준비 됐느냐”고 하셔서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무조건 준비 됐다”고 했다. 사실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준비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K리그 3년차를 맞는 동안 R리그에서 열심히 준비했다고 믿어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늘 상대팀 미팅을 많이 하는데 감독님께서 강원전을 앞두고는 “네가 우리 팀 전술에 필요하다”고 해주셨다.

첫 선발 출장 통보를 받고는 어떤 기분이었나. 3년 만에 꿈에 그리던 선발 출장이었다.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들었던 울산전에서 교체 투입돼 데뷔전을 치렀고 오늘은 첫 선발 출장을 지시받았다. 이 일주일 동안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공격수이다보니 무조건 골 넣는 생각만 했다. ‘못하면 어쩌지?’라는 안 좋은 생각보다는 골을 넣고 세리머니하고 팬들과 함께 환호하는 모습만 그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당신의 그 시나리오에 퇴장은 없었나.

퇴장은 내 구상에 단 1도 없었다. 전혀.

선발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한 바로 그날 정치인을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오늘 갓 프로 선발 데뷔전을 치른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생생하다.

늘 경기장 꼭대기에서 형들의 경기를 보며 저렇게 아이들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들어가 보는 게 꿈이었다. 막상 그 꿈이 이뤄지니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막상 경기에 집중하니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깊은 태클을 하고 퇴장 당했나 보다.

퇴장은 벌금이 있다고 알고 있다. 누구보다 비싼 선발 데뷔전이다.

구단에는 따로 없고 연맹에 내라고 하시더라. 경기에서 퇴장 당하고 나오자마자 곧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물어 보니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하… 오늘 경기에 출장해 이겼으니 그 수당으로 내야 한다. 그래도 따져보니 조금은 남는다. 괜찮다.

하지만 사후 징계가 추가되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오늘부터 자기 전에 기도를 할 생각이다.

이 자리를 통해 고의적인 태클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게 어떨까.

정말 상대를 다치게 하고 싶은 의도는 없었다. 나도 운동을 하며 다쳐본 적이 많아 누군가를 해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평소에는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사람이다. 꼭 이렇게 써주셨으면 한다. (연맹 상벌위원회 결과 정치인에게는 따로 추가 징계가 내려지지 않았다.)

선발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했으니 팬들이 보기에는 거친 선수라고 인식될 수도 있다.

축구를 한 뒤 두 번째 퇴장이다. 고등학교 시절 청구고와 경기를 하는데 나도 잘 아는 후배가 나한테 계속 욕을 한 적이 있다. 분명히 잘 아는 후배인데 계속 욕을 해 화를 참지 못하고 발로 찼다가 퇴장을 당했었다. 그 이후로는 퇴장이 처음이다. 저돌적이긴 해도 거친 선수는 아니다. 물론 그 후배한테도 내가 미안하다며 밥을 샀다.

오늘 경기 후 안드레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 그 분이 왕년에 김남일의 얼굴에 박치기를 하던 꽤 무서운 분이셨다.

늘 나에게 “더 잘할 수 있으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오늘은 경기가 끝난 뒤 “준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더 열심히 준비해 다음 경기에서는 공격 포인트를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 믿고 써주시는데 보답하고 싶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부상에서 복귀하면 경쟁은 더 심해진다. 믿고 써줄지 안 써줄지는 모르는 일이다.

경쟁은 더 심해질 것이다. 내가 더 잘해야 경기에 나갈 수 있다. 카이온과 지안이 복귀하는데 2~3주는 걸린다고 들었다. 내가 두 경기를 쉬어도 앞으로 두 경기 정도는 더 기회가 있다. 동료들이 빨리 복귀하길 바라는 마음도 당연히 크지만 나도 그 사이에 기회를 잡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름이 정치인인데 공격수를 나로 단일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알겠다. 단일화가 될지 다자구도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겠다. 오늘 퇴장을 당했지만 팀은 마침내 올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우리도 정말 많이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팀들이 더 잘해 첫 승이 없었다. 선수들 모두에게 첫 승이 간절했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감독님도 아침에 “오늘은 기분이 좋다. 첫 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힘들게 힘들게 거둔 첫 승이고 나도 동료들과 일원이 돼 함께 첫 승을 따냈다. 정말 이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경기가 끝난 뒤 형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서로를 칭찬했다.

선발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한 바로 그날 정치인을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3년 만에 이룬 선발 데뷔전을 부모님이 직접 보셨나.

