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KBL 제공

  •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3월이다.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봄이 다가오고 있지만 최근 찬 바람 쌩쌩 부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성 스포츠 이야기다. 사실 진부한 이야기다. 여성 스포츠는 항상 이렇게 종목을 가리지 않고 찬 바람이 불었다. 오히려 이런 소식 없이 평안하게 지나가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최근 나를 안타깝게 했던 두 가지 소식을 전하며 여성 스포츠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아무도 지켜볼 수 없는 지소연의 역사적인 순간

한국 여자축구는 8일 새로운 역사를 쓸 뻔 했다. 포르투갈에서 열리고 있는 2018 알가르베컵에서 지소연이 출전한 것이다. 이 경기 출전으로 인해 지소연은 정확히 A매치 100경기를 채울 수 있었지만 폭우로 경기가 취소되며 아쉬움을 삼켰다. 만일 경기가 진행됐을 경우 한국 여자축구 사상 4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이다. 2015년 권하늘, 2016년 김정미, 2017년 조소현에 이은 기록이다.

특히 지소연의 100경기 출전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지소연은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역사다. 2006년 10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사상 최연소 나이(15세 8개월)에 A매치 무대를 처음으로 밟았고 한국 축구 역대 최연소 A매치 득점 기록(15세 293일) 또한 그녀가 갖고 있다. 그렇게 지소연은 10년 넘게 한국 여자축구를 지탱해 왔고 지금도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지소연의 센추리 클럽 가입이 이제서야 됐다는 것이다. 무려 국가대표를 11년 가까이 뛴 지소연이다. 게다가 국가의 부름에는 언제나 달려왔던 지소연이다. 하지만 약 10년 반 동안 지소연은 이제 100경기를 채웠다. 남자 대표팀에 지소연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벌써 센추리 클럽은 가입하고도 남았다.

정말 오랜 세월 끝에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스포츠니어스

전 세계적으로 남자축구보다 여자축구는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여자축구와 여자 대표팀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조금 더 이루어졌다면 한국 여자축구의 경쟁력도, 지소연의 A매치 경험도 많았을 것이다. 지소연도 "A매치가 조금 더 많이 열렸다면 센추리 클럽 가입이 더 빨랐을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른 한 가지는 중계다. 지소연의 100경기 출전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다. 게다가 알가르베컵은 결코 작은 대회가 아니다. FIFA 여자 월드컵, 올림픽 여자축구 종목 다음으로 큰 대회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장면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없다. 국내 미디어의 관심은 남자축구의 그것보다 확실히 덜하다. 물론 나와 <스포츠니어스>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웃 국가는 알가르베컵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알가르베컵에 취재진이 파견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같은 미디어 종사자의 입장에서 미디어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그리고 미디어는 독자들이 관심 가지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소연의 100경기가 소외되는 모습은 아쉬울 따름이다. 나 자신부터 반성할 부분이다.

생계 걱정해야 하는 여자 프로농구

그 와중에 여자농구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18년 동안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여자농구 KDB생명이 올 시즌을 끝으로 해체한다는 것이다.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팀의 마지막은 너무나 씁쓸했다. 마지막 경기인 2017-18 신한은행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KEB하나은행에 61-84로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시즌 22연패와 최하위라는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KDB생명은 3월 31일까지 팀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후는 WKBL(여자프로농구연맹)이 위탁 운영에 들어간다. WKBL은 임시로 팀을 맡으며 계속해서 인수 기업을 찾을 예정이다. 하지만 앞날은 결코 밝지 못하다. 선뜻 많은 운영비를 들여 팀을 맡겠다는 기업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WKBL이 새 기업을 찾지 못한다면 여자프로농구는 5개 팀 체제로, 선수들은 실업자가 될 상황이다.

정말 오랜 세월 끝에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스포츠니어스

KDB생명의 해체 원인은 모기업의 경영 악화다. 모기업이 매각 위기에 휘말리면서 더 이상 농구단을 운영할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렵다. 과거 여자 실업농구는 10개 팀이 넘어가는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현재는 6개 팀 체제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토막이 난 셈이다. 점점 여자 프로농구의 파이는 줄어간다. 그리고 선수들이 설 자리 또한 없어지고 있다.

사실 계속해서 6개 팀 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다. 새 기업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쉽지 않다. 만일 여자농구가 기업들에 매력적인 존재였다면 새 기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농구에 매력을 느낄 만한 기업이 쉽게 나타날지 의문이다. 여러 미디어는 계속해서 WKBL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새 기업을 찾기 위해서는 상당히 고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남자 프로농구의 경우 꾸준하게 10개 팀을 유지하고 있다. 여자 프로농구와 엇갈리는 모습이다. 시장성이나 규모 등에 비해서 남자 프로농구는 여자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남자 프로농구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고 경쟁 스포츠인 프로배구와 밀린다는 우려 또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 프로농구는 그런 걱정조차 사치로 들릴 수준이다.

찬 바람 쌩쌩 부는 한국 여성 스포츠의 현실

두 가지 장면을 보면서 아직 한국 여성 스포츠에 대한 차가운 현실을 목도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물론 프로는 냉혹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것이 프로다. 그리고 선수들은 그 관심을 먹고 산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프로로서의 존재 이유는 점점 줄어든다. 여성 스포츠에서 프로화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도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장기적으로 여성 스포츠의 위축 또한 가져온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마냥 던져놓고 '알아서 살라'고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여성 프로 스포츠는 전 세계적으로도 얼마 없다. 각 종목 단체나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해 고민해야 한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사람들과 미디어의 관심을 유도하도록 도와야 한다.

최근 보게 되는 두 가지 사례는 비단 해당 종목에 국한시킬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축구 WK리그 역시 이천 대교의 해체로 홍역을 앓았다. 여자 농구는 선수 발굴과 저변 확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단순히 그들 만의 몫으로 남기고 그들의 책임으로 넘겨서는 안된다. 그들의 책임 또한 분명히 있겠지만 여성 스포츠에 대한 정책이 미비한 것 또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모범답안은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만들어야 한다. 여성들의 프로 스포츠 또한 남성들의 그것만큼 존중받아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 여성 스포츠는 단순히 시장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봄은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한국 여성 스포츠에는 봄이 오려면 먼 것 같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