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면서 연습했다는 아산 안현범의 경례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광양=조성룡 기자]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존재다.

군대를 갔다온 남성이라면 항상 군대 얘기가 입에서 나온다. 그래서 '최고의 술안주는 군대 얘기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회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겪게 되고 수많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말이다.

지금 한창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인 청년이 있다. 바로 아산무궁화에 입단한 안현범이다. 아직 그의 전역은 보이지 않는다. 2019년이 되어야 비로소 희망이 생기는 이경이다. 4주 동안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막 아산 전지훈련에 합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굉장히 할 말이 많아 보였다. 4주 동안 보고 겪고 느낀 것을 쉴 새 없이 풀어냈다.

진솔하면서도 때로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풀어낸 안현범을 <스포츠니어스>가 아산의 전지훈련지인 광양에서 만났다. 곧 입대를 앞두고 있는 독자들은 반드시 정독하자. 육군훈련소를 수료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야말로 따끈따끈 갓 계급장 단 이경이 전해주는 훈련소 생활 꿀팁이 인터뷰에 들어가 있다. 물론 군필 남성들에게는 조금 지루한 인터뷰가 될 수도 있다.

#1. "축구선수 티 안내려고 했어요"

입대 당시를 생각해보자. 군대가 두렵고 그러지는 않았는가?

입대 전에 김호남이 내게 장문의 카톡 한 통을 보냈다. 당시 상주상무는 휴가 중이었을 때다. 김호남이 휴가 나와서 동생 걱정에 카톡을 보낸 것이었다. 거기에는 육군훈련소 4주를 보내는 꿀팁이 가득 들어있었다. 핵심은 "나서지 말아라"였다. 그 말 듣고 나는 입대해서 소대장 훈련병, 중대장 훈련병 이런 거 안하고 가만히 있었다.

축구선수인 것도 밝히지 않았다. 약간 신분을 숨겼다고 보면 된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는데 뭔가 축구선수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다. 처음에는 잘 숨겼다. 내가 축구선수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우리 중대에 축구선수가 나 한 명 밖에 없었다. 13명의 축구선수가 입대 했는데 같은 중대에 축구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입대 당시에 아산 동기 13명이 육군훈련소에 들어왔는데 그 중 9명이 같은 연대에 배치됐고 4명이 다른 연대에 배치됐다. 4명은 나와 조범석, 김준수, 이한샘이었다. 이한샘이 혼자 6중대였고 김준수와 조범석이 7중대, 내가 8중대였다. 한 2주 동안은 너무 외롭고 답답했다. 비교적 젊은 친구들 가운데서 나이도 많고 축구선수인 티도 내지 않았으니 나름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중대가 교육을 받으러 강의실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마침 그 때 7중대가 강의실에서 나오는 상황이었다. 내 눈 앞에 (조)범석이 형이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한 번도 사회에서 같은 팀에 뛰거나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너무 반가워서 무작정 끌어안았다. 그 때부터 급속히 둘이 친해졌다. 그래서 매일 오후 8시 반에 청소할 때 청소 빨리 끝내고 중대와 중대 사이에 있는 전화 박스 앞에 잠깐 모여서 얘기 나눴다.

그러다보면 결국 들통이 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그냥 열심히 훈련만 받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혜택을 잘 못받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전화 포상도 별로 없었고. 축구선수라 그러면 간부들도 좋아해주고 전투체육 시간에 공 한 번 차게도 해준다던데 티를 안내니 그럴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분대 동기들이 먼저 알아봤다.

동기들 중에 제주도 사는 사람이 몇 있었다. 그들이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내 이름표를 봐둔 모양이다. 친해지고 나니까 "형 혹시 그 축구하는 안현범 맞아요?"라고 물어보더라. 맞다고 하니까 "아 그 형이 이 형이었구나"라면서 놀라더라. 그렇게 조금씩 소문이 나다가 결국에는 중대 내에 내가 축구선수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 아산 무궁화 제공

그 이후에 체력 검정을 하는데 축구선수가 일반인에게 밀리면 또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내가 계속 신분을 숨겼다면 그냥 적당히 하는데 이미 소문이 난 상황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해서 1등을 했다. 결국 수료식 때 체력왕으로 상장 받았다. 육군에서는 그 상장 있으면 휴가 때 며칠 더 붙여서 쓴다던데 여기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들었다. 아…

