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K리그 홍보대사로 위촉된 아프리카 TV BJ 감스트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B급 감성을 굉장히 좋아한다. 선수들이나 감독들과 인터뷰를 할 때도 축구와 전혀 상관없지만 엉뚱한 걸 종종 묻는 편이다. 인터뷰 격식을 깨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는 수원FC 이관우 수석코치를 만나 운영하던 낙지집 맛의 비결을 묻기도 했고 포항스틸러스 김광석과의 인터뷰에서는 찰랑이는 머릿결의 비결을 물었다. 물론 주된 내용은 축구로 채웠지만 인터뷰나 기획 기사를 통해 B급 감성 특유의 재미를 전하려고 노력 중이다. 근엄하고 진지한 건 딱 질색이다. 재미가 없으면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믿는 편이다. 감동과 유머, 정보 전달 등의 기사는 기사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미를 깔아야 한다는 게 철학이다.

인터넷 방송 BJ, 홍보대사로 임명한 K리그

프로축구연맹은 그 동안 진지했다. 딱딱하고 엄격했다. 연맹의 보도자료가 이메일로 날아와도 잘 열어보지 않는 편이다. 별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연맹 관계자들을 경기장에서 만나면 환하게 웃는 것도 별로 본 적이 없다. 내가 늘 ‘삐딱선’을 타고 저급한 B급 콘텐츠만 생산해서 그런 걸까. 어찌 됐건 지금까지 내가 겪은 연맹은 늘 ‘안경 선배’보다 더 엄격하고 진지했다. 연맹이 내세우는 정책이나 콘텐츠도 지금껏 이근호가 트랙터를 타는 영상이나 김승대가 줄타기를 하는 영상 정도를 빼면 재미를 바탕으로 한 B급 정서는 없었다. 내가 체험 기사를 쓴다고 K리그 드래프트 신청서를 써서 연맹에 갔을 때도 연맹의 눈초리는 차가웠다. 고결한 프로축구에 마치 B급이라는 재를 뿌리면서 눈치 보는 느낌이랄까.

연맹이 K리그 홍보대사로 인터넷 방송 BJ인 감스트를 임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히 큰 모험이고 위험 부담이 큰 일이다. 지금까지 딱딱하고 근엄했던 연맹이 정제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인 인터넷 방송 BJ를 홍보대사로 선정했다는 건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다. 어제(27일) 열린 K리그 미디어데이에는 이 BJ가 홍보대사 위촉식을 가졌고 MC로는 또 다른 인터넷 방송 MC가 나섰다. 당황스럽다. 그들이 당황스러운 게 아니라 연맹이 이렇게 하루 아침에 B급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이게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크다. 이 인터넷 방송 출연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연맹이 얼마나 큰 의지를 가지고 진행한 일인지가 의문이다.

해당 인터넷 방송 BJ는 최근 들어 자신의 방송에 K리그 선수들을 초대한 적이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꽤 파급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연맹이 덜컥 이 두 가지 사실만을 생각해 인터넷 방송 BJ를 홍보대사로 섭외했다면 이는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한 번 B급 코드로 내세운 콘텐츠를 훗날 다시 업그레이드 시켜 진지하고 근엄한 콘텐츠로 만드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B급 코드는 저질스럽고 질 낮은 콘텐츠가 아니라 싸이나 UV, ‘아모르파티’처럼 주류에 염증을 느껴 잘 정돈되지 않고 격식을 깬 반란의 즐거움을 담은 콘텐츠를 말하는 거다. B급 문화를 좋아하고 기사도 B급으로만 써대는 나로서는 K리그에 B급 정서를 가득 담은 인터넷 방송 BJ가 등장하는 것도 환영할 일이다.

박재정은 이렇게 전국 각지를 돌며 K리그를 알렸다. ⓒ인터넷 방송 화면 캡처

K리그는 과연 B급 정서가 될 자신이 있나?

