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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현 내셔널리그 김해시청 윤성효 감독의 갑질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스포츠니어스>는 지난 9일 해당 소식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윤성효 감독의 갑질 논란은 김해시청에서 뿐만이 아니라 대학 감독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는 윤성효 감독에게 장난감 취급 당했다" (기사 바로보기)

윤성효 감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숭실대 감독을 맡았다. 용기를 낸 제보자들에 의하면 윤 감독은 숭실대 부임 시절에도 김해시청에서 보여줬던 행보와 매우 흡사한 형태를 보였다. 제보자들은 <스포츠니어스>의 기사를 통해 용기를 냈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언젠가는 이 일이 드러날 줄 알았다"라고 전하며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감독과 선수, 특히 프로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던 대학 선수 중에는 윤 감독의 권력에 무릎을 꿇으며 축구를 포기한 선수들도 많았다. 한 제보자는 그의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며 "이것도 일종의 미투 운동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보자들은 "후배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라며 <스포츠니어스> 취재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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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전화 한 통에 투명인간 취급 당했다"

선수 생활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A씨는 신현호 감독이 이끄는 숭실대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숭실대 입학을 앞둔 신입생은 12명이었다. 그러나 3월 1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신현호 감독 대신 윤성효 감독이 숭실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과정에서 신입생 6명은 살이 쪘다는 이유로 정리됐다. A씨는 생존자 중 한 명이다. A씨는 숭실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A씨는 축구에 집중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4학년이 되자 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정도로 동기들과 후배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A씨는 마지막 학생 시절을 돌아보며 고백했다. 그는 "고려대와의 경기였다.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실점을 당했다. 0-2가 되자 윤 감독이 속된 말로 '쓸어버리라'고 했다. 거칠게 하라는 뜻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내 포지션은 수비수였지만 거칠게 하지 못했다. 1년 후배는 거친 파울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A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대회 측 상벌위원회는 윤성효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선수 한 명에게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숭실대의 경기가 거칠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수를 향한 징계 과정이 탐탁지 않았다. A씨는 다음 대회를 준비하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치 중 한 명이 그에게 "네가 징계를 받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A씨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A씨는 "퇴장을 당한 선수도 있었는데 내가 징계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A씨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께 "내가 징계를 받을 거라는 소문이 들린다"라며 상의했다. A씨의 부모님도 해당 경기를 지켜봤기 때문에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A씨의 부모님은 지인을 통해 윤성효 감독에게 정중하게 질문했다. 윤성효 감독은 A씨의 징계가 사실인지 묻는 질문에 "맞다"라고 답했다. 재차 징계 이유를 물으니 윤 감독은 "나는 모른다. 축구협회에서 내려온 지시다"라고 전했다.

A씨의 부모님은 윤 감독에게 섭섭한 마음을 전했다. "이건 좀 너무하신 것 같다." 윤 감독은 "알았다"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나자 윤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 "학부모에게 전화가 왔다"라며 A씨의 부모님을 비난했다. A씨는 "윤 감독이 우리 부모님이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나와 선수들을 모아놓고 우리 부모님 욕을 10분 동안 했다"라며 "이후 징계 대상은 내가 아닌 퇴장 당한 선수로 변경됐다. 감독 권한으로 징계 선수를 추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징계 내용은 최초 6개월 출전 정지였다. 이후 3개월 출전 정지로 변경됐다.

그러나 A씨는 "당시 4학년 하반기였다. 6개월이나 3개월이나 대회를 못 뛰는 건 마찬가지"라며 "나는 징계를 받을만한 플레이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징계를 받을 뻔했다. 징계를 받으면 드래프트조차 쓰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이후 A씨에게 찾아온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A씨는 "윤 감독과 코치 세 명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라며 "나를 향해 그 어떤 긍정적인 말이나 부정적인 말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A씨는 이후 대회 출전에도 제외됐다. 그 해 치러야 했던 전국체전에도 A씨의 자리는 없었다.

윤 감독은 첫 경기에서 A씨 대신 수비수도 아닌 선수를 중앙 수비로 세웠다. 첫 경기에서 수비수 한 명이 부상을 당해 뛸 수 없게 되자 윤성효 감독은 A씨를 교체로 투입했다. 이후 쭉 선발로 나선 A씨는 전국체전 우승을 경험하고 전국대학축구선수권 대회까지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A씨는 "윤 감독과 코치진은 나를 단지 기용만 할 뿐 경기에 대한 피드백과 대화는 전혀 없었다"라며 "졸업 직전까지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마지막으로 드래프트 접수 시기가 찾아와 드래프트 신청을 한다고만 말씀드렸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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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보낸 선수, 대회 위해 기용했다 다시 내보내기도

B씨는 공격수였다. 그는 숭실대 소속으로 뛰던 중 골절 부상을 당했다. 긴 시간 재활치료를 받으며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B씨는 "경기를 뛸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올라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B씨는 윤성효 감독에 대해 "그는 선수들에게 직접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당사자만 알 수 있게 모욕했다.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몇 개월 동안 계속된다. 순차적으로 모욕감을 주니 한 명씩 나가게 되더라"라고 전하며 "우리 때도 그랬다. 악착같이 버틴 친구들도 있지만 버티기 쉽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욕을 당하니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라고 전했다. 결국 윤성효 감독은 B씨를 불러 "축구를 그만두라"라고 얘기했다. B씨는 "그렇게 축구부에서 잘렸다"고 주장했다. 