훈련은 어땠는가?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 아닌가.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먼저 너무 멀었다. 육군훈련소가 규모 자체가 엄청 크다. 교장 가는데만 꽤 걸어야 한다. 사회에 있었던 것처럼 노래라도 들으면서 가면 그나마 괜찮았을텐데 그냥 묵묵히 걷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군가를 다같이 부르면 그나마 덜 지루했는데 가는 길 내내 군가만 죽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혼자서 묵묵히 걷기만 했던 게 기억난다.

다른 한 가지는 너무 추웠다. 흔히 'CS복'이라 부르는 훈련복 입고 훈련 받는데 가만히 서 있을 때마다 추웠다. 깔깔이(방상내피)에 야상(방상외피)만 입고 있으니 추위를 이겨내기 쉽지 않았다. 핫팩 많이 챙겨간 것이 다행이었다. 솔직히 우리는 의무경찰과 사회복무요원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훈련이 엄청 힘들었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하다. 그래도 사회에서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역시 행군이나 각개전투 아닐까?

각개전투와 사격이 힘들었다. 각개전투는 걸어가는 것부터 힘들었다. 완전군장을 하고 1시간 40분 가량 거리를 걸어간다. 그리고 각개전투 훈련을 하고 다시 돌아온다. 같이 훈련 받았던 동기들이 행군보다 각개전투가 더 힘들다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너무 춥지 않은가. 추위에 떨고 힘들어서 떨었다.

사격은 솔직히 힘들 줄 몰랐다. 다들 재밌다고 하길래 재밌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와… 사격술 예비훈련이 너무 힘든 것이다. 흙먼지 날리고 꽝꽝 얼어버린 땅바닥을 구르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심지어는 과거 탈장으로 수술 받았던 부위가 다시 아파지는 것이다. 그 때 "교관님 조교님 정말 못하겠어요"라고 떼도 써 봤다.

그런데 정말 최악의 날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 생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내가 육군훈련소에서 생일과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 날을 모두 보낸 흔치 않은 훈련병일 것이다. 그런데 내 생일(12월 21일)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따라 하루를 정말 일찍 시작했다. 불침번을 섰다. 그런데 눈이 새벽부터 정말 펑펑 내렸다. 불침번 섰다가 잠깐 자고 일어나서 점호 하고 엄청나게 쌓인 눈을 치웠다. 아침부터 힘들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날 마침 화생방 훈련이 잡혀 있었다. 물론 강도는 육군보다 조금 약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화생방은 화생방 아닌가. 일단 방독면을 쓰고 가스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 방독면에 목 아래 부분을 조여주는 끈이 없었던 것이다. 방독면을 아무리 잘 써도 목 부분을 조이지 않으면 가스가 들어오더라.

ⓒ 아산 무궁화 제공

죽을 힘을 다해 참았는데 가스가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다 마셨다. 눈물 콧물 죄다 쏟아냈다. 돌아오는데 너무 서러웠다. 불침번 서고 죽어라 눈 치우고 가스는 신나게 마셨다. 내 인생 최악의 생일 같았다. 그래서 그 때 정말 내가 무슨 정신인지는 모르겠는데 분대장에게 갔다. 가서 "분대장님, 저 오늘 생일인데 전화 한 번만 시켜주십쇼"라고 말했다. 겁도 없이.

정말 간절하게 말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분대장이 짧게 한 마디 말하더라. "5분 준다." 생일이라고 하니 마음이 움직였나보다. 그 때 처음으로 가족들과 통화를 해봤다. 만일 그 때 전화마저 못했다면 2017년 내 생일은 정말 최악으로 남았을 것 같다. 물론 앞으로도 그 날은 잊기 어려울 것 같다.

훈련병이라 하더라도 군인이라면 내 애인과도 같은 총기의 번호는 알아둬야 한다. 기억하는가?

6XXXX4, K-2였다.

훈련소 분대장들이 총기번호 많이 물어봤나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다.

