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김도겸①] “올림픽, 과정 자체로도 소중한 경험”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도겸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인천=홍인택 기자] 20년. 김도겸이 운동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왼쪽 가슴에 성인 대표팀의 태극기를 달기까지의 시간이다. 쇼트트랙은 매 시즌 국가대표를 선발한다. 그는 작년 4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당당하게 3위라는 성적을 거둬 국가대표가 됐다. 첫 성인 국가대표 발탁이었다. 그의 첫 국가대표 시즌은 마침 국내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인고의 시간이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선발전 성적이 좋으면 고등학생도 국가대표가 된다. 김도겸은 1993년에 태어나 25살에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국가대표가 되겠다’라는 오기가 오히려 독이 됐다. 매번 선발전만 나서면 실수를 범했다. 부담감을 내려놓으니 태극마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나섰다. 출전 종목은 남자 5,000m 계주 단 하나. 예선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지만 결승전에서 4위에 그치며 메달을 목에 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올림픽 출전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경험은 온전히 그의 유산으로 남았다.

김도겸은 2018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계주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안고 지난 20일 귀국했다. <스포츠니어스>는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올림픽 영웅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도겸을 만났다. 쇼트트랙을 전혀 모르는 ‘쇼알못’ 기자의 두서없는 질문에도 그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그의 올림픽 출전기를 전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쇼트트랙 남자 한국대표팀 ⓒ ISU

만나서 반갑습니다. 세계선수권 금메달 축하드려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입은 옷은 올림픽 다녀온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자부심이 느껴져요.
자부심 물론 있죠. 근데 사실 진천, 올림픽, 세계선수권 바로 갔다가 인천으로 돌아온 거라서 옷이 없어요. 자부심으로 입었다고 써주세요. 밖에서는 절대 안 입고 다녀요.

오랜만에 경기장에 오셔서 입고 오셨군요. 다른 분들은 입고 싶어도 못 입는 옷이잖아요.
그렇죠.

올림픽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김도겸 선수가 20년 만에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이 된 거로 알고 있어요. 게다가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뽑혔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느꼈던 감정이 남달랐을 거 같아요.
그게 2017년 4월이었어요. 딱 1년 전 요맘때 즈음이네요. 작년 4월에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었어요. 올림픽 얘기를 하려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2016년에 제가 힘든 일이 많았어요. 스포츠토토에 입단한 게 2016년 1월이었거든요. 그해 4월에 아시안게임을 앞둔 선발전이 있었어요. 그런데 선발전 참가 신청 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아예 출전을 못 했어요.

저런, 어쩌다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
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좀 안 됐어요. 저희 선수들도 책임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시안 게임을 못 나갔죠. 그해 조부모님 두 분도 다 한 날에 돌아가시기도 했고요. 그리고 어느새 선발전 날짜가 찾아왔죠. 저는 그 전까지 항상 선발전을 대하는 마음이 “아 올해는 꼭 국가대표 들어가야 해. 올해는 무조건 들어가야 해” 이런 생각이었어요.

운동을 시작한 후로 매년이요?
소치 올림픽 시즌 선발전도 10위였어요. 결승전까지 올라갔는데도 넘어지거나 실격처리가 되거나. 20살 때부터 매년 그랬어요. 밖에서도 “올해는 누가 대표팀 들어갈 거 같아” 그러면 제 이름이 항상 거론됐었는데 항상 문턱에서 좌절이 있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시합은 편하게 했던 거 같은데 선발전만 되면 “올해는 무조건 해야지” 하는 생각이 저만의 부담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문턱에서 실수했던 거 같아요.

2016년 4월 선발전에 못 나간 이후로 작년에 딱 준비를 하는데, 그것부터 물어봤어요. 참가 신청. “올해는 선발전 준비할 수 있겠다. 탈 수 있겠다. 후회 없이 내 노력을 펼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선발전과는 기분이 좀 달랐던 거 같아요. “그냥 내려놓고 후회하지 않을 경기를 하자.” 그래서 오히려 올림픽 시즌 선발전에 좀 더 편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성적도 따라왔던 거 같고.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거 같아요

그때 당시 3위였었죠?
더 잘 해서 개인전까지 출전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쨌든 저는 처음으로 대표팀이 된 것도 영광이었는데 올림픽을 나가게 된 거죠.

