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안드레 “김남일 박치기 사건 이후 경호원 붙었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K리그의 전설이 한창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많은 축구팬들은 안양LG 안드레를 기억할 것이다. 입단 첫 해 안양의 우승을 이끈 안드레는 날카로운 프리킥 실력을 뽐내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그는 세 시즌 동안 안양에서 뛰며 K리그 96경기 출전 18골 27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한국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 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이제 안드레는 선수가 아닌 지도자가 되어 K리그1에 있었다. K리그를 통틀어 단 한 명 밖에 없는 외국인 감독이 바로 안드레다. 선수 시절 한국에서 누린 영광을 이제 감독의 입장에서 한 번 더 누리기 위해 그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대구가 첫 승을 거둔 날 안드레 감독을 숙소에서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올 시즌 첫 승을 축하한다.
고맙다. 당신이 행운을 가져다 줬다고 생각한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첫 승을 따냈다.

뒤늦은 첫 승이다. 올 시즌도 역시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첫 승을 거두지 못하면서 오는 압박감과 책임감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 조광래 사장도 많은 조언을 해주고 코칭스태프 역시 큰 힘이 된다.

나는 이제 지도자의 첫 걸음을 떼는 사람이다. 어려움도 많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나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배워가고 있다. 게다가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첫 경기부터 승점 3점을 따고 싶었던 욕심이 컸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첫 승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했고 끝까지 팀을 믿고 선수를 믿었다. 그리고 성실하고 열심히, 그리고 철저히 잘 준비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어려울 때도 좋을 때도 있지만 변함없이 면밀하게 준비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첫 승 후 “이미 승리는 지나갔다. 라커룸 나가는 순간부터 다음 경기를 생각하자”라고 말했다.

지금은 감독이지만 약 18년 전만 해도 당신은 K리그 선수였다.
맞다. 세월 정말 빠르다.

당시를 회상해보자.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된 것인가?
이것도 정말 우연의 일치다. 운명적이었다. 당시 안양LG에 외국인 선수를 소개해주던 에이전트가 있었다. 그 사람이 브라질에서 한 선수를 보러 경기장을 찾았다. 내가 아니었다. 아마도 안양에 좋은 선수를 추천해주기 위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봤던 경기에서 내가 굉장히 잘했다. 에이전트가 나를 보고 ‘저 선수다’라고 점찍었던 모양이다. 바로 안양에 추천을 해줬고 내가 입단할 수 있었다.

선수 시절 안드레 ⓒ 안양LG 제공

머나먼 한국 땅에 오기까지 당신도 고민 많이 했을 것 같다.
크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아시아 축구 시장이 당시 활성화되고 있는 부분에 주목했다. 그리고 축구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물론 계약 조건이 잘 맞았던 것도 있었고.

어린 축구팬들은 당신을 모른다. K리그에서 당신은 어떤 선수였나?
안양LG에 2000년 입단해 2002년까지 뛰었다. 입단 첫 해 많은 영광을 누렸다. 내가 기억하기로 입단 직전 해(1999년)에 안양이 9위였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입단하자마자 그 해에 K리그 우승을 했다. 그 당시 감독님이 지금 우리 구단의 사장인 조광래다. 그 분이 팀을 잘 만들었고 선수들 융화에 능했다. 좋은 조직력을 보였기 때문에 우승했다.

당시 내가 많이 알려졌던 것은 아무래도 ‘프리킥 마법사’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양에서 뛰던 시절 프리킥이나 코너킥 등 세트 플레이에는 모두 관여했다. 덕분에 득점도 많이 했고 도움왕도 차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K리그를 오래 본 팬이라면 나를 프리킥 잘 차는 선수로 기억하지 않을까?

지금 대구의 골키퍼코치인 이용발이 내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당시 이용발은 부천SK의 주전 골키퍼였고 모자 쓴 골키퍼로 유명했다. 선수 시절에 내가 이용발을 상대로 프리킥 골을 꽤 넣었다. 오늘도 한참 놀리고 왔다. 평소에도 이용발을 자주 놀린다. “내게 골 많이 먹었다”고. 우연치 않게 같이 만나서 일하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재밌다.

하지만 당신은 다른 것으로 더 유명하지 않았나.
설마 그걸 아는가?

나는 김남일과의 ‘박치기 사건’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것을 알 줄은 몰랐다. 너무 오래된 일인데. 2002년 월드컵 이후로 기억한다. 당시 김남일이 엄청나게 유명해져서 나도 덩달아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부터 김남일과는 상대로 많이 뛰었다. 당시 그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고 있었다. 나와 김남일은 포지션 상 자주 경합하는 일이 많았다.

‘박치기 사건’ 당시에 전남과 경기를 했는데 상당히 중요한 경기였다. 승리해야 했다. 그 때 김남일이 내게 거칠게 몸싸움을 했다. 서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얼굴끼리 맞닿았다. 그 후 나도 모르게 욱해서 정신을 잃었다. 박치기를 해버렸다. 결국 징계를 받았다. 나는 4경기 출장 정지, 김남일은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사실 후회 많이 했다.