그렇지는 않았다. 주로 소대장님이 물어봤다. 사실 분대장들은 엄하게 나를 대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뒀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분대장 중 한 명은 내가 나이가 많다는 걸 알고 일부러 나를 더욱 엄하게 대하더라. 솔직히 나는 궁금했다. '쟤는 도대체 몇 살이길래 나한테 이렇게 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둘이 같이 무기고 야간 경계 근무를 나갔다.

근무 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과감하게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자꾸 대답을 회피하더라. 자기의 나이를 알려주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유도질문을 하나 던졌더니 바로 대답하더라. 나보다 어렸다. 속으로는 그랬다. '솔직히 네가 나보다는 형이었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그 이후에도 그 분대장은 내게 엄하게 대했다.

사실 그래서 수료식 때 면회 외출 나와서 SNS로 그 분대장을 찾아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분대장들이 '싸지방(싸이버지식정보방)'에서 내게 친구 신청을 해뒀더라. 너무 FM대로 나를 대해서 그 때는 솔직히 원망스러운 감정이 좀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거였다. 아직도 그 엄한 분대장이 나 자대로 갈 때 "현범이 형 잘가요!"라며 웃으며 손 흔들어주는 장면이 기억난다.

#2. 입맛 없던 내가 먹을 것에 집착할 줄이야

군대에 가게 되면 단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않나?

솔직히 사회에서 초코파이 이런 것 잘 안먹었다. 입대 하면서도 '에이 내가 초코파이를 좋아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첫 주에 종교 활동으로 교회를 갔다. 교회를 가면 초코파이 두 개에 사이다 하나 작은 것을 준다. 사실 그거 받으려고 교회를 갔다. 1주차여서 전투화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특히 우리 연대에서 교회까지 굉장히 멀었다. 그래도 활동화 신고 꾸역꾸역 갔다. 그거 좀 먹어보겠다고 내가 갔다.

예배가 끝나고 초코파이와 사이다를 받아와서 먹었는데 그 때는 정말…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이다 한 모금 마시니 온 몸에 당이 충전되면서 그 동안 쌓여왔던 갈증이 싹 풀리더라. 무릎을 탁 쳤다. '이거였구나, 정말 이거구나.' 군필 형들이 왜 단 거 많이 챙겨 먹으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먹기 위해서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인가.

4주 훈련 동안 종교 활동은 세 번 갔다. 첫 주에 교회(기독교)를 갔고 두 번은 법당(불교)을 갔다.간식도 간식인데 한 번은 여성 댄스팀이 온다고 해서 법당 가기도 했다. 그런데 종교 활동에서 후회되는 것이 있다.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연무대군인교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그 때 주변에 있는 다른 훈련병들이 우리 보고 "짬찌(계급 낮은 군인들을 칭하는 은어) 왔다! 짬찌 왔다!" 이러면서 막 웃고 놀리는 거다.

사실 나는 '짬찌'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약간 벙찐 채로 교회에 들어갔는데 연무대군인교회에 모인 훈련병들이 막 이상한 걸 하더라. 너무 웃기고 재밌었다. 알고보니 그게 그곳 전설의 노래인 '실로암'이었다. 그래서 나도 4주 차 때는 꼭 교회에 가서 다른 훈련병들 '짬찌'라 놀리고 '실로암'도 불러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그 때 배식조에 편성되더라. 결국 못갔다.

▲ 안현범은 이걸 못해봤다는 얘기다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평소에도 많았는가?

사실 초코파이 뿐 아니라 밥 자체도 잘 안먹었다. 평소에 입맛이 잘 돋지 않아 식사량이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런데 입대 둘째 날부터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확 늘어나는 것이다. 밥 먹으러 가서 밥을 떴는데 갑자기 배식조 전우들이 그러는 거다. "정량배식입니다." 밥 덜어내라는 얘기였다. 그 때 순간 울컥했다.

솔직히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그 배식조에 대한 느낌을 다 알 것이다. 괜히 '배식조 자기들 많이 먹으려고 우리 밥 조금 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이 들게 되면 열 받는다. 내가 이렇게 밥 욕심을 부려본 적이 없다. 밖에서는 밥 제대로 먹지도 않았으면서 군대 오니까 김치 국물까지 밥에 싹싹 비벼먹고도 배가 고픈 거다. 참 신기하더라.

