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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FC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데얀이 라이벌 팀 수원 삼성으로 이적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던 '렛츠고 데얀'은 이제 들을 수 없다. 그의 이적은 이번 겨울 이적시장 최대 이슈다. 데얀의 이적 과정에 얽힌 여러 가지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그의 이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도 존재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이직'과 '배신'이다.

기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선수가 최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는 경우는 꽤 많았다. 바로 작년에는 이상호가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검붉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아들과 같았던 마리오 괴체가 그들의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할 당시에도 큰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데얀이 K리그와 FC서울에서 쓴 역사나 팀에서의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유로 2000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루이스 피구의 상황과 가장 비슷할 것이다.

데얀은 서울을 사랑했다. 서울의 우승 경쟁을 위해 몬테네그로 대표팀 차출도 거부할 정도였다. 중국에서 받았던 거액 연봉을 삭감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그의 선택은 서울이었다. 가족들도 서울 생활에 큰 만족을 나타냈다. 그는 "서울에서 은퇴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퇴 시기는 데얀이 결정할 일이었다. 서울 구단은 그에게 2017시즌을 끝으로 그에게 은퇴를 권고했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해외에서 그의 경력을 이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K리그 팀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 가족들의 생활 만족도가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데얀과 서울의 어긋난 이해관계

서울은 팀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길 원했다.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서울의 의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영입은 조영욱이었다. 서울은 지난 시즌 상주 상무를 제외한 K리그 클래식 팀 중에서 가장 평균 연령이 높은 팀이었다. 상주 상무는 군 팀 특성상 28명의 선수단 평균 연령이 28.2세였다. 서울이 보유하고 있던 41명의 선수단 평균 연령은 27.4세였다. 강원(27.2세), 전북(27세)보다도 높은 연령대 선수들을 데리고 있었다.

서울은 데얀을 부담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는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물론 데얀은 지금도 최전방에서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그의 기량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의 높은 연봉은 리빌딩을 계획한 서울로서는 걸림돌이었다.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데얀이었기에 서울은 그에게 '아름다운 이별'을 제시했다.

데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수 관계자들에 의하면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했던 데얀과 접촉한 구단은 수원 말고도 울산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가 있었다. 결국 데얀의 선택은 수원이었다. 수원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무대를 위해 그를 원했다. 그가 최종적으로 수원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의 가족들과 에이전트인 이싸빅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데얀은 프로 선수다. 그는 K리그에서 능력을 입증한 사람으로서 직장 선택의 자유가 있다. 수원과의 이해관계도 명확했다. 평균 연령 26.1세의 선수들로 K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수원으로서는 데얀의 경험과 득점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조나탄과 산토스의 공백도 발생했다. 데얀이 수원에 안겨줄 이익은 명확했다. 수원과 데얀이 계약서에 '합의'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잘 설명할 수 있다. 데얀이 충성을 다했던 서울을 고려대상에서 제외한다면 데얀과 수원의 계약은 '윈-윈' 계약이다. 흔한 '이직' 사례와 마찬가지다. '이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데얀의 선택은 합당하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사람이 현재 소속팀에서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이직을 고려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7년 상반기 직장인들을 관통한 트렌드는 '퇴사'였다. 그러나 고용불안과 불안정한 경제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직장인들의 '퇴사 트렌드'는 점차 '이직'으로 방향을 바꿨다. 사회 구성원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대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었다가 최근에는 이직을 위해 퇴사를 준비하는 '퇴준생'이 됐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꿈 꾸라고 말한다. 그리고 프로 축구 선수는 너무나도 분명한 '직업인'이다. 비시즌 동안 이적 소식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것이 그 증거다. 게다가 축구라는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이적은 경쟁 업체 이직에서 발생하는 '경영금지약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원클럽맨'으로 칭송받는 '직장인'들이 더 귀하다.