첫 성인 대표팀에 첫 올림픽이었는데 그것도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네요.
네. 저한테는 의미 있는 시즌이었어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저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올림픽을 나가고. 그런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게 저한테는 되게 영광이었던 거 같아요

주변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많았나요?
굉장히 많았죠. 여기 계시는 송경택 선생님. 코치 선생님들, 스포츠토토 사무국 직원분들도 지원을 굉장히 많이 해주시고.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조항민 선생님도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 잘 생기신 분이요?
잘 생겨서 네이버 검색어 1위 오르신 분이에요. 선생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조항민 코치의 얼굴이라면 있던 심리적 부담도 절로 없어질 것 같아요. 그러나 실제로 선발전 부담을 내려놓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거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소위 잘 풀린 선수는 아니었어요. 어렵게, 어렵게. 대표팀 선발전에서 좌절도 많이 해보고 실패도 많았죠. 저보다 먼저 대표팀에 들어와서 좋은 성적을 낸 친구들도 많았고 후배들도 많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단단해지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된 거 같아요.

재작년에 선발전에 못 나간 게, 저한테는 기회가 없어진 거잖아요. 작년에 다시 기회를 받고 “후회 없이만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딱 든 거예요. 그런 마음이 심리적으로 편하게 작용한 거 같아요. 올림픽이 꿈이고 목표이긴 하지만 다 잊고 “내가 좋아하니까. 해왔던 거니까 좋아하는대로 즐겨보자”라고 생각해서 작년 선발전도 즐기면서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마음이 복잡한 김도겸 ⓒ 스포츠니어스

다행히 국가대표에 선발이 됐죠. 저는 상상이 잘 안 되는데 올림픽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복잡해졌을 것 같아요.
올림픽을 준비한 기간부터 보면 심리적인 변화도 굉장히 많았던 거 같아요.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아, 올림픽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월드컵도 잘 마무리하고 딱 올림픽만 남았을 때가 12월이었어요. 올림픽 개최 50일 전에는 올림픽이 다가오니까 확실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그래야 내가 더 좋은 길이 많이 열리고 앞으로 살면서도 많은 도움이 되고 내 꿈을 이룰 수 있어.” 이런 마음이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엄청 뚜렷해지더라고요. 동시에 걱정과 부담도 같이 뚜렷해졌어요. “근데 이게 안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확 다가오더라고요.

마치 수능을 앞두고 있었던 제 심정 같네요.
그러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 게 열흘 정도 남았을 때였어요. “아, 내가 그렇게 꿈꿨던 올림픽인데 이런 식으로 올림픽에 나가면 그 기간 동안 내가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게 너무 많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너무 결과만 생각하다 보니까 결과가 안 좋았을 때 제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다시 편해졌어요. “올림픽이라는 순간을 잘 느끼고 즐기고 내 것으로 만들어보자. 그러다 보면 결과도 따라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다시 새롭게 준비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대망의 올림픽이 열렸어요.
강릉에 도착했을 땐 올림픽의 무게감이 많이 느껴졌어요. 선수촌도 있고 자원봉사자분들도 보이고 개막식도 하니까 진짜 올림픽에 온 실감이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경기가 없는 날에도 떨리고 설레는 감정이 있었어요.

막상 (임)효준이가 1,500m에서 첫 메달을 목에 거는 걸 보니까 우리가 항상 해오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응원이나 관심이 크지 않았을 때도 묵묵히 준비해왔는데 별다를 게 없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계주 경기 당일 스케이트 신발 끈 묶고 준비하고 들어갔는데 오히려 무게감이 즐거움으로 변했어요. 관중분들도 많이 찾아주시고 대회 집중이나 관심도 커지니까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시합 전부터 짜릿하더라고요.