밥 가지고 내가 치사해진다는 것을 느끼니까 너무 서러웠다. 정말 오죽 했으면 이런 일도 있었다. 반찬으로 치킨이 나왔다. 한 소대에 분대가 네 개가 있는데 우리 분대는 4분대였다. 맨 마지막에 배식을 받았다. 그런데 치킨이 하나도 없는 거다. 정말 화 많이 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치킨 때문에 화를 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때 치킨 껍질, 튀김 가루 있지 않는가? 그거 가지고 밥을 먹는데 너무 서러웠다. 그런데 그 기분도 얼마 가지 않았다. 치킨은 없었는데 양념 치킨 소스는 많이 남았다. 그걸 밥에 비벼 먹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나만 그런가 싶어서 분대 전우들을 보니 다 그렇게 먹고 있더라. 서로 "우리 지금 치킨 소스에 밥 비벼먹는다. 우리 이런 사람들 아니었는데 이러고 있다"면서 서로 다독이고 친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군대 가면 변비에 시달리는데 당신 먹는 얘기 들어보면 장 운동도 활발했을 것 같다.

그럴 리가. 엄청 힘들었다. 입대하고 약 열흘 가까이 근심을 해결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두 가지 강박감에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감, 그리고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감. 훈련소에서는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지 않는가. 나도 변비로 고생 많이 했다.

먹을 때마다 '이제는 해야 하는데…'라고 엄청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거 한 가지는 정말 신기했다. 나오는 건 하나도 없는데 입으로는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잘 들어간다. 그것도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배고프다. 뱃속에서 음식이 증발하나? 도대체 왜 안나오는지 미스테리였다. 물론 열흘 이상 지나고 나서 해결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더 이상 얘기하면 독자들이 불쾌할 것 같다. 대신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미필 독자들과 동료들을 위해 훈련소에서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달라.

일단 '군대리아'라 불리는 빵식은 정말 명불허전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 군대리아에 대해서는 극찬을 하지 않았는가. 다들 먹는 방법은 다르다. 누구는 우유에 말아 먹기도 하고 누구는 따로 따로 먹기도 한다. 나는 정석대로 먹었다. 빵에 패티와 소스 바르고 야채 넣어서 만들어 먹었다. 방송에서 하는 말이 허언은 아니더라.

육고기비빔소스도 정말 맛있다. 이건 간장게장만큼 밥도둑이다. 그거 나오는 날이면 밥을 한라산 만큼 떠서 먹는다. 이럴 때는 또 배식조가 태클을 건다. "정량배식입니다." 그 때는 나도 물러설 수 없다. 나 진짜 배고프니까 이번 만큼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한 번은 서로 몇 살이냐고 물어볼 만큼 신경전도 벌였다. 근데 내가 또 육군훈련소 안에서 나이로는 쉽게 지지 않는다. 많이 먹었다 덕분에.

ⓒ 아산 무궁화 제공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식단 자체가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생각했다. 콩나물, 오징어, 두부 등 전체적으로 단백질 많은 음식들이 나온다. 그래서 손톱이 맨날 길어지더라. 아참, 건빵에 나오는 별사탕도 꼭 챙겨 먹으면 맛있고 좋다. 참고로 별사탕은 건빵 다섯 개에 하나씩 먹는 거다. 행군할 때 초코바도 정말 맛있었다.

아산에 와서는 정말 잘 먹는다. 맛있는 밥 먹으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라면은 먹고 싶더라.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라면을 꼽을 것이다. 12월 7일에 입대하고 나서 훈련소에서 딱 한 번 부식으로 컵라면 나왔을 때 먹어봤다. 그 이후에 그 꼬들꼬들한 라면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3. 잊을 수 없는 초등학생의 편지

훈련소 생활 동안 훈련 아니면 먹기만 한 것 같다.

사실 그것 말고는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두 가지만 한 것은 아니었다. 편지를 정말 많이 썼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 팬들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손편지를 보내도 인터넷 편지를 보내도 내가 무조건 다 답장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 휴일이나 개인정비 시간이 주어졌을 때는 무조건 편지를 썼다. 한 3~40통 정도 쓴 것 같다.

