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 그리너스

[스포츠니어스 | 남해=홍인택 기자] 2017년 K리그 챌린지의 가장 큰 이변은 선수 개인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안산 그리너스는 최종 순위 9위에 위치했지만 이 팀에서 리그 득점 2위와 도움 1위를 기록한 선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강원FC 승격의 주인공이었던 장혁진은 안산에서 강력한 모습을 선보이며 '도움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도 도움왕을 따내기 전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스포츠니어스>가 남해에 위치한 안산 그리너스의 전지 훈련장에서 장혁진을 만났다.

대학 옮겨 다니던 '그저 그런' 선수

그는 서울에 있는 이문초등학교에서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즐겁게 축구를 하는 도중 코치의 눈에 들었다. 그렇게 그의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이 시작됐다. 석관중학교와 광운전자공고를 졸업하고 배재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대학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배재대 시절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다"라고 했다.

배재대학교에서 한 학기 만에 자퇴를 했다. 반년 동안 몸을 만들고 성민대(현 선교청대학교)에 축구부가 생겨 성민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성민대에서도 장혁진의 자리는 없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노력했으나 감독과의 불화로 11월에 또 학교를 나왔다.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어두운 상황에서 장혁진은 갈림길에 서 있었다. 또래 친구들은 벌써 대학교 3학년인 나이였다. 취업을 준비하고 프로팀에 입단할 나이였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쉽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선수들이 소리소문없이 없어진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대경대학교 입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2010년 내셔널 리그 예산FC에 입단하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예산 입단에 대해 "취업 아닌 취업을 했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학생 시절에는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다. 그때 당시에는 프로에서 먼저 접촉도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드래프트 신청을 하기보다 실업팀 입단을 선택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대학을 옮겨다니던 장혁진은 내셔널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스포츠니어스

그는 예산에서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손제웅, 김태봉과 함께 예산의 트로이카로 활약했다. 손제웅의 골을 돕는 등 그때부터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그때부터 강릉시청 박문영 감독의 눈에 들었다. 그는 "예산이 강릉시청을 3-2로 잡은 경기에서는 뛰지 않았다. 전반기에 손제웅의 골을 몇 번 도왔다. 박문영 감독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라며 당시 이적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강릉시청 박문영 감독은 손제웅과 함께 장혁진을 강릉으로 데려왔다. 전반기 8위였던 강릉시청은 후반기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장혁진은 후반기에만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박문영 감독이 특히 그를 아꼈다. 팀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그에게 "혁진아. K리그 드래프트 한 번 신청해봐"라고 제안했다. 박문영 감독의 조언을 받아들인 그는 K리그 드래프트 신청을 했고 그를 눈여겨봤던 최순호 당시 강원FC 감독이 그를 선택하면서 프로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역시 프로의 벽은 높았다. 2011년 승강제가 정착되기 전 강원은 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장혁진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8번. 공격 포인트는 없었다. 결국 강원은 그를 다시 강릉시청으로 임대를 보냈다. 반년 만에 돌아온 강릉시청은 마치 그의 집과 같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펼치자 이번엔 전년도보다 더 기록이 좋았다. 5골과 2도움을 기록하며 팀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좋은 기억이 많다. 기록도 괜찮았고 경기도 많이 뛰다 보니 자연스럽게 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좋은 기억을 뒤로하고 그는 2012년 다시 강원으로 복귀했다. 이번에도 전년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한 팀에서 온전히 한 시즌을 보냈다. 15번 경기에 나섰고 1골과 1도움을 기록했다. 다른 이들에겐 아주 적은 공격 포인트였지만 그는 조금씩 그렇게 전진했다.

대학을 옮겨다니던 장혁진은 내셔널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스포츠니어스

강원의 '언성 히어로', 그리고 '주먹질'의 진실

그렇게 강원에서 자리를 잡나 싶었던 그는 군 복무를 위해 상주 상무에 입대 신청을 했다. 2010년 예산에 입단하면서부터 짧은 시간 안에 세 팀을 옮겨 다니던 그는 2013년엔 군인 신분이 되어 있었다. 백종환, 이근호와 함께 상무에서 활약했다. 공격진이 워낙 좋았던 탓에 경기를 많이 뛰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삼았다. 이근호, 이호, 정훈, 하태균 등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축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특히 강원에서 함께 입대한 백종환은 장혁진에게 큰 기둥 같은 존재였다. 이근호의 꼬임에 빠져(?) 상무에 입단한 백종환은 장혁진과 이근호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다. 장혁진은 "군 생활을 하는 데 (백)종환이 형이 많은 힘이 됐다. 종환이 형 덕에 다른 형들과도 더 가깝고 불편함 없이 지내게 된 것 같다"라며 백종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쟁쟁한 멤버들과 K리그 클래식 무대도 함께 뛴 경험이 그에게 더 큰 동기부여를 일으켰다. 군 복무를 마치고 강원에 복귀하니 2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장혁진은 "이대로 묻히는 선수가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상무에서도 보여준 게 없었다. 경기장에 나가기만 한다면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그런 마음가짐들로 강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대학을 옮겨다니던 장혁진은 내셔널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스포츠니어스

