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에게 포항스틸러스는 어떤 존재일까.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포항스틸러스는 K리그 전통의 명가다. 여러 팀이 최근 들어 막대한 지원을 하고 선수를 영입해도 아직은 포항 같은 전통을 하루 아침에 살 수는 없다. 그리고 이 팀에서 무려 15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이가 있다. ‘전통의 명가’ 포항의 살아있는 전설 김광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 시즌 주장 완장까지 차면서 포항을 이끌게 된 ‘오리지널 포항맨’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전지훈련지인 제주도 서귀포를 찾아 김광석과 만났다.

1983년생으로 올해 나이 36세다.

이제 노장 중에서도 노장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이게 몇 번째 맞는 동계전지훈련인가.

프로 17년차다. 동계 전지훈련을 17번이나 경험했다. 2002년 포항에 입단해 상무 시절인 2년을 제외하고는 포항에만 있었다. 포항에서만 동계 전지훈련을 15번째 하고 있다.

동계 전지훈련만 17년째이면 이제 지겨울 법도 하겠다.

어릴 때는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동계 전지훈련에 임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선수들과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내가 이 선수들과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올해 동계 전지훈련은 어떤가. 할 만 한가.

내가 주장을 맡았다. 원래는 내가 말도 별로 없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주장 역할까지 하려니 머리가 복잡하다. 선수단은 2/3가 변했다. 포항에 오래 있어봐서 아는데 아무리 선수단이 많이 바뀌어도 한 시즌에 15명 남짓한 변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11명 빼고 다 바뀌었다. 무려 25~6명의 선수들이 새로 왔다. 내가 주장으로서 변화가 큰 선수단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당신은 고참 중에서도 고참인데 이번이 첫 주장이라는 게 놀랍다.

내가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늘 주장직을 고사해 왔다. 이번에도 최순호 감독이 먼저 나한테 제안을 해주셨는데 나보다는 그래도 중간 고참이 주장을 하는 게 낫다고 건의를 드렸었다. (김)승대나 (권)완규도 좋을 것 같았고 새로운 선수 중에도 (송)승민이 같은 친구들도 주장을 할만한 선수들이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나보고 하라고 하셔서 몇 번 고사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하게됐다.

주장에 대한 부담감을 상당히 크게 느끼는 것 같다.

학창시절에도 주장을 해본 적이 없다. 2군 주장을 잠깐 하다가 군대에 갔었으니 제대로 주장을 맡은 건 축구를 하면서 이번이 처음이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크나.

외국인 선수들도 싹 바뀌었다. 변화가 너무 큰 게 걱정이다. 이제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5월 이전에 어느 정도 성적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 5월 이후 월드컵 휴식기 전까지 경기력과 성적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어야 그 이후에도 순위 경쟁을 할 수 있다.

잠깐씩 주장을 맡은 적은 있지만 김광석이 정식 주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포항스틸러스

당신은 포항의 산역사다.

그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동계 훈련을 이렇게 많이 경험해 봤으면 매 시즌을 앞두고 예감이라는 게 있을 것 같다.

뭐 어느 정도 예감이 맞는 부분도 있다. 2013년도에는 터키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경기력이 너무 좋았다. ‘우승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터키로 전지훈련을 가면 거기에 모인 여러 팀들이 상대를 봐 가면서 연습경기를 치른다. 지난 시즌 성적을 따져보고 연습경기 상대를 정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하고는 처음에 연습경기를 안 하려고 하더라. 호텔에 가면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유럽 여러 팀들이 다 같이 묵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는 시선도 별로였다. 그런데 우리가 연습경기에서 한두 경기 이기니까 호텔에서 만나면 우리는 보는 눈이 달라져 있더라. 그때부터는 그 팀들이 우리한테 연습경기 한 번 하자고 달려 들었다. 그때 터키에서 웬만한 유명 팀은 다 이겼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고 그 해에 FA컵과 K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준비하면서 가장 별로였던 시즌도 있었나.

가장 기대를 안 했던 건 2012년이었다. 그때는 중상위권 정도만 올라가자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 스쿼드 자체가 그리 강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해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면 올 시즌을 준비하는 예감은 어떤가. 솔직하게 말해달라.

