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포항 스틸러스 김승대는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올 시즌 포항의 도약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김승대를 <스포츠니어스>가 만났다. 그는 장시간 동안 축구와 개인사를 넘나들며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올 시즌 K리그1(클래식) 개막을 앞두고 김승대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쌍사'와 '라인 브레이커'의 이미지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팀을 위해서 그는 기꺼이 변신을 꾀할 생각이었다.

새 시즌을 눈 앞에 두고 있다. VAR 왜 하는지는 알았나?

지난 시즌 VAR에 대해 항의하다 받은 7경기 출장 정지 사후 징계가 정말 아쉬웠다. 특히 팀에 미안했다.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경기에 계속 나왔으면 분위기도 좀 더 살아날 수 있었고 팀에 도움도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징계를 받으니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물론 지난 시즌에 팀이 나쁜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했던 방향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VAR은 이제 정말 잘 알았다. 전지훈련장에서 연맹 교육도 받았다. 내가 포항에 돌아왔을 때 VAR 도입 초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당시 나는 VAR에 대해 잘 몰랐다. 중국에서 한국 사이트에 접속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한국 뉴스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저 'VAR이라는 것이 있다더라, 그냥 잘못된 부분 다시 판정하는 거라더라' 정도만 알았다.

축구를 하면서 경고를 받은 기억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그 때는 나도 정말 많이 놀랐다. 퇴장이라는 기분도 몰랐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매를 먼저 맞은 것 같다. 징계 받을 당시 혼자 송라 클럽하우스에 남아 운동하는데 참 답답하더라.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중국 가기 전에 VPN 우회라도 배워갔어야 한 것 아닌가.

그런 게 있다고 듣기는 했다. 그런데 잘 되는 것도 없다고 하더라. 옌볜이 인터넷 좋은 동네는 아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종량제더라. 쓰는 만큼 돈을 내야 하더라. 게다가 집 와이파이가 아니면 몽땅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 내가 중국어라도 잘했으면 어떻게 해보는데 중국어도 배우질 못했으니 동료들에게 물어보면서 겨우겨우 인터넷을 한 적도 있다. 쉽지 않았다.

말 나온 김에 중국 생활을 한 번 추억해보자. 어땠는가?

좋았던 기억이 많다. 나는 옌볜 옌지에 살았다. 도시 규모를 비교하자면 포항 같은 동네다. 고향에 간 느낌이었다. 의사소통도 중국인만 만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 나는 포항 출신이라 옌볜 사투리도 다른 한국 선수들에 비해 먼저 알았다. 눈치가 빠른 것일 수도 있다. 윤빛가람 등 팀 동료들이 내가 사투리를 알아채면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옌볜의 축구 열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말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EPL이나 스페인 라리가 수준이다. 거기서는 "관중 더 받았다가는 경기장 무너진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홈 경기는 항상 만석이다. 2만 5천 명 정원인데 꽉 들어찬다. 사람들도 옌볜 옷 입고 일하고 옌볜 유니폼 입고 돌아다니고 자동차에 옌볜 엠블럼 붙어있을 정도다. 거기는 매일매일이 월드컵이었다.