당시 강원의 최윤겸 감독은 그의 곁에서 묵묵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장혁진은 최윤겸 감독에 대해 "전적으로 선수들을 믿고 기다려주시는 스타일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학원 축구를 하던 시절에는 지도자분들이 저를 무리하게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최윤겸 감독님은 많이 기다려주셨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다. 그때부터 프로 무대에서 경기도 많이 뛰었다"라며 은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의 말처럼 최윤겸 감독의 지도로 그는 강원의 '언성 히어로'로 거듭났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팀의 살림을 도맡으며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하는 중 2016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부천FC1995와의 경기에서 이학민에게 과격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장혁진도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꼭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나도 화면상으로 봤을 땐 깜짝 놀랐다"라면서 "중계화면에는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경합 중 먼저 이학민이 내 목을 쳤었다. 이 부분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걸 뿌리치려고 팔을 쳤는데 중계화면에 정말로 주먹질을 한 것처럼 나왔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때 감독님도 '너는 애들을 왜 때리고 다니냐'라고 했다. 난 그러지 않았다. 주심은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주심이 경고도 주지 않은 이유"라고 전했다. 장혁진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이학민과 어떤 불화도 없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때렸다면 다이렉트로 퇴장당했을 것이다"라면서 "카메라도 이 한 장면만 잡더라. 내가 봐도 오해의 소지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 때리지 않았다"라면서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2경기만 징계를 받았다. 벌금도 없었다. 친구들도 그 장면만 보고 나에게 주먹질하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한다"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학을 옮겨다니던 장혁진은 내셔널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스포츠니어스

강원 승격 돕고도 재계약 제의 없어… 안산 가니 어느덧 중고참

불미스러운 일을 뒤로하고 그는 어쨌든 강원에서 확실한 살림꾼으로 자리 잡았다. 기어코 강원FC를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키며 승격의 주역이 됐다. 장혁진은 강원과의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승격과 함께 그의 자리는 위태해졌다. 강원 구단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며 구단을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그렸다. 강원은 승격의 주역이었던 장혁진에게 재계약 제의를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아쉬움과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섭섭했던 마음은 있다. 구단과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승격에 도움이 됐지만 내가 구단이 생각한 기준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재계약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다시 선수 생활의 막다른 골목. 그런 그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아끼던 지도자들 덕분이었다. 최윤겸 감독은 구단이 장혁진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자 애제자를 이흥실 감독에게 적극 추천했다. 당시 FC안양 감독직을 내려놓고 안산 그리너스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려던 이영민 코치가 미리 그에게 귀띔을 해줬다. "혁진아. 몸 만들고 있어. 이번에 안산에서 팀이 창단될 건데 이흥실 감독님이 널 부르실 거야." 이영민 코치의 말처럼 이흥실 감독은 자유계약 신분이 된 장혁진을 창단 멤버로 불러 그와 계약을 맺었다.

장혁진은 "안산에 입단하니 내 위치가 중고참이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형들만 따라다녔는데 안산에 오니 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좋게 말하면 젊은 팀이지만 노장들이 없으니 잡아줄 선배가 필요했다. 내가 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원래 나서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생들이 잘 따라주고 있어 고마울 뿐이다"라며 안산에 합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을 옮겨다니던 장혁진은 내셔널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스포츠니어스

라울과의 특별한 만남, 도움왕 타이틀을 거머쥐다

그는 안산에서 주전으로 입지를 다졌다. 이흥실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멀티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흥실 감독과 안산 코치진은 그에게 많은 정성을 들였다. 장혁진은 힘이 좋거나 터프한 스타일이 아니다. 안산 코치진은 그에게 세밀한 플레이를 요구했다. 골보다 도움을 더 좋아하는 장혁진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더 좋은 자리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넘겨주라"라고 주문했다.

특히 주 득점포 라울과 궁합이 잘 맞았다. 장혁진은 "라울과 잘 맞는 것 같다. 서로 눈만 봐도 원하는 걸 알 수 있다. 크로스나 패스 선택의 폭이 좁아질 때도 라울은 기가 막히게 자기 자리를 찾아서 들어온다. 라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감독님이 주문하신 대로 따르다 보니 운동장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라고 전했다.

이흥실 감독의 주문으로 장혁진과 라울은 골을 만들어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안산의 순위는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개인 기록은 어느새 상위권까지 올라갔다. 경남의 말컹은 넘기 힘든 산이었지만 라울은 장혁진의 크로스를 꾸준히 골로 연결했다. 그리고 장혁진은 신생팀 안산에서 무려 13개의 도움을 올리며 K리그 챌린지의 도움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혹은 그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멀티플레이어이기에 그랬을까. 그가 K리그 시상식에서 시상대에 올라선 순간은 한 번뿐이었다. 왼쪽 미드필더 베스트 일레븐 후보에서 그는 10골 10도움을 올린 경남FC 정원진에게 밀렸다. 2017 K리그 챌린지 도움왕은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내심 기대는 했었다"라면서도 "정원진도 왼쪽에서 10-10을 했으니 충분히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라면서 '도움왕'답게 정원진의 베스트 일레븐 선정을 축하해줬다.

대학을 옮겨다니던 장혁진은 내셔널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스포츠니어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세 개 대학을 두 번이나 옮겨 다니던 그는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조금씩 전진하며 프로 무대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개인 타이틀도 얻어냈다.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갔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도전하면서 실수하는 것과 쭈뼛쭈뼛하며 실수하는 것은 다르다. 실수하더라도 자신 있게 해야 하는 것 같다.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줘야 한다. 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는 어렵게 프로 무대에 올라섰다. '우여곡절'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그는 "프로에 오고 난 후가 더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렵게 올라선 프로 무대인 만큼 그는 아직도 간절하다. 후배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생존'을 이야기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수차례 선수 생활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도움왕'까지 얻어냈다. 그의 생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이번 시즌 목표에 대해 "우선 팀 순위를 더 높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원한다. 부상 없이 꾸준히 경기에 나서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던 그이기에 더 설득력이 있었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