B씨는 숭실대를 나간 이후 모교인 고등학교를 찾아가 개인 운동을 하고 있었다. B씨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윤성효 감독이 고등학교 감독에게 연락을 취했다"라고 전했다. B씨가 숭실대를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시기였다. "공격수가 다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없다. B를 다시 오라고 하면 안 되겠나." B씨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감독은 "그 사람이 워낙 축구계에서 발이 넓은데 축구 계속하려면 다시 가야 하지 않겠나"라며 B씨를 설득했다. 은사의 한 마디에 B씨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숭실대 소속으로 전국체전에 나섰다.

문제는 전국체전이 끝난 이후였다. 대회가 끝나자 윤 감독은 B씨에게 "다시 돌아가라"라고 말했다. B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면 사람을 두 번 죽인 것 아닌가.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꼈다. 그날 이후 축구에 정이 뚝 떨어졌다. 바로 축구를 그만두고 현재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B씨 주변인들의 폭로 내용은 더 심했다. B씨가 숭실대를 나간 후 윤 감독은 선수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멍청하게 쭈뼛쭈뼛 서 있길래 집에 가라고 보냈다"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는 후문이다.

"너희 후배들 숭실대로 데려와"

<스포츠니어스> 취재에 응한 제보자들은 "유명한 사건이 있다"라며 일화를 전했다. 윤성효 감독이 숭실대 선수들을 통해 "'너희 후배들을 숭실대로 데려오라'라고 시켰다"라는 것이다. 숭실대 선수들은 한목소리로 "감독이 원하는 고등학교 후배를 데려오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 감독이 한 선수를 부르더니 "너희 고등학교에 가서 네 후배가 숭실대로 온다는 동의서를 받아오라"라고 시켰다는 것. 제보자들은 "아마 그 후배 선수가 다른 학교로 간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라며 "그 후배 선수는 동의서에 사인까지 해가며 숭실대로 진학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 사례는 윤성효 감독에게 하나의 '성공 사례'로 남았다.

또한 제보자들에 의하면 윤성효 감독은 언남고 졸업을 앞둔 공격수를 숭실대로 데려오고 싶어 했다. 그때 숭실대에 있었던 언남고 출신 선수는 2012년 세상을 떠난 故정민형(부산 아이파크)이었다. 윤성효 감독은 1학년 정민형에게 후배 선수를 데려오게 시켰다. 그러나 정민형의 후배 선수는 이미 다른 학교로 진학이 결정되어 있었다. 제보자들에 의하면 정민형은 이후 편입도 하지 못한 채 숭실대를 나와 진주국제대(현 한국국제대) 1학년으로 다시 입학했다.

C씨는 광주 금호고 출신의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연령별 대표팀에도 이름을 오르내리던 선수였다. 숭실대에 입학한 후에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2학년 시즌이 끝난 뒤 윤성효 감독은 C씨를 불러서 한 마디를 던졌다. "너희 고등학교 후배를 우리 학교로 올 수 있게끔 해라. 네가 설득을 해봐라." 당시 C씨의 후배 선수는 다른 대학교 진학이 결정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C씨는 윤성효 감독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C씨는 그대로 짐을 챙겨 후배가 있는 광주로 향했다.

C씨는 1주일 동안 후배 선수와 숙소 생활을 같이하면서 후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숭실대의 좋은 점을 얘기하며 그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상황에서 C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C씨는 후배의 결정을 존중하며 서울로 돌아왔다.

숭실대로 복귀한 C씨는 며칠 뒤 윤성효 감독과 대면했다. 윤 감독은 C씨에게 "네가 숭실대에서 경기를 뛸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른 학교로 가든지 짐을 싸서 나가라"라고 말했다. 연령별 대표팀에도 오르내리던 C씨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퇴출 통보를 받았다.

소식을 들은 C씨의 아버지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달려와 아들을 챙겼다. C씨의 아버지는 C씨에게 "드래프트 제도가 다시 생겼으니 드래프트 신청을 해보자"라며 아들을 달랬다. 드래프트에 신청하려면 대학 감독의 추천서가 필요했다. C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추천서를 위해 윤 감독과 통화를 시도했다. 윤성효 감독도 처음에는 "알았다"라고 전했다. C씨의 아버지는 한걸음에 숭실대 축구부로 향했다. C씨는 "그때가 드래프트 지원 기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윤성효 감독은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 C씨의 아버지는 계속 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C씨의 아버지는 하염없이 숭실대 축구부 숙소 앞에서 윤 감독을 기다렸다. 그러나 윤 감독은 계속 나타나지 않았다. 윤 감독이 다시 숙소로 돌아온 날은 드래프트 지원 마감날 저녁이었다.

