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 매치에 거는 기대감이라는 게 있습니다 ⓒ FC서울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입니다. 저는 근무 특성상 월요병이란 게 없습니다. 부럽죠? 그러나 딱히 휴일이 없다는 게 함정입니다. 그러니 너무 화를 내진 말아주세요.

서론에 있는 저 짧은 문장에 온갖 도발과 핑계가 난무합니다. 마치 지난 8일에 열린 슈퍼매치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두 팀의 목적은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두 팀 모두 지지는 않았으니까요. 리그를 선도하는 두 팀인 만큼 비전 설정과 실행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수원과 서정원의 고민

아닙니다. 독자들은 바로 위의 문단이 사이다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두 팀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수원 삼성은 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 체력소모가 큽니다. 낮 경기와 밤 경기가 이어져 바이오리듬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팀의 주장을 맡은 김은선은 3월에만 두 번 부상을 당하며 선발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서정원 감독은 경기 전에도 험난한 일정 속에 산재하는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솔직히 일정에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아요. 아쉬운 상황에서 팀도 힘들고 피로도 누적되고 부상도 누적되고, 로테이션 안 할 수도 없고. 최고의 선수들로 선발 11명을 꾸려도 이기기 쉽지 않은 마당에 말이죠. 위기를 최소화하면서 가는 수밖에 없어요." 서정원 감독의 말입니다.

서정원 감독의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서정원 감독은 감독 중에서도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하는 편입니다. 친절하게 조목조목 잘 설명해 주시는 분이죠. 그런데 이날 서 감독의 말은 약간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조심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어려운 듯 보였습니다.

서울과 황선홍의 고민

FC서울도 참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팀 리빌딩을 외치며 '팀 황선홍'으로 변화하는 시기입니다. 그 와중에 박주영과 고요한을 제외하면 팬들이 사랑했던 선수들은 모두 팀을 떠났습니다. 선수단의 무게감이 떨어졌다는 말도 많이 들립니다. 황선홍 감독은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우리가 왜 우승 후보가 아니냐.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했지만 실제로 서울을 향했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단 첫 승을 거둬야 하는데 첫 승리도 없이 가장 강력한 라이벌한테 패배한다면? 그야말로 팀의 시즌 계획이 물거품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신광훈이나 신진호는 황선홍 감독의 축구 철학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어떨까요? 황선홍 감독은 지난 한 시즌 반을 거쳐 이제서야 자신의 선수들을 꾸려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해보려고 합니다. 수비진을 제외한 선수들 대부분이 이번 시즌부터 어색한 유니폼을 입고 뜁니다. 게다가 동계훈련 당시 고요한, 김성준, 조영욱의 대표팀 차출 문제와 외국인 선수들의 부상 문제가 겹쳐 시즌 준비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쨌든 현재 승리에 대한 부담감이 가장 큰 팀은 서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정원 감독에게 스트레스가 느껴졌다면 황선홍 감독에겐 여유가 없는 듯 보였습니다. 황선홍 감독은 그동안 수원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요. 무패가 의미 있을까요. 신경도 많이 쓰이고 힘이 들어가는 경기에요"라며 "두 팀 모두 얼마나 냉정하게 하는지가 중요할 거 같아요. 부담을 떨치는 부분을 얼마나 준비할 수 있나가 관건이 될 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수원이나 서울이나 승리가 필요하다는 부담감은 마찬가지라는 거죠.

슈퍼매치는 점점 더 실망만 안기고 있네요. ⓒ수원삼성

기대를 당황으로 바꾼 라이벌 더비

그리고 대망의 클레멘타인, 아니 슈퍼매치가 개봉했습니다. 결과는 0-0 무승부. 경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노잼'이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려다 보니 둘 다 지지 않으려는 경기를 하더군요. 두 팀 모두 수비에서는 인상적인 모습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공격 장면은 만들지 못했네요. 전진 패스보다 수비 지역에서 공을 돌리는 횟수가 많았습니다. 전방에 있는 선수들은 공이 자기 쪽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중앙 공간을 점유하지 못하자 측면으로 공격을 시도했는데 측면 선수들은 공을 끌다가 패스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공격권을 넘겼습니다. 놀랍게도 두 팀 모두 그런 장면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휘슬이 세 번 울렸습니다.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골대 뒤에 있던 서포터스, 선수들, 감독들, 그리고 취재진까지 말이죠. 다들 속으로 '이게 무슨 슈퍼매치야'라고 외치는 듯했어요. 감독과 선수들은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고 기사를 쓰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드문드문 긴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K리그 최고의 콘텐츠, 흥행 보증 수표, K리그의 블록버스터를 찾아온 유료 관중은 13,122명에 불과했습니다. 경기력만 살펴본다면 역대 슈퍼매치 최저 관중이라는 저 숫자가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더 많은 관중이 찾아왔다면 그만큼 괴로움을 느낀 사람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서로 상대가 수비적으로 운영했다는 두 감독의 인터뷰에 당황스러움이 배가 됐습니다. 이어지는 당황 '크리'에 머리가 멍해지면서 생각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애써 감정을 추스르니 '이것도 축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축구가 매번 재밌을 수 있겠냐면서요. 그랬더니 옆에서 김현회 기자가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이런 건 축구가 아니야."

