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결국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이 확정됐다.

17일 남북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개최한 북한 평창동계올림픽 참여를 위한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11개 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이 공동보도문 안에는 단일팀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단일팀을 구성해 올림픽에 함께 나간다는 것이다. 갑론을박이 오갔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은 결국 확정됐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다. 정치권이 스포츠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개막하기도 전부터 계속해서 우려가 나오던 평창동계올림픽이다. 적어도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에서 시작되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라고 봤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한 발 더 나갔다. 단일팀까지 만들겠다고 나섰다. 대상은 여자 아이스하키였다.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 희생은 아이디어를 꺼낸 쪽이 아니었다. 온전히 선수들과 지도자의 몫이었다. 실업팀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여자 아이스하키는 지원을 받기도 전에 먼저 희생을 강요당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무지함 자랑했던 단일팀 구성 과정

단일팀이 구성되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실소의 연속이었다. 정치권이 스포츠에 얼마나 무지한지 자랑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엔트리 구성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남측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를 추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선수 교체가 자주 이뤄지니 괜찮다"는 말로 불을 지폈다. 적어도 한창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만 보러 갔어도, 아니 아이스하키 '덕후'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에게 전화 한 통 했어도 이런 말은 나오기 어려웠을텐데 말이다.

평창을 위해 그들은 4년 가까이 준비했다 ⓒ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이낙연 총리도 여기에 가세했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우리가 세계 랭킹 22위, 북한이 25위다"면서 "메달권에 있지 않다"라고 발언했다. 여전히 대표팀에 대한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함을 알 수 있는 발언이다.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정권이 옛날에도 있었다. '메달 따서 국위선양한다'며 태릉 선수촌을 만들어 엘리트 체육만 죽어라 키운 군사 정권이 그랬다.

문 대통령이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직접 찾기도 했다. 그는 "국내에 변변한 팀이 없어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유일한 팀이라 할 정도로 어려움 속에서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격려했다.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면 이래서는 안된다. 그는 "남과 북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 함께 경기에 임한다면 그 모습 자체가 역사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도 말했지만 그들은 정치 드라마의 배우가 아니다. 그들은 선수다.

새라 머레이 감독 발언에서 느껴지는 진한 부끄러움

물론 체육계도 책임을 져야 한다. 파벌 싸움, 밥그릇 싸움을 할 때는 법적 투쟁까지 불사하면서도 온갖 난리를 치더니 이런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있다. 제 식구조차 제대로 감싸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체육계의 모습이다. 거대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을 통해 보여주는 체육계의 정치력 등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외국인 한 사람이었다. 여자 아이스하키팀 감독 새라 머레이다. 캐나다인인 그녀는 2014년 9월 한국에 부임해 불모지였던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이번 단일팀 구성에 대해 "조직력이 약해질 수 있고 특히 우리 선수들의 사기가 꺾일 것이다"라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이어진 그녀의 말은 우리를 상당히 부끄럽게 한다. "우리 선수들을 먼저 챙길 것이다"라고 말한 그녀는 "만약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더라도 내게 북한 선수를 기용하라는 압박은 없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을 외국인이 제일 먼저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과거 197~80년대 공산 국가의 스포츠 지도자들이나 말할 법한 이야기를 2017년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부끄러웠다.

한국에서 스포츠는 그저 정권의 도구인가

앞서도 말했지만 단일팀의 대상이 된 여자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은 말 그대로 '선수'다. 선수는 승리를 위해서 열정을 다 바쳐 뛸 때 그 존재 가치를 증명받는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 이 기회를 빼앗겠다는 뜻이다. 평화 올림픽? 좋다. 하지만 북한이 참가하고 남북 공동입장을 한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단일팀을 만든다고 더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을까?

정권이 수 차례 바뀌었지만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과거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었지만 이 상황을 바라보는 지금도 입에서는 절로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온다. 여자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들의 기회를 뺏자는 말이 너무나도 쉽게 나온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포츠는 그저 도구일까? 현재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정치가 바라보는 스포츠는 7~80년대 독재 정권이 바라보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묻고싶다. 그들이 대선 기간 동안 수없이 외쳤던 그 말이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 아니 적어도 스포츠에서 통용되고 있는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맺으려고 한다. 아직까지도 스포츠에 대한 정권의 무지함에 한숨이 깊게 나온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