C씨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숭실대에서 2년을 뛰었으니 다른 학교 편입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C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윤 감독은 C씨에게 "서울에 있는 대학은 안 된다. 지방으로 가라"라고 말했다. C씨는 "금호고를 졸업하기도 했고 연령별 대표팀 자존심도 있었다. 당시 윤 감독이 진주국제대 얘길 꺼냈는데 진주에는 연고도 없었다. 또 2년 동안 서울에서 생활하니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기도 뭐하더라. 호남대, 광주대, 조선대 이야기도 나왔지만 아버지가 운동을 그만두자고 하셨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C씨는 B씨처럼 직장에 다니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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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시간, 지금까지 이어지는 자기 검열

제보자 D씨는 "대학교 때는 감독님 말을 안 들으면 축구 인생이 끝나니까 무조건 말을 들어야 했다. 그때 감독님은 나가라는 표현을 대놓고 하기도 하고 돌려서 얘기하기도 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라고 전하며 "인터뷰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두 명이면 문제가 안 되는데 계속 불어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다른 목격자들에 의하면 "식사 중이었다. 윤 감독이 자신이 마시던 물을 선수 얼굴에 뿌리기도 했다"라며 "너희들이 그러면서도 선수냐"라고 윽박질렀다는 증언도 있었다.

<스포츠니어스> 취재에 응했던 한 제보자는 다른 제보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니 "그 친구들 이야기가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들리는 얘기만 안다. 겉으로 보기엔 경쟁에서 밀린 건지 감독 눈 밖에 나서 나간 건지 알 수 없다. 자세한 정황은 당사자만 알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감독이 하라면 하는 거니까… 그렇게 지나왔던 거다"라고 덧붙였다.

김해시청 소식이 보도된 이후 여러 지역 매체는 윤성효 감독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윤성효 감독은 숭실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내가 데리고 있을 수 없는 선수들은 편입을 시켰다. 가족처럼 챙기려고 했었지 그들의 앞길을 방해하거나 그런 의도는 없었다"라고 밝히며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는 후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A씨는 "편입? 한 명 했다. 그러나 후배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자세하게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라면서 "선수들이 용기를 내고 폭로하기가 쉽지 않다. 선수 인생을 걸고 얘기하는 것이다. 나도 지도자로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폭로를 말리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A씨는 "나도 선수 때는 말할 수 없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내가 잘 못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축구를 그만둔 B씨는 "내가 학교를 잘 못 간 것"이라고 말했다. 용기를 내어 폭로를 결심한 제보자들은 여전히 자기 검열에 빠져 있었다. C씨는 "당시에는 그저 내가 실력이 모자라서인 줄로만 알았다"라면서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 정도가 됐다. 아예 축구계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왔다. 시간이 지나서 많이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해에서도 그러실지 전혀 몰랐다"라고 전했다.

C씨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구조적으로 선수들은 감독에 의해서 선발되는 부분이 워낙 크다. 감독에 의해 상위 레벨로 올라가기도 한다. 이러한 권력 구조가 지금의 윤성효 감독을 만들지는 않았을까"라며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추측했다. 그는 "윤 감독 스타일이 선수들의 간절함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대학교에서는 권위가 있으니 그 스타일을 잘 활용하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B씨는 "나 외에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면서 "윤 감독 마음에 든 선수들은 잘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기회도 잡아보지 못한다. 축구만 하는 사람이 운동을 그만두면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D씨는 "대학생들은 축구를 그만두면 그래도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다. 김해시청 선수들은 생계가 달려 있는 선수들도 많은데 어떡하나"라며 걱정했다.

A씨는 "절대 내가 이득을 보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축구인 중 한 사람으로서 그런 분이 여전히 활동하시는 게 창피하다. 안 그런 사람도 굉장히 많다. 그저 피해를 줄이고 싶어서 말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꿈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때 느낀 좌절감과 정신적 충격은 누구한테 말하기도 힘들다. 나는 절대 그런 지도자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선수들을 이끌어주기 위해 지도자가 됐다"라고 고백했다.

제보자들은 "대학 선수들의 이야기니 아마 윤 감독 측은 선수들의 실력과 능력을 운운할 것"이라 말했다. 그들은 "김해시청 건도 서류상에 선수들 사인이 되어 있으니 문제 아닌가"라면서도 "이게 윤 감독의 실상이다. 꼭 좀 알려달라"라고 전했다. 선수들의 인권 사각지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는 반드시 이 부분에 대한 개선점을 마련해야 한다. 그게 용기를 내 고백한 이들이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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