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상무 선수들의 가장 군인다운 모습. ⓒ상주상무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05년 군대에서 말년 휴가를 나가기 직전 내 딴에는 화가 날 일을 겪었다. 이제 곧 민간인이 될 마음에 부풀어서 머리를 조금씩 기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소대장이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으면 말년 휴가를 내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아니 며칠만 지나면 나는 민간인이 되는데 말년 휴가 때까지도 머리 지적을 받는 게 몹시 기분이 안 좋았다.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버틸 만큼 버티다가 말년 휴가를 가는 날 아침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확인을 받은 뒤 부대를 나올 수 있었다. 이후 소대장에게 삐쳐 제대 날에도 인사도 대충 하느니 마느니 했다.

지난 주말 경기에 출장한 상주상무 선수들의 머리는 이랬다. ⓒ중계 화면 캡처

투 블록 컷까지 한 상무 선수들

상주상무의 요즘 분위기가 냉랭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상주상무 소속인 김병오가 전지훈련 도중 성 관련 사고에 연루됐고 이후 선수단 내부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김병오는 현재에도 괌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만난 상주상무 김태완 감독과 선수들도 최대한 조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내부에서 김병오와 관련된 이야기도 꺼내는 게 금기시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 선수들도 김병오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물으면 말을 최대한 아꼈다. 그들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도 꽤 있었는데 과거보다는 그래도 군기가 꽤 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 벌어진 K리그 경기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긴 머리로 경기에 나서는 군경팀 선수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옆머리만 짧게 자르고 윗머리와 앞머리는 기른 선수도 있었다. 멋을 잔뜩 냈다. 이 정도로 멋을 내지는 않았어도 대부분 선수들도 민간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머리가 길었다. 아무리 상주상무에 군기가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당장 사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에 왁스 칠만 좀 하면 전혀 군인으로 보이지 않을 선수들이 즐비했다. 더군다나 김병오의 성 관련 사고 이후 바짝 군기가 들어 있어야 할 선수들의 두발 상태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너무 삐뚤어진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두발 자율화가 된 고등학교 학생들이 염색을 하건 머리를 기르건 멋을 내며 축구를 하는 건 자유다. 그들이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축구하는 걸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군인 신분은 다르다. 이건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규정의 문제다. 얼마나 상주상무 선수들이 군기도 없이 느슨한 통제 속에 생활하면 민간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긴 머리도 그대로 방치할까. 군대에서 투 블록 컷이 허용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상주상무 선수 일부는 투 블록 컷으로도 멋을 부렸더라.

지난 주말 경기에 출장한 상주상무 선수들의 머리는 이랬다. ⓒ중계 화면 캡처

외국인 선수 머리가 가장 단정하더라

심지어 2014년 전역한 이승현은 상주상무 시절 군인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헤어 스타일로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그 누구도 군인 선수의 이런 튀는 헤어 스타일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군인의 이름을 달고 대중에 나서는 대표 선수들이라면 복장과 두발 규정이 더 까다로워야 되는 것 아닌가. 휴가를 나가면 민간인 앞에 선다는 이유로 머리 길이는 물론 손발톱까지 검사할 정도로 군인의 복장은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텔레비전과 기사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되는 상주상무 선수들의 불량한 머리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다. 머리가 길고 거기에 멋까지 부린 군인을 이 사회에서는 군기가 든 군인이라고 인정해주기 어렵다.

경찰팀인 아산무궁화 역시 마찬가지다. 육군과 머리 길이 규정이 다를 순 있어도 경찰대학 소속인 이들이 일반인 수준의 머리 길이로 활동하는 건 안 된다. 하지만 아산의 경기를 보면서도 이 선수들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헤어 스타일을 보며 기가 찼다. 아산-안산전을 보는데 머리가 가장 단정한 건 안산의 외국인 선수 코네였다. 경남-상주전에서 가장 짧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한 건 선수가 아니라 상주 김태완 감독이었다. 웃프고도 황당한 일이다. 성 관련 사고까지 터지며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머리 스타일을 보니 이 당나라 군대 어디 안 간다. ‘무슨 머리 길이 하나까지도 태클을 걸고 있느냐’고 바라보지 말고 이런 나태한 복장 규정으로 임하는 군인들의 자세를 지적하자.

군대에서 공 차는 것도 엄청난 특혜인데 이런 나태한 복장까지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넘어가면 최전방에서 머리 빡빡 밀고 경계근무 서는 군인들 사기는 뚝뚝 떨어진다. 심지어 상주상무의 어떤 선수는 머리가 너무 길어 가르마까지 타고 있더라. 군대에서 가르마 탄 머리는 나이 50먹은 원사 말고는 본 적이 없는 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로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 이 정도 복장 군기도 못 잡으면서 성 군기는 어떻게 잡고 단체 생활은 어떻게 통제하는지가 걱정되는 거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고 유연해졌어도 군인이 짧은 머리를 고수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건 시대의 흐름과는 별개의 문제다.

지난 주말 경기에 출장한 상주상무 선수들의 머리는 이랬다. ⓒ중계 화면 캡처

군인 선수들의 문신은 점점 커져 가고

심지어 어떤 선수는 휴가 기간 중에 문신이 더 커졌다. 원래 있던 문신을 더 키워 팔뚝 전체를 덮었다. 문신이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신분이 군인이라면 문제다. 일반적인 군대에서 휴가를 나간 군인이 팔뚝을 뒤덮는 문신을 하고 부대에 복귀했다고 가정해 보자. 부대에서는 어떤 징계를 주고 어떤 갈굼을 선사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이 선수뿐 아니라 지금껏 상주상무를 거쳐간 많은 선수들은 군 생활 휴가 틈틈이 문신의 크기를 키웠다. 당당히 휴가 때 상주상무 선수들이 문신을 하러 왔다고 인터넷에 인증샷과 함께 문신을 올리며 홍보하는 타투이스트도 있다. 내가 머리 길이 따위로 태클을 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정도로 공 차는 군인들의 군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머리 싹 다 밀어라. 투 블록 컷이고 뭐고 진짜 군인답게 밀어라. 그리고 지금까지 새긴 문신이야 어쩔 수 없지만 휴가 때마다 문신을 새기고 오는 군인이 있다면 규정에 따라 징계도 줘라. 나도 말년 병장 때는 머리 하나 가지고 문제 삼는 소대장이 얄미웠지만 규정은 규정이다. 축구선수 이전에 군인 신분이라는 걸 망각해서는 안 된다. 골 넣고 거수경례 세리머니하는 것 정도를 빼면 상주상무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군인이라고 느껴지는 적이 거의 없다. 학창시절부터 군 생활까지 반항적으로 살았던 내가 상주상무 선수들 머리 길이를 지적하는 날이 올지는 몰랐다. 이게 ‘꼰대’라면 ‘꼰대’가 되련다. 하지만 가뜩이나 당나라 부대 소리 들으며 군기가 개판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들은 겉모습부터라도 군인다워야 한다.

상주상무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가면 다음 날 아침 국군체육부대장 책상에 전날 보도 내용이 다 스크랩돼 보고된다. 혹시 이 칼럼도 보고 대상이 될 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침 출근 후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이 칼럼을 보고 있을 국군체육부대장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당부하고 싶다. “국가를 위해 불철주야 힘쓰시는 모습 감사드립니다. 북핵 위협이 날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화전양면 전략전술을 쓰는 북괴가 또 언제 도발을 해올지 모릅니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전, 조국수호를 위해 상무 선수들의 머리는 짧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더 빡세게 굴려주세요.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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