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김보름은 꼭 그렇게 말했어야 했을까?

김보름
김보름 ⓒ SBS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그동안 수백여 명과 인터뷰를 해왔다. 최고의 스타부터 시작해 이제 막 떠오르는 유망주, 은퇴를 앞둔 노장 선수는 물론 구단 버스 기사나 독특한 사연이 있는 팬들까지도 인터뷰를 했다. 전현직 감독과도 자주 인터뷰를 한다. 주로 축구선수를 많이 인터뷰했지만 이따금씩 다른 종목 선수들도 인터뷰한다. 탁구, 역도, 복싱, 필드하키, 스켈레톤 선수 등 여러 종목 선수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10년 전쯤엔 인터뷰를 한 뒤 해당 선수의 종목을 체험해 보는 콘셉트를 기획했다가 여자 복싱 세계 챔피언에게 링 위에서 두들겨 맞은 적도 있다.

나름대로 인터뷰 노하우도 있다. ‘기-승-전-협회욕’으로 이어지는 김호 감독과 인터뷰를 할 때면 협회 욕이 시작되기 직전 주위를 환기 시켜야 김호 감독의 온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인터뷰가 생소한 어린 선수들을 만나면 인터뷰 시작 전 긴장도 충분히 풀어줘야 한다. 인터뷰로는 나가지 않지만 여자 이야기를 하거나 나이트클럽 이야기를 하며 긴장을 덜어준다. 가끔은 “걔랑 걔랑 사귄다면서요? 우리만 알고 있어요”라며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렇게 상대의 긴장을 풀어줘야 더 진솔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터뷰는 기술이다. 인터뷰를 이끄는 기자도 마찬가지지만 인터뷰에 응하는 이들에게도 기술이 필요하다. 이상화나 김연아 같은 이들이 언론 앞에서도 떨지 않고 당당히 자기의 의견을 말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건 그만큼 언론을 자주 대했기 때문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다. 연맹 고위급 임원이 아침 9시에 자고 있던 이상화를 깨워 컨디션을 망쳤다는 보도에 대해 이상화는 기자회견을 통해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상화는 “이미 난 깨어 있었다. 그런 것 때문에 컨디션을 망쳤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 분이 긴장감을 덜어주기 위해 방문하신 것 같은데 난 이미 일어나 있었다. 길게 설명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도 해봐야 실력이 늘어난다
대단히 슬기로운 대처다. 이상화는 ‘라이벌’인 고다이라 나오와의 관계를 묻는 지긋지긋한 질문에도 늘 탁월한 인터뷰 기술을 선보였다. 웃으며 “저에게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 말에는 뼈가 있었다. 아마 인터뷰 기술이 훌륭하지 못한 이였다면 자꾸 고다이라 나오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그만 좀 하라”고 정색을 했을 수도 있다. 이상화는 난처한 상황에서도 슬기로운 말로 잘 넘겼다. 수도 없이 기자와 카메라 앞에 섰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단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지 못한 이가 이렇게 민감한 주제로 인터뷰를 했다가는 의도치 않은 말 실수로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를 많이 해 본 선수들은 확실히 인터뷰를 잘 한다. 안정환, 기성용, 구자철 등은 까칠해 보이긴 해도 인터뷰를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임한다. 누가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유머도 던진다. 과거 전북 시절 조재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는 당시 허정무 대표팀 감독에 대해 불만을 크게 드러냈었다. 전북 클럽하우스가 없던 시절 어린 선수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게 다 나가도 되겠느냐.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조재진은 “내 생각이 이런데 못 나갈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했다. 결국 이 인터뷰가 나간 뒤 협회와 전북 구단, 에이전트는 난리가 났다. 나에게도 전화를 해 와 강한 어조의 인터뷰 기사를 좀 부드럽게 수정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조재진
그는 인터뷰를 활용할 줄 아는 스타였다 ⓒ 전북 현대 제공

하지만 조재진이 이를 거부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수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스타 선수들은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대중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도 한다. 안정환은 현역 은퇴 당시 하루에 무려 8~9개 매체와 개별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똑같은 질문에도 똑같지 않은 답변을 계속 했다. 경기력을 키우고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는 동안 인터뷰 기술도 늘어난 것이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인터뷰는 기술이다. 오히려 정말 어려운 인터뷰는 스타 선수의 인터뷰가 아니라 일반인과 유명인의 경계에 있는 이들이나 이해 관계에 맞물린 이들이다. 이들은 전달 과정에서 단어 하나에도 민감해 한다. 인터뷰가 나간 이후 수정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 인터뷰에서 여자친구 자랑을 잔뜩 했다가 헤어졌다고 기사를 내려달라고 부탁한 이도 있다.

김보름은 꼭 그렇게 말했어야 했을까?
이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보름과 박지우가 팀 동료인 노선영을 챙기지 않고 먼저 결승선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들어온 선수의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는 팀추월 경기에서 뒤에 쳐진 선수를 외면하고 두 명의 선수만이 질주를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노선영 왕따 논란’을 제기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김보름과 박지우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책임을 노선영에게 넘기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경기야 호흡이 맞지 않아 망칠 수 있다고 쳐도 경기 후 인터뷰는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중은 그들의 인터뷰에 분노했다.