당신 때문에 저 먼 유럽에 살던 안드리 세브첸코가 고통을 받았다(당시 큰 규모를 자랑하던 김남일 팬덤이 이 사건 이후 안드레가 아닌 안드리 세브첸코의 국내 팬페이지에 몰려가 비난 댓글 세례가 이어진 과거가 있다).
나는 그것까지 몰랐다. 그런데 확실히 김남일은 인기가 엄청났다. 그 사건 이후 안양 구단에서 내게 조치를 취했다. 내가 거리를 무사히 걸어다닐 수 있도록 항상 경호원 두 명을 붙여줬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봐 구단이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 김남일과는 잘 지내는가?
물론이다. 그 사건 이후에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하다 만나는 경우가 많다. 얼굴 보면 포옹도 하고 웃으면서 인사도 하는 사이다. 특히 김남일이 전북에서 뛸 당시 전지훈련을 브라질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도 만났다. 지금은 좋은 동료이자 친구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옛날 추억에 젖는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당신 인기도 어마어마했을 것 같다.
나름대로 인기 있었다고 자부한다. 내 기억으로는 내 팬클럽이 있었다. 자주 집에 찾아와서 팬들이 선물도 주고 먹을 것도 줬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굉장히 많은 응원을 해줬던 것으로 기억난다. 특히 한국인들은 정말 예의바른 사람들이다. 선수와 팬 관계에 지켜야 할 선을 정확히 지킨다. 만일 브라질에서 같은 상황이었다면 내 아내가 질투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날 잘 대해줬다. ‘다시는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축구팬 뿐 아니라 동네 이웃들도 나를 친절히 대해줬다. 정말 한국에서 많은 영광을 누렸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 처음 온 2000년에는 이런 친절과 환대에 정말 놀랐고 팀도 우승을 차지해서 영광스러웠다. 돌이켜보면 2000년이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한국에서 세 시즌을 뛰고 중국 칭다오 중넝으로 이적했다.
어떤 문제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에이전트와 상의해서 중국으로 이적하게 됐다. 계약 조건 등에 대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적하고 나서 정말 고생했다. 한국에서 잘 적응했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새로운 곳에서 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국과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나를 존중하지도 않았고 선수로 대우받는 것도 힘들었다.

많이 외로웠다. 특히 가족이 없다는 것이 컸다. 한국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했다. 두 아들도 한국에 있었다. 하지만 중국으로 이적하니 아들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당시 중국에는 아들들을 키우고 공부를 시킬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조성되지 않았다. 혼자 만의 시간이 많이 있다보니 외롭고 마음이 불안해지더라.

그래서 중국 생활을 짧게 마쳤다. 한국에서 ‘다시 돌아오라’는 연락도 받았고 좋은 제의도 들어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심리적으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브라질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내 축구 인생에서 이 순간을 가장 후회한다. 가장 아쉬웠던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은퇴까지는 아니더라도 3~4년 정도 더 뛰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에서 은퇴까지 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 않나. 그래도 신께서 나를 지도자의 모습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 신기한 인연이다.

정말로 당신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과 연락 채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개인적으로 한국 축구에 관심이 많아서 뉴스를 챙겨보는 수준이었다. 조광래 사장이 경남FC, 국가대표팀 감독한 것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은퇴 후 브라질에서 지도자를 하고 있었는데 선수 시절 나를 안양에 데려갔던 에이전트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한국에 이런 이야기들을 전해줬고 대구에서 내게 계약 제의를 했다.

대구의 코칭스태프는 정말 내게 친숙했다.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이영진 감독이 나의 선수 시절 안양 수석코치였고 후임 감독이었던 손현준 수석코치 역시 안양 시절 나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다. 여기에 감독이었던 분이 사장이었다. 안양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구에 모여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 와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도자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한국에서 다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은 살기 좋고 사람들이 예의 바르며 존중이라는 것이 있는 나라다. 브라질의 치안이 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이 끌렸다. 물론 선수 때와 마찬가지로 계약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가족들도 많이 응원해줬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앞서 말한 두 아들이 이제 많이 커서 한 명은 공부를, 한 명은 축구를 하고 있다. 아예 한국에 오지는 못하고 방학 때 한 달 정도 오는데 그래도 연락을 자주 하면서 응원 받고 있다. 내가 감독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족들은 언제나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도자가 되어 한국에 돌아오니 K리그는 많이 달라졌는가?
여전히 흐름이나 템포는 굉장히 빠르다. K리그는 역시 아시아 최고 수준의 리그다. 빠르고 체력도 월등하다. 굳이 발전한 부분을 꼽자면 2002년 이후 기술적인 부분, 특히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많이 향상됐다고 생각한다.