정말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그렇다.

쉽지는 않을 거다. 조직력이 있는 팀은 기존 선수들을 대부분 지키고 추가적으로 신예 선수들이 들어와 그 조직력을 이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시,도민구단급으로 변화가 있었다. 아예 다 물갈이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력도 부족하고 기존에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도 몇 명 남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도 쉽지 않은 경기들이 많았는데 올해도 분명히 쉽지 않은 시즌이 될 거다.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내가 너무 솔직했나.

아니다. 솔직한 이런 인터뷰가 더 좋다. 당신은 이제 36살이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갔던 2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포항에서만 뛰었다. 적지 않은 나이다.

몸이 힘들다. 지난해 7월에 수술을 해서 6개월을 쉬었다. 고질적인 부상이었다. 어릴 때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치고 나서 수술을 해야 했는데 수술 대신 재활로 버텼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근육이 빠지며 그 발목에 뼈가 자랐다. 작년에 그걸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발목에 튀어나와 있는 뼈를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그 수술 이후 지난 시즌 계속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선수로서 보탬을 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컸을 것 같다.

물론이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경기장에 가지 못하면 텔레비전으로 포항 경기를 지켜봤는데 어떨 때는 보다가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서 텔레비전을 꺼 버리기도 했다. 경기장 관중석에서 경기를 볼 때도 차마 제대로 못 볼 때도 많았다. 그나마 후반기에 포항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서 다행이긴 하지만 내가 뛰지 못하면서 피해를 준 것 같아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발목 상태가 어떤가.

발목 상태는 좋아졌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기량이 훅 떨어질까봐 걱정이다. 관리를 잘 한 선수도 서른 살 중반에 접어들면 운동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 그런데 이 시기에 부상까지 겹치면 기량은 훅 떨어진다. 내가 1983년생이다. 이제 훈련을 하다보면 몸이 안다. 한 해 한 해 바뀔 때마다 너무 힘들다. 큰일이다. 죽겠다.

나도 이제 술을 마시면 다음 날 너무 힘이 든다.

운동할 때 자체가 힘들다. 이거 다른 어린 선수들이 하는 걸 따라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공격수들은 진화해서 빨라지는데 나는 늙어가고 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지가 늘 고민이다.

잠깐씩 주장을 맡은 적은 있지만 김광석이 정식 주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포항스틸러스

포항에서만 15년을 뛰었다. 포항과의 관계가 이렇게 깊어질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저기 시골 청평 산골짜기에서 처음 축구를 접했다. 늦게 축구를 시작한 탓에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2001년 9월에 연습생 테스트를 받으러 포항에 처음 왔다. 시골 촌놈이 포항 클럽하우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막 고등학교에서 축구하던 애가 최신식 훈련장과 시설을 봤으니 얼마나 놀랐겠나. 충격이었다.

2001년이었으면 포항의 한참 전 세대 선수들과도 함께 뛴 것 아닌가.

그때 테스트 받으러 왔을 때 지금은 한양대 감독을 맡고 있는 정재권 선생님이 현역 은퇴를 앞둔 시점이었다. 그리고 (홍)명보 삼촌, (하)석주 삼촌, (김)병지 삼촌 등이 있었다. 아, 사빅도 있었다. 19살의 나이에 하늘 같은 선배들에게 ‘형’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했다. 그런데 그 삼촌들이 “너희 삼촌 몇 살이야? 우리 나이대 아니야? 그럼 삼촌이라고 해”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 삼촌과 나이가 비슷하더라. 그래서 그 분들을 삼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그들과 뛰었던 당신도 원로다.

어린 나이에 그 삼촌들을 보고 ‘나도 포항에서 저 삼촌들처럼 오래 운동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항은 모든 게 나에게 충격이었다. 클럽하우스의 위용에 압도됐고 이 팀에서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도 감탄했다. 선수들이 먹는 음식을 보고도 놀랐다. 청평 촌놈에게는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2001년 9월 테스트를 받고 2002년 연습생으로 이 팀에 오게 됐다. 아마 포항이 나를 연습생으로도 받아주지 않았으면 우승의 영광도 누려보지 못했을 거고 훌륭한 선배들과도 뛰지 못했을 것이다. 늘 포항 팀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지금 어린 선수들에게 당신이 명보 삼촌이나 석주 삼촌 같은 존재 아닐까.