김보름은 “중간에 잘 타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뒤에 격차가 벌어지면서 아쉬운 기록이 나왔다. 앞 선수의 랩타임은 계속 14초대였다”고 언급하면서 노선영의 잘못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김보름은 인터뷰 중 “마지막 뒤에 격차가 벌어졌다”고 말하면서 웃기도 해 대중은 더 분노했다. 박지우 역시 “선영 언니가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근데 기록 욕심도 있다 보니까”라며 노선영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이후 대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후 김보름은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지만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서로 진실 공방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김보름과 박지우는 노선영을 ‘왕따’ 시키고 조롱한 선수로 낙인 찍혔다.

김보름 인터뷰
문제의 인터뷰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 방송 캡쳐

단체 경기에서 갈등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첫 째 문제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건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의 인터뷰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선수 간에 갈등이 있고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져 있어도 전국민이 다 보는 인터뷰에서 “쟤가 잘못했대요”라는 말을 하는 건 대단히 큰 문제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언니를 챙기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고만 했어도 이렇게 커질 문제는 아니었다. 스케이팅 실력은 올림픽에 나설 만큼일지 몰라도 인터뷰 실력은 동네 체육대회 수준이다.

국가대표, 말하는 기술도 가르치자
선수촌에서 생활하는 여러 종목 선수들에게 물어봤다. “대표팀에 뽑히면 미디어 응대법 같은 교육도 하지?” 하지만 하나 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 없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K리그와 KBO리그 상당수 구단에서는 신인 선수 위주로 미디어를 대하는 법을 교육시킨다. 나 역시 과거 한 K리그 구단의 ‘미디어 응대법’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많이 해보지 않은 신인 선수를 앞에 세워놓고 인터뷰 시뮬레이션도 한다. “오늘 이겼는데 소감 한 마디 해주세요”라고 물으면 신인 선수들은 뻔한 대답을 이렇게 한다. “경기에 ‘뛰켜’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리고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뚝켜’라는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쓰면서 진부한 대답만 한다. 이런 선수들에게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표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그래서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이 기자회견 연습 하나 없이 오로지 성적 향상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인터뷰로 일이 터져도 터질 만하다.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의 교육을 받았더라면 “저는 잘했는데 쟤가 못했대요”라는 식의 술자리에서 우리끼리나 할 만한 말을 공식 석상에서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극마크를 다는 선수들의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식적인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동메달을 따고도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던 서이라도 그래서 안타깝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이제는 인정해 주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은메달을 따면 속으로 아쉬워하고 금메달을 바라는 게 우리의 속마음이다.

금메달을 딸 때도 못딸 때도 인터뷰 기술은 필요하다 ⓒ 평창군청 제공

물론 우리끼리의 약속이 있다. “값진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자랑스러운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 표현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해 거둔 결과라면 금메달이 아니어도 박수쳐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에는 ‘그대로 금메달이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속내가 깔려 있다. 더군다나 금메달을 바라던 쇼트트랙에서 동메달을 땄고 레이스 도중 아쉬운 부분도 있었으니 서이라는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욕 먹기 딱 좋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인터뷰에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여기에서 서이라가 해야 했던 말은 “금메달을 기대하셨던 분들이 많을 텐데 동메달을 따게 돼 미안합니다”였다. 그러면 “이 동메달도 충분히 값지다. 고개 숙이지 말라”는 반응이 따라오는 게 지금까지 선수와 대중의 약속이었다.

국가대표에게 필요한 ‘인터뷰 기술’
하지만 서이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선수가 금메달을 원하지만 올림픽은 축제이니 결과만 생각하기보다는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 랩은 영감이 와야 한다. 열심히 준비해서 곧 보여드리겠다.” 젊고 유쾌한 선수가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즐기고 금메달이 아니어도 자신이 받아든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신선하다. 하지만 대중은 그렇지 못하다. 팀 동료의 앞길을 막아놓고도 동메달 밖에(?) 못 딴 녀석이 신이 나 하는 모습을 보니 비난을 퍼붓는다. 서이라에게 잘못이 있다면 눈치 없이 너무 밝게 인터뷰를 한 것뿐인데 이 죄치고는 대중의 뭇매라는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이라는 누군가에게 지탄을 받을 정도로 성격이 모나지도 않았고 착한 친구란다. 그래서 더 인터뷰의 기술이 아쉽다. 조금만 낮은 자세로 인터뷰를 했더라면 그를 향한 과도한 비난도 없었을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태극마크의 사명감을 주입하는 교육과 함께 반드시 인터뷰 교육이 있었으면 한다. 더 멀리 뛰고 더 높게 뛰는 것 못지 않게 인터뷰를 수월하게 하는 것도 국가대표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이 한 마디 한 마디가 결국 글자로 남아 대중에게 전달된다. 그런 과정에서 쓸 데 없는 오해가 생기거나 사건이 확산되기도 한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선수들이 모두 바른 인성을 가지고 바른 말을 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때론 삐딱하고 인성이 바르지 않은 선수도 있을 수 있다. 김보름과 박지우의 인성이 어떤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다만 말 한 마디로 그 동안의 노력까지도 물거품이 되는 모습은 어른들이 막을 수 있다. 적어도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동안에는 말조심부터 시키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인터뷰 기술’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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