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승 4무 28패’ 한 스코틀랜드 2부리그 팀의 도전

ⓒ 브레친 시티 팬페이지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시즌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만약 당신이 응원하고 있는 팀이 아직까지 단 1승조차 거두지 못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 좌절감에 빠져 팀을 응원할 힘이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웃으며 변함없이 응원하는 팬이 있다면? 그 팬은 분명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러한 팬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승리가 없어도 슬프지 않은 ‘미친’ 팬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보려고 한다.

리그 ‘0승’의 브레친 시티

스코티쉬 챔피언십 현재 순위표 ⓒ Flashscore

스코틀랜드 2부 리그(스코티쉬 챔피언십) 소속의 ‘브레친 시티’. 이 팀의 올 시즌 성적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0승 4무 28패. 리그 32경기가 진행될 동안 단 1승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4무도 홈에서 기록한 것이고 원정에서는 16전 전패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19골을 넣는 동안 무려 73실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리그 최소 득점 및 최다 실점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그리녹 모턴에 0-2로 패배하면서 최하위로 가장 먼저 강등을 확정짓게 되었다.

영국 축구의 응원 문화 중에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원정팀에서 득점을 하게 되면 홈팀은 침묵을 하게 되는데 이때 원정 응원석에서 이러한 응원곡이 흘러나온다. “You only sing when you’re winning(너희들은 이기고 있을 때만 노래를 하지)” 팝 가수 로비 윌리암스의 ‘Sing When You’re winning’에서 비롯된 이 노래는 패배한 상대를 비꼴 때 주로 사용된다. 올 시즌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는 브레친 시티 팬들은 이 노래를 상대팀의 팬들로부터 듣기만 했을 뿐 불러 보지는 못했다.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면 축구를 보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낄 것 같다. 시간을 들여 매 경기 직관을 가지만 팀이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성적을 내고 있는데다가 자신이 상대팀 팬들의 놀림감까지 되니 말이다. 하지만 브레친 시티 팬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저 행복해한다. 팀 성적, 상대의 웃음거리 등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브레친 시티의 서포터 클럽 회장 딘 워커는 ‘BBC 스코틀랜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포터 버스 안은 항상 웃음으로 가득 차있다고 했다. 늘 지지만 경기 전후 선수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이 이들의 일상인 셈이다. 또한 여느 팀 팬들처럼 헤드폰을 낀 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절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패잔병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을 긍정적으로 만든 것일까?

그들을 긍정적으로 만든 환경적 요인들

사실 그들이 긍정적인 팬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요인들 때문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리그의 특성상 각 팀마다 전력 차이가 매우 심하다. 스코틀랜드 1부 리그(스코티쉬 프리미어십)만 봐도 그렇다. 그야말로 셀틱FC의 세상이다. 셀틱은 2011/12 시즌부터 지난 2016/17 시즌까지 6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올 시즌 역시 우승이 거의 확정적이다. 축구 관련 전문가들은 셀틱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의 수준이 잉글랜드 3부 리그(리그 1)정도라고 평가한 바 있다.

2부 리그의 상황은 1부 리그보다 더 심각하다. 과거 1부 리그를 경험한 세인트 미렌과 던디 유나이티드 등은 그나마 프로 선수 수급에 여유가 있다. 하지만 최하위 브레친 시티는 파트타임 선수를 활용해 선수들의 개인적인 업무가 없는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만 훈련하는 등 재정이 매우 열악하다. 이에 켄 퍼거슨 브레친 시티 회장은 “브레친 시티가 현재 챔피언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영비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풀타임 팀을 따라 잡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젊은 감독인 대리 도슨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것이었다.

지역성도 리그 내 전력 차이에 한 몫 한다. 워커는 “팀이 어떤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선수 수급 정도가 달라진다”라고 했다. 스코틀랜드는 산지가 많은 지역이다. 그렇기에 재정적으로 열악한 구단들은 선수 수급을 위해 멀리까지 이동하기가 어렵다. 브레친 시티 역시 스코틀랜드 북동쪽에 위치해 있어 이 같은 고충을 겪고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남서쪽에 위치한 중심도시인 글래스고 주변에 위치한 구단들은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기가 쉬워진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요인들로 인해 브레친 시티 팬들은 팀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을 즐기게 된 것이다. 부정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팬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상황을 즐길 뿐이다

이들은 단지 이 상황을 즐길 뿐이다. ⓒ 브레친 시티 서포터즈 공식 페이스북

브레친 시티는 다음 시즌을 3부 리그에서 보내게 되지만 팬들은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브레친 시티는 지난 시즌 3부 리그 4위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겨우 진출해 2부 리그로 간신히 승격한 팀이다. 그렇기에 팬들은 팀의 부진에도 항상 박수를 보내며 꽤 오랫동안 볼 수 없을 수도 있는 2부 리그에서의 모습을 선수들과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이제 리그 4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브레친 시티는 오는 14일 던펌린 원정에 나선다. 워커를 비롯한 서포터즈는 늘 그랬듯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낀 채 웃으며 선수단과 함께 버스에 올라탈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 전체 시니어 리그를 통틀어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팀은 없다. 만약 브레친 시티가 남은 네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최초의 팀이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러한 기록은 결코 치욕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잡다한 기록일 뿐이다. ‘진정한 축구팬이라면 팀이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가 되어 응원한다’라는 말은 진짜 축구를 즐기려고 하는 브레친 시티 팬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emrechan1@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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