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통영=조성룡 기자] 20일 경상남도 통영의 산양스포츠파크.

제 54회 춘계대학축구연맹전이 열리고 있는 이곳에서는 한창 32강전 가톨릭관동대학교와 중앙대학교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두 팀은 9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승부차기는 선수에게도 살 떨리지만 보는 사람들 또한 긴장하게 된다. 특히 그 사람들이 선수의 학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승부차기 직전 경기장 안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한 골(막는데)에 10만원!" 좌중은 웃었다. 알고보니 가톨릭관동대의 한 학부모가 골키퍼 손광채를 독려하기 위해 외친 것이었다. 옆에서 다른 학부모도 거들었다. "적어도 두 골은 막아야 그나마 용돈이 될텐데…"

가톨릭관동대 학부모들의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아 보였다.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골문 앞에 선 손광채는 중앙대 키커의 공을 쉽게 막지 못했다. 중앙대는 세 번째 키커까지 손광채를 뚫고 골을 성공시켰다. 가톨릭관동대의 키커들 또한 모두 골을 성공시킨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게 승부차기는 서로 균형을 이루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만일 계속해서 공을 막지 못한다면 가톨릭관동대의 승리도, 손광채의 용돈도 날아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손광채는 그렇게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중앙대 네 번째 키커 천준희의 슈팅을 선방해내며 팀을 승리 눈 앞까지 이끌었다. 그가 선방하는 순간 학부모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승리를 확정지어야 할 가톨릭관동대 임명웅의 슈팅이 골문 옆으로 빗나갔기 때문이다.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장기전이 될 것 같던 승부는 의외로 빠르게 끝났다. 각각 다섯 명의 키커가 나오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여섯 번째 키커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중앙대 키커 정재영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하면서 경기는 끝났다. 연세대를 5-1로 대파하며 이변의 조짐을 보였던 가톨릭관동대가 중앙대마저 꺾고 16강전에 진출하며 돌풍의 핵이 되는 순간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가톨릭관동대의 선수들은 모두 싱글벙글이었다. 특히 손광채의 표정은 더욱 밝았다. 그 표정을 보며 <스포츠니어스>는 쓸 데 없이 궁금해졌다. 정말 손광채는 용돈을 받을까?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그를 붙잡았다. 지금부터 그와 나눈 유쾌한 대화를 소개한다.

16강 진출을 축하한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힘들었을 것 같다.

먼저 열심히 끝까지 뛰어준 팀 동료들에게 고맙다. 사실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이번 대회 내내 내게 공이 별로 오지 않았다. 편했다. 승부차기도 상관 없었다.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승부차기 가서도 지지는 않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규시간이 다 끝나갈 때쯤 일부러 타이밍을 늦추려고 했다. 이대로 끝내서 승부차기에 가고 싶었다.

나는 막을 자신이 있었을 뿐 아니라 형들이 다 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감독님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도 편하게 격려해줬다. "너 믿으니까 부담갖지 말고 하고싶은 대로 해라. 선생님들은 너 믿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학부모들이 "하나 막을 때마다 10만원"을 외쳤다. 들었는가?

아주 또렷하게 잘 들었다. 팀 동료 중에서 정말 친한 신승철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그렇게 외치신 것이다. 그 목소리를 듣고 다짐했다. '딱 세 번만 막아야지.' 두 개만 막아도 승률은 굉장히 높아지겠지만 확실하게 승리를 굳히려면 세 번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세 번 막고 기분 좋게 용돈 챙기고 16강전 준비하려고 했는데 두 번 밖에 막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용돈은 내 은행 계좌로 입금될 것 같다.

잠깐, 당신은 한 번 막았다. 다른 한 번은 상대 키커의 실축이다.

무슨 소리인가? 골대로 막아도 막은 것은 막은 거다. 그리고 내가 심리전을 펼치지 않았으면 상대 키커가 골대를 맞추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때 지나가던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골대 맞췄으니 반만 막은 거 아니야?")

납득이 가게 설명해달라.

키커가 공을 차기 전에 한 번 펄쩍 뛰고 나서 손을 한 쪽으로 폈다. 일종의 심리 싸움이다. 이쪽으로 내가 뛸테니 너는 알아서 차보라는 얘기다. 혹시 못봤을까봐 한 번 더 그쪽으로 신호를 줬다. 막상 키커가 찼을 때는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키커가 내가 예상한 방향으로 공을 차더라. 그리고 골대를 맞췄다.

사실 나는 키커가 공을 차기 전에 경기를 끝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키커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됐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두 번을 막은 것이다.

어찌됐든 축하한다. 용돈이 생겨 이렇게 표정이 밝은 것인가.

마냥 그런 것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톨릭관동대가 돌풍의 팀이라는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서 돌풍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중앙대와의 경기를 철저히 준비했다.

사실 얼마 전에 좀 자존심이 상했다. 대학 전통의 강호인 연세대를 5-1로 대파하고 기분 좋게 SNS에 들어갔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반응들이 대부분 "가톨릭관동대가 정말 잘했다"라는 것이 아니라 "연세대 명성 옛날이네", "연세대가 못했네"라는 것이다. 나는 연세대가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톨릭관동대는 이제 시작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가톨릭관동대가 이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앞으로 남은 팀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팀들이다. 16강에 올라간 팀들은 모두 강하다. 하지만 잘 준비할 것이다.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 가톨릭관동대의 위상을 드높이고 싶다.

꼭 당신의 꿈을 이루길 바란다.

우리 팀 분위기가 정말 좋다. 서로 믿음이 강하다. 다른 선수가 실수하거나 못하면 탓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메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뜻 나선다. 여기까지 올라온 만큼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관동대에 입학하고 나서 3년 동안 잘한 경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나 자신이 그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 춘계연맹전을 발판 삼아서 믿음직한 선수가 되고 싶다. 단순히 팀 동료들에 의존해 묻어가는 선수는 되고 싶지 않다. 팀 동료들을 이끌어가고 그들과 함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손광채는 자존감이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였다. 단순히 용돈을 받는 것보다 팀이 성장하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대학생 다운 패기와 센스도 있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에 가톨릭관동대 선수단 버스는 그를 경기장에 덩그러니 놔두고 떠나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손광채는 당황할 법도 했지만 끝까지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한 마디 외치며 경기장을 떠났다.

"괜찮아, 용돈 받았으니 택시 타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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