옌볜 팬들은 한국 전지훈련까지 따라올 정도로 열정적이다 ⓒ 스포츠니어스

그런 곳에서 축구를 하니까 희열이 느껴지면서 책임감이 들었다. 짜릿하면서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옌볜에서 골 욕심이 비교적 많았다. 이런 경기장에서 골을 넣으면 함성 소리가 엄청나다. 그리고 서포터들의 골 뒷풀이 퍼포먼스가 굉장히 멋있다. 그런 모습과 함성을 한 번 더 듣고 싶고 보고 싶어서 골을 넣고 싶었다. 지금도 그 함성 소리는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정도면 김승대 본인의 인기도 대단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한 번도 느껴보기 어려울 법한 팬들의 열정을 느꼈고 그 정도의 대접을 받았다. 어디 쇼핑하러 매장에 가도 알아보고 밥 먹으러 식당에만 가도 알아본다. 무조건 사진부터 찍더라. 그런데 옌볜 만의 문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독특한 점이 있었다. 내게 다가와서 "사진 찍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멀리서 나를 일명 '도촬'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야말로 먼 발치에서 나를 찍는 것이다. 그리고 SNS에 그 사진을 올린다고 하더라. 그러면 '김승대 XX식당에서 뭐 먹고 있구만' 같은 말들이 댓글로 달린다고 하더라. 그런 사진이 엄청 많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팬들의 관심은 감사하지만 사생활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이 80% 정도는 된 것 같다. 한국 선수들 또는 현지에서 친해진 선수들과 마트에서 쇼핑을 하거나 같이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할 때, 저녁 같이 먹을 때가 외출의 전부였다. 그 외의 시간은 전부 집에만 있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의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는가?

주로 옌볜 사투리와 관련된 얘기들이다. 처음 옌볜에 갔을 때 사투리 때문에 당황했다. 옌볜은 팀 내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다보니 훈련도 실전처럼 하고 거친 면이 있다. 한 번은 팀 내 연습경기를 뛰다가 내가 발이 밟힌 적이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발을 밟았던 팀 동료가 내게 다가오더니 "아까 밟았는데 일 없니?"라고 묻는 거다. 알고보니 '일 없니?'가 '괜찮니?'의 뜻이었다. 순간 고민했다. '내가 계속 아프면 일 있다고 말해야 하나…'

다른 날에는 근육을 다쳐서 치료실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한 선수가 치료실에 들어왔다가 나를 보더니 묻더라. "어디 상했니?" 내가 음식도 아니고 뭘 상했다고 하는 건지… 알고보니 '상했다'라는 말이 '다쳤다'라는 뜻이더라. 처음에는 이런 사투리가 웃기고 재밌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또 이게 맞는 말들이더라. 사투리를 통해 조금씩 옌볜에 적응했다.

하지만 타지 생활이니 힘든 점도 있을 것 같다.

원정이 제일 힘들었다. 진짜 중국은 말도 안되게 큰 동네다. 국내를 이동하는데 한국에서 외국 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 와중에서도 옌볜 팬들은 원정까지 따라오시더라. 우리도 피곤해서 2~3일 전에 가는데 팬들은 그보다 더 빡빡한 스케줄로 원정 경기에 온다. 그것도 눈에 정말 잘 띄일 만큼 많이 오신다.

제일 힘든 원정은 광저우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환승을 한 번 한다. 비행 시간은 총 여섯 시간 가량 된다. 정말 한숨나오는 것은 광저우에 CSL 팀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팀이다. 광저우 헝다와 광저우 푸리. 만일 연달아 광저우 원정이 있으면 그곳에 계속 머무르면서 후다닥 광저우 원정을 해치우면 된다. 그런데 꼭 몇 주 간격으로 절묘하게 있다. 옌볜으로 돌아왔다가 광저우로 다시 갈 때 그 기분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광저우만큼 만만치 않은 곳이 있다. 허베이(화샤 싱푸)다. 다른 팀 원정은 모두 비행기로 가는데 허베이는 꼭 기차를 타고 간다. 우리나라 KTX 같은 고속 열차를 타고 가는데 7시간 정도 걸린다. 한국에서는 KTX로 3시간 가량이면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는데 여기는 7시간을 가는 것이다. 처음에 7시간 간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빠른 기차가 7시간을 주구장창 달리면 도대체 얼마나 먼 거야?'

한국에서는 주로 버스로 이동하지 않는가. 중국은 그런 것 없다. 첫 번째는 비행기, 두 번째는 고속 열차다. 버스로 이동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옌볜에서 가까운 베이징 가는데만 버스로 24시간 걸린다. 나중에 포항에 돌아와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정말 행복하더라. 너무 좋았다.

