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현실을 즐기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만을 본다.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주말 이후 정신을 못 차렸다. 수원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를 본 뒤 처참한 경기력 때문에 분노했다. 분노의 감정은 곧 낙담으로 이어졌고 무기력을 동반했다. 화가 나 분노의 기사를 쓴 뒤에도 감정은 쉽게 사그러 들지 않았다. 빅매치에서 보여준 처참한 경기력으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여러 매체에서는 K리그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내보냈다. 우리 기자들끼리는 “적어도 이 분노를 K리그 전체로 돌리지 말자. 슈퍼매치에 한정해서 비판하자”고 했지만 나 역시 이틀 동안 감정을 추스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내일(11일) 열릴 K리그 경기 취재를 신청했다. 지난 일요일 궂은 날씨에도 70km를 달려 가 ‘핵노잼’ 펀치를 맞고 왔는데 기억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번 경기는 다를 거야’라는 마음으로 인천에 취재를 가기로 했다. 다른 기자들에게도 적절하게 경기를 배분해 다시 현장으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수요일에 만나서 술을 마시자”던 아리따운 여자 후배가 있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다. 정말 바보 같은 답변이지만 그녀에게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 “나 그날 축구장 가야돼.” 그녀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 ‘핵노잼’에 속고 또 경기장을 가다니.

돌이켜 보면 축구장에 가 즐거웠던 날보다 그렇지 않았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10년 넘게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지만 모든 경기가 명승부일 수는 없다. 매 경기 후반 막판 극적인 결승골이 터져 3-2 승부가 벌어지면 오히려 감흥이 덜하지 않을까. 지난 슈퍼매치처럼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오는 경기가 있어야 가끔씩 터지는 극적인 명승부가 더 빛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10%의 명승부를 보기 위해 우리는 50%의 그저 그런 경기와 30%의 재미없는 경기, 10%의 ‘핵노잼’ 경기를 봐야한다. 이번 경기가 명승부 범주에 드는 그 10% 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사명감으로 축구를 봤다. 내셔널리그 텅 빈 경기장에서 “나 같은 사람이 5만 명만 모이면 고양국민은행도 바르셀로나가 될 수 있다”는 대단한 마음가짐으로 경기장이 가득 차길 바랐다. 하지만 이젠 축구 발전이라는 사명감은 별로 없다. 그저 하루하루 축구 그 자체를 즐기려 한다. 늘 말하는 거지만 K리그에는 스토리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스토리를 발굴해내지 못할 뿐이다. K리그에는 사공만 많다. “K리그가 이래야 발전한다” “K리그는 이래서 안 된다”고 훈수를 두는 사람들만 넘친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온전히 K리그 발전이라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그 스토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누구도 이들에게 K리그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스포츠니어스

늘 하는 말이다. K리그는 관중이 관중 걱정하는 이상한 리그라고. 내가 경기장에 가 경기를 온전히 즐기지 않고 관중 타령이나 하고 있는데 다른 관중이 이 경기장을 찾을 리는 만무하다. 내가 믿는 종교로 친구들을 전도하기 위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저 친구들에게 내가 종교를 믿으며 얼마나 은혜를 받고 행복한지를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교회로 성당으로 절로 찾아온다. 내 이 믿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관중수를 걱정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스토리를 발굴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토론장에 모여 근엄하게 K리그 발전 방안을 이야기하는 이들만 넘쳐나는데 이런 근심걱정이 가득한 축구장에 오고 싶어하는 이들은 없다.

나는 한줌 되지도 않는 내셔널리그 고양국민은행 서포터스 출신이다. 누구 한 명이 빠지면 북 칠 사람이 없고 깃발 돌릴 사람이 없는 극소수 단체였다. 이런 나뿐 아니라 K리그에서 빅클럽이라고 손꼽히는 서울, 수원, 전북 팬들도 큰 의미에서 본다면 다 마이너다. 텔레비전만 틀면 하루종일 야구가 나오는 나라에서,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경기가 연이어 재방송 되는 나라에서 K리그 팬은 돌연변이다. 술자리에서 “어느 팀 팬이냐”고 물어보면 다들 두산이나 LG를 이야기한다. 일적인 자리가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며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이들 중에 K리그 열성팬을 본 적은 거의 없다. 16년 전 군대 옆옆 소대 선임 한 명이 대구FC 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반가웠던 적은 한 번 있다. 그 정도로 K리그는 마이너다.