약 2년 반 가량의 코치 생활 이후 감독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이 됐다. 과정이 너무 빠르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는 감독에 선임되는 과정이 빨랐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2~3년 정도 더 경험을 쌓고 감독직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기회가 왔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고 내가 당장 무언가 욕심을 낼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준비도 많이 되지 않았고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팀의 어려운 상황을 생각한다면 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 대구FC 제공

그래도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조 사장도 내가 부족한 것을 알지만 많이 믿어줬다. 신뢰를 보내줬고 많은 도움을 줬다. 덕분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협력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간이지만 충분히 반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당신은 조광래 사장에 대해 너무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 같다. 내게만 살짝 말해달라.
정말 이것은 내가 사회 생활을 잘해서가 아니다. 나는 조 사장에게 불만이 없다.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내가 선수일 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 분이고 지도자일 때도 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손을 내민 분이다. 내 인생에 조광래는 참 특별한 사람이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구단의 대표에게 신뢰를 받고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감독의 입장에서 힘이 날 수 밖에 없다. 나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는 내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특별한 존재다.

당신의 감독 철학은 무엇인가?
내 생각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브라질에서 왔다고 한국 축구를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스타일을 바꾸면 이 팀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셈이다. 그러면 안된다. 일단 감독이 부임했다면 팀에 어떤 선수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잘 뛸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려고 노력한다. 한국 선수들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자신이 패배의 원인이 됐을 때 다시 고개 들고 일어날 수 있는 반전의 힘이 부족하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 그렇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대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나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동기부여를 주려고 노력한다. 심리적인 부분을 보듬으면서 선수가 경기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자신감 있게,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을 믿고 뛰도록 하려고 한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은 어떻게 부여하는가?
개인적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특히 그 선수가 잘못하고 있을 때는 따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이 아쉬우니 어떻게 고치는 게 나을지는 개인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대신 칭찬은 공개적으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칭찬을 받게 된다면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칭찬은 공개적으로, 지적은 개인적으로 하는 편이다.

선수들과의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선수들이 서슴없이 내게 다가와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이다. 물론 그라운드 안에서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장난을 치거나 무언가 재밌는 것을 할 때는 서슴없이 나부터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나 또한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매일매일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려운 벽을 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럼 데뷔전에서 퇴장 당한 정치인은 개인 면담이 예정되어 있는가?
퇴장은 당했지만 정치인은 좋은 경기를 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칭찬 했다. 퇴장 당하고 그런 것은 축구 경기장 안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퇴장으로 인해 우리가 이뤄놓았던 것들을 다 무너뜨릴 뻔한 것은 알아야 한다. 정치인에게 “경험을 통해 네가 배워가야 한다”라고 각인시켰다. 좋은 선수기 때문에 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대구 정치인
같은 시각 정치인은 “나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죽이는 사람이다”라고 항변 중이었다 ⓒ스포츠니어스

대구는 외국인 선수를 잘 선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또한 완벽할 수는 없다.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는데 있어서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모두 했기 때문에 한국 축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브라질에 있는 선수가 잘한다고 무조건 데려와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잘하더라도 면밀히 검토해야 선수를 뽑을 때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다른 구단이 어떻게 선수를 영입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선수들의 최대한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성격인지, 한국 스타일에 맞는 기량을 가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 게다가 운동장 안에서의 실력 뿐 아니라 평소에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가족 관계도 알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브라질에 직접 날아가서 보는 것이다. 솔직히 영상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올 시즌도 험난하게 시작하고 있다.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다.
항상 선수들이 잘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많다보니 뭔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언제나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그들이 잘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물론 부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훈련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반복해서 훈련해야 한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훈련 밖에 없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면 훈련으로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언어다.

커뮤니케이션이 아직까지는 어렵다. 말이라도 좀 알아듣는다면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좀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으니 상황을 제대로 몰라서 스스로 자책할 때도 있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면서 항상 잘 준비하고 성실하게 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감독 생활은 누구에게나 험난하다. 안드레 또한 그렇다 ⓒ 대구FC 제공

한국 생활이 꽤 됐는데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간단한 한국어는 할 수 있다. 긴 문장까지는 어렵다. 선수들에게 전달할 때도 간단한 단어를 섞어서 할 수 있다. 선수들도 굳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한지 꽤 오래 됐으니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 물론 지금도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그런데 내가 한국어를 배우면 문제가 하나 생긴다.

무엇인가?
지금 내 옆에서 열심히 말하고 있는 통역이 직장을 잃게 된다.

저런, 그래도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언제 해고할 생각인가?
빠르면 올해 말이면 가능할 것 같다.
(통역 : 나는 감독 통역 업무 말고도 하는 일이 많다. 걱정하지 말고 한국어 열심히 배워라)

사실 K리그에는 외국인 감독이 당신 밖에 없다. 팬들 사이에서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인 감독과 한국인 감독 모두 장단점이 있다. 외국인 감독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의사소통 문제에서 아쉬움이 있다. 한국인 감독 또한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내가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고 전략을 가지고 있다.

감독 선임에 대해서는 감독의 국적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구단의 철학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단이 가지고 있는 비전에 잘 맞는 감독이 자리에 앉아있는지 봐야한다. 한국인 감독 또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독직에 구단의 철학과 비전에 맞게 팀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알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무엇보다 어느 정도 결과를 만들고 성적을 낼 줄 아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한국에서 소중한 기회를 얻은 만큼 오래도록 한국에서 즐겁게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다. 코칭스태프와 선수가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자신감 있는 축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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