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진단②] “누가 역도 선수를 성추행하나” 체육계의 위험한 시선

ⓒ JTBC 방송화면 캡쳐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나도 당했었다”라는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체육계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스포츠니어스>는 검찰 내 성추행 폭로 이전부터 일어났던 성폭력 고발 사건들에 비해 왜 검찰 내 성폭행 폭로를 향한 관심이 커졌는지, 왜 체육계에는 이와 같은 운동이 일어나기 어려운지에 대한 이유에 집중했다.

검찰 폭로 확산된 이유? 핵심은 언론

미투 운동은 미국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 추문 사건에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 해시태그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며 확산된 운동이다. 국내에서는 검찰 내 성추행 폭로 이전 문단 내 성폭력, 미술계 성폭력 고발 운동이 일어났다. 테니스 종목 성폭력 피해자였던 김은희 씨도 작년 10월 용기를 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검찰 내 성추행 폭로만큼 사회적 이슈로 번지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검찰 내 성추행 폭로의 경우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보았다. 검찰이라는 조직의 실태, 피해자가 직접 영향력 있는 매체에 나와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손석희 사장은 반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용어의 차이로 일반 대중이 받아들였던 충격의 크기가 달라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인권활동가 A씨는 “문단 내 성폭력, 미술계 성폭력의 경우 해당 분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건을 외부자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라면서 “외국 유명인사들이 동참했던 운동에 사람들이 미투 운동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처럼 특정 분야 내 성폭력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어 “서지현 검사는 검찰 조직 내에 자신이 겪었던 글을 올렸을 뿐”이라면서 “관심의 크기가 커진 매개체는 언론이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 사건이 커진 이유는 언론이 그렇게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언론이 이렇게 피해자를 직접 드러내면서 받았나. 검찰 조직 말고도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을 고발한 사건도 언론이 받았기 때문에 커지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경인여대 허현미 교수도 언론의 역할을 원인으로 꼽았다. 허 교수는 “성추행 수위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 보도 방향과 무게감이 영향을 줬다. 법을 준수한다는 검찰 조직마저도 성추행 피해가 있었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라면서 “문단, 체육계에는 여전히 감춰져 있는 사실이 많을 것이다. 문학계나 체육계는 집중적으로 보도되는 경향이 적었다”라고 덧붙였다. 인권침해예방활동연구소 김희진 대표도 이에 동의하며 “검찰 조직 내 여성 피해자가 직접 화면에 나와 발언한 게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여성들 저항 억누르는 2차 피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제외한 당내 의원들이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지지를 선언하면서 관심이 더 커졌다는 해석도 있다. 김 대표는 “그렇다. 누구든 계속 말해야 듣는 사람도 많이 생긴다”라고 전했으며 허 교수 또한 “그렇다. 미국에서도 사회적으로 인기 있었던 배우들이 동참하면서 크게 번진 측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다만 허 교수는 “지금까지 다른 영역에서도 성폭력 문제가 너무 많았는데 검찰 측 문제가 보도되고 나서야 지지 선언을 한 점은 아쉽다. 해당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으로 번져 정치적으로 이점을 볼 수 있다는 판단에 지지를 선언했을 수 있다”라며 “정말 진심이 담겨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취약계층을 향한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왜 침묵했나. 더 어려운 사람들이 당했을 때 왜 그들은 가만히 있었나. 시기를 틈타 특정 분야에 지지를 선언하는 것도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시절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한 김은희 씨 ⓒ SBS 방송화면 캡쳐

허 교수의 말처럼 테니스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김은희 씨의 사건은 작년 10월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 언론사는 직접적으로 “피해자였던 김모 씨가 ‘미투 운동’을 시작했다”라며 언급했지만 관심의 크기가 작았다. SBS 측이 김은희 씨의 목소리를 담긴 했으나 서지현 검사의 폭로와는 보도 양상이 달랐다. 게다가 SBS 측은 최근 제보를 받는 과정에서 일부 취재원들에게 무례한 태도를 나타냈다는 지적이 있다. 김희진 대표는 체육계를 바라보는 편견을 성폭행 문제 확산이 어려운 이유로 지적했다.

서지현 검사도, 한샘 기업 성폭행 피해자도 겪었던 ‘꽃뱀’ 프레임에 피해자를 가두고 2차 피해를 가한다는 지적이다. 거기에 체육계 여성들의 경우 종목 특성이 부각되면서 여성성에 대한 모욕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게다가 성폭력을 저지른 지도자 중에는 좋은 성적을 내거나 스타 선수를 발굴해 면죄부를 받는 경우도 지적됐다. 2007년 당시 우리은행 프로농구팀 박명수 감독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 등 실력을 인정받은 점이 동정론으로 번졌다.

김 대표는 “2013년 역도 성폭력 사건 혐의의 경우 오승우 감독은 장미란을 지도한 감독으로 알려져 일종의 ‘면죄부’를 받았다고 본다”라고 전하면서 “해당 사건이 무혐의 판결을 받자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누가 역도 선수를 성추행하겠느냐. 말이 안 된다’라는 반응이었다. 체육계 여성들을 향한 시선을 느꼈고 참혹한 심정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2014년 컬링 대표선수들이 성추행 가해자로 최 모 코치를 지목하며 사표를 제출했을 때도 ‘메달 따고 유명해지니 지도자를 갈아치우려 한다’라는 반응도 있었다”라며 체육계 여성들을 바라보는 실태를 지적했다.

여성 인력 부족, 권력 불균형 낳아

한편 ‘영향력 있는 여성 인력의 부족’도 체육계 여성들의 연대가 어려운 원인이 될 수 있다. 여성 체육인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소위 말하면 ‘힘’을 가진 여성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현재 김은희 씨를 지지하고 있는 ‘100인의 여성체육회’ 단체가 그나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해당 단체도 어려움은 있다. 각 종목 지도자들과 엘리트 선수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종목이 달라 모이기가 어렵다. 단체의 전 회장을 맡았던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은 정치계 인사이긴 하나 2017 대선 홍보 당시 바른정당 측 체육 정책 담당자로 나서 후퇴된 체육 인식을 노출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지도자, 행정가 등 스포츠 현장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역할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07년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체육계 여성들이 피해 당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로 ‘운동부 내 인간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62.5%)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대응할지를 몰라서'(31.3%), ‘거부하면 선수 생활에 큰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9.2%),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27.1%)라는 이유가 주를 이뤘다. 이와 같은 결과는 선수 개개인이 성폭력에 대응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운동부 내 성폭력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기구 및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좁혀졌다.

대한체육회는 2005년 선수보호위원회 및 선수고충처리센터를 구설, 2008년 스포츠 인권 보호 지원업무 전담팀을 설치한 바 있다. 그러나 전담팀 설치 이후에도 끊임없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련 기관의 기능과 능력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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