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토쟁이’와 ‘코인충’

비트코인
너도나도 비트코인에 빠져 있다. ⓒSBS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주말 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했다. 우리는 늘 만나면 20년 전 대천해수욕장에서 헌팅을 하다 망신당했던 이야기를 하며 낄낄대고 18년 전 여자친구에게 차인 일로 놀린다. 매번 술을 마실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늘 즐겁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니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이 친구들은 술을 마시는 내내 대화를 하기보다는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한 녀석은 스포츠 도박에 돈을 걸어놓고 해외축구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비트코인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로또 5만 원어치를 사 그걸 일일이 맞춰보고 있었다.

휴대폰에 정신 팔린 사람들
술 자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철저히 소외됐다. 이 녀석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실시간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직 젊은 놈들이 크게 한몫 벌어보겠다고 스포츠 도박을 하고 비트코인과 일상생활을 바꾼 이들의 모습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안타깝지만 이런 일은 비단 지난 주말 친구들을 만났을 때만이 아니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기 보다는 휴대폰을 더 오래 쳐다본다. 실시간으로 돈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걸어놓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즈아”를 외치며 비트코인에 열중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세상이다. 온전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토토 정보 좀 줘봐.” 내가 스포츠 관련 일을 하니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럴 때면 나는 늘 똑같이 답한다. “알았으면 내가 걸어서 내가 땄지.” 나는 태어나서 합법적인 스포츠토토를 재미삼아 한 세 번 정도 사본 것 같다.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스포츠 승패 예측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스포츠 도박에 열중하는 이들과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은 별로 공감대가 없다. 과정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예측 결과에만 혈안이 된 이들을 일부에서는 ‘토쟁이’라고 부른다. 내 주변에도 ‘토쟁이’가 꽤 많다. 하지만 그들과 스포츠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지는 않는다. 스포츠를 통해 돈을 따려는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는 데얀의 수원 이적이나 경남의 승격 같은 건 별로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목적은 결과에만 있다.

요즘 들어 가상화폐 투자에 열광하는 이들이 늘었는데 과도하게 여기에 매달리는 이들을 ‘코인충’이라고 부르더라. 내 주변에도 많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가상화폐가 미래의 트렌드가 될 것이고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에 돈을 넣으라고 나를 설득한다. 마치 일요일 오전 교회에 나오라고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던 아주머니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은 ‘토쟁이’는 양반일 정도로 휴대폰을 붙들고 산다. 1분 만에 얼마를 벌고 얼마를 잃었다며 투덜거린다.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해 규제한다니 사회주의 운운하며 정부에 쌍욕을 퍼붓는다. 망해도 내가 망할 건데 왜 정부가 개입하느냐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건 심각한 중독이다. 내 재산 날리고 내 몸 망가지는데 왜 너희들이 신경을 쓰느냐. 도박을 하고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똑같이 이야기하지 않나.

스포츠 도박
해외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통해 큰 돈을 벌어주겠다고 속여 수십억 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

우리는 지금 ‘도박공화국’에 살고 있다
가상화폐의 가치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다.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갈린다. 사람들은 만나면 가상화폐를 놓고 싸운다. 물론 가상화폐에 투자한다고 다 ‘코인충’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코인충’이라는 건 가상화폐에 투자한 뒤 이를 맹신하는 이들을 뜻하는 거다. 그런데 일반인과 가상화폐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면 ‘코인충’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돈 버는 게 부럽냐. 너는 평생 그렇게 성실히 일해서 돈 벌어라.” 뭐 가상화폐가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 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갈등 조장과 국론분열로 인한 잠재적인 손해를 따져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경제학 전문가가 아니니 가상화폐의 가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코인충’들의 전도(?)를 들어보니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제 온전히 사람과 사람이 눈을 맞추면서 대화하는 일이 어려워진 세상이 너무 안타깝다는 거다. ‘토쟁이’와 ‘코인충’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휴대폰 속 실시간 스코어와 그래프에만 얼굴을 파묻고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과연 이게 인간을 위해 생겨난 좋은 시스템인지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썸녀’가 하루 아침에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나와 대화가 꽤 잘 통하던 이 여성은 이 다음 날부터 이상해졌다. 같이 영화를 보는데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영화 막판에 나오는 악당을 우리 편으로 오해할 만큼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물으니 이 여성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 사실 나 비트코인 시작했어. 영화 보는 동안 20만 원 벌었다.”

통탄할 일이다. 영화 한 편 보는 시간도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다. 요즘 세상이 이렇더라. 만나면 “어제 한 경기만 안 부러졌으면 100만 원 먹는 건데…”라고 아쉬워하는 ‘토쟁이’와 “어제 앉아서 30분 만에 10만 원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코인충’이 넘쳐난다. 그들은 휴대폰 안에 마치 세상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계속 거기에만 집중한다. 스포츠 도박과 가상화폐의 순기능도 있겠지만 이를 온전하게 즐기거나 투자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다른 게 도박이고 중독이 아니다. 잠깐의 시간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휴대폰의 노예가 된 이들은 그게 도박이고 중독이다. ‘토쟁이’와 ‘코인충’이 넘쳐나는 이곳은 가히 ‘도박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스포츠 도박과 가상화폐를 통해 한탕을 노린다.

한강
아직 한강 물이 차다. 막 들어가면 안 된다. ⓒ픽사베이

한탕 위해 일상도 버린 이들
이런 글을 쓰면 또 ‘토쟁이’와 ‘코인충’이 몰려와 한소리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얼마나 유망하고 가능성 높은 도박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그저 온전하게 사람의 눈을 마주하며 대화하는 시간도 아까워 휴대폰 속 스포츠 도박과 가상화폐의 노예가 된 이들에 대한 한탄이다. 20년 전 대천해수욕장 헌팅 실패 굴욕을 낄낄거리며 이야기하던 내 친구들과 눈빛이 반짝반짝했던 내 ‘썸녀’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들이 하루 종일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 속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면 좀비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너무나도 한탕주의에 빠져 있는 이 세상이 참 서글프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게 바보처럼 느껴지는 세상이 됐다.

스포츠 도박과 가상화폐로 천문학적인 부자가 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하지만 너도나도 이 한탕주의에 빠져 정말 중요한 걸 잃는다. 0.01%도 되지 않을 대박을 쫓아 일상생활까지도 버린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액정만 바라보고 있는 걸 과연 트렌드라고 볼 수 있을까. 부자가 되는 것도 좋고 스포츠 도박이나 가상화폐로 억만장자가 되는 것도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99.99%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계속 좀비처럼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을 텐가. 휴대폰 속 세상에 진리가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좀 사람답게 살자. 아직 한강 물이 차갑다. “가즈아. 가즈아“ 외치다가 한강으로는 가지는 말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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