물론이다. 아버지가 특히 축구를 좋아하셔서 R리그 때부터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늘 경기장에 찾아오셨다. R리그는 관중이 전혀 없는데 부모님은 늘 경기장을 찾아 나를 응원해 주셨다. 경기가 끝난 뒤 이 인터뷰를 하느라 아직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지금 부모님이 친누나와 함께 인터뷰가 끝나면 저녁 식사를 하려고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부모님의 열정과 응원이 대단하다.

내 고향이 영덕이다. 영덕에서 대구는 물론 수도권 원정도 늘 응원하러 오실 만큼 열정적이시다.

영덕은 신태용 감독의 고향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도 신태용 감독의 모교인 대구공고를 나왔나.

신태용 감독님이 나를 아실까. 모르실 것 같다.

그래도 같은 고향, 같은 학교 출신이면 존재는 알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름도 특이하지 않나.

아시면 좋겠다. 오늘 골을 넣었으면 영덕 대게 세리머니라도 한 번 했으면 나를 더 기억하셨을 텐데 아쉽다.

지난 2016년 안익수 감독이 이끄는 U-19 대표팀에도 뽑힌 적이 있다.

청소년 대표팀에는 딱 두 번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때 지금 우리 팀에 있는 김대원, FC서울에 간 조영욱 등과 경쟁했는데 아무래도 내 실력이 거기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하는 게 대부분인데 곧바로 프로로 온 이유가 있나. 쉽지 않은 도전이다.

U-19 대표팀도 대구에 입단한 뒤 뽑힌 거다. 대학 무대에서는 대단한 성적을 낸 적은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산 동의대에서 입학 제안이 와 친구들과 함께 동의대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체전 결승전이 끝난 뒤 대구 조광래 사장님이 “우리팀 테스트에 한 번 와 보라”고 하셨다. 그 경기에서 나를 좋게 보신 모양이다. 그래서 테스트에 임하게 됐고 대구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에 갔다가 다시 프로에 도전하면 프로에 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프로에 도전하게 됐다.

친구들은 대학교에서 아리따운 여성들과 미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 옆엔 세징야가 있다. 대학 시절 추억을 쌓지 못하는 게 아쉽지는 않나.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여기에서 하도 잘 배우고 잘 먹여주고 잘 재워줘서 좋은 점이 너무 많다. 형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많다. 동료들은 대학에 가 미팅을 하며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지만 나는 프로에 일찍 와 더 큰 선수가 되면 훗날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걸 많이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하긴 부모님께 용돈 받는 대학생보다는 돈 버는 프로 선수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지금도 번 돈은 다 부모님께 드리고 부모님이 그 돈으로 적금을 들고 계신다. 나도 용돈을 받아쓴다. 씀씀이는 대학생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선발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한 바로 그날 정치인을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나이는 어리지만 벌써부터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어른스럽다. 이름 때문이라도 늘 바르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물론이다. 독특한 이름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늘 나는 내 이름이 자랑스럽다. 특히나 내가 잘못을 하면 누구보다도 더 크게 부각될 거다. 축구 실력도 중요하지만 늘 바르게 살 것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정치인이라면 음주운전이나 불법 도박 등은 안 된다.

당연하다.

누군가에게는 K리그 몇 경기 출장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도 있지만 당신 같은 이들에게는 3년 동안 도전한 꿈이기도 하다. 오늘 비록 퇴장은 당했지만 선발 데뷔전을 축하한다.

고맙다. 나처럼 계속 경기에도 나가지 못하고 벤치를 지키거나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후배와 친구들이 많다. 이런 선수들에게 한 번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오늘도 프로 데뷔를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따. 또한 나 역시 이제 막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니 여기에 안주하지 않겠다. 늘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나 역시 늘 준비하고 도전하겠다.

알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올 시즌에는 일단 많은 경기에 출전해 공격 포인트를 5개 정도는 하고 싶다. 그리고 먼 훗날 은퇴를 할 때는 시원시원했던 선수, 저돌적인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분위기를 바꿔놓는 기대감이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정치인은 자신감이 있었지만 결코 오만하지 않았다. 그 자신감의 바탕에는 성실함이 있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1군 벤치에 앉지 못했던 이 선수는 그 동안 모두의 관심 밖에서 혼자 땀 흘리며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처음에는 독특한 이름 때문에 호기심을 갖게 된 선수였지만 그는 독특한 이름으로만 기억될 선수는 아니었다. 그의 말처럼 정치인이 공격수 ‘단일 후보’로 나서 골이라는 ‘당선’을 이룰 수 있는 날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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