그리고 예선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죠.
1등으로 결승에 진출하면서 관심도 더 가져주시니까 재미도 있고. 관중분들도 경기장에서 함께 기쁨을 느껴주시고 관중분들의 응원도 굉장히 행복한 거라고 알게 됐죠. 그때부터 결승전 준비도 좀 더 재미있게 했던 거 같아요.

올림픽을 준비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엄청 힘들기도 하고 선수들끼리도 지지고 볶고 하기도 하고 그때 당시엔 그랬는데 지금은 올림픽을 준비한 시간부터, 올림픽 기간만이 아닌 그 전부터 굉장히 뜻깊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결승전 이후에 “과정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군요.
준비했던 과정, 시간, 꿈의 무대였다는 점, 관중분들의 관심, 호흡, 모두 다 올림픽이 주는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 소중한 유산으로 남겠네요.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생겼잖아요.
우리 대표팀 막내 (황)대헌이가 어릴 때부터 쭉쭉쭉 커오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멋진 친구예요. 이 친구는 늘 잘 해왔고 미끄러진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황)대헌이가 1,500m 경기에서 넘어지고 완전히 멘탈이 나가더라고요. 500m 경기도 있고 1,000m 경기도 있고 계주도 남아있는데. 그래서 제가 “너는 아직 경기가 남아있다. 너는 누군가의 꿈이고 부러움이다. 근데 네가 지금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그렇게 풀 죽어 있는 건 한심한 거다”라고 좀 따끔하게 얘길 해줬어요.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을 잘 추스르고 경기를 치르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선수들이 겪는 과정이나 경험들은 정말 무시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계주 결승전에서 임효준 선수가 넘어졌는데 많이 미안해했을 것 같아요.
많이 미안해하죠. 계주에서 넘어지거나 그런 게 얼마나 미안한지 알아요.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저는 넘어진 적은 없고 저 때문에 실격당한 적은 있어요. 그래서 (임)효준이도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미안한 마음이 더 클 거 아니에요. 저야 뭐 다른 대회였지만 (임)효준이도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서 자기 실수로 아쉬운 결과를 거둔 게 죄책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또 저희한테 얼마나 미안하겠어요. 그 마음을 알아요. (임)효준이가 경기 끝나고 바로 울더라고요. 아예 저희 눈을 못 쳐다봤어요. 저도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효준아 괜찮아. 형들 괜찮으니까 똑바로 쳐다보고 얘기해”라고 얘기했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져서 “야 효준아! 그때 형 차 바꿀 수 있었는데! 형은 군대 갈게! 열심히 해! 아… 형은 군대 가면 되지” 막 이러면서 장난도 쳐요.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아니면 임효준 선수가 더 미안해하죠?
제가 아마 속상해하고 있으면 이 친구는 더 미안해할 거예요.

저는 지금도 굉장히 만족하고 좋은 거 같아요. 행복한 거 같아요. 그래도 제가 올림픽을 겪어보고 경험해봤잖아요. 운동선수로서의 정점이 올림픽이잖아요. 결과는 좀 아쉬울 수 있어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는 행복한 운동선수다. 지금까지도 영광스러운 운동선수였다.” 앞으로 겪을 경험들은 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게 기대도 돼요. 그래서 아까도 장난으로 “군대 가면 되지”라고 말한 게 군대에서 또 어떤 경험을 얻어올지 모르잖아요.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렇게 경험치 대마왕이 된 김도겸 선수도 누군가의 부러움과 꿈이 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국가대표 옷을 입고 경기장에 온 것도 그래요. 사실은 결과에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할 수도 있는 건데 사실 올림픽에 못 가본 운동선수들도 얼마나 많아요. 대표팀에 못 들어가고 제2의 인생 시작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잖아요. 실제로 조명받는 운동선수라는 게 그 많은 사람 중에 한두 명인 거고 손에 꼽을 정도인데 저도 어쨌든 그런 사람들과 한 팀이 돼서 올림픽에 출전했잖아요. 저한테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영광이었던 거 같아요

예전에는 당연히 그런 포부가 있었어요. “나는 올림픽 나가서, 어? 1등 해서, 몇 관왕 해서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될 거야”라는 포부가 있었죠. 그런데 많은 일을 겪어오다 보니까 조금 성숙해진 것 같아요.