하지만 한 번 B급 코드로 자리 잡으면 쭉 밀고 나가야 한다. 한 번 정서를 깨 B급 문화가 되는 순간 A급 문화로 올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B급 문화는 A와 상하 관계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한 번 격식을 깨고 B급 문화가 되면 이미지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연맹이 인터넷 방송 BJ를 홍보대사로 선임한다고 할 때 놀랐고 걱정했다. 단지 ‘요새 핫해 보여서’, ‘애들이 좋아해서’ 인터넷 방송 BJ를 홍보대사로 선임했다면 그보다 더 답답한 일이 없다. 이렇게 1년이 또 흘러 홍보대사를 갈아치우면 그만이 아니다. 러블리즈에서 박재정으로 홍보대사가 바뀌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감스트가 하다가 다시 정돈된 유명인이 홍보대사를 맡는 건 다른 문제다.

K리그는 과연 스스로 B급 코드가 될 자신이 있고 격식을 깰 준비가 됐는지 묻고 싶다. K리그 미디어데이에 등장한 그들을 보니 아직 K리그는 퍽퍽하다. 날 것 그대로 콘텐츠를 생산할 만큼 자유롭지 않더라. 오히려 MC와 홍보대사가 정중해졌고 격식을 차렸다. 그들을 섭외했다면 스스로 깨지고 망가지기를 자처해야 하는데 여전히 K리그는 근엄하고 격식을 중시한다. 서울 고급 호텔에서 쫙 빼 입은 감독들과 기자회견을 하는데 여기에 B급 코드를 끼워 넣는 것 자체도 웃긴 일이다. 마치 고급 호텔에서 치러지는 럭셔리한 결혼식에서 축가랍시고 신랑 친구들이 ‘니가 사는 그 집’에 맞춰 춤을 추는 느낌이랄까. 어색해서 혼났다.

K리그가 망가지려면 확실히 망가져야 한다. K리그 미디어데이에 간다고 하니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요새 ‘매수스타트’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가서 최강희 감독한테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고 와.” 물론 정신줄을 이미 한참 전에 놓은 나도 이 정도 질문까지 할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 BJ까지 홍보대사로 섭외할 만큼 B급 정서를 이어가려면 K리그가 훨씬 더 유연해져야 한다. ‘셀프 디스’가 난무해야 하고 싸움도 막 붙여야 한다. ‘매수’와 ‘패륜’도 직접적이진 않지만 돌려까기도 허용해야 한다. 격식은 차리고 망가지기는 싫으면서 인터넷 방송 BJ의 콘텐츠와 팬들을 유입시킬 수는 없다.

박재정은 이렇게 전국 각지를 돌며 K리그를 알렸다. ⓒ인터넷 방송 화면 캡처

B급 코드, 격식을 깨야 한다

그냥 한 시즌 이렇게 해보고 또 다른 홍보대사를 선임하면 될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방송 BJ를 섭외하는 순간 스스로 망가져도 좋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K리그는 스스로 그럴 만한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몇 번 K리그 선수들이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반응이 좋으니 덜컥 유명인이라고 홍보대사로 선임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 진지한 고민 끝에 더 격식 없는 콘텐츠를 팬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지만 내가 아는 K리그는 망가지고 격식을 깰 만한 용기가 아직 없다. BJ 감스트의 구독자가 몇 십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그의 수준에 맞게 K리그가 스스로 B급이 될 수 있는지, 혹시 인터넷 방송 BJ를 홍보대사로 썼다가 종료됐을 때의 추후 반응은 어떨지를 고민해 보고 한 선택이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연맹의 정책을 보면 '뭐 이러다 말겠지'다.

좋아하는 가수 윤종신이 한 말이 있다. B급 정서를 추구하고 늘 독자들에게 B급 기사를 선보이고 싶은 나로서는 너무 공감 가는 말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B를 A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예 다른 위치에 있다고 본다. 한 수 아래가 아니라 다른 분야일 뿐이다. 그 중 주류가 나온다.” K리그에 묻고 싶다. 과연 K리그는 스스로 B급 정서가 될 만한 자신이 있나. 혹시 구독자 많은 인터넷 BJ의 영향력만이 탐나는 건 아닌가. B급이 되려거든 확실히 격식을 깨야 한다. 곧 허정무 부총재와 야구장에서 ‘치맥’을 먹으며 한국 축구에 대해 고민하는 인터뷰를 하게 해달라. 약을 빨 생각이면 제대로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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