원정 말고는 음식이 힘들었다. 옌볜에서는 음식이 비슷한데 원정 경기를 가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옌볜 선수단이 단체로 밥을 먹을 때는 비슷한 음식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포 선수들도 있지만 한족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중국 음식이 같이 나온다. 100% 만족할 수는 없었다. 입맛에 맞는 음식 한두 가지 발견하면 그것만 먹고 저녁은 한국 선수들끼리 사먹고 그랬다.

다시 해외 진출의 기회가 온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좋은 기회라면 나가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외국과는 좀 안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누가 함께 가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겠지만 혼자 나가서는 많이 힘들 것 같다. 내가 입맛이 100% 한국인이라 더 그런 것 같다. 한식 좋아하고 김치찌개 이런 것 즐겨 먹는다.

옌볜 팬들은 한국 전지훈련까지 따라올 정도로 열정적이다 ⓒ 스포츠니어스

한국에 오니까 참 좋더라. 음식도 좋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도 정말 좋았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가고 싶으면 내 손으로 직접 운전해서 가면 되고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를 해도 말이 통하고 쇼핑을 한다는 것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행복했다.

포항 복귀하자마자 쌍사(쌍용사거리)에서 소주 한 잔 했을 것 같다.

에이, 아니다. 내 수식어 중 하나가 쌍사인 것은 알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온 건데 이게 막상 수식어가 되니 사람들이 내가 쌍사에 엄청나게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포항 복귀하고 나서는 정말 쌍사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친한 친구들과 특별한 날이거나 모임이 있는 게 아니라면 거의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아마 사람들도 쌍사에서 나를 자주 못봤을 거다.

내가 포항에 처음 왔을 때가 20대 초중반이었다. 그 때는 내가 뭐 알겠는가. 그냥 친구가 좋고 친구가 좋으니 사람도 만나고 그랬던 거지. 요즘은 거의 집 아니면 카페에 있는 편이다. 포항 복귀 이후 쌍사에 얼굴을 비춘 적은 몇 번 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집 밖으로 잘 안나간다. 지금은 어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다.

일부러 '쌍사' 수식어를 떼려고 외출을 자제하는 것인가?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쌍사라는 수식어가 신경 쓰이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신경이 쓰이는 것도 나이를 먹어서겠지. 그리고 신경 써야 할 나이고. 사실 요즘은 만사가 귀찮다. 다 귀찮아서 큰일이다. 집에서 쉴 때는 그냥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웃긴 TV 프로그램 보고 있으면 재밌고 좋더라.

하긴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내가 속된 말로 '내일 모레 계란 한 판'이다. 진짜 내가 언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축구 한 1~2년 한 것 같은데 벌써 6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중국도 갔다왔다. 너무 금방 지나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보여 고민이다.

SNS 안하는 것부터 아저씨 냄새가 팍팍 난다.

사실 SNS는 오래 전부터 끊었다. 6~7년 정도 됐을 거다. 프로 입성 후 안했다. 딱히 뭔가 계기가 있어서 SNS를 탈퇴한 것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나도 SNS를 했다. 그곳에 웃긴 게 많으니 동영상 보려고 가입했다. 실제로 보고 있으면 재밌다. 누가 어떤 신상품을 샀고 누가 운동화 예쁜 거 샀는지 구경하고 좋았다. 궁금해서 검색도 하면 친절하게 다 알려준다. 잘 보고 있었다.

그런데 SNS를 하다보니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더라. 내가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 셀카도 잘 못찍는다. 그런데 SNS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번씩 셀카도 올리더라. 나는 그런 것에 자신감이 없었다. 내 얼굴을 보면 딱 느낌이 온다. 솔직히 내가 정우성의 얼굴을 갖고 있으면 매일매일 자신있게 다니면서 사진 찍고 소통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우성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SNS를 탈퇴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다시 가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록 포항의 F4(고무열, 김원일, 배슬기, 배천석)는 해체됐지만 그래도 배슬기 등이 건재하는데 너무 자신감 없는 것 아닌가?

내 외모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탁월한 것도 아니다. 우리 팀 최고의 꽃미남은 주장 (김)광석이 형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인 내가 봐도 멋있다.

저런, F4가 그리울 것 같다.

