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민은 이 자세 그대로 파주NFC까지 뛰어갈 기세다. ⓒ 인천 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남극보다 추웠던 겨울 날씨도 이제 점점 풀리는 모양새다. 그리고 K리그는 그 어느 해보다 초반부터 이야깃거리로 가득했다.

특히 10일(토)과 11일(일)에 열렸던 KEB하나은행 K리그1(클래식) 2018 2라운드에는 흥미로운 경기들로 가득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팀들이 굵직한 팀들을 잡았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전북 현대를, 상주 상무는 울산 현대를, 경남FC는 제주 유나이티드를, 강원FC는 FC서울을 잡았다.

아마 소액으로 스포츠 토토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라운드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예측이 틀렸다는 표현을 속된 말로 '부러졌다'라고 하던데, 이 정도로 강팀들이 연달아 '부러질' 줄은 몰랐다. 수원 삼성만이 대구FC를 이겼으니 오죽했을까. 수원은 가시마 앤틀러스에 이어 전남 드래곤즈에 패하고 상하이 선화와 무승부를 거두면서 시즌 초반부터 가시밭길을 걸었지만 대구FC를 상대로 두 골을 뽑으며 승점 3점을 챙겼다.

다른 경기장을 봐도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 포항 스틸러스는 대구와 전남을 상대로 벌써 6골을 득점했다. 겨울 영입 시장을 살펴보면서 포항이 꽤 알찬 영입을 했다고 생각했다. 송승민과 김민혁은 하위권 팀에 있기엔 아까운 자원이었다. 하창래와 채프만으로 수비도 보강했고 경남 승격의 주역이었던 정원진도 복귀하면서 공격 옵션이 늘었다. 이 생각을 전하니 우리 조성룡 기자는 "골잡이가 부족하지 않나"라고 했다. 포항은 현재 리그 테이블 맨 위에 있다. 조 기자 보고 있나? 내가 옳았다.

…라고 생각하지만 시즌은 길다. 시즌 초반부터 치고 나가서 순조롭게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팀은 전북 현대 말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도 매력적인 전술을 펼치며 시즌 초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우라와 레즈와의 경기 후 AFC에 '징계 폭탄'을 맞아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편 2015-16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을 거뒀던 레스터 시티를 기억한다면 경남 우승도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은 아닐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K리그의 매력이다. 그 매력을 오랜 시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지켜본 전북의 무기력함에는 조금 놀랐다. 인천은 그 이전에도 전북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 정도로 치고받으면서 전북을 눌러버릴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K리그는 원래 그랬다. 어떤 팀도 이길 수 있는 리그. 영원한 왕이 없는 리그.

물론 전북은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다. 최강희 감독이 이끌었던 전북은 항상 '폭풍 영입'을 했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최강희 감독도 "올해 가장 선수 변화폭이 적다"라고 전했다. 지난 시즌 워낙 좋은 모습으로 우승을 거뒀다. 적어도 조직력 걱정은 전북이 가장 덜하지 않을까. 최강희 감독의 말처럼 선수단을 한 번 더 깨우는 패배가 됐을 확률이 높다. 무패 우승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아마 언젠가는 어떤 팀에게라도 졌을 것이다. 그 역할을 한 게 인천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이 강팀들을 향한 예상이 모두 '부러졌으면' 좋겠다. 1위부터 12위까지의 승점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리그가 재밌다. 매주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요동치는 리그가 재밌다. 강팀으로 평가받던 팀들도 강등권까지 체험했다가 다시 올라왔으면 좋겠고 약팀으로 평가받는 팀들도 매 라운드 밑에 있지 말고 치고 올라왔으면 좋겠다. 물론 감독들과 선수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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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시즌 K리그 홍보대사로 위촉된 인터넷 방송 BJ 감스트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다. 한 저명한 언론 관계자는 "확실히 영상 매체가 경쟁력이 있다. 감스트의 영향력이 대단하더라. 나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포털 뉴스에서 댓글 달던 사람들이 다 감스트 방송 시청자였다"라고 말했다. 축구판에 스며들어 그 속에 있는 이야깃거리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그와 뉴스 매체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의 현장 방문 소식을 들은 문선민은 그의 '별풍선' 리액션 댄스를 골 세리머니로 따라 췄다. 이렇게 또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다.

시즌 초반 펼쳐지는 이 복잡한 분위기가 시즌 끝까지 잘 이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더 많은 사람이 다음 시즌을 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프로야구 개막, 봄철 미세먼지, 러시아 월드컵, 여름 이적 시장에 불어닥칠 스타들의 이탈이라는 굴곡이 눈에 밟힌다. 시즌 중반을 거치면 복잡한 승점 계산과 무더위로 힘 빠지는 경기도 나올 것이다. 시즌 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시즌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일종의 '지구력'이 필요한 법이다. 말컹과 이동국은 시즌 끝까지 골을 넣을 수 있을까. 감스트는 한 시즌을 통틀어 얼마나 다양한 K리그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을까.

난세에 영웅은 탄생하는 법이다. 영웅의 발자취에는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난 그 이야기보따리에 들어있을 '음식'들이 궁금하다. 이번 시즌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끝내 K리그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선수들은 누가 될까.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다.

축구장 안팎에서 등장하는 영웅과 스타들이 반갑다. 남극보다 추웠던 겨울을 잊을 수 있는 건 그들 덕분이다. 말컹과 레오가말류, 문선민, 감스트에게 감사하다. K리그2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고무열과 공민현도 고맙다. 앞으로 고마워할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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