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풀타임 출전 ⓒ 인천 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백승원의 계약 문제를 둘러싸고 인천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의 갈등이 이어질 전망이다.

선수협 측은 지난 12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인천 유나이티드가 백승원을 김포시민축구단으로 임대 보내는 과정에서 스카우트 팀장이 백승원과 이면 합의를 했다"라면서 "인천 구단을 스카우트 팀장 고용주로서 민법상 사용자 책임을 묻겠다"라고 발표했다. 스카우트 팀장과 백승원 간의 이면 합의에는 ▲2017시즌 종료 후 100% 복귀 보장 ▲복귀 대가로 백승원의 연봉 30%를 스카우트 팀장에게 지급 ▲팀 복귀가 불가능할 경우 남은 계약 기간 2년 치 연봉을 백승원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포츠니어스>는 선수협과 백승원의 목소리를 더 자세하게 듣기 위해 선수협 측에 취재를 요청했고 선수협과 백승원도 취재에 응했다. <스포츠니어스> 취재 결과 이면 합의 계약서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승원은 "임대 동의 과정에서 불공정한 내용이 있었지만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면계약 합의의 배경을 밝혔다. 그는 "이면계약으로 인천에서 축구를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나도 책임이 있다. 순진했던 내 잘못이다"라며 자책했다.

"계약을 해지하던가 김포로 가라"

백승원은 인천 입단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광운대로 진학했고 2014년 당시 인천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 2015년부터 인천 입단을 보장받았다. 당시 인천 구단은 구두전달로 백승원에게 계약금 9,000만 원과 연봉 3,600만 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2014년 12월 19일 김봉길 감독은 인천 구단의 해임 통보를 받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백승원 영입을 추진했던 스카우트도 함께 인천을 떠났다. 인천은 김도훈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선택했다. 백승원은 김도훈 감독과 코치진들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였다. 입단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인천 측은 백승원에게 계약금 9,000만 원이 아닌 1,400만 원을 제시했다. 백승원은 이 과정에서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이번부터 인천 입단이 결정된 상황에서 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결국 백승원은 자유선발 대상으로 인천이 제시한 조건에 합의했다. 백승원은 그 순간부터 2019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인천 소속이 됐다.

백승원이 아예 뛰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인천에 합류했던 2015년 프로 데뷔 첫해에 3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뛸 수 없었다. 백승원은 김도훈 감독의 '늑대 축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다. 인천 측은 2015시즌이 끝난 후 백승원에게 당시 K리그 챌린지에 있는 충주 험멜 이적을 제의했다. 백승원은 비시즌 동안 충주 구단에 합류해 연습경기를 치르다 무릎 부상을 당했다. 장기 부상이었다. 자연스럽게 충주 험멜 합류는 물거품이 됐다. 그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돌아간 인천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구단 측은 이미 선수단 구성을 마친 상태였다. 구단 측은 스카우트 팀장을 통해 백승원에게 "남은 계약을 해지하던가 김포시민축구단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백승원의 에이전트는 이 과정에서 선수를 외면했다. 백승원은 축구 인생을 이어가기 위해 김포로 떠나기로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백승원 ⓒ 스포츠니어스

이면계약 배경, 스카우트 팀장의 사탕발림

그러나 백승원에게 건네진 임대 계약서에는 그에게 불리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백승원은 "계약 내용에 김포에서 리그 경기 80% 이상 출전하지 못하면 무조건 인천과 계약이 해지된다는 내용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 무릎 부상을 크게 당해 80%를 채울지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며 "그러나 계약서를 내밀었던 스카우트 팀장은 '승원아 너는 부상이니까 80% 안 채워도 복귀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사인을 요구했다"라고 전했다. 백승원은 "사실 충주도 김포도 가기 싫었다. 그러나 스카우트 팀장의 말만 믿고 계약서에 사인했다"라고 덧붙였다.

백승원은 2016시즌 K3리그 김포시민축구단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무릎 부상으로 80% 출전은 채울 수 없었지만 회복 후 70%가량 출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K3리그에서 뛰었던 그는 시즌을 마치고 인천 복귀를 준비했다. 그러나 인천 측은 그에게 "80% 출전 조항을 지키지 못했으니 계약을 해지하겠다"라고 전했다. 백승원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인천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선수협 측과 접촉했다.

김포 임대 당시 무릎 부상을 안고 있던 상황에서 80% 출전 조항 삽입은 인천으로서도 책임 소지가 있었다. 일이 더 커지길 원하지 않았던 인천 측과 스카우트 팀장은 백승원을 다시 불러 김포로 1년 더 임대갈 것을 제의했다. 이번에도 스카우트 팀장은 백승원의 복귀를 장담하며 사인을 요구했다. 새 합의서에는 '80% 출전 조항'은 삭제됐으나 '구단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요청이 있을 경우' 팀에 복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구단 측 복귀 요청이 없을 경우 백승원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구단이 부르지 않으면 인천과의 계약이 해지된다는 내용이었다. 인천 측은 해당 합의서에 백승원의 모친 서명까지 요구했다.