나는 당시 삼촌들한테 말도 잘 못 걸었다. 그런데 요새 어린 친구들은 나를 어려워하지 않더라. 삼촌이라고 부르는 선수들도 없다. 다들 그냥 ‘광석이 형’이라고 부른다.

아마 당신은 당신을 어린 선수들이 어려워하는지 잘 모를 거다.

그럴 수도 있다. 아닐 거다. 아마.

당신은 포항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포항에서 치른 경기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를 세 개만 꼽는다면 어떤 경기가 떠오르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늦게 시작해 우승이라는 경험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처음 우승을 경험한 게 2007년 포항에서였다. 당시 파리아스 감독과 함께 K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축구하면서 경험한 첫 우승이어서 그런지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2012년 FA컵에서 경남을 연장전 끝에 이기고 우승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 황선홍 감독이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황선홍 감독을 웃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꼽자면 역시 2013년 K리그 우승 아닐까. 다들 울산의 우승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외국인 선수도 없이 마지막에 결과를 뒤집어 버렸다. 이 세 경기는 평생 잊지 못할 거다.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왜 빼나. 포항의 그때 우승도 역사적이었다.

그때는 내가 4강전에서 다쳐 결승전에는 나서지 못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부상 당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승 메달은 받았으니 만족한다.

K리그 우승과 리그컵,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 우승해 볼 수 있는 대회에서는 다 우승을 했다. 그중 가장 특별한 우승을 꼽는다면 언제인가.

역시나 2007년 K리그 우승이다. 군대에 갔다 와서 첫 시즌이었고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우승이었다. 그것도 벌서 10년이 넘었다. 그때는 팔팔했는데 지금은 내가 팀 내 최고참이다.

하지만 포항은 상징과도 같은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이렇게 전성기를 함께 했던 선수들이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선수는 돈을 찾아가는 게 맞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적하면 축하를 보내야 한다. 과거 우승을 경험했을 당시 멤버인 (신)진호와 (고)무열이, (이)명주하고도 가끔 연락을 한다. 그럴 때면 다들 하나 같이 “그때처럼 재미있게 공 차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 선수들이 떠날 때는 슬프지만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은 그런 이적 유혹이 없었나. 많은 선수들이 떠날 때 당신만 남았다.

나에게도 이적 유혹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나는 돈 때문에 팀을 옮길 수는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남들은 다 돈보고 가도 된다고 하고 당신만 남는 건 또 뭔가.

남들은 3년 정식 계약을 하고 팀에 들어오는데 나는 1년 연습생으로 처음 팀에 왔다. 그때 포항이 연습생으로 받아주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공을 못 찼을 거다. 살면서 돈도 중요하지만 나는 포항과의 관계에서는 의리를 지켜야 한다. 돈 몇 천 때문에 팀을 옮길 수는 없다. 재계약 협상을 할 때도 다른 구단의 조건은 따지지 않고 포항 구단의 제안을 대부분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구단이 나를 필요로 하고 아직까지는 내가 포항에서 쓸모가 있다는 의미 아닌가.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프로 무대에서 이런 의리는 특별하다.

외국에서의 이적 제안도 꽤 많았다. 하지만 나를 키워준 구단을 떠난다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포항이 나를 연습생으로 받아주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쯤 공장에서 직장인 축구대회에 나가며 공장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딱 3년 운동을 했는데 이런 선수에게 포항이 기회를 줬고 지금까지도 프로 선수 생활을 할 기회를 주고 있다.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때 나를 뽑으신 감독이 바로 지금 우리팀의 최순호 감독이라는 점이다. 다른 팀에서 감독과 제자가 두 번 만날 수는 있어도 한 팀에서 두 번 만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그런 사이다.

잠깐씩 주장을 맡은 적은 있지만 김광석이 정식 주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포항스틸러스

그렇게 들어보니 정말 신기한 일이긴 하다. 2002년 당시 최순호 감독과 지금의 최순호 감독은 많이 변했나.