20대 중반인데 연륜이 느껴지네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도 감사하고 잘 해 온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올림픽 개막하기 전에 “나는 정말 노력했고, 그 꿈을 앞두고 있고, 난 지금까지도 잘 달려왔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었고 뿌듯하고 그랬어요.

ⓒ 김도겸 인스타그램

한편으로는 군대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올림픽 끝나고 바로 갈 생각도 했었어요. 올림픽 끝나고 동기부여가 안 되고 있었어요. 세계선수권대회 나가기 전에도 “올림픽 갔다 왔는데 내가 이제 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하는 올림픽도 해봤는데, 다음 올림픽도 똑같을 텐데 나가서 뭐해. 4년 동안 더 어떻게 더해” 이런 생각이 들어서 빨리 정리하고 군대를 다녀올까. 그러다가…

제가 어쨌든 다음 인생을 준비하려면 이게… 금전적인 문제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네? 아시안게임까지 해봐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죠.

그렇죠. 먹고 살아야죠.
그러다 다음 아시안게임 개최지가 또 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렸어요.

아시안게임도 한국에서 열린다고요? 아직 결정 안 됐어요?
분위기는 좋은 것처럼 얘기가 들려요. 게다가 남북 공동개최 얘기도 나오나 봐요. 그래서 “자국 아시안게임은 조금 욕심나는데? 메달을 떠나서 이건 좀 욕심나는데? 역사에 이름 한 번 남기겠는데? 그럼 아시안 게임까지는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죠. 새롭게 목표의식이 생겼어요. 그 전까지는 진짜 군대를 바로 갈까도 고민하고 송경택 감독님하고 얘기도 많이 했어요. “올림픽 갔다 와서 사실 지금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뭘 해도 의미가 없을 거 같다. 동기부여가 안되는 거 같다”라고 말씀드렸거든요. 감독님도 “얘기 많이 해보자”라고 하셨는데 아시안게임 자국 개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송 감독님이 명장이었네요.
많이 도와주세요. 저는 누가 시키는 걸 안 좋아해요. 제가 계획한 운동이 있는데 거기에 또 누가 운동하라고 하면 “내가 알아서 하려고 했는데 왜 시키지?” 약간 강압적인 걸 싫어해요

꼭 공부하고 있을 때 와서 공부하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감독님은 선수를 믿고 밀어주시는 분이에요. 저랑 그런 부분이 잘 맞아요. 감독님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형~” 이러면서 따라다닌 제일 좋아하던 형이었어요. 그 형이 이젠 감독이 되신 거죠. 특별한 인연이고 신뢰나 유대감이 더 깊어요.

김도겸과 대화를 나누며 예전 “금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인터뷰했던 선수들이 기억났다. 그는 생애 첫 올림픽에서 메달을 얻지 못했다. 아쉬운 결과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사람들은 ‘노메달’에 그친 그를 향해 군대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 군대는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쇼트트랙에 대한 열정에 의문이 생기자 그는 바로 입대를 고민했다. 그는 올림픽 대회 자체보다도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 값지다고 말했다. 국가대표가 되기 전까지 겪었던 좌절은 황대헌을 깨우고 임효준을 다독였다.

김도겸은 이제 스물여섯. 그러나 단단한 선수다. 이런 선수가 우리나라 쇼트트랙을 대표하고 있다. 결과보다 과정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선수다. 그는 4위를 기록한 5000m 계주 결승전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당당하게 “영광스러웠다. 과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2021년 아시안게임이다. 더 자랑스러워질 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2편에 계속…

[‘쇼트트랙’ 김도겸②] “심석희에게 FC서울 전도하고 있다” (기사 바로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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