그 편지 때문에 축구선수라는 신분이 들통난 것 같기도 하다. 계속해서 편지는 오고 나는 계속해서 답장을 쓰고 있으니 분대 동기들이 뭔 편지를 그렇게 많이 쓰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팬들에게 쓰는 거라고 했더니 형은 도대체 뭔데 팬이 있냐고 물어보더라. 당시 내가 축구선수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 얘기다. 모든 팬들에게 답장을 해줬다고 대충 쓴 것은 아니다. 편지지 한 장씩 꽉 채워서 답장해주고 그랬다.

그리고 팬들에게 한 가지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싶다. 일부 팬들이 내게 섭섭해 한다고 들었다. "나는 분명 편지를 보내줬는데 답장이 안왔다"라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손편지는 전부 답장을 해줬다. 그런데 일부 인터넷 편지는 내가 답장을 해주지 못했다.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터넷 편지를 쓸 때 자신의 주소를 알려줘야 내가 답장을 할 수 있는데 편지 안에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다. 주소를 적은 편지는 모두 답장했다. 훈련소 안에서 조금 답답했다. 주소 없다는 걸 얘기해주고 주소 알려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 이 부분은 팬들이 너그럽게 이해 해줬으면 좋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무엇인가?

한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였다. 아마 제주 애월읍 쪽에 사는 초등학생인 것으로 기억한다. 편지에 '현범 삼촌, 저는 꼭 커서 형처럼 될 거에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 사진과 자기 집에 내 사진을 액자로 걸어놓은 것을 찍어서 함께 보내줬다. 글씨부터 초등학생이라는 티가 나더라. 그런데 뭔가 마음이 짠하더라. 이런 어린 친구도 나를 좋아해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편지 한 장 열심히 썼다. 그리고 그 친구가 '형 사인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하길래 사인도 크게 한 장 해서 보내줬다. 수료식 때 SNS를 보는데 편지가 무사히 그 친구에게 도착한 것 같더라. 무엇보다 그 어린 초등학생 친구의 진심 어린 마음을 받았다는 것이 군 생활에 있어서 크게 위로가 되고 정말 행복했다.

당신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편지여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4주 간의 훈련소 생활이 편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힘들었다. 다른 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있었던 당연한 일들이 여기 와서는 당연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정말 먹고 싶은 밥을 먹고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곳에서 샤워나 목욕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핸드폰을 쓰거나 노래 듣고 싶을 때 노래 듣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이런 것이 사회에서는 일상이었다.

솔직히 일상이다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 주변에 먼지가 항상 날아다녀도 항상 그랬으니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그냥 먼지처럼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내가 훈련소에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 무기력함? 죄책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이런 감정들을 편지에 담아서 쓰곤 했다.

군대에서 느낀 점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숨겨진 재능도 발견했다. 내가 바느질을 상당히 잘하더라. 군대에서 가뜸을 엄청 많이 하는데 생각보다 내가 잘 하는 것 같았다. 바느질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입대 했는데 동기들 하는 것 보고 따라했다. 손은 많이 찔렸지만 의외로 잘했다. 나중에 가뜸은 내가 동갑내기 미필 친구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훈련소에서 느끼고 배운 점들을 정리해서 다음 훈련병을 위해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입소하면 가이드북 같은 책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과거 거쳐간 훈련병들이 잔뜩 꿀팁을 써놓는다. 나도 "짬찌님들 시간 안가시죠?"부터 시작해서 꿀팁을 몇 개 적어놓고 왔다. 마지막에도 힘내라고 "우린 갈게 너흰 각개"라고 적어놓고 왔다. 2X연대 8중대 1소대 4분대 50번 훈련병이 잘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수료식 후 SNS에 입대한 윤빛가람과 백동규룰 향해 힘내라고 올린 것도 봤다.

솔직히 진심어린 걱정 반 겁주려는 의도 반이었다. 나는 4주인데다가 의경이어서 훈련이 엄청나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육군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훈련소 조교나 교관들이 "육군은 이렇게 하면 진짜 죽는다"는 말을 많이 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윤)빛가람 형이랑 (백)동규 형은 훈련소에 있는 동안 설 연휴가 있더라. 6주를 훈련소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축구선수 동료 중에 빨리 입대해야 할 것 같은 선수가 있는가?

