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LS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K리그의 롤 모델 중 하나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다.

지난해 11월, K리그 실무자 약 90여명은 MLS 비즈니스 전략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받았다. J리그의 지역연고 강화와 함께 MLS의 통합 마케팅 전략을 배우겠다는 뜻이다. MLS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리그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축구는 그다지 인기 없던 마이너 스포츠지만 MLS를 통해 축구의 인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K리그의 롤 모델이라고 하니 MLS가 마냥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MLS 역시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있다. K리그가 해낸 일을 MLS는 아직 못했다. 하지만 MLS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바로 2013년 K리그가 도입한 승강제다. 아직까지 MLS는 승강제가 없다. 하지만 MLS는 엄연히 2부리그를 갖추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가져온 미국 프로축구의 기이함

스포츠 팬이라면 알다시피 미국의 프로 스포츠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MLB)를 비롯해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NHL) 등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가 프랜차이즈 시스템이다. 한국에서는 KBO리그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특징은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입하기만 한다면 독점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다.

MLS도 예외는 아니다. 1996년 창설된 MLS는 지금까지 꾸준히 창단 팀을 받고 있다. 하지만 MLS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리그 가입비만 해도 약 1억 5천만 달러(약 1,700억원)로 알려져 있다. 신규 팀이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도 축구의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현재 MLS는 20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MLS 가입이 어려운 클럽들은 다른 리그에 속해 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두 리그가 북미 사커 리그(NASL)와 유나이티드 사커 리그(USL)다. NASL은 2009년에 설립해 2011년에 출범한 리그고 USL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MLS까지 포함한다면 세 개의 프로 축구 리그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세 리그 간에 승강제는 없다는 것이 독특하다.

세 개의 리그가 미국에 등장하자 초기에는 MLS가 1부리그, NASL이 2부리그, 그리고 USL이 3부리그로 여겨졌다. 서로 다른 세 리그가 있으니 미국 축구연맹(USSF)이 교통 정리를 한 셈이다. USSF는 클럽 수, 클럽의 지리적 분포, 클럽의 시장 규모와 함께 구단주의 재정 상황까지 고려해 각 리그에 1부, 2부, 3부리그로서의 권한을 부여했다.

엇갈린 NASL과 USL의 운명

진입 장벽이 높은 MLS는 그만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다. 꾸준히 기준을 준수하는 팀만 받아들이며 조금씩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MLS가 성장한다고 NASL이나 USL이 함께 성장한다는 법은 없었다. 명목상 2부리그고 3부리그였지 사실상 독립된 다른 리그로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두 리그는 서로 엇갈린 길을 걷기 시작했다.

NASL은 점차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8년부터 1984년까지 북미 프로축구 1부리그로 운영됐던 NASL와 똑같은 명칭을 사용하며 과거의 영광을 꿈꿨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특히 FIFA 부패 스캔들이 NASL에도 타격을 줬다. 당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스포츠 마케팅 기업 '트래픽 스포츠 USA'가 NASL의 주요 투자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FIFA 스캔들 이후 NASL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 NASL 공식 페이스북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리그 의존도가 일반 클럽 시스템에 비해 비교적 높다. 따라서 NASL이 휘청대면 산하 구단 역시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2015년 샌안토니오 스콜피온스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무려 다섯 개 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심지어 NASL의 상징이라 불리고 펠레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뉴욕 코스모스도 재정 위기에 시달렸다. 그렇게 NASL은 힘을 잃어갔다.

반면 USL은 2013년부터 성장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USL은 MLS와 제휴를 맺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MLS 리저브 리그와 USL이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우선적으로 MLS 팀이 USL 팀과 협력 관계를 맺고 선수들을 임대 보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 2014 시즌 LA 갤럭시가 처음으로 리저브 팀을 USL에 참여시켰다. MLS의 USL 진입은 점점 빨라졌고 2015 시즌에는 모든 MLS 팀이 리저브 팀을 USL에 참여시켰다.

결국 이것이 USL의 규모 확장으로 이어졌다. 당연한 이야기다. USL은 규모가 방대해지자 MLS와 같이 두 개의 컨퍼런스로 리그를 나눴다. 현재 USL에 참여하는 클럽은 총 33개다. 향후 5팀이 더 추가될 예정이다. 2021년까지 다섯 개 클럽이 성공적으로 리그에 안착하게 된다면 USL은 총 38개 팀으로 운영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할 예정이다. 물론 지금도 규모는 방대한 편이다.

미국 프로축구는 2부리그가 두 개다

두 리그의 엇갈린 운명은 구단의 리그 이동으로 이어졌다. NASL 구단이 USL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2부리그 구단이 3부리그로 가는 셈이다. 물론 기준을 충족해 MLS로 간 구단도 있었지만 USL로 이동한 구단이 더 많았다. 결국 USSF는 2017년 1월 6일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NASL과 USL 두 리그 모두에 2부리그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USL이 성장의 결실을 얻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USL이 NASL과 드디어 동등한 위치에 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현지 매체들은 USL의 승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NASL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곧 망할 것 같은 리그가 2부리그의 지위를 사수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USL이 약 30개 클럽을 거느리고 있는 반면 당시 NASL은 고작 8개 클럽이 전부였다. 그들의 말이 일리가 있는 셈이다.

