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베트남은 마치 2002년의 대한민국처럼 열광했다. 대한민국 감독이 해외 대표팀을 이끌고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도 연일 박항서 감독에 대한 기사를 내놓는 중이다.

테니스 선수 정현이 호주에서 맹활약을 떨쳤던 것처럼 분명 한국인의 해외 무대 활약은 특별한 감동을 준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정서 때문인지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외면받았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해외에서 인정을 받을 땐 신기한 느낌이다. 그만큼 우리가 소홀히 여겼다는 죄책감도 든다.

문재인 대통령도 박항서 감독의 업적을 축하했다. 그는 베트남 대표팀의 결승전을 언급하며 "눈보라 속에서 연장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자체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부임 3개월여 만에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아시아 정상권으로 끌어올린 박 감독님의 노고에 우리 국민도 기뻐하고 있습니다"라면서 "대한민국과 베트남이 한결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아 기쁩니다"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축하의 말을 건넸다.

베트남 총리는 박항서 감독과 선수단을 맞이하려 5시간을 기다렸다. 베트남 정부는 박항서 감독에게 노동 훈장까지 수여했다. 베트남의 유망주 쯔엉도 K리그 소속으로 선수명을 등록했고 심지어 K리그는 올스타전을 베트남에서 치렀다. 올스타전을 통해 프로축구연맹은 어느 정도 수익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계에서 나타나는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한결 가까운 친구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축구로 양국의 관계가 정말로 호전된다면 반길 일이다. 스포츠와 정치, 외교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때로는 스포츠의 힘이 서로 다른 나라 간의 화합을 끌어내기도 한다. 이번 평창 올림픽의 테마를 평화로 잡은 결정은 옳은 일이다. IOC는 올림픽에 경제적 가치만 부여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성공적으로 올림픽 무대를 평화와 화합의 장으로 발전시켰다. 어쨌든 북한이 미사일만 고집하지 않고 우리나라 정부와 이야기를 나누러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창 올림픽은 의미가 있다.

ⓒ 베트남 축구협회

한편으로는 단순히 축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은 '한국인' 박항서에 열광했다기보다 박항서 '감독'에 열광하고 있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박지성과 손흥민, 김연아와 싸이, 최근에는 정현이 일으켰던 신드롬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점이다. 그들을 소비하는 뉴스와 의견들은 그들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국가로 여겼다. 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나는 이게 항상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박항서 감독이 대한민국과 베트남 외교에 가교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혹은 마치고 나서 두 나라의 정상이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에 관해 이야기하면 좋은 분위기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난 박항서 감독의 외교적 역할이 딱 이 정도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많은 상처를 준 나라다. 베트남에서 전쟁이 있었고 한국군은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 미국의 책임이라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군복을 입고 방아쇠를 당겼으며 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베트남이 직접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가 먼저 베트남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려 한다면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일본인 감독이 우리나라 축구의 부흥을 일으킨다 한들 일제가 우리나라에 저지른 만행을 쉽게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위안부 문제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아베 총리가 우리나라를 향해 같은 말을 했다면 우리는 그를 욕하고 조롱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음의 빚'이라는 표현을 썼다. 당초 문 대통령은 베트남 참전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내기를 원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외교부와 참모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미래를 말해야 할 정상회담의 주제가 한정될 수 있다는 이유가 있었고 경제를 내세운 동남아 순방이 불필요한 이념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즉, 아직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의 마음과 노력을 인정한다. 그래서 '한결 가까운 친구'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어떻게든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베트남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가 노력해야 할 일이다. 박항서 감독은 축구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에게 '특사' 역할까지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인' 박항서가 아닌 '감독' 박항서를 응원하고 싶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