먼저 (진)성욱이 형. 굉장히 친한 형인데 빨리 군대에 와야 할 것 같다. 그 형은 문신이 있어서 아산에는 못오고 상주상무 밖에 답이 없다. 훈련이 더 힘들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진성욱은 밥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훈련소 밥이 성에 찰지 의문이다. 그 형 입장에서는 입대가 정말 괴로울 것 같다.

ⓒ 아산 무궁화 제공

물론 친구들도 빨리 군대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무리 군대 빨리 오라고 얘기해봤자 지금 군대 안간 형들이나 김승준, 정승현 같은 애들은 모른다. 막 내가 훈련소 생활 얘기하면 "에이, 진짜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그냥 코웃음 치면서 얘기한다. "한 번 가보면 알아~"

윤빛가람 형도 입대 전에 걱정보다 각오가 남달라 보였다. "가서 버티면 된다"라고 하더라. 그 형 지금 뭐하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아마 바느질 하다가 손 엄청 찔리고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 지금 굉장히 아저씨 같다.

인정한다. 내 주변 지인들도 그런 말 많이 했다. 20대 초반 어린 애들 말투 따라하는 아저씨 같다고. 군대 가면 아저씨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옛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나도 그렇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이 4주 간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하는 것 아닌가. 수료식 때 분대 동기들과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는 4주 동안 고생하면서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짜증내면서 훈련을 받은 덕분에 평생의 술 안주거리가 생긴 거라고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장사 아닐까?

#4. 축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제 아산무궁화라는 자대로 왔다. 첫 느낌은 어땠는가?

동기들을 자대에 오면서 처음 봤다. 사실 동기들이 대부분 형이다. 그런데 알고 지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선민이 형은 울산에서 잠깐 봤고 (김)도혁이 형은 올스타전 때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너무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 날 따라 그 사람들이 왜이리 반가웠던 건지 모르겠다. 같은 기수끼리는 친해진다는 말이 맞았다.

함께 같은 연대에서 훈련 받은 동기들은 서로 친해져 있더라. 그 동기들은 나 봤을 때 좀 무덤덤해 보이기는 했다. 나 혼자 엄청 반가워했다. 그리고 일부는 내가 같은 연대인 줄 알고 있었더라. 연대가 달라서 수료식을 따로 했다. 그 쪽 연대에서도 수료식 때 우수 훈련병에게 표창을 하는데 나랑 뒤통수가 비슷한 훈련병이 단상에 올라갔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동기들이 "쟤 안현범 아니야? 쟤는 왜이리 군생활을 열심히 해?"라며 수군댔다고 하더라. 물론 내가 체력왕 표창을 받긴 했지만 그 때 그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솔직히 그 때 감기에 걸려서 몸이 썩 좋지는 않았다. 편도에 염증이 심하게 올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훈련소에서 걸린 감기는 훈련소 나가면 낫는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수료하고 훈련소 나가니까 감기가 싹 낫더라. 물론 편도에 온 염증은 자대 와서도 며칠 간 고생하고 그랬다. 그만큼 수료가 주는 정신적인 행복이 크다는 뜻 아닐까?

아산에서 안현범의 목표는 무엇인가?

2019년 9월 6일.

보이지도 않는 허상은 함부로 얘기하는 것 아니다.

맞다. 아직 달력에도 나오지 않았다. 아참, 그런데 바뀔 수도 있다. 최근 군 복무 단축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만일 예정안대로 시행 된다면 우리 기수는 30일이 줄어든다. 2019년 9월이 아니라 8월 제대다. 이 소식이 뉴스에 나왔을 때 동기들끼리 서로 껴안고 '갓재인'을 외쳤다. 30일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큰 것 아닌가.

군 복무 단축에 대한 뉴스를 보고 나서 세상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지훈련장에서 새벽마다 점호를 겸해서 아침 구보를 한다. 요즘은 이 구보마저도 좋다. 솔직히 사회에서는 문재인 정부, 보수와 진보, 정치 이런 거 잘 몰랐다. 그런데 입대하고 나서는 뉴스도 꽤 열심히 보고 있다. 나라가 하는 일에 나도 많은 영향을 받더라. 어찌됐건 나는 요즘 행복하다.