슈퍼매치는 점점 더 실망만 안기고 있네요. ⓒ수원삼성

"이런 게 축구가 아닐까"

그럼 축구는 뭘까요? 이 경기가 열리기 전 저 먼 맨체스터라는 동네에서는 서로 "네가 이기는 꼴은 못 보겠다"라며 물어뜯은 경기가 열렸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반 0-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후반 45분 안에 3-2로 역전승을 거뒀네요. 분명히 그 경기를 본 팬들은 수원과 서울의 경기에서도 그런 모습을 기대했을 겁니다. 그럼 중요한 건 점수일까요? 맨유가 후반에 보여준 전술 변화가 중요할까요? 그게 축구일까요?

힌트는 전남 드래곤즈를 이끄는 유상철 감독에게 있습니다. 전남은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지만 최재현의 동점골로 귀중한 승점 1점을 챙깁니다. 경기를 마친 유상철 감독은 "이긴 것 못지않은 경기"라면서 "이런 게 축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경기는 전남이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원정 경기였고, 한찬희가 퇴장을 당했습니다. 이후 인천은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전남 골문에 달려들었습니다. 전남은 후반 45분까지 1-1 상황을 잘 이어가다가 결국 무고사한테 골을 먹고 말았죠. 모두가 인천의 승리를 예감했습니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것은 없군요. 전남 선수들은 경기 재개 휘슬이 울리자마자 인천의 골문으로 달려갔습니다. 유고비치는 계속 뛰어다니며 상대 골키퍼까지 압박했습니다. 기회를 잡은 이슬찬이 날린 중거리 슈팅이 인천 골대를 맞췄고 흘러나온 공을 최재현이 처리했죠. 불과 5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축구 리그는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승점 1점을 줍니다. 이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승점 1점마저 귀하디귀한 팀은 있습니다. K리그2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 한 명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승점 3점 사냥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적어도 그 선수가 부상에서 복귀하기 전까진 승점 1점이라도 따야 합니다. 어쩌면 서울이랜드FC나 FC안양의 승점 사냥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기를 풀어갈 선수, 골을 넣어줄 선수가 팀에서 딱 한 명씩 있는데 둘 중 누구라도 다친다면 시즌 농사가 어렵습니다.

인천, 전남에는 있었고 수원, 서울에는 없었던 모습

다시 K리그1으로 돌아옵시다. 전남도 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전남은 매 경기 실점하는 팀이라 수비에 관한 고민도 큽니다. 그래서 인천을 상대로 백 스리를 썼습니다. 한찬희가 빠지면서 이렇다 할 공격 전개도 못 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전남과 인천의 경기는 재밌었단 말이죠. 수원과 서울의 경기와 무엇이 달랐을까요?

제 말이 정답일 수는 없지만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원과 서울은 이겨야 한다는 마음보다 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저 마음가짐의 차이는 꽤 크게 나타납니다. 지지 않기 위해 공격하는 모습이 전남과 인천의 경기에서 나타났다면 지지 않기 위해 수비하는 모습이 수원과 서울의 경기에서 나타났습니다. 물론 후반전 들어 두 팀의 공격 의지가 살아난 게 사실입니다. 후반 승부수를 띄운 의도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경기에서 나타난 두 팀의 모습은 승리하려는 의지보다 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더 강해 보였습니다.

리그를 선도한다는 빅 클럽의 두 감독이 이 차이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또한 두 감독은 승리가 없을 때 승리에 대한 강박감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내려는 시도가 이렇게 역효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승리를 거두지 못할 때마다 실망하는 팬들의 모습도 선수단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수원 삼성과 FC서울에서 뛰는 선수들이라면 실력과 능력은 이미 검증된 선수들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감독들의 신중함이 과했거나 선수단 사이에 존재하는 부담이 생각보다 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슈퍼매치는 점점 더 실망만 안기고 있네요. ⓒ수원삼성

그래도 더비는 달려들어야 합니다

서정원 감독이나 황선홍 감독이나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축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서정원 감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수들의 활동량을 늘리며 역동적인 축구를 추구합니다. 바그닝요와 임상협, 이기제는 서정원 감독의 욕심을 잘 드러내는 선수입니다. 황선홍 감독은 속도와 중원 장악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측면 공격수들에게 파괴력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일단 승리를 위한 축구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축구와 현실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작년 서울E를 이끌던 김병수 감독도 '타협'을 시작하면서 승점을 거두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수원이나 서울이라도 타협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축구는 내려놓고 '못 먹어도 고'하고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더비는 일단 달려들어야 제맛입니다.

수원과 서울 구단도 감독들에게 힘을 더 실어줘야 할 겁니다. 특히 서울 팬들은 황선홍 감독을 넘어 구단 측에도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스카우트 잘 해와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는 경남FC를 본받아야 할 겁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아시아 무대에 진출하겠다는 강원FC를 보고 배워야 할 겁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느낀 무거운 공기는 K리그를 향한 경고나 다름없었습니다. 두 감독과 선수들도 잘 알았을 겁니다. 이날은 두 팀 선수단뿐만 아니라 저도 도망치고 싶었던 경기입니다. 두 팀은 추스를 시간도 없이 수요일에 경기를 치릅니다. 어디든 이기려는 축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수원과 서울에 기대하는 축구입니다. 다가오는 수요일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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