이후에도 NASL의 구단 이탈은 계속됐다. 2018 시즌을 앞두고는 노스 캐롤라이나 FC와 인디 일레븐이 NASL에서 USL로 넘어왔다. 특히 인디 일레븐은 과거 서울 이랜드 감독이었던 마틴 레니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국내 축구 팬들에게 알려지기도 한 팀이다. 결국 NASL 산하 클럽은 단 여섯 개 밖에 남지 않았다.

▲ NASL에서 온 노스 캐롤라이나를 환영하는 USL

두 리그의 경쟁은 결국 USL의 승리로 조금씩 굳혀지고 있다. 이제 USL은 클럽 수 자체만 놓고 봤을 때 MLS를 능가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점은 존재한다. 2부리그라는 한계다. USL에 가입한, 그리고 NASL에 남아있는 클럽들은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1부리그인 MLS로 올라가지 못한다. 축구를 잘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벌고 시장을 개척해 MLS 가입 기준에 맞추는 것이 승격에 더 수월하다. 이는 계속해서 USL과 NASL 팬들의 불만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쟁, 승강제

미국 프로축구에서 승강제는 계속해서 논쟁거리다. 지난해 9월 이 갈등이 한 번 폭발했다. NASL 소속 마이애미 FC가 ML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마이애미는 MLS가 승강제를 도입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호소했다. 당시 마이애미 대표이사는 "MLS는 승강제가 없는 폐쇄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면서 "이는 FIFA의 규정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송까지 갔지만 MLS는 승강제를 채택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과거부터 MLS는 세계 축구와 차별화를 뒀다. 자신들 만의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심지어 일부 축구 규칙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시도했다. 물론 규칙에 대한 부분은 이후 다시 세계 기준에 맞춰 바꿨지만 샐러리캡이나 드래프트와 같은 제도는 아직도 MLS에서 볼 수 있다. 승강제 대신 컨퍼런스로 리그를 나눈 것 또한 MLS의 독특한 모습인 셈이다.

FIFA 스캔들 이후 NASL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 NASL 공식 페이스북

승강제에 대한 MLS의 논리는 한결같다. '기준 맞춰서 가입하라'는 것이다. 만일 승강제가 시행 된다면 MLS 구단들이 누리고 있는 독점적 권리를 더 이상 보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분명 승강제에는 승격 뿐 아니라 강등도 포함된다. MLS 구단이 2부리그로 강등된다면 더 이상 MLS의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가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세계 축구 리그의 기준에 맞춰서 본다면 MLS의 논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프로축구 리그는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 최소한의 기준을 갖추면 팀을 창단할 수 있다. 그리고 최하부리그에서 시작해 실력대로 승격을 하고 강등을 당한다. 승격에 있어서 돈이나 인프라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 축구의 시스템과 미국 프로 스포츠가 유지하고 있던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축구계 내에서는 승강제 도입과 함께 드래프트와 샐러리캡 폐지 등 세계 축구 시장에 발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MLS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축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향후 MLS와 USL은 어떻게 흘러갈까? 미래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정말 낮은 확률로 MLS가 마음을 바꿔서 승강제를 도입한다면 실제로 USL 팀이 MLS로 승격하는 역사가 쓰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가능성은 매우 낮다. MLS가 승강제를 도입할 생각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USL의 상황 또한 승강제에 최적화 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재 USL은 33개 팀을 보유하고 있다. 상당히 큰 규모다. 하지만 이 중에는 MLS 리저브 구단이거나 MLS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클럽이 꽤 많다. 20개 팀이 이에 해당된다. 실질적으로 MLS의 하위 팀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독립적인 클럽은 13개 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USL은 MLS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USL은 승강제를 대비한 예비 2부리그의 역할 대신 미국 프로야구 시스템과 비슷한 길을 걸어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 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구분되는 것처럼 USL 역시 마이너리그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비교적 많다. 계속해서 MLS에 선수를 뺏기는 USL의 팬들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만한 예측이지만 현재 상황을 살펴봤을 때 그리 흘러갈 가능성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미국 프로축구는 성장 중이다. 물론 NFL(미식축구), NHL 등 다른 스포츠 리그에 비해 흥행 등의 면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팀 창단과 각종 지표의 꾸준한 상승은 향후 미국 프로축구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들게 한다. 이제 관건은 세계 축구와 미국 축구의 괴리감을 줄이는 것이다. 축구는 글로벌 스포츠다. 앞으로 그들이 계속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세계 축구와 발을 맞출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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