원래 여유로운 성격이다. 그런 면에서는 변한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과거 당시에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심했는데 요즘은 팬들을 위해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축구를 해야한다는 철학이 더 강해지신 것 같다.

만약 지금 다른 구단에서 훨씬 더 좋은 이적 제안을 보낸다면 어떨까. 먼지가 되어 날아갈 건가.

안 간다. 내가 다른 팀으로 간다고 해 지금 상황에서 딱히 몸이 확 좋아질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2년을 하나 다른 팀에 가서 1년을 더 해 3년을 하나 내 인생에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더 좋은 제안을 받고 더 오래 뛰는 게 지금 나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좋게 마무리하고 싶다. 굳이 이 상황에서 연봉이 어마어마하게 오르지도 않을 텐데 다른 팀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자꾸 은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한데 앞으로 몇 년 정도 더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미안할 거 없다. 내 나이에는 은퇴를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할지는 모르겠다. 당장 올 시즌이 끝나고 은퇴할 수도 있고 내년 시즌까지 하고 마무리할 수도 있다. 구단이 날 더 이상 선수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은퇴는 당연히 밟아야 하는 수순이다.

은퇴 전에 다시 한 번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우승의 기쁨을 한 번 더 맛보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한 번 더 이런 영광을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 팀의 어린 친구들에게 우승의 희열을 선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나이였던 2007년에 첫 우승을 경험해 봤는데 지금 우리 팀 후배들이 나처럼 어렸을 때 우승의 맛을 봤으면 좋겠다. 왜 우승을 해야 하는지 느껴봐야 한다. 나는 그래도 우승을 많이 경험해 봐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후배들이 빨리 우승을 경험해 보고 포항의 전통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는 쉽지 않을 테지만 FA컵과 같은 토너먼트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후배들에게 우승의 감정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은퇴하길 꿈꾸는가. 당신이 그리는 은퇴식이 있을 것이다.

정장을 차려 입고 은퇴식을 하고 싶지는 않다.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서 단 1분이라도 뛴 뒤 은퇴식을 치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가장 빛난다. 홈 경기를 할 때 딱 날짜를 정해서 정장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싶다.

잠깐씩 주장을 맡은 적은 있지만 김광석이 정식 주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포항스틸러스

이름이 김광석이다. 김광석 노래는 좋아하나.

워낙 훌륭한 가수 분과 동명이인이라 그 분의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다. 남들처럼 군대 가기 전에는 ‘이등병의 편지’를 즐겨 들었고 20대 후반 때는 ‘서른 즈음에’를 좋아했다.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서는 요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세월 따라 좋아하는 김광석 노래도 달라졌다.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한 게 있다.

뭔가.

머릿결이 유독 좋다. 그라운드에서 뛸 때 찰랑이는 그 머릿결을 보고 부러워 했던 적이 많다. 머릿결 유지의 비법이 따로 있나.

없다. 그냥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샴푸 쓰고 똑같은 미용실에 다닌다. 그냥 멀리서 볼 때만 좋아 보이는 거다. 머릿결은 별로 안 좋다.

알겠다. 머릿결은 타고나는 걸로 하자. 당신이 은퇴를 한다면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미겠지 외로움으로…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올 시즌 각오를 말해달라.

각오는 매년 똑같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부상이 없으면 내 실력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 나뿐 아니라 올 시즌 우리 팀 모든 선수들이 부상 없이 시즌을 잘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팬들의 응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평범한 선수였던 나는 운이 좋아서 좋은 팀에 와 지금까지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경기장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겠다.

마땅히 갈 곳 없던 김광석은 연습생으로 포항에 입단한 뒤 이 팀에서만 무려 15년을 뛰며 전설이 됐다. 그는 평범한 선수에게 많은 걸 누리게 해준 포항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포항 역시 이런 선수와 함께하게 된 건 행운일 것이다. 늘 묵묵히 최후방을 든든히 지키며 자신의 몫을 다한 김광석이 있었기에 포항의 전통은 이어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팀내 최고참인 김광석은 지난 시즌 최악의 부상으로 무려 6개월을 쉬어야 했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 시즌을 위해 다시 뛸 예정이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노래 구절이 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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