오죽하면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인 김도겸이 FC서울 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단독 인터뷰를 했을까. 마치 한국인이 전무한 남미 시골 어딘가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가면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찾아간 것만 같았다. 여러분들도 잘 알겠지만 K리그 팬들은 말 안 해도 통하는 게 있다. 마이너 스포츠를 좋아하는 애환이 있고 지금껏 주변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아와 공감대가 있다. 우리들만 아는 묘한 감정을 여러분들도 잘 알지 않는가. 오래 같이 일한 한 방송작가 남자친구가 충주험멜 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작가에게 한 마디 한 적이 있다. “남자친구한테 힘내라고 전해줘요. 우리끼리는 그 기분 잘 알아요.”

누구도 이들에게 K리그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스포츠니어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우리끼리는 잘 안다. 이 땅에서 K리그 팬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취미인지는 “K리그가 이래서 안 된다” “K리그는 이래야 발전한다”고 훈수나 두는 이들은 모르는 공감대가 있다. 축구를 업으로 삼는 게 아니라 순수한 K리그 팬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이들은 하나 같이 축구 발전이라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축구장에 오는 게 아니다. 축구가 좋고 그 안에서 고통 받다가 한 번씩 찾아오는 묘한 즐거움을 찾으려는 ‘오타쿠’ 같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라이벌 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차라리 광저우 헝다가 우승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뭔가 독자들의 뒤통수를 때릴 만한 참신한 화두를 던지려는 목적의 글은 아니다. 그저 이 요상한 취미를 가진 이들이 다 같이 힘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슈퍼매치가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여 K리그 전체가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 같이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언제 메이저인 적이 있었고 호평을 받은 적이 있나. 요새 들어 10년 전 K리그에는 좋은 외국인 선수도 많았고 좋은 추억이 많았다는 평가를 본 적이 꽤 있는데 10년 전 그 시절에도 K리그는 위기라고 했다. 아마 10년이 지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해결책은 단 하나다. K리그를 끊고 더 많은 이들이 즐기는 취미를 찾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이너인 이 스포츠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슈퍼매치 한 번으로 K리그는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또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10년 전에도 언론에서는 K리그 경기장의 빈자리만을 골라 보여주며 위기를 논했다. 아마 10년 뒤에는 또 다른 프레임의 위기가 등장할 것이다. 곧 있을 월드컵이 끝나면 한 번 더 K리그의 문제점이 연일 분석이랍시고 쏟아져 나올 것이다. 개선할 점이 많은 리그이고 문제가 있다면 내가 가장 앞장서서 지적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K리그와 등을 돌릴 생각은 없다. 우리에게 K리그를 보라고 강요한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고 우리는 이 안에서 재미를 찾으면 그 뿐이다. 누가 손가락질 한다고 안 볼 리그였으면 처음부터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이들에게 K리그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스포츠니어스

슈퍼매치에 대한 분노는 이제 멈추고 나는 다시 K리그 경기장으로 향하려 한다. 대다수의 K리그 팬들도 그래줬으면 한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라 믿는다. 각자 응원하는 팀은 달라도 우리에겐 뭔가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하는 전우애 같은 게 있지 않은가. 슈퍼매치 이후 온갖 비난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테지만 K리그 팬들에게는 굳은 살 같은 게 있다. <스포츠니어스> 역시 K리그1은 물론이고 K리그2 경기장에 다시 나가 한 번 더 힘을 내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슈퍼매치가 K리그의 전부일지 몰라도 ‘우리’한테는 이런 빅매치가 아니어도 챙길 만한 스토리가 너무나도 많은 즐거운 리그이기 때문이다. 그 ‘우리’라는 건 <스포츠니어스> 뿐 아니라 이 마이너한 취미를 공유하는 모두를 뜻한다.

다시 경기장에 가 ‘황새아웃’을 외치고 ‘세오아웃’을 외치자. 실망했다고 떠나지 말고 원래 자리에서 하던 걸 했으면 한다. 원래 축구는 이런 고통을 받으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매력 아닌가. K리그 구성원과 팬들 모두 힘냈으면 한다. K리그를 챙겨봐야 한국 축구가 강해지고 그래야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고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고…. 이런 건 지금 잘 모르겠다. 거창한 목표 없이 원래 좋아하던 거니까 그냥 좋은 것 뿐이다. 여자친구 이에 고춧가루가 낀 모습을 보면 실망스럽겠지만 그렇다고 이별을 통보하지는 않는다. 살짝 정이 떨어졌지만 또 우리는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우리가 언젠 뭐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였나. 누군가 욕을 해도, 그럼에도 K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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