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지난 달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입경하는 모습. ⓒ통일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통탄할 일이다. 북한 선수단을 태운 고려항공 여객기가 인천공항에 내렸고 시민들은 북한 선수들에게 손을 흔들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선수촌에 입촌한 북한 선수들은 곧바로 대형 인공기를 밖에 내걸었다. 대한민국 땅에 인공기가 걸리는 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이뿐 아니다. 도심 곳곳에도 인공기가 내걸렸다. 관중은 경기장에 가 북한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쳤고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북한 응원단은 경기장 곳곳에서 인공기를 펼쳐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게 나라인가 싶다.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우리 땅에 와서 인공기를 내거는 것도 모자라 우리 스스로 도심에 인공기를 내걸다니….

“항공편 보내 북한 선수단 데려오자”던 4년 전

이 모습을 보고 정권이 ‘종북’이라 그렇다고 열변을 토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라를 통째로 북한에 가져다 바치는 꼴이라면서 색깔론을 펼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위에 언급한 일은 박근혜 정권이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의 모습이다. 심지어 당시에는 인천뿐 아니라 고양시 곳곳에도 인공기가 나부꼈다. 당시 인천아시안게임과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을 위해 지원 비용으로 무려 4억 6천만 원을 썼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동포라는 점과 남북관계 등을 감안해 인색하다는 얘기를 듣지 않도록 정부와 조직위원회가 통 큰 결정을 하도록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인제 당시 새누리당 최고의원은 한술 더 떴다. “항공편을 보내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데려와 우리 호텔에서 숙박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여자축구 북한과 일본의 결승전 경기장을 찾아 인공기를 내걸고 응원하는 북측 선수단 바로 옆에 앉아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은 당시 태극기를 들고 대항하지 않았다. 당시 정권과 집권당도 ‘종북’이라면 엄청난 ‘종북’이다. 김일성 원수 놈을 찬양하는 빨갱이 무리들이 이 땅에서 인공기를 들고 설치는데 그걸 보고만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집권당에서는 이걸 부추겼다. 시내에 인공기가 펄럭이게까지 했으니 나라를 통째로 북한에 가져다 바친다고 지적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당시 이 정권과 집권당을 향해 ‘빨갱이’ 운운하는 이들은 없었다. ‘종북 프레임’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마치 곧 북한이 대한민국을 접수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들도 없었다.

그런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유독 북한을 참가국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종북 논란’이 크다. 선수촌에 북한 선수들이 인공기를 내걸면 문재인 정권 탓을 하고 남북 선수들이 마식력 스키장에 가 공동 스키 훈련을 하면 전세기 비용을 따지며 문재인 정권이 북한에 엄청난 퍼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부르며 ‘종북’의 덫을 씌우기도 한다. 평창 시내에 인공기라도 걸리면 곧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북한에 내줬다는 반응이 나올 판이다. 북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대한민국 땅에서 북한 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은 상상하기에도 무섭다. 이 땅에서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진다면 ‘종북몰이’는 정점에 다다를 것이다. 때는 2018년인데 1980년대에 비해 ‘종북 프레임’은 더 촘촘해졌다.

대한민국 땅에서 인공기를 내걸다니…. 분노할 이들도 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모습이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언제까지 ‘종북몰이’나 할 텐가

스포츠를 제발 스포츠로 바라보자.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이라고는 해도 올림픽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북한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된 나라고 우리는 개최국으로서 북한을 다른 참가국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 애초에 이럴 자신 없으면 올림픽 같은 건 유치하지 말았어야 한다. 선수촌에 인공기가 내걸리고 북한 국가가 연주되는 건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IOC가 주관하는 대회에서는 IOC의 입장을 따라야 한다. 인공기와 북한 국가 등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고 거부감이 있지만 적어도 대회를 준비하고 치르는 동안에는 받아들여야 한다. 2014년 아시안게임 때 박근혜 정권이 자의적으로 시내에 인공기를 내걸었겠나. 그때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규정에 따라 참가국인 북한의 국기를 건 것이었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건 논쟁의 소지가 있다. 나 역시 대회 한참 전부터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지금 역시도 단일팀을 환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건 북한 선수가 우리와 한 팀이 되어서가 아니라 단지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고 누군가 피해를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남과 북 선수들이 한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마치 이 단일팀을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정치색과 섞어 본질을 호도한다. 단일팀의 논쟁거리는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었지 북한을 한 팀으로 품은 게 아니었다. 물론 여기에는 애초에 ‘종북몰이’의 여지조차 주지 말았어야 할 현 정권의 잘못도 적지 않아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과 우익 세력들은 단일팀 유니폼이 인공기를 연상시킨다며 또 한 번 ‘종북몰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 대표팀 유니폼은 원래부터가 디자인이 그랬다. 2017년 2월 개최된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때부터 이 유니폼으로 참가했다. 원래 유니폼 디자인을 그대로 하고 가슴에 한반도기를 하나 더 넣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올림픽에서 북한과 관련된 모든 걸 ‘종북’으로 몰기 위해 눈에 불을 켠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따지면 현아의 ‘빨개요’도 ‘종북’ 노래로 몰 수 있다. 인공기만 가지고 트집 잡지 말자. 평창에 인공기만 걸려 있는 것도 아니다. 일장기도 걸려 있고 오성홍기도 걸려 있다. 성조기도 나부낀다. 평창올림픽이 무슨 ‘종북’의 집단 쇼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평창올림픽이 깔 게 얼마나 많은데 이런 유치한 ‘종북몰이’나 하고 있나.

대한민국 땅에서 인공기를 내걸다니…. 분노할 이들도 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모습이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유치하기 짝이 없는 평창올림픽 ‘종북몰이’

우리 땅에 인공기가 내걸렸다고 해 마치 우리가 북한에 굴복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쇼’에 더 이상 속지 말자. 정치적인 논쟁으로 써먹기에도 너무 유치한 수법이다. 참고로 지난 해 4월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도 태극기가 펄럭이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평양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B조 예선에 대한민국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북한에서도 안 하는 편 가르기를 그래도 훨씬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는 우리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선동과 날조에 속지 말자. 4년 전 인천에서 인공기가 내걸리는 건 괜찮고 지금 와서 평창에 인공기가 내걸리는 건 ‘종북’인가. 내가하면 ‘화합’, 남이 하면 ‘종북’인가. 정치적인 논쟁은 거두자. ‘평양올림픽’이 아니라 ‘평창올림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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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필자 김현회는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육군 7사단을 만기 전역했으며 군 복무 당시 ‘대북 안보관 골든벨’에서 중대 1등을 차지하며 투철한 안보관을 보여줬다. 또한 “빨갱이를 때려 잡겠다”는 신념 하나로 실사격 20발 중 19발을 명중시켜 포상 외박증을 받는 줄 알았으나 중대장은 외박증 대신 김현회의 사격 솜씨를 상점 5점을 부여하며 크게 치하한 바 있다. 현재 이 상점 5점은 국가에 반납해 국고로 귀속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