선임들이 보기에는 '꿀 빤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게다가 월급도 많이 받지 않는가?

이경인데 30만원 가량 받는다. 이래저래 요즘 애국심이 팍팍 생긴다.

말뚝 박아라.

내 팬들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자대 적응은 잘 되고 있는 편인가?

사실 지금 신병 대기 기간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자대 생활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군기가 풀리거나 그렇지는 않다.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 않기 위해 행동을 조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 신병 대기 기간이 끝나고 시즌이 시작되면 아산에서의 생활에 점차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모든 것이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소대장님께 경례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기 위해서 거울 앞에서 경례 연습도 해봤다. 덕분에 경례 각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의경 충성과 육군 충성은 또 다르다고 하더라. 이렇게 점차 노력하면서 배우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주무 형이 잘 챙겨주는 편이다. 사실 주무와의 첫 만남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자대 와서 군기가 바짝 든 채로 앉아 있는데 머리 염색을 한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라. 여유롭게 핸드폰을 만지면서 들어왔다. 우리는 '저 사람이 누구지?'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표정이 여유로웠다. 굉장히 높으신 분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주무였다. 그 형이 정말 착하다. 많이 도와주려고 해서 신병의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K리그2(챌린지) 무대는 처음 아닌가?

맞다. 그런데 K리그2가 K리그1(클래식)보다 수준 낮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2부리그 무시할 그런 입장도 못된다. 솔직히 K리그2 경기 보면 다들 잘한다. K리그1 와도 별 반 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FA컵에서도 K리그1 팀과 K리그2 팀이 만나면 K리그2 팀이 심심치 않게 이기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일단은 조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프로 신인 때는 좀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멋모르고 그냥 직진이었다. 몸이 좀 좋지 않아도 그냥 막 뛰고 그랬다. 그러다보니 부상이 많이 오기도 했다. 프로 4년차가 된 지금은 과거를 보며 많이 느꼈다. 내가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면 나 자신에게도 좋지 않고 팀에도 피해를 줄 수 있겠더라.

얼마 전에 탈장 수술 이후 처음으로 공을 차봤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몸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이 상황에서 이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탈장 수술 이후 내 몸이 내 생각과 달라진 것이다. 사실 그리고나서 스트레스를 조금 받았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천천히 하자고 다독이고 있다.

원래 욕심이 없는 건가 마음을 비운 건가?

당연히 욕심은 많다. 팀 성적도 개인 성적도 다 좋고 싶다. 아산이 우승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여기에 큰 도움이 되서 개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상을 받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몸 상태나 경기력, 컨디션에 대해서는 나부터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막 재활하는 선수다. 현재 내 상황은 팀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4~5월 쯤에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최상의 몸 상태와 경기력을 갖추고 싶다. 다른 선수들보다 몸이 좋지 않은데 경기에 출전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활에 전념해서 나의 새로운 팀인 아산에 충분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당신에게 아산은 어떤 존재인가?

고맙다.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군경팀이 있다는 것이 축구선수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고마운 일이다. 어찌보면 하나의 특별한 혜택 아닌가. 그냥 병역의무를 해결하면서 축구를 시켜준다는 것 자체로도 감사하다. 최근에 군경팀이 없어진다는 얘기도 많았다. 사실 그런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도 많이 졸였다.

물론 없어지지 않더라도 내셔널리그나 K3리그로 갈 수 있다는 추측성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군대에 비교적 일찍 온 것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아산에 온 이후로 하루하루를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전역 때까지 이 마음 유지하면서 군 생활 하고 싶다.

알겠다. 항상 몸 조심하고 올 시즌 아산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기를 기대하겠다.

아니 무슨 인터뷰가 대부분 훈련소 이야기고 축구 얘기는 조금 밖에 안하는가? 당신 축구 기자 맞는가?

나는 축구 기자지만 당신은 엄연히 병역 의무를 수행 중인 의경이다. 명심하라.

충성!

ⓒ 아산 무궁화 제공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