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제대학교 축구부

[스포츠니어스 | 통영=홍인택 기자] 졌지만 잘 싸웠다. 인제대는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돌아갔다. 경기는 졌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악당들의 '두고 보자'는 무섭지 않아도 이들의 '두고 보자'는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인제대는 통영에서 열린 제54회 춘계대학축구연맹전(춘계연맹전) 32강에서 한양대를 만나 0-2로 패배하며 이번 대회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강호 한양대를 상대로 끝까지 잘 싸웠던 경기였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유난히 돌풍과 이변이 많았던 이번 춘계연맹전이다. 대회에 참가한 대학 감독들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주력 선수들이 프로로 향한 게 컸다. 2, 3학년들이 대거 빠져나간 학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0년부터 작년까지 우승과 준우승을 거둔 학교들이 모두 탈락했다.

인제대는 연세대, 가톨릭관동대, 상지영서대의 틈바구니에서 당당하게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가톨릭관동대를 1-0으로 꺾었고 상지영서대는 2-0으로 잡았다. 연세대 상대로는 0-0 무승부를 거뒀다. 연세대는 인제대와의 경기에서 6장의 경고를 받았고 한 명은 경고누적으로 퇴장까지 당했다.

조별예선 무실점. 괄목할 성적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32강 상대는 축구 명문 한양대였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인제대 권재곤 감독은 "18명의 선수 중 골키퍼 두 명 빼고 세 명이 다쳐서 선수가 없다"라고 했다. 인제대가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교체카드는 3장뿐이었다. 상대 팀 한양대의 선수들은 24명이었다.

한양대로서는 인제대를 무조건 이겨서 강호의 체면을 세워야 했다. 한양대 정재권 감독도 이를 잘 알고 무실점으로 올라온 인제대를 경계했다. 한양대 정재권 감독은 "상대가 강하게 나올 거로 생각했다. 선취골 시점이 문제"라면서 전의를 다졌다.

맹공 퍼부은 한양대, 벤치의 목소리는 다르게 느껴졌다.

한양대는 경기 내내 인제대 골문을 두드렸다. 빠른 패스와 속도감 넘치는 경기로 인제대를 제압했다. 그러나 인제대 선수들도 이에 맞섰다. 중원과 측면 간격을 좁히면서 공간을 점유했다. 한양대가 좋아하는 플레이를 막았다. 패스 길을 끊고 역습을 노렸다.

선수가 부족했던 인제대는 가용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이 좁았다. 발이 빠른 수비수 김동민을 측면에 배치하며 공격 가담을 주문했다. 공격수 노영욱은 수비로 내리고 대신 장신 수비수 백제호를 최전방에 배치하며 앞에서 싸우게 했다.

실점 위기에서는 골키퍼 고병권의 선방이 빛을 발했다. 전반 36분 한양대의 완벽한 프리 헤더를 몸을 날리며 막아냈다. 후반전에도 한양대에 찬스는 찾아왔지만 고병권 뒤쪽으로 공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물론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도 간격을 압박하며 한양대를 괴롭혔다. 한양대의 플레이는 인제대 선수들에게 막혀 흐름이 많이 끊어졌다.

인제대 선수들은 일단 많이 뛰었다. 그리고 없는 힘까지 쥐어짜면서 뛰는 게 느껴졌다. 인제대는 마치 인천 유나이티드처럼 뛰었다. 그 선수가 몇 학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밀었다가, 당겼다가, 압박할 때는 적극적으로 했고 수비수가 측면으로 공을 걷어내면 측면 공격수들은 공을 향해 일제히 뛰었다. 한양대 선수들은 인제대의 투지에 혀를 내둘렀다.

