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영남 위원장의 ‘경평축구’ 발언, 어떻게 봐야 하나

남북 축구
남과 북은 이렇게 1990년 우여곡절 끝에 손을 맞잡고 평양에 섰다. ⓒMBC 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지난달 11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북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오찬을 가졌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며 주로 평창 동계올림픽 등이 대화의 주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얼어붙어 있던 남북 대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필요한 오찬이었다. 오찬 중 김영남 위원장은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에게 발레공연을 요청하기도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추가로 알려진 제안의 내용이었다. “체육·문화·예술 분야에서 남북 간 교류가 필요하다”라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에 말에 김영남 위원장은 “경평축구를 다시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김영남 위원장이 언급한 경평축구가 1929년에 최초로 열린 ‘경성군과 평양군 축구대항전’을 의미하는지, 혹은 1990년에 열렸던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의미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총리실에서 오간 대화를 살펴보면 남북대결의 의미가 깊은 듯 보이나 같은 날 박원순 서울 시장이 최휘 북한 국가체육위원장에게도 전달한 ‘경평축구 부활’ 메시지는 서울지역 축구팀과 평양지역 축구팀의 축구대항전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팀과 평양팀의 축구대항전이라니. FC서울이나 서울 이랜드FC, 혹은 서울유나이티드풋볼클럽이나 서울중랑축구단이 4.25 체육단, 평양시체육선수단과 대결을 펼친다면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해당 소식을 접한 팬들의 의견은 충돌했다. “남북을 위해서도 좋은 기회”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스포츠가 정치쇼에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라는 서로 다른 의견이 나타났다. 해당 논쟁은 지난달 국내 대형 축구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FC서울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논란이 일었다. 해당 논쟁은 평창 동계 (비장애인)올림픽 때문인지 더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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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1990년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친선 경기를 펼쳤다.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맞붙은 남과 북 선수들의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정책방송원

평창 올림픽의 ‘반전’을 보면서

평창 올림픽이 마무리되면서 경평축구 이슈를 다시 꺼내 들 필요가 생겼다. 평창 올림픽은 개막 이전만 해도 ‘천덕꾸러기’ 같은 올림픽이었다. 정치·외교·산업 측면을 고려해도 북한의 참여는 꼭 필요했다. 허상에 가까운 ‘경제효과’를 들이댄 올림픽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화’를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했다. 올림픽이 그나마 ‘성공’에 가까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준’을 다르게 잡아야 했다. ‘돈벌이’를 위한 올림픽이 아닌, “싸우지 말고 다 같이 모여 스포츠 잔치를 즐기자”라는 정서가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평창 올림픽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벌여 놓은 판이 있기에 경제·환경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평가를 피해 가기는 힘들 것이다. 경기장 사후활용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으며 인근 주민들은 살던 동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흥행 참패’를 예상했던 올림픽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감동과 환호의 순간들이 있었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질책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신도 호평을 내놓았다. 소치와 리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평창을 향해 “성공적인 올림픽”이라며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평창 올림픽이 열리기 전 온 나라에 가득했던 ‘싸늘한’ 정서를 기억해보면 지금의 분위기는 성공이라는 말을 대입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북한의 참가 없이 이렇게 국내·외로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서로 적대하고 있는 나라가 ‘잔치’에 함께 참여한다는 모습은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2월 한 달만큼은 온 나라가 평창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온 세계가 평창을 주목했다.