그 때가 참 좋았다. 포항 F4가 정말 대단하지 않았는가? 나도 그 당시 F4가 있어서 든든했다. 요즘은 F4를 잇는 새로운 계보를 만들고 싶다. 뭔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다. 최순호 감독님은 공항에 가거나 KTX 타러 기차역에 갈 때 운동복 차림으로 가는 것을 싫어한다. 정장까지는 아니지만 깔끔하게 입을 것을 요구한다. 그럴 때마다 '워스트 드레서' 같은 것을 뽑아도 좋고 데뷔전을 치른 신인들은 경기장에서 팬들 앞에 장기자랑도 한 번 하면 좋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을 팬들 앞에 선보이면 좋지 않겠는가?

F4 같은 것을 다시 결성하면 본인이 포함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해봤는가.

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몇 번 공항에 모인 적이 있는데 내가 그래도 F4까지는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후배들 얼굴은 앳된데 옷 입는 걸 보니 옛날 복고풍 느낌이 물씬 나더라. 적어도 나는 아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순서대로 하면 나는 F4에 포함된다.

아직 서른 줄도 접어들지 않았는데 무슨 말인가.

정말이다. 내가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닌데 벌써 고참의 위치에 서있다. 포항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가 세 명 밖에 없다. 내가 네 번째다. '팀에서 네 번째로 나이가 많다'라고 하면 30대 느낌 아닌가. 그런데 그게 나다.

이제는 신인 선수들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내가 저 때 저랬나?'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요즘은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프로에 오는 선수들이 꽤 있다. 나는 대학을 갔다오고 좀 늦게 프로에 들어온 편이다. 그래서 더 깜짝 놀란다. 한 번은 연말이었다. 몇 살이냐고 물어봤더니 19세란다. "너 여기 어떻게 왔어? 너 미성년자 아니야?" 했더니 웃으면서 미성년자 맞단다.

옌볜 팬들은 한국 전지훈련까지 따라올 정도로 열정적이다 ⓒ 스포츠니어스

"너 그럼 1월 1일 자정 땡 치면 성인 되는 거야?"라고 다시 물어봤더니 맞다는 것이다. 사실 내게 있어서 프로라는 곳은 성인들만 모여서 뛰는, 그런 분위기의 무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신인들을 보니 많이 놀랍고 부럽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뭘 그 정도 가지고 놀라나. 곧 당신은 2000년생과 같이 뛸 것이다.

정말 매년 태어난 년도를 들을 때마다 깜짝 놀란다. 지금 대학 신입생들도 18학번이라고 하더라. 곧 있으면 20학번 들어오겠네. 나는 10학번이었다. 그리고 1991년생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나이 또래는 숫자 하나가 민감하다. 0 하나 차이가 엄청 크다. 만일 내가 09학번이고 1989년생이면 엄청 늙어보일 거다. 그나마 10학번이고 91년생, '1라인'이고 '9라인'이니 마지막으로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는 거다. 그래도 나이는 먹어가고 있다. 걱정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진다.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어릴 적부터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다 함께 웃으면서 사는 것이 좋다. 다들 재밌고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고 모두가 잘됐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을 위해 욕심 부리지 않는다. 항상 '나 아닌 모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나 혼자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더욱 좋다. 내가 3만원이 있고 친구가 100원 밖에 없다면 내가 3만원을 다 쓰더라도 그 친구까지 행복해지는 것을 좋아한다.