대학 경기의 큰 특징은 벤치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는 점이다. 분명 경기 양상은 한양대가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벤치의 목소리가 달랐다. 전술을 지시하는 텍스트는 동일했으나 어조에서 차이가 났다. 인제대 벤치에 있던 권재곤 감독과 박영우 코치는 계속 선수들을 격려하며 위치를 지정하고 압박 타이밍을 지시했다.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는 "잘했어. 그렇게만 하면 돼"라며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반면 한양대 벤치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정재권 감독으로서는 이른 시간에 선제골이 나와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수들도 점점 지쳐갔다. 경기 템포가 떨어지면 불리한 건 한양대 쪽이었다. 실제로 세트피스 기회에서 몇 차례 실점 위기도 있었다. 경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6분만 더 버티면 됐는데…'

후반 39분.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다. 한양대 이시바시 타쿠마가 박스 오른쪽에서 때린 슈팅이 고병권 골키퍼를 지나 골문에 꽂혔다. 인제대 선수들은 대회 첫 실점이 나오자 11명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6분만 더 버티면 됐는데…' 84분 동안 선수들을 격려했던 권재곤 감독도 약간 힘이 풀린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상황을 바로 잡았다. 선수들에게 "1-1이야 1-1"이라고 말하며 선수들의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웠다. '동점처럼 생각하라. 한 골 만회하자'라는 뜻이었다.

사력을 다해서 싸웠던 인제대 선수들은 다시 해보자고 일어섰다. 권재곤 감독도 승부수를 띄웠다. 수비수 김현동을 빼고 공격수 정혁진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제골을 넣은 한양대의 기세는 무서웠다. 한양대 선수들은 인제대의 빗장수비를 열자마자 자신감을 얻고 맹공을 퍼부었다. 결국 후반 42분 김준영이 추가 골을 기록하며 인제대를 무너뜨렸다. 인제대의 도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경기 후 권재곤 감독은 마치 경기를 뛴 것처럼 피곤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는 "대회 초부터 지금 뛴 선수들로 여기까지 왔다. 지쳐서 마지막에 뛰지 못한 것 같다"라면서 "선수들이 지친 상태라 한양대 경기를 수비 중심으로 운영했다. 잘 견뎠는데, 마지막에 선수들이 힘이 빠졌다"라고 경기를 총평했다.

인제대 권재곤 감독 ⓒ 스포츠니어스

아쉬운 패배였다. 후반 39분까지 잘 버텨냈었다. 권 감독은 "마지막까지 0-0 상황이라 교체 카드로 승부를 걸어보려고 했다"라면서 "교체 전에 한 골을 내줬다. 내 실수인 것 같다"라며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은 잘했다. 최선을 다했다"라며 마지막까지 격려를 잊지 않았다.

한양대 정재권 감독도 이를 인정했다. 정 감독은 인제대의 수비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인제대의 수비가 두터워 세트피스에서 득점을 노리려고 했다. 여의치 않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선수들이 당황한 부분이 있었다. 그 틀을 깨기 위해 90분 동안 노력한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라고 전했다.

인제대의 도전은 마무리되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대회 354분 동안 골을 내주지 않은 팀이었다. 권재곤 감독에게 특별한 수비 철학이 있는지 물으니 "기업 비밀이다"라며 씨익 웃었다. 그래도 힌트는 얻었다. 그는 "우리만의 훈련 과정에서 특이하게 하는 부분은 있다"라면서 "선수들이 조금 많이 뛰어야 하는 부분은 있다. 우리는 부족한 팀이라서 그렇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권 감독은 인제대가 부족한 팀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한 발 더 뛰어 달라고 요구했다. 권 감독의 주문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팀이 조별예선을 1위로 마무리했고 후반 막판까지 명문 한양대를 괴롭힌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인제대의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3, 4학년들이었다. 권 감독과 인제대 선수들은 이제 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계연맹전에서 또 한 번 돌풍을 일으킬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번 대회가 그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고 도움이 됐을 것이다. 권 감독은 추계연맹전을 바라보며 한 마디를 남기고 선수들을 챙겼다.

"부상으로 오늘 뛰지 못한 선수 중에서 베스트가 있다. 그 선수들이 다 들어오면 여름엔 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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