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케인 100호 골에 박수를 치는 클롭 감독 ⓒ SPOTV 중계화면 캡쳐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지난 5일 새벽(한국 시각) 안필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리버풀과 토트넘 홋스퍼의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모하메드 살라의 멀티골, 빅터 완야마의 놀라운 중거리 슛과 해리 케인의 EPL 통산 100호 골 등 소문난 잔치에 먹거리가 가득한 경기였다.

리버풀은 승리를 거둘 자격이 있었다. 살라의 두 번째 골은 놀라웠다. 수비수들이 밀집된 지역을 개인 기량으로 돌파해 공간과 골을 만들었다. 그는 리버풀의 주전임을 입증했다. 모두가 리버풀의 승리를 예상했다. 에릭 라멜라와 버질 반 다이크가 충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명승부였다. 정규시간이 마무리된 90분 이후에 승부의 추가 이리저리 기울었다. 석연찮은 판정 논란이 있었지만 축구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얼마든지 변수가 생길 수 있는 스포츠다. 그래서 우리는 축구에 열광한다.

리버풀로서는 억울할 수 있는 결과다.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 청원에 리버풀과 토트넘의 재경기를 요청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케인의 페널티 킥 골 이후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이 보여준 태도, 그리고 로리스 카리우스의 경기 후 인터뷰였다. 리버풀의 '품격'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케인이 후반 추가시간 페널티 킥 골을 집어넣으며 EPL 통산 100호 골을 신고했을 때 클롭 감독은 박수를 쳤다. 해리 케인이라는 위대한 공격수의 역사적인 골이었다. "PK판정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전하긴 했지만 어쨌든 클롭 감독은 적장의 위치에서 케인의 100호 골을 축하했다. 카리우스 골키퍼는 또 어땠나. 골키퍼로서 다소 억울할 수 있는 페널티 킥 판정 속에서 그는 속된 말로 '쿨'하게 인정하고 "약간의 접촉이 있었다. 그게 페널티 킥이라면 어쩔 수 없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모두가 좌절했다. 승점 3점을 잃었다"라며 아쉬워하면서도 인정할 부분은 인정했다.

그들은 상대 팀을 존중할 수 있는 팀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렸다. 축구라는 종목은 다른 종목보다도 피아구별이 도드라진다. 상대 팀을 향한 적대감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런 축구판에서 억울함을 삼키고 상대 팀을 향해 존중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이 얼마나 있을까. 축구는 전쟁과도 같은 스포츠지만 그야말로 스포츠이기에 품격있는 존중이 드러나야 할 필요가 있다.

해학적 응원가에 폭소를 터뜨리는 클롭 감독 ⓒ YouTube 채널 'Richy Sheehy' 캡쳐

리버풀이 보여주는 경기력도 경기력이지만 그들이 축구장 안팎에서 보여주는 존중은 감동을 준다. 얼마 전 리버풀 유소년 클럽에서 활약하는 리안 브루스터(17)는 자신이 "12세부터 인종 차별을 당했다"라며 용기 있는 고백을 했다. 브루스터가 인종차별을 받고 <가디언>과 단독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리버풀 구단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마이클 고든 구단주는 사적으로 그와 연락하면서 그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렸다. 스티븐 제라드는 브루스터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브루스터가 당한 부당한 일에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유소년 아카데미 디렉터 알렉스 잉글소프, 클롭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케빈 머피라는 리버풀 팬은 '더 아치스'의 노래 '슈가 슈가'를 리버풀의 응원가로 개사하면서 큰 호응을 이끌었다. 살라, 사디오 마네, 호페르투 피르미누라는 훌륭한 선수들을 칭송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쿠티뉴를 팔았지"라는 해학을 담았다. 케빈 머피의 영상은 클롭 감독에게도 전달됐는데 이때 클롭이 보여준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케빈 머피의 영상이 끝나자 '깔깔'하고 웃었다.

리버풀이라는 팀이 만들어가는 분위기란 이런 것이다. 팬들의 해학에 호탕하게 웃으며 클럽에 소속한 선수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팀, 그러면서도 상대 팀의 공격수가 역사를 쓰는 순간을 잊지 않고 축하해 주는 모습에서 리버풀이라는 팀을 알 수 있다. 클롭이 케인에게 박수를 치기 전, 살라가 두 번째 골을 만들었을 때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터치라인 바깥을 뛰어다니면서 환호하던 감독이 아닌가.

잔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분명 리버풀은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놓쳤다. 실망과 좌절을 느낄만한 결과였다. 극적인 무승부를 거둔 토트넘보다도 리버풀에 눈이 갔던 이유는 그들이 보여줬던 태도 때문이다. 그들이 보여준 품격에 무승부의 아쉬움도 지워낼 수 있지 않을까. 리버풀 팬들은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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