학생 시절에도 1,000원이 생기면 혼자서 PC방 한 시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 500원, 친구 500원 해서 딱 PC방 30분 씩 하고 나왔다. 자기 자랑 같아서 살짝 민망한 이야기지만 15년 넘게 만나고 있는 주변 친구들이나 팀의 선배들이 "너 같은 애가 없다"라고 칭찬한다. 이런 것이 소소한 재미다.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직진이다. 이렇게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미래의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은 항상 꿈을 꾸고 상상하면서 산다. 나도 그렇다. 내가 꿈꾸는 부분이 있다. 원하는 것도 있고. 축구에 대한 꿈도 있고 아주 개인적인 꿈도 있다.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다. 솔직히 내가 내 꿈을 먼 미래에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쉽게 말 못하겠다. 내가 이 꿈을 꾸고 있었다고 말하면 "어우 유치하다, 어우 이게 뭐야?" 할 수도 있고 "우와"라고 탄성을 뱉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중에 꿈을 이뤘을 때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거였다고 말하겠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당장 올 시즌 포항부터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포항에 복귀했을 때 아는 선수가 몇 명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나는 국가대표에 소집되서 비교적 늦게 포항의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사실 나는 마음이 급하다. 3월 3일 전까지 새로운 선수들, 그리고 동생들과 발을 맞춰야 한다.

올 시즌 떠난 선수들이 유독 그리울 것 같다. 누가 가장 그립나?

손준호. 그래도 준호와 뛰면 라인을 타는 등 그런 좋은 장면들이 몇 배는 더 많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준호가 대충 찬다는 이미지는 있다. 하지만 나 또한 준호가 그렇게 차는 것을 알고 있다. 워낙 잘 맞는 선수고 동생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좋은 기회가 왔다면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 터키 전지훈련에서 준호와 같은 방을 썼다. 이제 같은 팀 동료도 아니니 겁을 줬다. "너는 이제 포항 오면 겸손해져라. 스틸야드 오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뭐 하나 하려고 하면 너는 죽는다. 네가 골이나 도움을 기록하는 순간 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만히 있어라"고 거의 협박에 가깝게 말했다. 그런데 걔가 내 말을 듣는 애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처럼 지낸 동생인데 그런 말을 들을 리 없다. 오히려 준호가 "나 뛸 수 있겠나? 내 뛰는 것도 쉽지 않을걸?"이라고 주전 경쟁을 걱정하길래 "네가 제일 잘한다. 걱정 마라"고 격려해주면서 끝냈다.

옌볜 팬들은 한국 전지훈련까지 따라올 정도로 열정적이다 ⓒ 스포츠니어스

예전에 있던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내가 그 선수들을 보고 뛸 필요도 없었다. '알아서 찔러주겠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내 경기력도 좋았고 포항이라는 팀도 좋은 성적을 냈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알아서 찔러주던 마지막 동료가 준호였다. 새로운 선수들과 발을 맞추면서 새 도우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나 또한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인 브레이커'에서 변신하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동료들의 스타일이 맞다면 계속해서 그 명성을 이어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 또한 변해야 한다. 내 장점은 계속해서 장점으로 갖고 있고 또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하던 것에 굳이 욕심 내면서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공을 많이 소유하거나 내가 희생하면서 다른 선수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등 다양한 플레이를 해야한다. 나는 더 세밀해져야 한다. 많이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조금 더 많은 것을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 수비를 앞에 놓고 내가 항상 해오던 것만 하면 뚫을 수 없을 것이다. 상대가 이미 다 간파하니까. 전술적으로도 너무 단조로워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팀의 상황에 맞춰서 가야한다. 내가 내 장점만 살리겠다고 고집 부려서는 안된다. 나이와 상관 없이 장점이 잘 맞는 11명의 선수들이 모이면 엄청난 경기력을 발휘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 녹아드는 팀이 제일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동료들에게 다가가고 노력하려고 한다.

올 시즌 김승대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겠다.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를 듣고 싶다.

정말 무조건, 진짜 무조건, 무조건이다. 무조건 상위 스플릿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 수 있도록 나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이후 ACL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ACL 티켓은 정말 중요하다. ACL 경험은 나중에 무시 못할 역량을 만들어낸다. 선수의 입장에서도 그런 무대에 뛰어야 더 발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ACL에 꼭 다시 나가고 싶다. 2014 시즌에 골득실에서 FC서울에 밀려 ACL 티켓을 놓친 이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 2015 시즌에 ACL 티켓을 땄지만 내가 중국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2016 ACL에 출전하지 못했다. 올 시즌은 ACL 티켓까지 획득한다면 만족할 만한 시즌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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