백승원은 2016년 임대 당시 스카우트 팀장의 호언장담을 믿고 임대에 동의했다가 낭패를 봤다. 백승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도 임대를 원치 않았다. 2016년에 스카우트 팀장에게 한 번 속지 않았나. 그래서 새 계약서를 믿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스카우트 팀장은 이번에도 "내가 너를 복귀시켜주겠다"며 김포 임대 합의서에 사인을 요구했다. 백승원은 '복귀 보장'에 대한 대화를 문서화하기 원했다. 스카우트 팀장은 백승원의 복귀를 100% 책임지기로 했고 백승원은 그 대가로 스카우트 팀장에게 연봉 30%를 지급, 인천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백승원은 남은 계약 기간 2년 치 연봉을 위약금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스카우트 팀장과 백승원의 이면 합의가 이루어졌다.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백승원 ⓒ 스포츠니어스

김포에서 1년 더 선수 생활을 이어간 백승원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김포로 임대된 동안 백승원의 급여는 김포 구단이 지급했다. 한 달 훈련 수당 50만 원에 한 경기 승리 수당 50만 원이 그가 선수 생활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의 전부였다. 백승원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경기가 없는 날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부업을 했다. 선수협 측은 "백승원은 인천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텼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후에도 인천 구단은 끝내 백승원의 복귀를 요청하지 않았다. K리그 규정에 따르면 선수들의 정기등록 기간은 1월부터 최대 12주 이내, 추가등록 기간은 최대 4주 이내로 연맹이 지정하게 되어있다. 현실적으로 선수 복귀가 어려운 상황이다. 백승원과 선수협 측은 지난 5일 인천 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선수협 측은 "지난 15일 인천 스카우트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가 이번에도 '백승원을 무슨 일이 있어도 복귀시켜주겠다'라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19일 다시 연락이 됐다. 스카우트 팀장에게 물어보니 감독이나 대표이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라며 "스카우트 팀장은 다시 감독에게 얘기해보겠다고 했지만 더는 신뢰할 수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연맹 측, "이면계약 아닐 수도"

선수협 측은 "스카우트 팀장이 백승원과 맺은 이면계약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스카우트 팀장의 고용주인 인천 구단에 민법상 사용자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수협 측 박지훈 변호사는 "이면계약 자체는 민법상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프로축구연맹에서는 이면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선수 연봉과 관련된 내용상 현행법 질서 위법성 판단 여지가 있다"라고 전했다. 선수협 측은 임대 합의서, 이면 합의서 사인 과정에서 스카우트 팀장의 책임이 크다고 판단, 인천을 상대로 위와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구단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단, 선수협 측도 이면계약에 합의한 선수의 책임을 일부분 인정했다. 박지훈 변호사는 "합의서에 사인한 선수에게도 책임은 있다. 프로축구연맹 규정상 선수도 징계를 물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선수협 김훈기 사무국장은 "선수가 인천에 복귀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라면서 "선수의 책임도 있기에 쉽지 않다는 건 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2016년부터 이 선수는 연맹 등록 선수가 아니다. 지금도 프로가 아니다. 그를 연맹의 테두리에서 쫓아낸 것은 인천 구단 측"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연맹 측은 스카우트 팀장과 백승원 간에 합의된 이면계약에 대해 "정확한 계약 내용은 확인이 필요하다"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연맹 측은 "규정상 이면계약은 징계대상이 맞다"라며 "이면계약의 원칙은 공식 연봉 계약서에 제시된 금액을 제외한 추가 금액을 선수가 이면으로 받을 경우 적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천 스카우트 팀장과 백승원의 합의 내용을 이면계약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연맹 규정에 따르면 계약서 외의 이면계약을 한 경우 선수는 5년간 K리그 등록 금지, 해당 구단과의 계약 및 등록 금지 징계를 받고 구단 측은 1년 이내 선수영입금지, 제재금 5000만 원 부과, 해당 선수와 영구 계약 금지 징계를 받는다. 만일 스카우트 팀장과 백승원의 계약이 이면계약으로 판단된다면 백승원은 인천 소속으로 뛸 수 없는 상황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백승원 ⓒ 스포츠니어스

"제2, 제3의 백승원이 나오면 안 된다."

이에 백승원은 "어차피 계약 해지를 당한 상태다. 나도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천 측에서 계속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축구계를 떠날 생각으로 이 일을 드러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최근까지 백승원은 막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했다. 아버지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연락이 끊겼다. 백승원과 그의 누나를 홀로 키운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백승원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써 놓은 축구 훈련 일지까지 전부 버렸다.

백승원은 "난 그저 축구를 하고 싶었다. 미래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은 운동을 그만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2, 제3의 백승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수협과 함께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른 선수들한테도 내가 당한 일을 알리고 선수협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백승원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순진하게 그냥 사인을 했다. 순진했던 내 잘못이다"라며 "스카우트 팀장이 임대 합의서를 내밀었을 때 뻔뻔하게 구단에 남아있을 걸 그랬다. 내가 왜 가야 하냐고 물어봤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선수협 김훈기 사무국장은 "스카우트 팀장이 대표이사 직인이 찍힌 합의서를 신인 선수에게 건넸던 상황이다. 스카우트 팀장의 권력 행사도 있었을 것이다. 선수로서는 사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을 것"이라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사인만 받아내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해왔던 거다. 얼마나 만만하고 쉬워 보였을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백승원은 스카우트 팀장의 말만 믿고 순진하게 합의서에 사인했다. 인천의 한 스카우트 팀장은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한 청년의 선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스카우트 팀장은 어떻게 백승원의 복귀를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저 선수를 설득하기 위한 사탕발림이었을까. 과연 백승원의 순진함은 죄가 될 수 있을까. 혹시 스카우트 팀장이 그의 순진함을 이용한 것은 아닐까.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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