‘숭고함’과 ‘실리’의 사이

통영에서 춘계대학축구연맹전을 취재하면서 K리그 관계자와 식사를 할 시간이 생겼다. 그 관계자는 K리그를 향한 관심과 노출도와 관한 이야기를 하며 “K리그는 왜 TV 공중파에 광고를 넣지 않을까”라는 말을 했다. K리그가 개막하기 전에 열렸던 미디어데이에서는 인터넷 방송 BJ 감스트의 홍보대사 위촉을 두고 기자들끼리 여러 말이 오갔다. “연맹의 무리수”라는 말이 있는 한편 “어떻게라도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미디어 관계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K리그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K리그가 ‘어떤지’ 알리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밝힌 적도 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괴리감 같은 게 느껴졌다. 축구판에서 축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면 축구를 향한 맹목적 사랑에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K리그에 참여하는 축구 팬이나 미디어 종사자들은 그저 축구와 K리그가 좋아서 K리그라는 콘텐츠에 빠져들지만 여전히 K리그는 ‘마이너’다. 아니, 스포츠라는 ‘장르’가 어느 순간부터 ‘마이너’가 된 느낌이다. 여기서 ‘실리적 문제’가 떠오른다. 야구를 제외한다면 ‘태극기’ 없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들은 적다. 옆 나라 중국과 일본만을 비교해봐도 K리그의 협소한 시장은 처참할 정도다. FC서울에서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 데얀의 소식이 공중파 스포츠뉴스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는 점은 조금 쓸쓸하다.

무엇이 중요할까? 우리가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던 대전제와 같이 결국 중요한 것은 축구일까? 그렇다. 이 대전제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K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일까? 선발 포메이션이 어떻고 전술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했다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보다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K리그 콘텐츠를 노출시키는 게 더 중요하진 않을까? 싸늘함 속에 흥행 참패를 예상했던 평창 올림픽의 흥행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느 시점에서, 어떤 계기로 올림픽은 반전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팀 킴’은 국민이 응원하는 여자 컬링팀이 될 수 있었을까? 식견이 짧은 나로서는 당장 답을 내기가 어렵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1일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북한 고위급대표단과의 오찬을 주재하고 있다 ⓒ 국무총리비서실

경평축구, 즐길 수 있나요?

다시 경평축구로 돌아오자. 좀 더 구체적으로 ‘지역팀 대항전’이라는 의미의 경평축구를 생각해보자. 경평축구가 실제로 열린다면 이벤트 경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남한과 북한의 고위급 간부들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합의를 끌어낸다면 이걸 막을 힘은 없다고 본다. 아쉽게도 축구 팬들의 목소리는 어떤 형태로든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평창 올림픽으로 간신히 열린 남북 대화의 통로가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발레든 축구든 교류가 필요하다. 정치·외교의 수단으로 축구가 이용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틀어서 본다면 어떨까? ‘축구’가 아닌 ‘서울 연고의 팀들’이 정치·외교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서울 시민들을 넘어 국민의 이목을 축구장에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스토리는 얼마나 무궁무진할까? 여자 컬링 한일전과 같이 서울 연고 팀이 국민적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선수들의 가슴 위에 새겨진 ‘태극기’가 아닌 팀의 엠블럼이 주목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좋은 기회를 버리고 싶은 팀은 없을 것이다.

한편 경평축구가 열릴 가능성을 두고도 의견이 충돌했던 만큼 축구 외적인 이유로 잡음이 들릴 가능성도 크다. 리그 일정도 문제다. 경평축구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위해 K리그와 K3 리그에서 뛰는 서울 연고 팀의 희생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올해처럼 월드컵이 열리는 해라면 K리그1에서 뛰는 FC서울은 여름 일정에 여유가 있기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월드컵이 열리지 않는 해에는 이 문제를 피해가기 어렵다. 또한 다른 종목과는 달리 축구가 갖는 문화적 특성 때문에 오히려 남북 평화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경평축구의 특성상 남북 대결의 라이벌리즘이 만들어질 텐데 축구의 라이벌리즘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평화적 교류를 목적으로 열린 경평축구에서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치는 서포터즈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1929년부터 펼쳐졌던 경평축구도 과도한 승부욕으로 싸움이 잦아져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는 설이 있다.

경평축구가 실제로 열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에도 조선인들의 축구 자부심은 컸다. 게다가 김영남 위원장의 입에서 직접 나온 얘기이기에 함부로 흘려들을 수는 없다. ‘포스트 평창’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정치·사회·외교적 키워드임을 고려하면 이후 남북대화의 흐름에 따라 달려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서울팀과 평양팀의 경평축구대항전이 ‘열린다’는 가능성에는 “K리그와 서울지역 연고 팀으로서는 반길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전에 서울 시민, 우리나라, 북한 정부는 경평축구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의식적 수준이 되어있는지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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