데얀이 수원삼성으로 이적했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적이다. ⓒ수원삼성

'이직'과 '배신'의 사이에서

그러나 여기서 축구라는 종목의 특성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이직은 보통 이직과 다르다. 그가 직장을 옮겼을 뿐이라는 해석은 여러 가지로 빈틈이 많다. 서울과 수원의 관계는 '변수'라기보다 '상수'로 봐야 한다. 직장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축구판에서, 그리고 겨울과 여름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선수들의 '이직' 소식 중에서도 라이벌 팀으로의 이적이 크게 이슈되는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 루이스 피구의 이적이 그랬고 마리오 괴체의 이적이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라이벌리즘을 보여주는 곳은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다. 그들은 연고전을 통해 상대를 조롱하기도 하고 깔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타내는 라이벌리즘의 기반에는 상대를 인정하는 정서가 깔려있다. 고려대쯤은 되어야 연세대를 상대할 수 있다. 연세대쯤은 되어야 고려대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그들은 정기 연고전이 마무리되면 서로 신촌이나 안암동에 모여 기차놀이를 하고 조롱했던 상대와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푼다. 서로의 응원가를 불러주며 서로를 인정해주고 섭섭한 감정들을 풀어낸다.

축구에서 나타나는 라이벌리즘은 확연히 다르다. 정기 연고전처럼 상호협력과 발전을 구축하는 라이벌이 아니다. 축구는 다른 종목보다도 피아 구별이 도드라진다. 축구 경기는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진검승부다. 축구에서 라이벌 팀은 라이벌이 아니라 '적'이다. 11명의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은 잔디와 흙에 더러워지고 축구화와 발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서포터들은 그들을 위해 함께 뛰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다. 총성이 없어도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스포츠가 축구다.

서울과 수원은 완전한 적대 관계다. 데얀이 수원의 유니폼을 입은 것은 김유신이 백제군으로 들어간 것이나 계백이 신라군 갑옷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다. 쉬쉬하고 터부시되는 이적이 아닌 그야말로 '배신'인 것이다. 결국 그는 '배신자'라는 십자가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K리그에 역사를 새긴 위대한 선수로 기억될 수 있었던 그는 마지막 종착지로 수원을 선택하면서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울산이나 제주를 선택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데얀이 모두가 인정하는 위대한 선수로 기억되는 방법은 서울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방법뿐이었다. 은퇴하거나 혹은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데얀이 수원삼성으로 이적했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적이다. ⓒ수원삼성

어쩌면 '복수'일 수도

서울 팬들이 데얀의 이름을 지워내는 순간 드러나는 인물이 있다. 아디의 존재가 더 특별해질 것이다. 2013년까지 서울의 수비를 책임졌던 그도 시즌 막판 체력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서울의 시즌 후반 실점은 아디의 수비 실책에서 비롯했다. 서울은 그에게 은퇴를 권고했고 아디는 장고 끝에 받아들였다. 서울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그를 위해 성대한 은퇴식을 마련했다. 그리고 아디는 영원히 서울의 전설로 남았다.

데얀과 함께 서울의 공격을 이끌었던 몰리나는 아예 K리그를 떠나 고향으로 향했다. 인디펜디엔테 메데인으로 이적하며 그곳에서 2년을 뛰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서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아디와 몰리나, 데얀의 행보는 이렇게나 다른 형태로 갈렸다. 아디와 몰리나는 여전히 서울 팬들에게 사랑받지만 데얀은 이제 수원 팬들의 사랑을 대가로 서울 팬들의 적대감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검붉은 팬들의 적의를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수원 계약서에 사인했을 것이다.

그는 서울의 지난 시즌을 일컬어 '미친 시즌'이라고 표현했다. 황선홍 감독의 운영 방식에 무언의 불만을 내비친 적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데얀의 선택은 단순한 '이직'이나 '배신'이 아닌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선수의 책임감을 증명하는 방법은 경기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데얀은 수원 유니폼을 입고 서울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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